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다 루이(일본어: 町田 瑠唯, 1993년 3월 8일~)는 일본의 농구 선수로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이다.
홋카이도: 7명
마치다 루이(일본어: 町田 瑠唯, 1993년 3월 8일~)는 일본의 농구 선수로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이다.
시미즈 히로야스(일본어: 清水 宏保, しみず ひろやす, 1974년 2월 27일~)는 일본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이다. 홋카이도…
시미즈 히로야스(일본어: 清水 宏保, しみず ひろやす, 1974년 2월 27일~)는 일본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이다. 홋카이도 오비히로시 출신이다. 1993년 세계 스피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고,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에 출전하여 500m에서 5위를 하였다. 1995년과 1996년 세계 스피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땄고, 그 사이 월드컵에서 여러 차례 우승하였다.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 500m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개최국 일본의 영웅이 되었다. 그의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은 일본 뿐 아니라 동양인 최초의 것이다. 또한 같은 대회 1000m 종목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그 후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 500m 종목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세계 종목별 선수권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록하여 500m 종목에서 1996년 금메달, 1997년 동메달을 획득하였고, 1998년부터 2001년 사이에 연속 4회 금메달을 땄다. 그 외에 500m 세계신기록을 4차례 경신하였으며, 특히 2001년 3월의 34초 32의 기록은 4년 이상동안 세계기록으로 유지되다가 2005년 11월에 가서야 가토 조지에 의해 깨졌다. 월드컵 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어, 500m 종목에서 1993년부터 2005년 사이에 34차례나 우승하였다. 2006년 동계 올림픽 500m 종목에서는 18위로 부진했으며, 이후 일본 대표팀에서 탈락했다. 2010년 동계 올림픽 선발전에서도 탈락한 후 2010년 3월 선수 생활을 완전히 접었다.
미즈구치 데쓰야(일본어: 水口 哲也, 1965년 ~)는 일본의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이며, 비디오 게임 제작 회사인 Q…
미즈구치 데쓰야(일본어: 水口 哲也, 1965년 ~)는 일본의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이며, 비디오 게임 제작 회사인 Q 엔터테인먼트의 창립자이자, 대표이사이다. 또한 그는 일본의 일렉트로니카 밴드인 겐키 로케츠의 멤버이다.
시마모토 카즈히코(일본어: 島本 和彦 (しまもと かずひこ): 1961년 4월 26일 - )는 일본의 만화가・실업가다.…
시마모토 카즈히코(일본어: 島本 和彦 (しまもと かずひこ): 1961년 4월 26일 - )는 일본의 만화가・실업가다. 시마모토 카즈히코는 필명이고, 본명은 테즈카 히데히코(일본어: 手塚 秀彦 (てづか ひでひこ)). 북해도 나카가와군 이케다정 출신. 삿포로시 거주 중. 만화 프로덕션 “빅뱅 프로젝트(ビッグバンプロジェクト)” 대표, 주식회사 아이빅 및 주식회사 아카시야 대표이사. 주요 작품으로 『불꽃 전학생』, 『역경 나인』, 『울어라 펜』, 『아오이 호노오』 등이 있다.
후나하시 도시미쓰(일본어: 船橋 利実, ふなはし としみつ, 1960년 1월 20일 ~ )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자유민주당…
후나하시 도시미쓰(일본어: 船橋 利実, ふなはし としみつ, 1960년 1월 20일 ~ )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자유민주당 소속 중의원 의원 (2선), 홋카이도의회 의원 (5선), 기타미 시의회 의원 (초선)을 역임했다. 현재 자민당의 홋카이도 제1선거구 지부장을 맡고 있으며, 후나바시 니시카와건설 (기타미시) 이사도 겸하고 있다.
이와타 사토루(일본어: 岩田 聡, 1959년 12월 6일 ~ 2015년 7월 11일)는 일본의 기업인, 비디오 게임 개발자…
이와타 사토루(일본어: 岩田 聡, 1959년 12월 6일 ~ 2015년 7월 11일)는 일본의 기업인, 비디오 게임 개발자 및 프로듀서였다. 2002년에 취임해 2015년 사망하기까지 닌텐도의 네 번째 사장이었다. 생전에 비디오 게임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한 인물로 최첨단 성능의 기기보다는 기발하고 흥미있는 게임 개발을 중시했다. 삿포로시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홋카이도 무로란시의 시장을 맡았던 이와타 히로시였다. 어린 시절부터 비디오 게임에 대한 관심을 보여 고등학생 때부터 게임을 개발했다. 1980년 대학생 시절에 HAL 연구소에 취직해 경력을 시작했다. HAL에서 프로그래머로서 닌텐도와 교류해 1983년에 처음 상업용 게임을 제작했다. 당시 관여한 게임으로 《마더 2: 기그의 역습》과 《별의 커비》 시리즈가 있다. 1993년, HAL이 경영난으로 인해 폐업위기에 놓이자 닌텐도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의 추천으로 사장으로 위임돼 재정을 회복시켰다. 그 후 《포켓몬스터》와 《슈퍼 스매시브라더스》 시리즈 개발에 참여했다. 2000년에 닌텐도 기획조정부의 본부장으로서 취임했다. 이와타의 경영호재로 닌텐도가 상승세를 탔으며 2002년 5월 야마우치가 은퇴했을 때 이어서 사장으로 위임됐다. 이와타의 지도 아래 개발된 닌텐도의 닌텐도 DS와 Wii는 상업적 성공을 기록했다. 게이머를 자처한 이와타는 폭넓은 인구층을 겨냥해 비디오 게임의 매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블루오션' 경영전략을 내세웠으며 닌텐도는 2009년까지 기록적인 실적을 올렸다. 이후 제작된 닌텐도 3DS와 Wii U은 Wii보다 현저하게 적은 수익을 거뒀으며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기업 순매출이 3분의 1까지 감소해 기업 역사상 30년 만에 처음으로 손실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이와타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연봉을 2011년과 2014년에 절반으로 깎았다. 2015년에는 자신의 경영철학을 꺾고 급격히 성장하는 모바일 게임 시장에 투자하기로 결정해 그 해 3월 모바일 기업 DeNA와 협력관계를 맺었다. 경력 내내 이와타는 "사장님이 묻는다" 연재영상이나 닌텐도 다이렉트같은 프로그램이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닌텐도 유저들과 교류하는 등 닌텐도의 대외적인 얼굴로서 활동했다. 2014년 6월 정기검진 중 담관에서 종양이 발견돼 수술을 받았다. 그 해 10월 복직했으나 2015년 재발해 건강이 악화하면서 7월 11일 항년 5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전세계의 비디오 게임 산업 인물들과 게이머들이 각종 공지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
이가라시 고조(일본어: 五十嵐 広三, いがらし こうぞう, 1926년 3월 15일 ~ 2013년 5월 7일)는 일본의…
이가라시 고조(일본어: 五十嵐 広三, いがらし こうぞう, 1926년 3월 15일 ~ 2013년 5월 7일)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그는 일본 사회당 소속 중의원 의원, 호소카와 내각의 건설대신, 무라야마 내각의 내각관방장관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