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일본어: 三笠宮崇仁親王 미카사노미야 타카히토 신노[*], 1915년 12월 2일 ~ 2016년…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일본어: 三笠宮崇仁親王 미카사노미야 타카히토 신노[*], 1915년 12월 2일 ~ 2016년 10월 27일)은 일본의 황족이다. 신위(神位)는 친왕이며 《황실전범》에 따른 경칭은 "전하", 궁호는 1935년 생일날 치러진 성년식 때 나라시의 미카사 산에서 따 온 "미카사노미야", 칭호는 "스미노미야"이며 오시루시는 "삼나무"이다. 역대 일본 황족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인물로, 다이쇼 천황과 데이메이 황후의 넷째 아들이자 상황 아키히토의 작은아버지이다. 생전의 황위 계승 순위로는 5번째에 해당했다. 일본 제국 육군에서 소좌까지 올라갔으며, 전역 후에는 귀족원의 의원을 지내고 대훈위 훈장을 받았다. 이후 도쿄 예술대학의 일본 특별 명예 객원 교수가 되었다.
니시즈미 고지로(西住 小次郎, 1914년[다이쇼 3년] 1월 13일 - 1938년[쇼와 13년] 5월 17일)는 일본의…니시즈미 고지로(西住 小次郎, 1914년[다이쇼 3년] 1월 13일 - 1938년[쇼와 13년] 5월 17일)는 일본의 군인이다. 육사 46기. 최후계급은 육군보병대위. 훈오등·공사급. 구마모토현 가미마시키군 고사마치정 니타고 출신. 중일전쟁(지나사변)에 있어 제2차 상해사변부터 서주회전에 이르기까지 팔구식 중전차로써 전차장으로서 활약하였다. 전사 후 군부에서 공식적으로 '군신'으로서 최초 지정한 군인으로 유명하다.
호리 에이조(堀 栄三, 1913년 10월 16일~1995년 6월 5일)은 일본의 육군군인, 육상자위관이다. 최종계급은 육군…호리 에이조(堀 栄三, 1913년 10월 16일~1995년 6월 5일)은 일본의 육군군인, 육상자위관이다. 최종계급은 육군 중령(일본육군), 소장(육상자위대)로 예편했다.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무시하던 대본영에서 정보 분석과정으로 미군의 침공패턴을 정확히 읽어 "맥아더의 참모"라는 별명을 얻었다. 전쟁 동안 야마시타 도모유키 육군대장의 참모로 전후엔 해외 전쟁사 연구가로서 능력을 높게 평가받았다. 참의원이자 일본의 국토교통대신이었던 마에다 다케시(前田武志)의 삼촌이기도 하다.
세지마 류조(일본어: 瀬島 龍三, 1911년 12월 9일 ~ 2007년 9월 4일)는 일본의 군인, 기업가이다. 그는 제2차…세지마 류조(일본어: 瀬島 龍三, 1911년 12월 9일 ~ 2007년 9월 4일)는 일본의 군인, 기업가이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에 초급 장교로 참전하였으며, 후에 이토추 상사의 회장이 되었다.
노나카 시로(野中 四郎, Nonaka Shirō; 1903년 10월 27일 – 1936년 2월 29일)는 일본 제국 육군…노나카 시로(野中 四郎, Nonaka Shirō; 1903년 10월 27일 – 1936년 2월 29일)는 일본 제국 육군 장교로, 1936년 2.26 사건의 주모자 중 한 명이다. 최종 계급은 대위였다.
니시 다케이치(일본어: 西竹一)는 일본의 육군 군인으로, 화족(남작) 출신이다. 최종 계급은 육군 대령. 애칭은 바론…니시 다케이치(일본어: 西竹一)는 일본의 육군 군인으로, 화족(남작) 출신이다. 최종 계급은 육군 대령. 애칭은 바론 니시(Baron Nishi, 바론은 남작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이다. 이오지마 전투 당시 전차 제26연대장으로 참전 중 전사했다. 1932년 하계 올림픽 올림픽 승마 장애물 비월 금메달리스트이다. 일본의 올림픽 승마 개인전 메달리스트는 현재까지 니시 다케이치가 유일하다.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친왕(일본어: 秩父宮雍仁親王, 1902년 6월 25일 ~ 1953년 1월 4일)은 일본의 황족이다.…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친왕(일본어: 秩父宮雍仁親王, 1902년 6월 25일 ~ 1953년 1월 4일)은 일본의 황족이다. 아버지 다이쇼 천황과 어머니 데이메이 황후의 차남이며, 본명은 야스히토이다. 아명은 아쓰노미야(淳宮 (あつのみや))이다. 쇼와 천황의 아우이며, 부인은 옛 아이즈번주 마쓰다이라 가타모리의 손녀이자 외교관 마쓰다이라 쓰네오의 장녀 야스히토 친왕비 세쓰코이다. 계급은 육군 소장이다.
