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다푸(욱달부, 중국어 정체자: 郁達夫, 간체자: 郁达夫, 병음: Yù Dá Fū, 문화어: 유다부, 1896년 12월 7일…위다푸(욱달부, 중국어 정체자: 郁達夫, 간체자: 郁达夫, 병음: Yù Dá Fū, 문화어: 유다부, 1896년 12월 7일 ~ 1945년 9월 17일)은 중국의 소설가이다. 대표작으로 『몰락(沈淪)』, 『잃어버린 양(迷羊)』 등이 있는데, 『몰락』은 몰락해가는 신경질적 개인의 성적 추구를 집중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거듭나며, 퇴폐적이며 자아 폭로적인 경향에 대해 찬양과 비난이 엇갈리면서 열딘 문학토론의 대상이 되었다.
기시 노부스케(일본어: 岸 信介, 1896년 11월 13일 ~ 1987년 8월 7일)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1957년 2월…기시 노부스케(일본어: 岸 信介, 1896년 11월 13일 ~ 1987년 8월 7일)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1957년 2월 25일부터 1958년 6월 12일까지 그리고 그때부터 1960년 7월 19일까지 제56·57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했으며, 일본의 정2위 국화장을 받았다. '쇼와의 요괴(昭和の妖怪)'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아버지의 성씨는 사토(佐藤)이다. 1868년 메이지 유신을 가져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조슈의 난 지도자의 증손자였던 기시는 정치와 음모의 분위기에서 자라왔다. 그의 몇몇의 직계 가족 일원들은 이후에 정부에서 중요한 직위들을 영유하였다. 기시는 명문 학교를 다니고 상공성에 사무원으로 들어가 일본에 의하여 만주국의 산업 개발에서 연루된 상급 공무원들 중의 하나가 되는 데 상승하였다. 1941년 그는 상공대신으로서 도조 내각에 가입하는 데 초청되었고 이 자격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일본의 리더십의 일부였다. 기시는 전범으로서 연합국 점령부에 의하여 투옥되었으나 3년 후에 석방되었다. 1952년 그가 정계로 돌아가는 데 허용되었을 때 그는 일본민주당에 입당하여 영향력있는 지지 기반을 다졌다. 기시는 보수주의의 일본민주당과 자유당을 자유민주당으로 합병하고 일본사회당에 의한 위협에 직면하여 통합된 그들의 정치력을 지키는 것에 수단적이었다. 1957년 기시는 내각총리대신이 되었다. 그의 재직 기간은 일본의 국제 관계에서 많은 중요한 개발들을 보았다. 1960년 하지만 그와 미국이 맺은 새로운 미일안보조약으로 대중의 시위들과 정치적 반대는 그를 물러나도록 강요하였다. 그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외조부이다.
