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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쇼지로(일본어: 後藤 象二郎 ごとう しょうじろう[*], 덴포 9년 음력 3월 19일(1838년 4월 13일) ~ 메이지 30년(1897년) 8월 4일)는 막말의 도사 번사이다. 메이지 시대에는 정치인 겸 기업인이다. 고치성 출신으로 고모부이자 양부인 요시다 도요와 함께 야마우치 요도의 번정 개혁을 뒷받침했다. 도요의 암살 후 존왕양이파들의 쿠데타로 실각했다. 8월 18일의 정변으로 도사 번 참정자리에 복귀한 그는 도사상회를 설립해 번의 근대화를 꾀했으며, 사카모토 료마가 제출한 선중팔책을 요도 공에게 올려 대정봉환을 이룩하는 등 메이지 유신에의 공을 인정받아 일본 귀족 관위 정2위 백작에 올랐다. 메이지 신정부 때는 미쓰비시 그룹 총수 이와사키 야타로와 함께 구채권을 매점해 큰 돈을 벌기도 했다. 이후 자유당과 진보당을 결성하는 등 메이지 시대의 자유민권운동을 이끌었다. 이타가키 다이스케, 사사키 다카유키와 함께 도사 3걸의 하나로 꼽히나, 미쓰비시 그룹과 부당 내부 거래, 뇌물수수 사건 등 정경유착의 부도덕성으로 오명을 썼다. 아명은 호야타(保弥太) 혹은 료스케(良輔). 휘는 마사모토(正本)에서 모토하루(元曄)로 변경했고, 자는 모토하루(日曄), 조야(暢谷), 후토오(不倒翁) 등이며, 아호는 조야(暘谷), 운주(雲濤), 고카이(光海), 오코(鷗公) 등이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고토 쇼지로」(CC BY-SA 4.0), 일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