사토 겐료(일본어: 佐藤 賢了, 1895년 6월 1일 ~ 1975년 2월 6일)는 이시카와현 출신의 일본제국 육군 군인으로…사토 겐료(일본어: 佐藤 賢了, 1895년 6월 1일 ~ 1975년 2월 6일)는 이시카와현 출신의 일본제국 육군 군인으로, 최종 계급은 육군 중장이었다.
마키노 시로(牧野四郎, 1893년 4월 18일~1945년 8월 10일)는 일본 제국 육군 군인으로 최종 계급은 육군…마키노 시로(牧野四郎, 1893년 4월 18일~1945년 8월 10일)는 일본 제국 육군 군인으로 최종 계급은 육군 중장이다. 1944년 필리핀 레이테섬에 배치된 제16사단장을 맡아, 레이테 섬에 상륙한 미군에 저항해 싸우다가 620명의 부하만 남기고 항복한 후 자결한다.
가게사 사다아키(일본어: 影佐 禎昭 (かげさ さだあき), 1893년 3월 7일~1948년 9월 10일)는 일본 제국의 육군…가게사 사다아키(일본어: 影佐 禎昭 (かげさ さだあき), 1893년 3월 7일~1948년 9월 10일)는 일본 제국의 육군 군인이다. 최종 계급은 육군 중장으로 중일 전쟁 때 왕징웨이 정권에 관여하여 중국 내 친일 정권을 구축했다.
미야자키 시게사부로(宮崎 繁三郎, 1892년 1월 4일 ~ 1965년 8월 30일)는 일본 제국의 육군 군인으로, 최종…미야자키 시게사부로(宮崎 繁三郎, 1892년 1월 4일 ~ 1965년 8월 30일)는 일본 제국의 육군 군인으로, 최종 계급은 중장이다. 지금의 기후현 기후시 출신으로, 기후중학(현 기후 현립고등학교)를 나와 육사 26기로 임관했다. 장남은 같은 육사 출신으로 메이지 대학 총장을 지낸 미야자키 시게키(宮崎繁樹)다. 장교에 임관한 뒤 육군대학에 들어가 참모 교육을 받았다. 참모본부, 정보기관에서 오래 근무하긴 했지만, 할힌골 전투, 임팔 작전 등 일본군이 열세에 몰려 있던 전투에서 항상 전공을 거둔 것으로 더 잘 알려져 있어, 일본 육군 굴지의 야전 지휘관으로 명성이 높다. 전략적으로 불리한 상황하에서 싸우는 일이 많았고, 눈부신 ‘승리’를 얻지도 못했지만, 부대를 끝까지 지켜내고 끈질기게 싸웠다. 하지만 언제나 한정적인 부대 내 지휘권밖에 주어지지 않았고, 그런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아마카스 마사히코(일본어: 甘粕正彦, 1891년 1월 26일 ~ 1945년 8월 20일)는 일본 제국의 육군 군인이었다.…아마카스 마사히코(일본어: 甘粕正彦, 1891년 1월 26일 ~ 1945년 8월 20일)는 일본 제국의 육군 군인이었다. 1912년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18년부터 헌병대에서 복무했다. 헌병 대위 시절인 1923년 관동대지진 직후 좌익활동에 가담하던 오스기 사카에 등 3명을 헌병대 본부로 끌고가 살해한 아마카스 사건을 일으키고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1926년 가석방되어 프랑스에 유학하였다가 1930년 오카와 슈메이를 통해 만주로 건너가 만주사변과 만주국 건국에 관여했다. 이후 만주영화협회 이사장, 만주작곡가협회 고문 등을 맡으며 문화예술 공작에 참여하였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하고 소련이 만주국을 침공해오자 청산가리를 먹고 목숨을 끊었다.
다치바나 요시오(立花 芳夫, 1890년 2월 24일 ~ 1947년 9월 24일)는 일본 제국의 육군 군인이다. 최종 계급은…다치바나 요시오(立花 芳夫, 1890년 2월 24일 ~ 1947년 9월 24일)는 일본 제국의 육군 군인이다. 최종 계급은 육군 중장. 오가사와라 제도 지치지마섬에 주둔한 일본군 사령관이었으며, 소위 "오가사와라 사건"으로 알려진 연합군 포로에 대한 고문, 즉결처형, 식인의 죄를 물어 괌에서 교수형 당했다.