마키노 신이치(일본어: 牧 (まき)野 (の) 信 (しん)一 (いち), 1896년 11월 12일~1939년 3월 24일)는…마키노 신이치(일본어: 牧 (まき)野 (の) 信 (しん)一 (いち), 1896년 11월 12일~1939년 3월 24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마키노 신이치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더불어 이상이 동경하던 작가 중 한 사람이다. 1896년 가나가와현 오다와라시에서 태어나 39세에 자택에서 자살했다. 1919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열세 명의 동인을 모아 《13인》이라는 잡지를 창간했는데, 거기에 첫 작품 〈손톱〉을 발표했고, 당시 자연주의의 대가였던 시마자키 도손에게 극찬을 받았다. 이후 전기에는 대부분 신변잡기적 사소설풍의 육친 혐오적 작품을 썼다. 그러나 중기에는 작풍이 다소 변화되어, 이른바 환상풍의 경지를 개척하게 된다. 고향 오다와라의 풍토에 고대 그리스나 유럽 중세의 이미지를 중첩시켜 꿈과 현실을 교착시킨 환상적인 작품들로, 지적인 유머나 풍자성이 그 특징이다. 후기에 해당하는 1931년 무렵부터는 신경쇠약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작품은 다시 전기의 사소설적 경향으로 바뀌며 더욱 어두워졌다. 이런 마키노 문학은 일본문학사에서 일반적으로 자연주의의 전통을 이은 ‘사소설’의 방류로 평가되며, 그 작품은 ‘변형 사소설’로 불린다. 마키노 문학의 미학적 본질은 창백한 자의식에서 반사되는 신경증적 양상과 비애감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살도 채 안 된 자신과 어머니를 남겨두고 미국으로 가 버린 아버지의 보헤미안적이고 데카당적인 삶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홀로 남겨진 어머니는 교육열이 높고 훈육에 엄격했다. 어머니의 엄한 양육 방식은, 아버지를 닮아 틀에 얽매이기 싫어하던 마키노의 유년 시절에 큰 상처를 남겼으며, 그 트라우마는 끝내 치유되지 못했다. 그것이 육친 혐오 양상이나, 신경증적 양상, 그리고 방랑이나 위악성과 자조성, 광기 등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起夫)는 “일본인으로서 일본 풍토에 발을 디디고 살면서, 이것을 서구적 교양으로 치환해 바라보고, 서구적 환상으로 장식해, 언어 예술만이 잘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이 같은 이중의 영상을 작품 세계로 해, 그 신비한 지적 감각 체험에 독자를 이끌고 가는 하이칼라의 작가”라고 그의 작품의 본질을 짚었다.
윤일선(尹日善, 1896년 10월 5일~1987년 6월 22일)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의사, 대학교수, 대학총장, 사회…윤일선(尹日善, 1896년 10월 5일~1987년 6월 22일)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의사, 대학교수, 대학총장, 사회 운동가이다. 서울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일본 교토 제국대학교(京都帝國大學校)에서 수학한 후 귀국, 세브란스 의과 대학과 서울대학교 의학부에서 교수로 활동했으며, 전공으로는 병리학과 해부학, 암 연구 분야였다. 대한민국학술원의 원로 회원이자 초대 원장이었으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1954년 서울대학교 부총장, 1956년 총장, 1961년 서울대 의대 강사와 명예교수를 지냈다. 1956년부터 1973년까지는 암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1963년 1월 박정희 등의 군정에 참여한 뒤로는 공화당 창립에 참여하고, 1964년 9월과 이듬해 1965년 9월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된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 한국대표로 두 차례 다녀왔으며, 과학기술후원회 이사장과 과학기술재단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윤영렬의 손자이자 대한제국의 관료이자 교육자인 윤치오의 첫째 아들이다. 윤승선의 형이며, 대한민국 4대 대통령을 지낸 윤보선(尹潽善)의 사촌 형이며, 구한말의 개혁정치가 윤치호의 당질이다. 그밖에 함께 의사로 활동한 윤치왕이 그의 당숙이고, 윤유선은 그의 사촌 동생이다. 그는 한국 최초의 병리학자이기도 했고, 경성제국대학(서울대학교의 전신)에서는 한국인 최초의 의학박사들을 양성하였다. 그는 대학 교수와 학생들이 직접 선출한 최초의 비(非)관선 서울대학교 총장이었다. 일본 도쿄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일본 긴키 지방 교토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일본 도쿄를 떠나 대한제국으로 귀국 후 충청남도 아산군을 거쳐 한성부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다. 본관은 해평이며, 아호는 동호(東湖)이다.
김양수(金良洙, 1896년 - 1971년 1월 19일)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었다. 미국 콜롬비아대학과 영국 런던대학에서…김양수(金良洙, 1896년 - 1971년 1월 19일)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었다. 미국 콜롬비아대학과 영국 런던대학에서 수학하고 삼일신보사 주필, 조선흥업주식회사 중역을 맡았었다. 제2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마쓰바라 고(일본어: 松原 后 (まつばら こう), 1996년 8월 30일 ~ )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다. 현재 J2리그의…마쓰바라 고(일본어: 松原 后 (まつばら こう), 1996년 8월 30일 ~ )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다. 현재 J2리그의 주빌로 이와타에서 뛰고 있다.
