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준자부로(일본어: 伴 淳三郎, 본명: 스즈키 히로사다, 본명 한자: 鈴木 寛定, 1908년 1월 10일 ~ 1981년…
반 준자부로(일본어: 伴 淳三郎, 본명: 스즈키 히로사다, 본명 한자: 鈴木 寛定, 1908년 1월 10일 ~ 1981년 10월 26일)은 쇼와 시대의 일본 희극 배우이다.
세이소쿠 가쿠엔 고등학교: 19명
반 준자부로(일본어: 伴 淳三郎, 본명: 스즈키 히로사다, 본명 한자: 鈴木 寛定, 1908년 1월 10일 ~ 1981년…
반 준자부로(일본어: 伴 淳三郎, 본명: 스즈키 히로사다, 본명 한자: 鈴木 寛定, 1908년 1월 10일 ~ 1981년 10월 26일)은 쇼와 시대의 일본 희극 배우이다.
김철수(金銕洙, 1906년 12월 2일 부여 - 1973년 7월 3일)는 대한민국의 제헌 국회의원이다.
계용묵(桂鎔默, 1904년 9월 8일~1961년 8월 9일)은 대한민국의 소설가, 시인, 수필가, 언론 기자, 작가…
계용묵(桂鎔默, 1904년 9월 8일~1961년 8월 9일)은 대한민국의 소설가, 시인, 수필가, 언론 기자, 작가, 기업인이다. 본관은 수안(遂安)이자, 호(號)는 우서(雨西)이고, 다른 이름은 하태용(河泰鏞)이었다.
야마모토 슈고로(山本周五郎, 본명: 시미즈 사토무, 본명 한자: 清水 三十六, 1903년 6월 22일 ~ 1967년 2월…
야마모토 슈고로(山本周五郎, 본명: 시미즈 사토무, 본명 한자: 清水 三十六, 1903년 6월 22일 ~ 1967년 2월 14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가네코 후미코, 카네코 후미코,(일본어: 金子文子 かねこふみこ[*]) 혹은 박문자(한국 한자: 朴文子, 1903년 1월…
가네코 후미코, 카네코 후미코,(일본어: 金子文子 かねこふみこ[*]) 혹은 박문자(한국 한자: 朴文子, 1903년 1월 25일 ~ 1926년 7월 23일)는 일본의 아나키스트이다. 조선의 아나키스트이자 독립운동가인 박열의 부인으로, 대한민국 경상북도 문경에 묘가 있다.
조봉암(曺奉岩, 1898년 9월 25일~1959년 7월 31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호는 죽산이며 본관은…
조봉암(曺奉岩, 1898년 9월 25일~1959년 7월 31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호는 죽산이며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소련으로 건너가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을 2년 수료하고, 1925년 조선공산당이 조직되었을 때, 조직중앙위원장을 지냈으며 고려공산청년회의 간부가 되었다. 그해 공산청년회 대표로 중국 상하이(上海)를 경유하여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 총회에 참석하고,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東方勞力者共産大學)에서 2년간 수학하고 귀국하였다. 이후 소련, 중국, 만주 등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하며 공산주의 운동을 하였다. 상하이와 국내를 오갔으며 1927년에는 임정 요인들을 상대로 민족유일당 운동을 추진하기도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노농총연맹조선총동맹(勞農總聯盟朝鮮總同盟)을 조직하고 문화부책에 선출, 상하이에 가서 코민테른 원동부 한국인 대표에 임명되고 ML당을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1932년 9월 상하이 프랑스 불조계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 국내로 송환되어 신의주 형무소에서 7년간 복역하고 출옥하였고, 출옥 후 인천에서 지하 노동단체를 조직, 비밀리에 활동하다가 1945년 1월 다시 검거되었다. 해방과 동시에 석방되어 조선공산당, 건국준비위원회 인천부지부, 민족주의 민주전선 인천부지부 등에서 활동하였으나 1946년 5월 박헌영(朴憲永)과의 갈등을 계기로 온건주의로 사상전향하였다. 이후 좌우합작 운동에 참여하였고 남북협상 노선을 걷다가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48년 7월 국회 헌법기초위원장으로 헌법 제정에 참여한 뒤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참여하였으며 대한민국 제1대 농림부장관과 제2대 국회 부의장을 역임하였다. 농림부 장관 재직 당시 지주에게 예속된 농지들을 농민들에게 분배하는 농지개혁을 주관하며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추진하려 했으나 지주들과 한민당 세력들의 극심한 반대로 절반만 성사시키고 이 무상몰수 무상분배 시도는 결국 이승만 정권 말 사법 살인 희생의 도화선이 되었다. 1948년 이후 윤치영(尹致暎) 등과 이정회, 대한국민당 등에서 활동하였고, 제2대 대통령 선거에는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했고, 제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30%라는 지지율을 얻어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1958년 상인 양명산을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자금을 건네 받았다는 날조된 혐의로 진보당 사건에 연루되어 재심결과 사형선고를 받고, 교수형을 당하였다. 그의 사형집행은 당대에도 사법살인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으며, 2011년 1월 20일 대한민국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내려 복권되었다.
