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waka(일본어: ヲワカ, 1987년 11월 4일~2019년 4월 5일)는 일본의 가수, 작곡가, 음악 프로듀서이다.…wowaka(일본어: ヲワカ, 1987년 11월 4일~2019년 4월 5일)는 일본의 가수, 작곡가, 음악 프로듀서이다. wowaka는 2000년대 및 역대 가장 영향력이 있는 보컬로이드 프로듀서(보카로P)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wowaka는 2009년 싱글 "그레이 존에서" 으로 경력을 시작하였다. 2011년에는 음반 레이블 Balloom을 공동 설립하고 밴드 히토리에(Hitorie)를 결성하였으며, 보컬로이드 데뷔 앨범 언해피 리프레인을 발매하였다. 이 음반은 오리콘 차트에서 6위를 기록했고, 13주 동안 차트에 머물렀다. 남은 생애 동안, wowaka는 히토리의 리드 보컬리스트이자 기타리스트로 활동을 계속했다. 2019년 4월 5일, wowaka는 심장 기능상실로 사망했다.
야나기다 미노루(柳田 稔, やなぎだ みのる, 1954년 11월 6일 ~)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참의원 의원이다. 간 개조…야나기다 미노루(柳田 稔, やなぎだ みのる, 1954년 11월 6일 ~)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참의원 의원이다. 간 개조 내각의 법무대신, 중의원 의원, 민주당 참의원 간사장, 참의원 재정 금융 위원장, 참의원 후생 노동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안도 사네치카(일본어: 安藤実親, 1932년 2월 4일 ~ 2022년 5월 6일)는 일본의 작곡가이다. 가고시마시에서 태어나…안도 사네치카(일본어: 安藤実親, 1932년 2월 4일 ~ 2022년 5월 6일)는 일본의 작곡가이다. 가고시마시에서 태어나 1946년 일본국유철도 서가고시마 공장에 취직했다. 1952년 가고시마현립 쓰루마루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공장 일을 그만 두고 도쿄로 상경했다. 1954년 일본 컬럼비아 레코드 전속 작곡가인 마쓰오 겐지(松尾健司)를 사사했다. 1961년 컬럼비아의 전속 작곡가가 되어 주로 편곡을 했다. 1964년 엔카 가수인 무라타 히데오가 부른 〈스가타 산시로(姿三四郎)〉로 작곡가 데뷔를 했고, 컬럼비아의 골든 히트상과 신인 작곡가상을 받았다. 컬럼비아에서는 무라타 히데오·고마도리 자매·후나키 가즈오·미소라 히바리 등을 위한 곡을 썼다. 1966년 크라운 레코드로 소속을 옮긴 뒤에는 스이젠지 기요코·사사 미도리·키타지마 사부로·스가타 노리코 등 수십명을 위한 곡을 썼다. 1981년 크라운을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1990년 발매한 하라다 나오유키의 〈전국 마을 내 온도(全国ご町内音頭)〉는 50만장 넘게 팔려 이듬해 컬럼비아 골든디스크상과 플래티넘상을 받았다. 평생 천 개가 넘는 곡을 작곡했으며 이천 개가 넘는 곡을 편곡했다. 2022년 5월 6일 코로나19 감염에 의한 폐렴으로 사이타마현의 병원에서 사망했다.
노다 쓰요시(野田毅, のだ つよし, 1912년 ~ 1948년 1월 28일)는 일본의 육군 군인이다. 가고시마현 출신으로…노다 쓰요시(野田毅, のだ つよし, 1912년 ~ 1948년 1월 28일)는 일본의 육군 군인이다. 가고시마현 출신으로, 패전 당시의 계급은 육군 소좌이다. 무카이 도시아키와 같이 난징 전투 때 벌어진 100인 참수 경쟁의 용의자로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마키노 시로(牧野四郎, 1893년 4월 18일~1945년 8월 10일)는 일본 제국 육군 군인으로 최종 계급은 육군…마키노 시로(牧野四郎, 1893년 4월 18일~1945년 8월 10일)는 일본 제국 육군 군인으로 최종 계급은 육군 중장이다. 1944년 필리핀 레이테섬에 배치된 제16사단장을 맡아, 레이테 섬에 상륙한 미군에 저항해 싸우다가 620명의 부하만 남기고 항복한 후 자결한다.
우시지마 미쓰루(일본어: 牛島 満, 1887년 7월 31일 ~ 1945년 6월 23일) 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우시지마 미쓰루(일본어: 牛島 満, 1887년 7월 31일 ~ 1945년 6월 23일) 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일본제국 육군의 군인이다. 그는 오키나와 전투에서 수비대를 지휘하였고, 섬의 함락과 함께 자결하였다. 가고시마현 출신으로 1908년 육군사관학교를 28기로 졸업했고, 육군대학을 1916년에 졸업했다. 1918년 일본의 시베리아 출병에 참전, 대위로 진급했다. 이후 일본에 돌아와 주로 야전 지휘와 후방 업무를 두루 경험하고, 1937년 소장으로 진급하여 여단장이 되었다. 이때 중일전쟁 남경 작전에 참가하였다. 이후 중장으로 진급하였고, 일본으로 돌아와 여러 교육직을 역임하였다. 1944년 오키나와 방위를 담당하는 제32군 사령관으로 부임하여, 1945년 4월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미국의 상륙부대에 대항하여 맞섰지만, 패배가 확실해지자 6월 23일 조 이사무(長勇) 참모장과 함께 전통적인 할복의식으로 자결하였다.
도고 시게노리(일본어: 東郷 茂徳, とうごう しげのり, 1882년 12월 10일 ~ 1950년 7월 23일)는 일본 제국의…도고 시게노리(일본어: 東郷 茂徳, とうごう しげのり, 1882년 12월 10일 ~ 1950년 7월 23일)는 일본 제국의 외교관이자 정치인으로, 태평양 전쟁 당시 외무 대신이었다. A급 전범 중 유일한 조선계 일본인이다. 조선인 혈통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독일 대사, 소련 대사를 거쳐 외무대신을 두 번 지냈다. 제1차 세계 대전 직전 정한론을 주장하였고, 1943년의 포츠담 회담 때는 천황 히로히토에게 회담 내용을 수용할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태평양 전쟁 패전 후 전범으로 옥살이를 하던 중 병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