현리오(일본어: 玄 理吾 (ひょん りお) 현 리오[*], 2003년 12월 30일~)는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로, 포지션은…
현리오(일본어: 玄 理吾 (ひょん りお) 현 리오[*], 2003년 12월 30일~)는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로, 포지션은 미드필더이다. 본래는 대한민국 국적의 사람이었지만, 2023년 9월 8일에 일본 국적을 취득한 것이 발표되었다.
12월 30일: 14명
현리오(일본어: 玄 理吾 (ひょん りお) 현 리오[*], 2003년 12월 30일~)는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로, 포지션은…
현리오(일본어: 玄 理吾 (ひょん りお) 현 리오[*], 2003년 12월 30일~)는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로, 포지션은 미드필더이다. 본래는 대한민국 국적의 사람이었지만, 2023년 9월 8일에 일본 국적을 취득한 것이 발표되었다.
사노 가이슈(일본어: 佐野 海舟 (さの かいしゅう), 2000년 12월 30일 ~ )는 일본의 축구 선수로, 현재 독일의…
사노 가이슈(일본어: 佐野 海舟 (さの かいしゅう), 2000년 12월 30일 ~ )는 일본의 축구 선수로, 현재 독일의 클럽인 1. FSV 마인츠 05에서 뛰고 있다.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이다.
세노 유키(일본어: 瀬野 有希 (せの ゆうき), 1996년 12월 30일~)는 일본의 여자 축구 선수이다.
후지와라 사쿠라(일본어: 藤原 さくら, 1995년 12월 30일 ~ )는 일본의 여성 싱어송라이터이다.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후지와라 사쿠라(일본어: 藤原 さくら, 1995년 12월 30일 ~ )는 일본의 여성 싱어송라이터이다.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출신. 아뮤즈 소속.
가토 준야(일본어: 加藤 潤也 (かとう じゅんや), 1994년 12월 30일~)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다.
다나카 겐고(일본어: 田中 謙吾 (たなか けんご), 1989년 12월 30일 ~ )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다.
오카다 나오히코(일본어: 岡田 直彦 (おかだ なおひこ), 1978년 12월 30일 ~ )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다.
도다 가즈유키(일본어: 戸田 和幸 (とだ かずゆき), 1977년 12월 30일 ~ )는 일본 도쿄도 출신의 은퇴한 축구…
도다 가즈유키(일본어: 戸田 和幸 (とだ かずゆき), 1977년 12월 30일 ~ )는 일본 도쿄도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이다. 2009년 K리그의 경남 FC에서 활약하였으며, K리그에서 활동할 당시에는 토다라는 이름으로 활약하였다.
고노 가즈히사(일본어: 河野 和久 (こうの かずひさ), 1950년 12월 30일 ~ )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다.
이토 요시아키(일본어: 伊藤 芳明, 1933년 12월 30일 ~ )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다.
나카에 요스케(일본어: 中江 要介, 1922년 12월 30일 ~ 2014년 3월 6일)는 일본의 외교관이다. 1975년부터…
나카에 요스케(일본어: 中江 要介, 1922년 12월 30일 ~ 2014년 3월 6일)는 일본의 외교관이다. 1975년부터 1978년까지 외무성 아시아국장, 1978년부터 1987년까지 주유고슬라비아, 주이집트, 주중화인민공화국 특명전권대사를 역임했다.
민경식(閔庚植, 1920년 12월 30일, 용인 ~ 2000년 12월 22일 서울시)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니혼 대학…
민경식(閔庚植, 1920년 12월 30일, 용인 ~ 2000년 12월 22일 서울시)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니혼 대학 예술대를 졸업하였다. 만주일보사 기자를 역임했다. 제헌의회 의원 삼성서울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아마치 슌이치(일본어: 天知 俊一, 1903년 12월 30일 ~ 1976년 3월 12일)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지도자 및…
아마치 슌이치(일본어: 天知 俊一, 1903년 12월 30일 ~ 1976년 3월 12일)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지도자 및 야구 평론가이다.
도조 히데키(일본어: 东条英机, 1884년 12월 30일 ~ 1948년 12월 23일)는 일본 제국의 히로히토 천황 재위…
도조 히데키(일본어: 东条英机, 1884년 12월 30일 ~ 1948년 12월 23일)는 일본 제국의 히로히토 천황 재위 시기에 활동한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A급 전쟁범죄자이다. 1941년 10월 18일에 군인의 신분으로 행정수반인 총리대신을 되었으며 통수권 독립의 관례를 깨고 육군대신, 내무대신, 참모총장을 겸임하면서 대장으로 승진했다. 1942년 외무대신, 1943년 문부대신, 상공대신, 군수대신을 겸임하여 막강한 권력을 바탕으로 전쟁을 치루었으며, 공포정치의 일종인 ‘헌병정치’를 실시하여 군부독재 체제를 구축하였다.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기습공격을 명령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으나 이듬해 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배한 이후 일본이 점차 미국의 반격에 밀려 전세가 기울자 1944년 7월 18일 그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패전 후 자살을 시도했지만 미수에 그쳤으며,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기소되어 사형 판결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군인가문출신으로 사관학교를 졸업후 군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군인신분을 유지한채 일국의 총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러나 미국을 이길수 없다는 의견을 무시하고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또한 전진훈(战阵训)과 '와전옥쇄(瓦全玉碎) 훈령을 내려 많은 젊은군인들에게 목숨바쳐 전투에 임할 것을 독려했으나 정작 자신은 패전후 비굴한 처신으로 일관했다. 고의성 짙은 자살미수사건을 벌인후 전범재판에 회부되었는데, 책임을 회피하고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함으로 사무라이 후예로서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