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바 다케오(일본어: 秋葉剛男, 1958년 12월 19일~)는 일본의 외교관이다. 외무성에서 외교관으로 오랫동안…
아키바 다케오(일본어: 秋葉剛男, 1958년 12월 19일~)는 일본의 외교관이다. 외무성에서 외교관으로 오랫동안 근무하였으며,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외무성 사무차관을, 2021년부터 2025년 1월까지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국가안보국장을 지냈다.
가나가와현: 5명
아키바 다케오(일본어: 秋葉剛男, 1958년 12월 19일~)는 일본의 외교관이다. 외무성에서 외교관으로 오랫동안…
아키바 다케오(일본어: 秋葉剛男, 1958년 12월 19일~)는 일본의 외교관이다. 외무성에서 외교관으로 오랫동안 근무하였으며,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외무성 사무차관을, 2021년부터 2025년 1월까지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국가안보국장을 지냈다.
오쿠다 노리히로(일본어: 奥田 紀宏, 1953년 8월 19일 ~ )는 일본의 외교관이다.
아마노 유키야(일본어: 天野 之弥, 1947년 5월 9일 ~ 2019년 7월 22일)는 일본의 외교관이다. 국제원자력기구…
아마노 유키야(일본어: 天野 之弥, 1947년 5월 9일 ~ 2019년 7월 22일)는 일본의 외교관이다.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직을 10년 역임하였다.
오카모토 유키오(岡本行夫, 1945년 11월 23일 ~ 2020년 4월 24일)는 일본의 외교관 · 외교 평론가이다.…
오카모토 유키오(岡本行夫, 1945년 11월 23일 ~ 2020년 4월 24일)는 일본의 외교관 · 외교 평론가이다. 1968년 히토쓰바시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외무성에 들어가 1991년까지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외무성에서 은퇴한 이후 평론가로 활동했다. 산케이 신문의 사설 〈정론(正論)〉을 집필했다. 하시모토 류타로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보좌관으로 활동했다. 2015년에는 제3차 아베 신조 내각의 자문기관인 21세기 구상간담회 위원이 되기도 했다. 2019년 인터뷰에서 위안부에 대해 ‘한국이 주장하는 성노예라는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했으며, 2019년 6월 오만만 사건 때에는 〈정론〉을 통해 ‘자국의 배는 자국민의 힘으로 지키자’며 일본의 재무장을 옹호하기도 했다. 2020년 4월 24일 코로나19로 사망했다. 욱일중수장이 추증되었다.
오카자키 가쓰오(일본어: 岡崎 勝男 오카자키 카츠오[*], 1897년 7월 10일 ~ 1965년 10월 10일)는 일본의…
오카자키 가쓰오(일본어: 岡崎 勝男 오카자키 카츠오[*], 1897년 7월 10일 ~ 1965년 10월 10일)는 일본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이다. 전 내각관방장관, 외무대신이며, 제2차 세계 대전 후 요시다 시게루에 의해 추진된 대미 협조 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가나가와현의 요코하마시 출신으로, 1922년에 도쿄 제국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외무성에 들어갔다. 파리에서 근무 중이었던 1924년, 파리 올림픽 (1924년 5월 4일 ~ 1924년 7월 27일) 에 참가해, 남자 육상 5,000m에서 15.22.2e의 기록을 냈다. 그는 일본제국 육군의 난징 함락과 난징대학살 이후, 난징의 총영사를 지냈으며, 이오섬에서 일본 사절단과 미국 군사 당국 사이의 항복 협상 초반부에 참여하였다. 전후, 시게미쓰 마모루 외상과 함께 1945년 9월, 미주리호 함상에서 열린 항복 문서 조인식에 참가하였다. 1950년부터 1951년까지 제3차 요시다 내각 제1차 개조 내각에서 내각관방장관, 1952년부터 1954년까지 외무대신을 지냈으며, 1954년에 상호 방위 원조 (Mutual Security Assistance, MSA) 협정에 미국 대사 존 앨리슨 (John Moore Allison) 과 서명하였다. 오카자키는 일본 및 미국의 피겨 스케이트 선수 이나 교코 (伊奈 恭子)의 할아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