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시카리 다카시(일본어: 菱刈隆 히시카리 타카시[*], 1871년 12월 27일~1952년 7월 31일)는 일본 제국 육군…
히시카리 다카시(일본어: 菱刈隆 히시카리 타카시[*], 1871년 12월 27일~1952년 7월 31일)는 일본 제국 육군 군인이었다.
일본 육군사관학교: 54명
히시카리 다카시(일본어: 菱刈隆 히시카리 타카시[*], 1871년 12월 27일~1952년 7월 31일)는 일본 제국 육군…
히시카리 다카시(일본어: 菱刈隆 히시카리 타카시[*], 1871년 12월 27일~1952년 7월 31일)는 일본 제국 육군 군인이었다.
우가키 가즈시게(일본어: 宇垣 一成, 1868년 8월 9일 ~ 1956년 4월 30일)는 일본의 군인이며 정치인이다.…
우가키 가즈시게(일본어: 宇垣 一成, 1868년 8월 9일 ~ 1956년 4월 30일)는 일본의 군인이며 정치인이다.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 군인으로, 1927년 조선 총독을 역임했고 1923년~1927년, 1929년~1931년에는 육군대신을 지냈다. 육군 대장으로 예편하였으며, 1931년부터 1936년까지 조선 총독을 역임했다. 처음 이름은 모쿠지(杢次)이고 뒤에 가즈시게(一成)로 고쳤다. 러일 전쟁에 참전했고, 일본군 육군 내 행정, 참모직을 전전하였다. 그 뒤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육군대신을 네 번 역임했다. 사이토 마코토(齋藤實)가 제네바 군축협상을 위해 유럽에 파견되었을 때 조선총독 임시대리를 지냈다가 후에 다시 조선총독에 임명되었다. 조선총독 재직 당시에는 무단통치 대신 문치를 내세워 황국신민화정책(皇國臣民化政策), 농촌진흥운동을 추진하였다. 그 뒤 총리대신에 지명되었으나 군부의 반발로 무산되었고, 외무대신과 척무대신을 역임했으나 군부의 반발로 공직에서 축출되었다. 1945년 패전 직후 전범재판을 받은 뒤 정계에서 추방당했다가 해금, 1953년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최고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차이어(蔡鍔, 채악, 1882년 12월 18일~1916년 11월 8일)는 본명은 건인(간인)(艮寅), 자는…
차이어(蔡鍔, 채악, 1882년 12월 18일~1916년 11월 8일)는 본명은 건인(간인)(艮寅), 자는 쑹포(송파)(松坡)이다. 조적은 호남성(湖南省) 보경부(寶慶府) 소양현(邵陽縣, 오늘날 사오양시邵陽市 다샹구大祥區)이다. 나고 자란 곳은 보경부 무강주(武岡州) 산문(山門, 오늘날 사오양시 동커우현洞口縣)이다. 청말민초 정치인물이자 군사가이다. 신해혁명(辛亥革命)에 호응하였고,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제제(帝制) 복벽(復辟) 즉 홍헌제제(洪憲帝制)를 반대하는 호국전쟁(護國戰爭)을 발동하여 헌정을 수호하려 하였고, 호국대장군(護國大將軍)과 호국군신(護國軍神)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다케다노미야 쓰네요시왕(일본어: 竹田宮恒徳王, 1909년 3월 4일 ~ 1992년 5월 11일)은 일본의 방계 황족이다.…
다케다노미야 쓰네요시왕(일본어: 竹田宮恒徳王, 1909년 3월 4일 ~ 1992년 5월 11일)은 일본의 방계 황족이다. 일본군 육군 소위인 다케다노미야 쓰네히사 왕과 메이지 천황의 딸인 마사코 내친왕(昌子内親王)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으로, 쇼와 천황의 사촌이다. 일본 육군에 입대하여 관동군 731부대의 마루타 생체실험에 가담하였다. 패전 당시의 직위는 육군 중좌이며 훈등은 대훈위(大勲位)이다. 1947년 신적강하에 의해 방계 황족들의 황족 신분이 박탈되면서 다케다 쓰네요시(일본어: 竹田恒徳)라는 이름으로 평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