스즈키 데이이치(일본어: 鈴木 貞一, 1888년 12월 16일 ~ 1989년 7월 15일)는 지바현 출신의 일본제국 육군…스즈키 데이이치(일본어: 鈴木 貞一, 1888년 12월 16일 ~ 1989년 7월 15일)는 지바현 출신의 일본제국 육군 군인으로, 통칭은 "신사복을 입은 군인"이었다. "삼간사우" (三奸四愚) 라고 불렸던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측근의 3간 중 하나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히구치 기이치로(일본어: 樋口 季一郎, 1888년 8월 20일 ~ 1970년 10월 11일)는 일본의 군인이다. 최종계급은…히구치 기이치로(일본어: 樋口 季一郎, 1888년 8월 20일 ~ 1970년 10월 11일)는 일본의 군인이다. 최종계급은 육군 중장이며, 보직은 제5방면 군사령관 겸 북부군관구사령관이었다. 이스라엘 건국공로자로 인정받았다. 일본 효고현 미나미아와지시에서 5형제 가운데 맏아들로 태어났다. 11살 때 부모가 이혼하여 어머니가 그를 맡게 되었다. 18살 때는 기후현 오가키시의 히구치 가문에 양자로 들어갔다.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육군대학교를 거쳐 장교가 되고 나서는 주로 만주와 러시아쪽 부서에서 근무하였다. 하얼빈 특무기관장(소장)으로 재직했던 1938년에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온 유대인을 부하인 대좌(한국군의 대령에 해당)와 함께 여러 편의를 제공하고 이들이 만주국과 상하이 조계지로 피할 수 있도록 도왔다(오토볼 사건). 이 일 덕분에 나중에 유대인들이 로비를 벌여 전범으로 기소되지 않을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뒤에 부하 야스에 노리히로와 더불어 이스라엘 건국 공로자로서 <황금의 비>에 그 이름이 새겨졌으며 이스라엘 정부가 그 공적을 치하했다. 하시모토 긴고로(橋本欣五郎)와 함께 사쿠라카이(일본군부의 극우비밀결사조직)의 중심적 인물이었으나, 의견 차이로 다투고 나서 서로 갈라섰다. 또 2.26사건을 일으킨 청년장교와도 각별한 사이로 무력에 의한 실력행사를 조장하였다고 한다. 또한 아이자와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사건 당사자인 아이자와 사부로의 직속상관이었다. 이시와라 간지(石原莞爾), 아나미 고레치카(阿南惟幾)와도 절친한 사이였다. 인도적 차원에서 유대인을 도운 공적은 인정받았으나, 옛 일본군부 우익강경파로, 그 평가에 대해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할 수 있으며, 공과론으로 대표되는 긍정론과 두 얼굴의 제국주의자로 대표되는 부정론이 있다.
야스에 노리히로(일본어: 安江 仙江 やすえ のりひろ[*], 1886년 ~ 1950년)는 구 일본 육군의 군인으로서, 이스라엘…야스에 노리히로(일본어: 安江 仙江 やすえ のりひろ[*], 1886년 ~ 1950년)는 구 일본 육군의 군인으로서, 이스라엘 건국 공로자로 인정받은 인물이며 이름은 仙弘로 표기하기도 한다. 대좌(대령에 해당)로서 하얼빈 특무기관에 재직 중이던 1938년에 나치 독일의 박해로부터 도망쳐온 2만 명의 유대인에 대하여 특무기관장인 히구치 기이치로(樋口季一郎) 소장과 함께 급식 및 의류, 연류 등의 배급과 함께 환자에 대한 치료 실시, 이들의 제3국 출국 알선, 만주국 내의 정착 알선, 상하이 조계로의 이동 등의 활동으로 유대인을 도왔다(→ 오토폴 사건). 전후에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이스라엘 건국 공로자 중 한 사람으로 히구치 소장과 더불어 황금비에 그 공적을 기리는 이름이 새겨졌다.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왕(일본어: 東久邇宮稔彦王, 1887년 12월 3일~1990년 1월 20일)은 일본의 구황족이자…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왕(일본어: 東久邇宮稔彦王, 1887년 12월 3일~1990년 1월 20일)은 일본의 구황족이자 육군 군인이다. 