시부사와 게이조(일본어: 渋沢 敬三, 1896년 8월 25일 ~ 1963년 10월 25일)는 일본의 재계인, 민속학자, 전…시부사와 게이조(일본어: 渋沢 敬三, 1896년 8월 25일 ~ 1963년 10월 25일)는 일본의 재계인, 민속학자, 전 일본은행 총재, 시데하라 내각의 대장대신, 구 자작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 시부사와 에이이치이다. 장남은 시부사와 마사히데.
이누카이 다케루(犬養健, 1896년 7월 28일 - 1960년 8월 28일)는 일본의 정치인, 소설가이다. 정3위 훈1등.…이누카이 다케루(犬養健, 1896년 7월 28일 - 1960년 8월 28일)는 일본의 정치인, 소설가이다. 정3위 훈1등. 총리대신을 지낸 이누카이 쓰요시의 3남이다. 제2·3대 일본의 법무대신. 도쿄제국대학 중퇴 후 작가로 활동하며 1923년 첫 작품집을 간행하였다. 이후 정계에 입문하여 1930년 입헌정우회 공인으로 중의원 의원에 처음 당선되었다. 1941년 조르게 사건에 연루된 의혹으로 기소되었으나 무죄로 판결되었다. 1952년부터 요시다 시게루 내각에서 법무대신을 지내었다. 1954년 사토 에이사쿠의 비리 의혹이 파문을 일으키는 와중에 요시다의 종용으로 지휘권을 발동하여 이에 개입하려다가 야당과 여론의 큰 반발에 부딪혀 즉시 사임하고 곧 요시다 내각이 총사퇴하는 결과를 낳았다.
신가이 하지메(일본어: 新貝 肇, 1896년 7월 ~ 1980년 1월 9일)는 일본의 조선총독부 관료이다. 오이타현…신가이 하지메(일본어: 新貝 肇, 1896년 7월 ~ 1980년 1월 9일)는 일본의 조선총독부 관료이다. 오이타현 출신이다. 1922년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 정치과를 졸업하였고, 같은 해 조선으로 건너왔다. 1923년 조선총독부 체신사무관에 임명되었고, 1929년 체신국 서무과장, 경리과장을 역임하여 1932년 황해도 경찰부장, 1934년 강원도 내부무장에 임명되었다. 1937년에 전라남도지사로 취임했고, 1940년부터 1941년까지 함경남도지사를 역임했다.
우다 신타로(일본어: 宇田 新太郎, 1896년 6월 1일 ~ 1976년 8월 18일)는 일본의 공학자, 발명가이다.…우다 신타로(일본어: 宇田 新太郎, 1896년 6월 1일 ~ 1976년 8월 18일)는 일본의 공학자, 발명가이다. 야기-우다 안테나의 개발자이다. 도야마현 출신. 히로시마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일하다가 도호쿠 대학에 입학하여 전기공학을 공부했다. 졸업 이후 공학자 야기 히데쓰구의 조교수로 있으면서 전기통신을 연구했고, 1926년 야기-우다 안테나를 개발하였다. 이는 거의 우다의 공헌으로 만들어졌으나 흔히 '야기 안테나'로 알려져있다.
김수학(金秀學, 1896년 5월 21일 ~ 1967년, 전북 고창)은 대한민국의 제2대 국회의원이었다. 일본 교토 제국대학…김수학(金秀學, 1896년 5월 21일 ~ 1967년, 전북 고창)은 대한민국의 제2대 국회의원이었다. 일본 교토 제국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호남은행 목포지부장, 상공부차관, 대한무진금융주식회사사장을 역임하였다.
