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노 다카하루(일본어: 西野 貴治 (にしの たかはる), 1993년 9월 14일 ~ )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다.
오사카부: 21명
니시노 다카하루(일본어: 西野 貴治 (にしの たかはる), 1993년 9월 14일 ~ )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다.
우시다 마유(牛田茉友, うしだ まゆ, 1985년 6월 8일 오사카부 이케다시 ~ )는 일본의 언론인이며 NHK 소속의 여성…
우시다 마유(牛田茉友, うしだ まゆ, 1985년 6월 8일 오사카부 이케다시 ~ )는 일본의 언론인이며 NHK 소속의 여성 아나운서이다. 2019년 4월 부로 NHK 개편에 따라 NHK 오사카 방송국으로 옮겼다가 2023년 여름 조직개편으로 다시 도쿄도 NHK 방송 센터로 옮겼다.
마루야마 호다카(일본어: 丸山穂高, 1984년 1월 10일 ~)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2019년 쿠릴 열도를 되찾기 위한…
마루야마 호다카(일본어: 丸山穂高, 1984년 1월 10일 ~)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2019년 쿠릴 열도를 되찾기 위한 전쟁의 필요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다 논란이 되자 탈당했고, NHK 수신료를 지불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치는 당에 입당했다.
쓰루호 요스케(일본어: 鶴保庸介, 1967년 2월 5일 ~ )는 일본 자민당 소속의 정치인이다. 참의원이며 현 내각부…
쓰루호 요스케(일본어: 鶴保庸介, 1967년 2월 5일 ~ )는 일본 자민당 소속의 정치인이다. 참의원이며 현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오키나와 북방 영토 담당상이다. 2016년 8월 제3차 아베 신조 내각 (제2차 개조)에서 특명담당대신으로 내정되었다.
노노무라 류타로(일본어: 野々村 竜太郎 ののむら りゅうたろう[*], 1966년 7월 29일 ~ )는 일본의 전 지방의원이다.…
노노무라 류타로(일본어: 野々村 竜太郎 ののむら りゅうたろう[*], 1966년 7월 29일 ~ )는 일본의 전 지방의원이다. 2014년, 300만엔을 출장비로 유용한 혐의를 받아 해명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기자회견에서 통곡을 하며 헛소리를 하는 등 자리에 맞지 않는 언행을 보인 사건으로 화제가 되었다.
세코 히로시게(일본어: 世耕弘成, 1962년 11월 9일 ~ )는 일본의 정치인이며, 경제산업대신 이다. 조부는 교육자 세코…
세코 히로시게(일본어: 世耕弘成, 1962년 11월 9일 ~ )는 일본의 정치인이며, 경제산업대신 이다. 조부는 교육자 세코 고이치, 부인은 정치인 하야시 구미코, 백부는 정치인 세코 마사타카이다.
라살 이시이(일본어: ラサール 石井 라사루 이시이[*], 1955년 10월 19일 ~ )는 일본의 방송인, 배우, 연출가…
라살 이시이(일본어: ラサール 石井 라사루 이시이[*], 1955년 10월 19일 ~ )는 일본의 방송인, 배우, 연출가, 작가, 칼럼리스트이다. 본명은 이시이 아키오(石井朗夫, 다른 예명 石井章雄)이며, 모교인 라살 고등학교(ラ・サール高等学校)에서 예명을 따왔다. 2025년 제27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 사회민주당 소속 비례대표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후지무라 오사무(일본어: 藤村修, 1949년 11월 3일 ~)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민주당 소속 중의원이자 전…
후지무라 오사무(일본어: 藤村修, 1949년 11월 3일 ~)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민주당 소속 중의원이자 전 내각관방장관이다. 외무성 부대신 (간 내각), 후생노동성 부대신 (간 제1차 개조내각), 중의원 후생노동위원장, 민주당 간사장 대리 등을 지냈다.