계급은 육군 대장. 1944년 도조 히데키 후임으로써 일본 제국 부총리 겸 총리 권한대행 직을 이행하며 히로히토의 섭정을 잠시 지냈고 1945년 8월 17일부터 1945년 10월 9일까지 일본 황족으로서는 유일한 일본 제국의 제43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냈으며 전후 일본의 첫 내각총리대신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패전 처리 내각으로서 헌정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황족 내각을 조성하였으며 연합국에 대한 항복 문서의 조인, 육·해군의 해체, 복원의 처리를 실시하였다. 총리 재임 시절 일본의 일억 총참회(一億總懺悔)를 주장했지만 악명높았던 치안유지법을 고수하려다가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민주화 방침에 의해 오래가지 못했고, 역대 일본 내각 성립 이래 재임 최단 기간인 54일 만에 총사퇴했다. 총리 직을 사퇴한 후에는 본인의 궁호를 딴 이름의 신흥 종교인 히가시쿠니교를 창시하여 그 교주가 되었고, 이때, 나루히코 본인은 GHQ 측에 자신의 신적강하를 요구하여 황적에서 삭제되었다. 1990년 1월 20일에 향년 10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혼마 마사하루(本間 雅晴, 1887년[메이지 20년] 11월 27일 - 1946년[쇼와 21년] 4월 3일)는 일본의 육군…혼마 마사하루(本間 雅晴, 1887년[메이지 20년] 11월 27일 - 1946년[쇼와 21년] 4월 3일)는 일본의 육군 군인이다. 최후계급은 육군 중장. 영전은 종삼위·훈일등. 육사 19기 은사(恩賜)·육대 27기 은사. 태평양전쟁에서 필리핀 공략전을 지휘하였다. 영국통(通)으로 인도주의자로 연합국에서도 이름이 알려졌으나 죽음의 바탄 행진에서의 부하의 행위에 책임을 물려 전후 총살형에 처해졌다.
구로다 시게노리(일본어: 黒田重徳, 1887년 10월 25일 ~ 1954년 4월 30일)는 일본 제국 육군의 군인으로 태평양…구로다 시게노리(일본어: 黒田重徳, 1887년 10월 25일 ~ 1954년 4월 30일)는 일본 제국 육군의 군인으로 태평양 전쟁 시의 필리핀 방면군 사령관으로 육군 중장이었다. 전후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사카이 타카시(酒井 隆, Sakai Takashi; 1887년 10월 18일 – 1946년 9월 30일)는 제2차 세계 대전…사카이 타카시(酒井 隆, Sakai Takashi; 1887년 10월 18일 – 1946년 9월 30일)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 제국 육군의 중장으로, 일본 점령 하의 홍콩 총독으로서의 역할로 알려져 있다.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 왕(일본어: 朝香宮鳩彦王 아카사노미야 야스히코 오[*], 1887년 10월 2일 ~ 1981년 4월…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 왕(일본어: 朝香宮鳩彦王 아카사노미야 야스히코 오[*], 1887년 10월 2일 ~ 1981년 4월 12일)는 일본 제국의 황족이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군인이다. 신적강하 이전엔 황족을 나타내는 접미사(미야)와 관작명(왕)이 붙었으나 신적강하 이후엔 아사카 야스히코(朝香鳩彦)로 개명되었다. 아사카는 쇼와 천황에게 숙부뻘이자 고모부가 된다.
우시지마 미쓰루(일본어: 牛島 満, 1887년 7월 31일 ~ 1945년 6월 23일) 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우시지마 미쓰루(일본어: 牛島 満, 1887년 7월 31일 ~ 1945년 6월 23일) 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일본제국 육군의 군인이다. 그는 오키나와 전투에서 수비대를 지휘하였고, 섬의 함락과 함께 자결하였다. 가고시마현 출신으로 1908년 육군사관학교를 28기로 졸업했고, 육군대학을 1916년에 졸업했다. 1918년 일본의 시베리아 출병에 참전, 대위로 진급했다. 이후 일본에 돌아와 주로 야전 지휘와 후방 업무를 두루 경험하고, 1937년 소장으로 진급하여 여단장이 되었다. 이때 중일전쟁 남경 작전에 참가하였다. 이후 중장으로 진급하였고, 일본으로 돌아와 여러 교육직을 역임하였다. 1944년 오키나와 방위를 담당하는 제32군 사령관으로 부임하여, 1945년 4월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미국의 상륙부대에 대항하여 맞섰지만, 패배가 확실해지자 6월 23일 조 이사무(長勇) 참모장과 함께 전통적인 할복의식으로 자결하였다.