이기영(李箕永, 1895년 5월 29일~1984년 8월 9일)은 일제강점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소설가이다. 충남 아산…이기영(李箕永, 1895년 5월 29일~1984년 8월 9일)은 일제강점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소설가이다. 충남 아산 출생이며, 호는 민촌(民村)이다. 필명은 성거산인(聖居山人), 양심곡인(陽心谷人), 양심학인(陽心學人)이다. 본관은 덕수이며 훗날 김정남의 어머니가 되는 성혜림이 그의 며느리였다. 도쿄 세이소쿠(正則)학교를 중퇴하고,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귀국했다. 카프 맹원이었다. 1924년 《개벽》 현상문예에 〈오빠의 비밀 편지〉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그 후 〈서화〉, 〈인간수업〉, 〈고향〉, 〈신개지〉, 〈땅〉, 〈두만강〉, 〈봄〉 등을 발표했으며, 희곡 작품으로 〈그들의 남매〉, 〈월희〉 등이 있다. 해방 후 월북하여 조선예총위원장 등 각종 기관의 책임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는 집단성과 프로 문학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을 쓴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나혜석(1896년 4월 28일 ~ 1948년 12월 10일)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한민국의 화가이자 작가, 시인, 조각가…나혜석(1896년 4월 28일 ~ 1948년 12월 10일)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한민국의 화가이자 작가, 시인, 조각가,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 언론인이다.
아리사와 히로미(일본어: 有沢 広巳, 1896년 2월 16일 ~ 1988년 3월 7일)는 일본의 경제학자, 통계학자이다.…아리사와 히로미(일본어: 有沢 広巳, 1896년 2월 16일 ~ 1988년 3월 7일)는 일본의 경제학자, 통계학자이다. 호세이 대학 총장을 지냈으며 호세이 대학과 도쿄 대학 명예교수를 지냈다. 1896년 고치현에서 태어났다. 제2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제국대학 경제학부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배웠으며 1926년부터 1928년까지 독일에 유학하였다. 1938년 인민전선 사건(人民戦線事件)으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도쿄 제국대학에서 휴직처리되었다. 1944년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전후 도쿄 대학에 복귀했다. 1957년부터 1960년까지 일본통계학회 회장, 1959년부터 1962년까지 호세이 대학 총장, 1980년부터 1986년까지 일본 학사원 원장을 지냈다. 1988년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요시야 노부코(일본어: 吉屋 信子, 1896년 1월 12일 ~ 1973년 7월 11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다이쇼 시대와…요시야 노부코(일본어: 吉屋 信子, 1896년 1월 12일 ~ 1973년 7월 11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다이쇼 시대와 쇼와 시대를 풍미한 일본의 소설가로 현대 일본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적이고 많은 작품을 발표한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여겨진다. 연재 로맨스 소설과 사춘기 소녀 소설을 전문으로 했으며 S 장르를 포함한 일본 레즈비언 문학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 가운데 일부는 영화로 제작되었다.
기누가사 데이노스케(衣笠 貞之助, 1896년 1월 1일 ~ 1982년 2월 26일)는 일본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본명은…기누가사 데이노스케(衣笠 貞之助, 1896년 1월 1일 ~ 1982년 2월 26일)는 일본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본명은 고가메 데이노스케(小亀 貞之助)이며, 미에현 출신이다. 영화 《지옥문》으로 1954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오이카와 오쿠로(일본어: 及 (おい)川 (かわ) 奥 (おく)郎 (ろう), 1896년 1월 1일 ~ 1970년 12월…오이카와 오쿠로(일본어: 及 (おい)川 (かわ) 奥 (おく)郎 (ろう), 1896년 1월 1일 ~ 1970년 12월 27일)는 일본의 천문학자로, 다양한 소행성을 발견하여 명명하였다.