안준상(安駿相, 1898년 1월 9일~1994년 12월 27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본관은 탐진(耽津)이다.
김종선(金鍾善, 1898년 전남 ~ 1950년 10월 13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윤보선(尹潽善, 1897년 8월 26일~1990년 7월 18일)은 대한민국의 제4대 대통령이다. 제3·4·5·6대 국회의원과…
윤보선(尹潽善, 1897년 8월 26일~1990년 7월 18일)은 대한민국의 제4대 대통령이다. 제3·4·5·6대 국회의원과 1948년 12월 15일부터 1949년 6월 5일까지 제2대 서울특별시장을 지냈고, 1960년 8월 13일부터 1962년 3월 22일까지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에 즉위하였다. 호서 지역의 대한제국 명문가에서 태어난 그는 청년 시절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 일시적으로 참여하였고, 신규식의 권고로 영국 유학길에 올라 에든버러 대학교 고고학과를 나왔다. 영국은 국왕이 있는 내각책임제 국가인 관계로, 그는 자신이 1960년 8월 13일,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에 취임할때까지 영국의 에든버러 대학교가 배출한 전세계 각 공화 국가 두 명의 대통령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 미군정기와 제1공화국의 야당 정치인이었으며, 국회의장 이승만의 비서관과 서울특별시장, 상공부 장관,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거쳐 제2공화국에서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대통령 사퇴성명을 발표했다. 1962년 3월 하야 이후부터는 반독재 야당 지도자로 활동하였으며, 박정희를 군부 내 좌익 프락치라고 규정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5대 대통령 선거와 제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기도 하였다. 이후 한일회담 반대운동, 민주회복국민선언, 명동구국선언 등에 참여하였으며, 군사정권하에서 여러번 기소와 재판에 회부되었다. 조선 선조 때의 문인인 윤두수의 후손으로 대한제국의 관료 윤웅렬의 종손이며 윤치호의 종질이다. 친일파인 윤치호, 윤치왕, 윤치창은 그의 당숙이었고, 윤치영은 그의 숙부였으며, 영선군의 사위 윤원선은 그의 동생이었다. 윤일선, 윤영선 등은 그의 사촌이었다. 그는 임시의정원의 최연소 의원이기도 했고, 허정, 이갑성과 함께 3.1절과 광복절 기념식 때 늦게까지 초대된 독립운동가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기여했다는 평가와 5·16 군사 정변 협력 논란이 양립하고 있다. 5·16 군사 정변을 방조했다는 의혹을 받아왔으나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 중 박정희의 라이벌이었으며, 3공과 유신시절 내내 민권투쟁에 앞장섰고, 각종 사회사업에도 참여하였다. 김영삼·김대중이 등장하기 전까지 야당을 이끌었으며 '선명야당'을 강조하였다. 본관은 해평(海平)이고, 자(字)는 경천(敬天), 호(號)는 해위(海葦)이다. 해위라는 호는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영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 스승인 신규식이 지어준 것으로 "바닷가 갈대는 아무리 바람에 휘날려도 꺾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신적 대통령', '영국 신사', '재야 대통령'으로도 불렸다.
주기용(朱基瑢, 1897년 3월 12일 창원 ~ 1966년 5월 8일)은 대한민국의 교육인이다. 호는 동광(東光)이다.…
주기용(朱基瑢, 1897년 3월 12일 창원 ~ 1966년 5월 8일)은 대한민국의 교육인이다. 호는 동광(東光)이다. 1934년에 오산학교 제15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이후 1942년 일제의 강압으로 사임하였는데 광복 후 1945년에 다시 제17대 교장으로 취임한다. 전쟁 후 서울로 옮겨 재건된 오산학교에서 1953년에서 1961년까지 제18대 교장이었고, 1962년부터는 제6대 재단이사장을 지냈다. 또한 정치인으로도 활동했으며 대한민국의 제헌 국회의원을 지냈다.
문시환(文時煥, 1897년/1899년 8월 12일~1973년 11월 11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문시환(文時煥, 1897년/1899년 8월 12일~1973년 11월 11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경상남도 동래 출신이다.