기타시라카와노미야 나루히사 왕(일본어: 北白川宮成久王 키타시라카와노미야 나루히사 오[*], 1887년(메이지 20년) 4월…기타시라카와노미야 나루히사 왕(일본어: 北白川宮成久王 키타시라카와노미야 나루히사 오[*], 1887년(메이지 20년) 4월 18일 ~ 1923년(다이쇼 12년) 4월 1일)는 일본의 황족이며 육군 장교이다. 기타시라카와노미야 요시히사 친왕의 제3왕자로 태어났으며, 비는 메이지 천황의 제7황녀 가네노미야 후사코 내친왕이다.
아나미 고레치카(일본어: 阿南 惟幾, 1887년 2월 21일- 1945년 8월 15일)는 일본 제국의 육군 군인이다. 제2차…아나미 고레치카(일본어: 阿南 惟幾, 1887년 2월 21일- 1945년 8월 15일)는 일본 제국의 육군 군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는 육군대신을 지냈다.
도쿠가와 구니유키(徳川圀順)는 일본 제국의 화족, 정치인, 육군군인이다. 계급은 육군 보병 소위. 작위는 후작에서 공작으로…도쿠가와 구니유키(徳川圀順)는 일본 제국의 화족, 정치인, 육군군인이다. 계급은 육군 보병 소위. 작위는 후작에서 공작으로 승작(1929년)되었다. 승작의 이유는 미토번주 도쿠가와 미쓰쿠니에 의해 편찬이 개시된 대일본사가 미쓰쿠니 이래로 미토 후작가의 가업으로 지속되어 구니유키 대(메이지 시대)에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도쿠가와 아쓰요시(徳川篤敬) 후작이며 어머니는 사토코(聰子, 다카마쓰 백작가 당주 마쓰다이라 요리토시 백작의 장녀)이다.
이소가이 렌스케(일본어: 磯谷 廉介, 1886년 9월 3일 ~ 1967년 6월 6일)는 일본 제국의 군인이다. 태평양 전쟁…이소가이 렌스케(일본어: 磯谷 廉介, 1886년 9월 3일 ~ 1967년 6월 6일)는 일본 제국의 군인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 홍콩 점령지 총독을 지냈다.
야마시타 도모유키(일본어: 山下 奉文, 1885년 11월 8일 ~ 1946년 2월 23일)는 일본 제국의 육군군인이다.…야마시타 도모유키(일본어: 山下 奉文, 1885년 11월 8일 ~ 1946년 2월 23일)는 일본 제국의 육군군인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육군 대장이었다. 별명은 "말라야의 호랑이"(マレーの虎)였다.
이타가키 세이시로(일본어: 板垣 征四郎, 1885년 1월 21일~1948년 12월 23일)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이타가키 세이시로(일본어: 板垣 征四郎, 1885년 1월 21일~1948년 12월 23일)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제국 육군의 장군이다. 만주국 군정부 최고 고문, 관동군 참모장, 육군 대신 등을 지냈으며, 이시와라 간지와 함께 만주사변의 주모자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열린 극동 국제 군사 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으며, 현재는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있다. 전 참의원 의원 이타가키 다다시(板垣正, 1924년~2018년)는 그의 차남이다.
도조 히데키(일본어: 东条英机, 1884년 12월 30일 ~ 1948년 12월 23일)는 일본 제국의 히로히토 천황 재위…도조 히데키(일본어: 东条英机, 1884년 12월 30일 ~ 1948년 12월 23일)는 일본 제국의 히로히토 천황 재위 시기에 활동한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A급 전쟁범죄자이다. 1941년 10월 18일에 군인의 신분으로 행정수반인 총리대신을 되었으며 통수권 독립의 관례를 깨고 육군대신, 내무대신, 참모총장을 겸임하면서 대장으로 승진했다. 1942년 외무대신, 1943년 문부대신, 상공대신, 군수대신을 겸임하여 막강한 권력을 바탕으로 전쟁을 치루었으며, 공포정치의 일종인 ‘헌병정치’를 실시하여 군부독재 체제를 구축하였다.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기습공격을 명령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으나 이듬해 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배한 이후 일본이 점차 미국의 반격에 밀려 전세가 기울자 1944년 7월 18일 그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패전 후 자살을 시도했지만 미수에 그쳤으며,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기소되어 사형 판결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군인가문출신으로 사관학교를 졸업후 군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군인신분을 유지한채 일국의 총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러나 미국을 이길수 없다는 의견을 무시하고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또한 전진훈(战阵训)과 '와전옥쇄(瓦全玉碎) 훈령을 내려 많은 젊은군인들에게 목숨바쳐 전투에 임할 것을 독려했으나 정작 자신은 패전후 비굴한 처신으로 일관했다. 고의성 짙은 자살미수사건을 벌인후 전범재판에 회부되었는데, 책임을 회피하고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함으로 사무라이 후예로서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도쿠가와 요시토시(일본어: 徳川好敏)는 일본 제국의 육군 군인, 화족이다. 최종 계급은 육군 중장. 작위는 남작. 시미즈…도쿠가와 요시토시(일본어: 徳川好敏)는 일본 제국의 육군 군인, 화족이다. 최종 계급은 육군 중장. 작위는 남작. 시미즈 도쿠가와 가(清水徳川家) 제8대 당주.