최창익(崔昌益, 1896년 2월 29일(1896-02-29) ~ 1957년 10월 6일(1957-10-06))은 일제강점기의…최창익(崔昌益, 1896년 2월 29일(1896-02-29) ~ 1957년 10월 6일(1957-10-06))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였으며 공산주의자였다. 변호사 허헌의 사위인 그의 이명은 최창석(崔昌錫)·최창순(崔昌淳)·최동우(崔東宇)·이건우(李健宇)이다. 일본 유학 중인 1923년부터 노동운동에 종사하다가 1925년 이후 공산주의단체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의 계속된 탄압, 검거를 견디지 못하고 1934년 망명하였다. 중국에서 김원봉 등과 함께 조선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 등에서 항일활동을 하다가 그의 노선에 반발하여 탈퇴, 1936년 6월 조선청년전위동맹을 조직하였다. 그 뒤 김원봉 일파와 협상을 시도하였으나 결렬, 화북으로 건너가 무정(武亭), 김두봉 등과 조선독립동맹에서 활동했다. 8·15 해방 이후 38선 이북으로 귀환하였으며, 1946년 1월 조선독립동맹을 개칭해 '조선신민당'을 창설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3당 합당에 참여하는 등 연안파의 중진으로 활동했다. 1948년 4월 남북협상에 참여했다가 그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에 참여하여 재정상, 부수상 겸 재정상, 1955년 국가검열상 등을 역임했다. 김두봉 시대 인민 정권이자 북한 인민 정부 시대의 제3대 재정상 시절이던 1954년 8월 3일, 김일성 총리의 독재화를 비판하다가 징처되어 같은 해 11월 22일, 북한 재정상 직에서 파면되었고 1년 후 1955년 8월 11일, 종파 사건에 연루되어 남로당과 박헌영의 공격에 동참했지만 1956년 9월 23일, 김일성에 의해 숙청되었다. 중공의 국방부장 펑더화이가 그를 변호하여 사형은 모면하였으나 그해 10월 재투옥 후 이듬해 옥사한다. 독립운동 시 가명은 최창석(崔昌錫), 최창순(崔昌淳), 최동우(崔東宇), 이건우(李建宇), 최태현 등을 사용하였다. 변호사 허헌의 딸 허정숙의 남편이다. 함경북도 출신.
김범부(金凡父, 1897년 1월 6일~1966년 12월 10일)는 대한민국의 동양 철학자, 한학자이다. 본관은 선산이며…김범부(金凡父, 1897년 1월 6일~1966년 12월 10일)는 대한민국의 동양 철학자, 한학자이다. 본관은 선산이며, 본명은 김정설(金鼎卨)이다. 소설가, 시인 김동리의 형이다. 저서로는 《화랑외사(花郞外史)》가 있다. 경상남도 동래에서 아버지 김임수(金任守)와 어머니 허임순(許任順)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한학을 배웠으며, 1915년 백산상회의 장학생으로 일본 도요대학에 유학하여 동양철학을 공부했다. 귀국 후 불교 철학을 연구하다가 1941년 다솔사에서 소위 '해인사 사건'으로 검거되어 옥고를 치렀다. 광복 이후에는 부산일오구락부 조직에 참여했다. 1946년에서 1949년까지 대한민국 육군에 장교 복무하여 육군본부 정훈국 정훈과 과장 재직하던 중 1949년 육군 중령 예편하였다. 이후 무소속으로 제2대 국회의원을 거쳐 1955년 계림학숙의 초대 교장을 지냈고, 1958년에는 건국대학교에 동방사상연구소를 설립하여 3년간 동양철학을 강의했다. 1966년 12월 10일 위암으로 서울적십자병원에서 별세했다.
송계백(宋繼白, 1896년 ~ 1922년)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여산(驪山)이며, 호(號)는…송계백(宋繼白, 1896년 ~ 1922년)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여산(驪山)이며, 호(號)는 평원(平原)이다.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중장 송호림 장군의 백부(큰아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