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후지오(일본어: 山本 富士雄 (やまもと ふじお), 1966년 5월 27일 ~ )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다.
오다와라 고등학교: 8명
야마모토 후지오(일본어: 山本 富士雄 (やまもと ふじお), 1966년 5월 27일 ~ )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다.
야마다 타이치(일본어: 山田 太一, 1934년 6월 6일(1934-06-06)~2023년 11월…
야마다 타이치(일본어: 山田 太一, 1934년 6월 6일(1934-06-06)~2023년 11월 29일(2023-11-29))는 일본의 각본가이자 소설가이다.
우치노 마사오(일본어: 内野 正雄 (うちの まさお), 1934년 4월 21일 ~ 2013년 4월 30일)는 일본의 전 축구…
우치노 마사오(일본어: 内野 正雄 (うちの まさお), 1934년 4월 21일 ~ 2013년 4월 30일)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다.
나카무라 사토루(中村哲, 1931년 7월 15일 ~ )는 일본의 역사학자이다. '중진자본주의론'을 주창, 한국의…
나카무라 사토루(中村哲, 1931년 7월 15일 ~ )는 일본의 역사학자이다. '중진자본주의론'을 주창, 한국의 '식민지현대화론'(식민지근대화론)에 영향을 미쳤다.
간인 스미히토(閑院純仁, 1902년 8월 3일 ~ 1988년 6월 18일)는 일본의 옛 황족이다. 예비역 일본 육군 소장.…
간인 스미히토(閑院純仁, 1902년 8월 3일 ~ 1988년 6월 18일)는 일본의 옛 황족이다. 예비역 일본 육군 소장. 거합도인, 검도인. 전일본 거합도 연맹 제2대 회장. 간인노미야 고토히토 친왕의 제2왕자이며 산조 사네토미 공작의 외손이다. 영전(栄典)으로는 대훈위 공4급. 전후 황적이탈되어 성씨를 간인노미야에서 간인(閑院)으로 개성하였고 이후 이름을 하루히토(春仁)에서 스미히토로 개명하였다.
고노 겐조(일본어: 河野 謙三 (こうの けんぞう), 1901년 5월 14일~1983년 10월 16일)는 5선 참의원 의원을…
고노 겐조(일본어: 河野 謙三 (こうの けんぞう), 1901년 5월 14일~1983년 10월 16일)는 5선 참의원 의원을 지낸 일본의 정치인이다.
고노 이치로(일본어: 河野 一郎 (こうの いちろう), 1898년 6월 2일~1965년 7월 8일)는 11선 중의원 의원을…
고노 이치로(일본어: 河野 一郎 (こうの いちろう), 1898년 6월 2일~1965년 7월 8일)는 11선 중의원 의원을 지낸 일본의 정치인이다.
마키노 신이치(일본어: 牧 (まき)野 (の) 信 (しん)一 (いち), 1896년 11월 12일~1939년 3월 24일)는…
마키노 신이치(일본어: 牧 (まき)野 (の) 信 (しん)一 (いち), 1896년 11월 12일~1939년 3월 24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마키노 신이치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더불어 이상이 동경하던 작가 중 한 사람이다. 1896년 가나가와현 오다와라시에서 태어나 39세에 자택에서 자살했다. 1919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열세 명의 동인을 모아 《13인》이라는 잡지를 창간했는데, 거기에 첫 작품 〈손톱〉을 발표했고, 당시 자연주의의 대가였던 시마자키 도손에게 극찬을 받았다. 이후 전기에는 대부분 신변잡기적 사소설풍의 육친 혐오적 작품을 썼다. 그러나 중기에는 작풍이 다소 변화되어, 이른바 환상풍의 경지를 개척하게 된다. 고향 오다와라의 풍토에 고대 그리스나 유럽 중세의 이미지를 중첩시켜 꿈과 현실을 교착시킨 환상적인 작품들로, 지적인 유머나 풍자성이 그 특징이다. 후기에 해당하는 1931년 무렵부터는 신경쇠약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작품은 다시 전기의 사소설적 경향으로 바뀌며 더욱 어두워졌다. 이런 마키노 문학은 일본문학사에서 일반적으로 자연주의의 전통을 이은 ‘사소설’의 방류로 평가되며, 그 작품은 ‘변형 사소설’로 불린다. 마키노 문학의 미학적 본질은 창백한 자의식에서 반사되는 신경증적 양상과 비애감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살도 채 안 된 자신과 어머니를 남겨두고 미국으로 가 버린 아버지의 보헤미안적이고 데카당적인 삶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홀로 남겨진 어머니는 교육열이 높고 훈육에 엄격했다. 어머니의 엄한 양육 방식은, 아버지를 닮아 틀에 얽매이기 싫어하던 마키노의 유년 시절에 큰 상처를 남겼으며, 그 트라우마는 끝내 치유되지 못했다. 그것이 육친 혐오 양상이나, 신경증적 양상, 그리고 방랑이나 위악성과 자조성, 광기 등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起夫)는 “일본인으로서 일본 풍토에 발을 디디고 살면서, 이것을 서구적 교양으로 치환해 바라보고, 서구적 환상으로 장식해, 언어 예술만이 잘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이 같은 이중의 영상을 작품 세계로 해, 그 신비한 지적 감각 체험에 독자를 이끌고 가는 하이칼라의 작가”라고 그의 작품의 본질을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