다니 히사오(일본어: 谷 寿夫, 1882년 12월 22일 ~ 1947년 4월 26일)는 중일 전쟁에서 참전한 일본제국 육군의…다니 히사오(일본어: 谷 寿夫, 1882년 12월 22일 ~ 1947년 4월 26일)는 중일 전쟁에서 참전한 일본제국 육군의 군인이다. 그는 난징 대학살의 책임자로서 전범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되었다.
다케다노미야 쓰네히사왕(일본어: 竹田宮恒久王, 1882년(메이지 15년) 9월 22일 ~ 1919년(다이쇼 8년) 4월…다케다노미야 쓰네히사왕(일본어: 竹田宮恒久王, 1882년(메이지 15년) 9월 22일 ~ 1919년(다이쇼 8년) 4월 23일)은 일본의 황족이며 일본 제국 육군 장교이다. 작위는 왕. 작가 겸 헌법학자 다케다 쓰네야스의 증조부. 기타시라카와노미야 요시히사 친왕의 제1왕자로 태어났으며, 비는 메이지 천황의 황녀 마사코 내친왕(昌子内親王)이다. 관위는 대훈위 공5급에 올랐다. 1903년(메이지 39년)에 다케다노미야의 칭호를 받아서 궁가를 창설하였다. 근위 기병 연대에 소속되어서 러일 전쟁에 종군하였다. 1919년(다이쇼 8년) 4월 23일 당시 유행하던 스페인 독감 감염으로 인해 사망하였다.
야마다 오토조(일본어: 山田 乙三)는 일본 제국 육군의 군인이자 관동주의 마지막 총독이다. 1903년 일본 제국 육군에…야마다 오토조(일본어: 山田 乙三)는 일본 제국 육군의 군인이자 관동주의 마지막 총독이다. 1903년 일본 제국 육군에 들어간 오토조는 1912년 일본 육군대학에서 24등의 성적을 거두었고, 기병장교로서 일본 육군에서 계속 승진하게 되었다.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했을 때 오토조는 만주에 기지를 둔 제12사단의 사단장이었고, 1938년부터 1년간 중지나 파견군의 총사령관을 맡기도 했다. 1944년 7월 관동주의 총독이자 관동군의 마지막 사령관이 된 오토조는 1944년 만주의 부족한 병력을 메우고 핵심 지역으로 군을 철수시켜 만주국을 보호하려고 했다. 그러나 1945년 소련-일본 전쟁이 발발했을 때 오토조의 만주 방어전략은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고, 그의 예하 부대는 소련군에 궤멸되었다.
니시오 도시조(西尾 寿造, 1881년 10월 31일~1960년 10월 26일)는 중지나방면군 초대 사령관 겸 제 13군…니시오 도시조(西尾 寿造, 1881년 10월 31일~1960년 10월 26일)는 중지나방면군 초대 사령관 겸 제 13군 사령관을 지낸 일본 제국 육군의 대장이다. 전후 전범으로 체포되어 A급 범죄에 해당되었던 자였다.
나카무라 고타로(일본어: 中村 孝太郎, なかむら こうたろう, 1881년 8월 28일 ~ 1947년 8월 29일)는 일본제국…나카무라 고타로(일본어: 中村 孝太郎, なかむら こうたろう, 1881년 8월 28일 ~ 1947년 8월 29일)는 일본제국 육군의 대장으로, 1930년대에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육군대신을 지냈다.
고이소 구니아키(일본어: 小磯 國昭, 1880년 3월 22일 ~ 1950년 11월 3일)는 일본의 육군 군인, 정치인이다.…고이소 구니아키(일본어: 小磯 國昭, 1880년 3월 22일 ~ 1950년 11월 3일)는 일본의 육군 군인, 정치인이다. 최종 계급은 육군 대장. 제41대 일본 내각총리대신을 지냈다.