이기영(李箕永, 1895년 5월 29일~1984년 8월 9일)은 일제강점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소설가이다. 충남 아산…
이기영(李箕永, 1895년 5월 29일~1984년 8월 9일)은 일제강점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소설가이다. 충남 아산 출생이며, 호는 민촌(民村)이다. 필명은 성거산인(聖居山人), 양심곡인(陽心谷人), 양심학인(陽心學人)이다. 본관은 덕수이며 훗날 김정남의 어머니가 되는 성혜림이 그의 며느리였다. 도쿄 세이소쿠(正則)학교를 중퇴하고,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귀국했다. 카프 맹원이었다. 1924년 《개벽》 현상문예에 〈오빠의 비밀 편지〉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그 후 〈서화〉, 〈인간수업〉, 〈고향〉, 〈신개지〉, 〈땅〉, 〈두만강〉, 〈봄〉 등을 발표했으며, 희곡 작품으로 〈그들의 남매〉, 〈월희〉 등이 있다. 해방 후 월북하여 조선예총위원장 등 각종 기관의 책임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는 집단성과 프로 문학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을 쓴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김상덕(金尙德, 1891년 12월 10일(1891-12-10) ~ 1956년 4월 28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김상덕(金尙德, 1891년 12월 10일(1891-12-10) ~ 1956년 4월 28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임정 국무위원, 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 등을 지냈고, 광복 뒤에는 비상국민회의 대의원, 민족통일총본부 총무부장 등으로 활동했다. 1949년 반민특위 위원장을 지냈었다. 호는 영주(令洲). 경상북도 고령 출신.
김도태(金道泰, 1891년 9월 11일~1956년 12월 26일)는 한국의 교육인이다. 일제강점기 초기의 독립운동 공적과…
김도태(金道泰, 1891년 9월 11일~1956년 12월 26일)는 한국의 교육인이다. 일제강점기 초기의 독립운동 공적과 말기의 친일 논설 기고 행적이 공존한다.
가와시마 쇼지로(川島 正次郎, 1890년 7월 10일~1970년 11월 9일)는 14선 중의원 의원을 역임한 일본의…
가와시마 쇼지로(川島 正次郎, 1890년 7월 10일~1970년 11월 9일)는 14선 중의원 의원을 역임한 일본의 정치인이다.
백관수(白寬洙, 1889년 1월 28일~1951년 10월 25일)는 일제강점기의 교육자,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이며 미군정…
백관수(白寬洙, 1889년 1월 28일~1951년 10월 25일)는 일제강점기의 교육자,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이며 미군정 시대의 정치인이다. 호는 근촌(芹村)이며 본관은 수원이다. 전라북도 고창군 출생이며 미군정청 비상국민회의 예하 교통위원장·초대 대한민국 초선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일본 유학 중 1919년 신익희 등과 함께 일본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을 주도했으며, 3·1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귀국 후 중앙학교에서 잠시 교육 활동을 하다가 동아일보에 투신, 언론계에서 활동하였고, 광복 이후에는 제헌국회의원으로서 헌법기초를 담당하였다.
송필만(宋必滿, 1890년~1978년 7월 15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법학자, 정치인이다. 한민당의 창당멤버였으며…
송필만(宋必滿, 1890년~1978년 7월 15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법학자, 정치인이다. 한민당의 창당멤버였으며 신익희, 윤보선, 조병옥 등과 함께 민주당 구파의 한사람으로 활동했다.
하세가와 기요시(일본어: 長谷川 清, 1883년(메이지 16년) 5월 7일 ~ 1970년(쇼와 45년) 9월 2일)는 일본…
하세가와 기요시(일본어: 長谷川 清, 1883년(메이지 16년) 5월 7일 ~ 1970년(쇼와 45년) 9월 2일)는 일본 제국의 해군 군인이다. 최종 계급은 정3위 훈1등 공1급 해군대장이다. 제3함대 사령장관, 군사참의관, 대만 총독 등을 역임하였다. 전후에 A급 전범 혐의로 2개월 동안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조만식(曺晩植, 1883년 2월 1일 ~ 1950년 10월 18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일제강점기의…
조만식(曺晩植, 1883년 2월 1일 ~ 1950년 10월 18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일제강점기의 교육자·종교인·언론인·시민사회단체인·정치인이다. 국산 물산장려운동과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하여 조선의 간디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출생하였으며, 아호는 고당(古堂),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평안남도 강서군(현 남포시) 출생으로, 22세 이후 상업과 종교 활동에 종사하다가 일제 강점기에 민족 운동에 참여하여 1919년 3.1 만세운동으로 투옥당하기도 하였다. 이후 교육 계몽 활동과 민족자본 운동을 벌이며 오산학교에서 교사와 교장으로 교편을 잡았고, 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설립운동, YMCA 평양지회 설립, 신간회 등을 주도하였다. 해방 이후 남측의 여운형 등과 함께 북측에서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으나, 소련군정 당국과 대립하다가 1946년 1월 평양 고려호텔에 감금되었고, 한국 전쟁 중인 1950년 10월에 퇴각하는 공산군에 의해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