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 다테키 혹은 다니 간조(谷干城, 1837년 3월 18일 ~ 1911년 5월 13일)는 도사번사 출신의 일본 제국…다니 다테키 혹은 다니 간조(谷干城, 1837년 3월 18일 ~ 1911년 5월 13일)는 도사번사 출신의 일본 제국 육군군인, 정치인이다. 최종 계급은 육군 중장. 작위는 자작. 정2위 훈1등. 통칭은 신타로(申太郎), 모리베(守部). 1837년 도사번에서 유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막말에 도사번의 존황파로 활동하며 사쓰마번의 고마쓰 기요카도, 사이고 다카모리와 동맹 밀약을 체결하였다. 폐번치현 이후 신정부의 육군 장교로 임명되었고 보신 전쟁과 세이난 전쟁에서 뛰어난 무공을 세워 이름을 높였다. 제1차 이토 내각에 등용된 것을 시작으로 정치에 입문하였다. 곧 서구화 정책을 비판하는 등 국수주의의 면모를 보이며 이토와 충돌하다가 내각에서 사임하였다. 1890년 귀족원 의원으로 선출되며 정계에 복귀하였고, 고립주의와 농본주의를 엄격히 고수하며 도사 존황파의 중진으로서 활동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며 그의 정치 세력은 쇠퇴해 갔다. 1911년 사망했다.
곤도 이사미(일본어: 近藤勇, こんどう いさみ, 1834년 11월 9일 ~ 1868년 5월 17일)는 일본 신센구미의…곤도 이사미(일본어: 近藤勇, こんどう いさみ, 1834년 11월 9일 ~ 1868년 5월 17일)는 일본 신센구미의 국장이다. 이사미는 통칭으로, 휘는 마사요시(昌宜)이다. 게이오 4년(1868년)부터는 오쿠보 쓰요시(大久保剛)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이후 오쿠보 야마토(大久保大和)라 칭하였다.
오구리 다다마사(일본어: 小栗 (おぐり) 忠順 (ただまさ), 분세이 10년 6월 23일 ~ 게이오 4년 윤4월 6일)는…오구리 다다마사(일본어: 小栗 (おぐり) 忠順 (ただまさ), 분세이 10년 6월 23일 ~ 게이오 4년 윤4월 6일)는 막말의 무사, 막신이다. 미카와 오구리씨 제12대 당주로서 별명은 마타이치(又一). 안세이 6년(1859년) 종5위하 분고노카미에 서임되었다. 분큐 3년(1863년) 고즈케노스케로 이임했다. 감정봉행, 에도 정봉행, 외국봉행을 역임했다. 안세이 7년(1860년) 미일수호통상조약 비준을 위해 미해군함 USS 포우하탄을 타고 도미, 세계를 일주하고 귀국했다. 이후 여러 봉행직을 맡아 막부의 재정 재건과 서양식 군대 정비, 요코스카 제철소 건립 등을 실시했다. 게이오 4년(1868년) 보신 전쟁 때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공순과 에도성 개성에 반대하여 삿초 웅번에 대한 주전론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파면당했다. 영지인 고즈케국 군마군 곤다촌(현 군마현 다카사키시 구라부치촌)에 은거했다. 동년 윤 4월 삿초군의 추토령과 무장해제에 응하여 양자를 증인으로 보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체포되어 다음날 냉큼 참수되었다. 체포 사유로는 대포 2문・소총 20정을 소지해 농병을 훈련시켰기 때문이라는 설과, 감정봉행 시절 도쿠가와 가문의 거금을 은닉했다는 설(도쿠가와 매장금설) 등이 있지만, 어느 설도 오늘날까지 물증은 없다. 후세에 메이지 정부 중심의 역사관이 희미해지면서 평가가 재검토되기 시작했고, 오쿠마 시게노부와 도고 헤이하치로에게 막부측의 근대화 정책 시행자로 평가받았다. 시바 료타로는 오구리를 “메이지의 아버지”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