스기야마 겐/하지메(일본어: 杉山 元, すぎやま げん/すぎやま はじめ, 1880년 1월 1일 ~ 1945년 9월 12일)는…스기야마 겐/하지메(일본어: 杉山 元, すぎやま げん/すぎやま はじめ, 1880년 1월 1일 ~ 1945년 9월 12일)는 일본 제국 육군의 군인이다. 원수, 육군 대장, 육군 대신, 태평양 전쟁 당시에는 참모총장을 지냈다. 후쿠오카현 출신으로 일본 육군사관학교와 일본 육군대학을 졸업하였고, 육군대신 · 참모총장 · 교육총감 등 일본 육군의 세 장관을 모두 역임한 뒤, 육군 원수 자리에 올랐다.
데라우치 히사이치(일본어: 寺内寿一, 1879년 8월 8일 ~ 1946년 6월 12일)는 일본 제국의 육군군인, 정치인이다.…데라우치 히사이치(일본어: 寺内寿一, 1879년 8월 8일 ~ 1946년 6월 12일)는 일본 제국의 육군군인, 정치인이다. 최종 계급은 원수 육군 대장. 위계는 종2위, 훈등은 훈1등, 공급은 공1급. 작위는 백작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에 남방군 총사령관이었다.
하타 슌로쿠(일본어: 畑 俊六, 1879년 7월 26일 ~ 1962년 5월 10일)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제국…하타 슌로쿠(일본어: 畑 俊六, 1879년 7월 26일 ~ 1962년 5월 10일)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제국 육군의 원수이자 육군 대장이었다. 그는 가이코샤(偕行社)의 회장이었으며, 그의 형인 하타 에이타로(畑英太郎)는 육군 대장, 육군성 군무 국장, 관동군 사령관 등을 역임한 일본제국 육군의 군인이었다.
안도 기사부로(일본어: 安藤紀三郎, あんどう きさぶろう, 1879년 2월 11일 ~ 1954년 5월 10일)는 일본 제국의…안도 기사부로(일본어: 安藤紀三郎, あんどう きさぶろう, 1879년 2월 11일 ~ 1954년 5월 10일)는 일본 제국의 군인이자 관료이다. 최종계급은 일본 제국 육군 중장. 태평양 전쟁 당시에 대정익찬회 (大政翼賛会) 부총재, 국무대신, 내무대신을 지냈다. 전후 A급 전범으로 체포되었다. 안도는 효고현에서 태어나, 1899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육군 보병 소위, 1901년 타이완 수비 보병 제10대대부 (守備歩兵第10大隊附), 육군 보병 중위, 1904년 보병 제10연대 중대장, 육군 보병 대위, 육군 보병 소좌를 거쳐 1918년 미국 출장 후 육군 보병 중령이 되어 귀국하였다. 1922년 육군 보병 대령, 1927년 육군 소장이 되었으며, 1932년 육군 중장이 되어 뤼순 요새 사령관이 되었다. 1934년 예비역이 되었다. 1941년에는 대정익찬회 (大政翼賛会) 부총재, 그 다음 해에는 대일본익찬장년단장 (大日本翼賛壮年団長) 이 되었다. 1942년 도조 히데키의 심복으로서 도조 내각의 무임소 국무 대신 (無任所国務大臣) 이 되었고, 이어서 대일본익찬장년단의 중앙본부장이 되었다. 1943년 도조 내각의 내무대신이 되었으며, 1944년 대신 직에서 물러나고 귀족원 의원이 되었다. 1945년 제3차 전범 지명으로 A급 전범으로서 체포되어 수감되었고, 1948년 석방되었다.
마쓰이 이와네(일본어: 松井 石根, 1878년 7월 27일 ~ 1948년 12월 23일)는 중지나방면군 사령관 겸 상하이…마쓰이 이와네(일본어: 松井 石根, 1878년 7월 27일 ~ 1948년 12월 23일)는 중지나방면군 사령관 겸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하얼빈 특무기관장(特務機関)을 지낸 일본 제국 육군의 대장이다. 마쓰이 이와네는 포츠담 회담 수락 후, 난징대학살의 책임이 거론되어 극동 국제 군사 재판에서 사형 판결(BC급 전범)을 받아 교수형으로 처형 되었으며, 다른 전범들과 같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있다.
아라키 사다오(일본어: 荒木 貞夫, 1877년 5월 26일 ~ 1966년 11월 2일)는 일본 제국의 군인으로, 일본 제국…아라키 사다오(일본어: 荒木 貞夫, 1877년 5월 26일 ~ 1966년 11월 2일)는 일본 제국의 군인으로, 일본 제국 육군의 장군이었으며, 이후 극우 민족주의 정치 이론가로 활동했다. 그는 일본 정치군인들 중에 가장 급진적 분파의 지도자로 여겨졌다.
혼조 시게루(일본어: 本庄 繁, 1876년 5월 10일 ~ 1945년 11월 30일)는 일본 제국의 일본 제국 육군 군인…혼조 시게루(일본어: 本庄 繁, 1876년 5월 10일 ~ 1945년 11월 30일)는 일본 제국의 일본 제국 육군 군인, 화족이다. 작위는 남작. 일본 제국 육군 제10사단장·관동군 사령관·시종무관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중일 전쟁 당시에는 육군 대장이었다. 1896년 9월에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1897년 11월에 졸업, 1898년 6월에 육군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보병 제4여단장, 육군 무관, 제10사단장을 거쳐 1931년 8월에 관동군 사령관과 군사참의관에 차례로 올라 만주사변의 정점에 섰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11월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에서 체포령이 내려졌고, 11월 30일 할복으로 자살했다.
아베 노부유키(일본어: 阿部 信行, 1875년 11월 24일 ~ 1953년 9월 7일)는 일본의 육군 군인·정치인이다.…아베 노부유키(일본어: 阿部 信行, 1875년 11월 24일 ~ 1953년 9월 7일)는 일본의 육군 군인·정치인이다. 제36대 내각총리대신과 마지막 조선총독을 지냈다. 일본 패전후 할복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서울에 진주한 미군 사령관 하지 중장과 항복문서를 조인했다. 이후 전범으로 체포되었으나 무죄로 석방되었다.
우에다 겐키치(일본어: 植田 謙吉 우에다 켄키치[*], 1875년 3월 8일 ~ 1962년 9월 11일)는 일본 제국 육군의…우에다 겐키치(일본어: 植田 謙吉 우에다 켄키치[*], 1875년 3월 8일 ~ 1962년 9월 11일)는 일본 제국 육군의 군인으로, 할힌골 전투(노몬한 사건) 발발 당시에 관동군의 사령관이었다.
미나미 지로(일본어: 南 次郎, 1874년 8월 10일 ~ 1955년 12월 5일)는 일본 제국의 군인, 정치인이며 병과는…미나미 지로(일본어: 南 次郎, 1874년 8월 10일 ~ 1955년 12월 5일)는 일본 제국의 군인, 정치인이며 병과는 육군 기병이었다. 1936년부터 1942년까지 제7대 조선총독을 역임하였으며, 총독 재직 중 조선인에게 내선일체와 창씨개명령을 시행하였다. 1940년 1월 그는 창씨개명은 강제성이 아니라 자율성에 맡긴다고 발표하였으나 창씨개명은 강제로 단행되었고, 창씨개명 정책에 대한 혼선과 조선인의 반발로 1942년 총독직에서 해임되었다. 1945년 일본의 패전 이후 A급 전범의 한사람으로 지목되었다.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 왕(일본어: 梨本宮守正王 なしもとのみや もりまさおう[*], 1874년(메이지 7년) 3월 9일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 왕(일본어: 梨本宮守正王 なしもとのみや もりまさおう[*], 1874년(메이지 7년) 3월 9일 - 1951년(쇼와 26년) 1월 2일)은 일본 제국의 황족, 육군군인이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로 이왕가의 영친왕에게 시집간 마사코 여왕의 아버지 즉 영친왕의 장인이자, 아키히토 일본 상황(上皇)의 대숙부이다. 구한국의 황손 이진, 이구의 외조부이다. 일본의 패망 이후 일본 황족 중에서는 유일하게 전범으로 기소, 황적이탈되어 궁가의 칭호를 잃어 나시모토 모리마사(梨本守正)로 불리게 된다.
구니노미야 구니요시 왕(일본어: 久邇宮邦彦王, 1873년 7월 23일 ~ 1929년 1월 27일)는 일본 제국의 국구이자…구니노미야 구니요시 왕(일본어: 久邇宮邦彦王, 1873년 7월 23일 ~ 1929년 1월 27일)는 일본 제국의 국구이자 쇼와 시대 초기에 활약한 일본 제국의 황족이자 일본 제국 육군 군인이다. 부인은 시마즈 지카코(島津俔子)이며 옛 사쓰마번주 시마즈 다다요시 공작의 딸이다. 딸은 고준 황후이며 쇼와 천황은 구니요시 왕의 사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