니시무라 신고(일본어: 西村眞悟, 1948년 7월 7일-)는 오사카부 사카이시 태생의 일본의 정치인이다. 소속은 일본유신회.…
니시무라 신고(일본어: 西村眞悟, 1948년 7월 7일-)는 오사카부 사카이시 태생의 일본의 정치인이다. 소속은 일본유신회. 원래 직업은 변호사로서, 중의원 6선 의원이다. 과거 민주당 시절, 당의 색깔이 중도성향인 것과는 반대로 자민당의 이시하라 신타로에 버금가는 극우주의자에 마초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당 대표를 역임한 오카다 가츠야 의원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신사참배를 비판하자, "중국을 대변하는 놈이 총리가 될리가 없지. 슈퍼마켓이나 경영하라고 그래"고 한 발언, 사민당의 여성의원인 쓰지모토 기요미 의원과 언쟁중에 "너따위는 강간하지 않을테니 안심해"라는 성차별적 폭언, "우리 일본인은 솔직하게 말해서 한국인이 싫다" 등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2006년 총리대신 지명선거에서는 자당 대표인 오자와 이치로 후보 대신 자민당의 아베 신조에게 투표하였다. 〈북조선에 납치된 일본인을 조기에 구출해내기위해 행동하는 의원연맹〉의 간사장이며, 일본군성노예 관련 규탄결의인 미하원결의안 121호에 반대하는 의원이다. 2007년에는 변호사법 위반혐의로 오사카 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에 집행유예 5년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또한 야쿠자와 연관되어 있다는 조직범죄혐의도 받았으나, 이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되었다. 2013년에는 일본유신회 모임에서 "일본에는 매춘부가 득실거린다.", "오사카의 번화가에서 '너 한국인, 위안부지?'라고 말해주면 된다." 등을 발언했다. 직후 당시 동석했던 의원으로부터 한국이라는 특정 국가를 지칭한 것에 대해 철회하라는 요구를 받았고, 니시무라는 이후 발언 철회를 하며 자신으로 인해 당에 민폐를 끼쳤다며 일본유신회에 탈당서를 제출했다. 한편, 일본유신회의 마쓰이 이치로 간사장은 니시무라 의원에 대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다. 우리 그룹에서 같이 있을 수 없다."면서 니시무라 의원을 탈당서 수리가 아닌 제적할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라이 쇼케이(일본어: 新井 将敬 (あらい しょうけい), 1948년 1월 12일~1998년 2월 19일)는 한국계…
아라이 쇼케이(일본어: 新井 将敬 (あらい しょうけい), 1948년 1월 12일~1998년 2월 19일)는 한국계 일본인으로는 사상 처음 일본 중의원에 진출했던 일본의 정치인이다. 한국명은 박경재(朴景在)이다.
나오시마 마사유키(일본어: 直嶋 正行, 1945년 10월 23일 ~ )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참의원·하토야마 유키오 내각…
나오시마 마사유키(일본어: 直嶋 正行, 1945년 10월 23일 ~ )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참의원·하토야마 유키오 내각, 간 나오토 내각에서 경제산업대신을 역임하였다. 참의원 운수 위원장, 민주당 정책 조사회 회장 등도 지낸 바 있다.
이명박(李明博, 1941년 12월 19일~)은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이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해 현대건설에…
이명박(李明博, 1941년 12월 19일~)은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이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해 현대건설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 회장직까지 승진했다. 이후 정계에 입문해 제14·15대 국회의원직과 제32대 서울특별시장직을 역임했다. 본관은 경주이며 일본 오사카 출생이다. 호는 원래 일송(一松)이나 서울특별시장 시절이던 2005년 10월 26일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 전체 회의에 참석한 고대 동문 김정배 위원장의 권유에 따라 청계(淸溪)로 바꿨다. 1970년 12월 19일 김윤옥 여사와 결혼하여 1남 3녀를 두었다. 아들은 시형, 딸은 주연, 승연, 수연이다. 서울특별시장으로 있던 2006년 2월 21일 제33회 초교파 전국 목회자 부부 영성 세미나에서 "가난한 집안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머니의 기도와 신앙을 통해 성공했다"고 간증했다. 일제 강점기 때 오사카에서 목장 노동자였던 아버지 이충우(李忠雨)와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 채태원 사이에 4남 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해방 직후 귀국해 포항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서울로 이사하여 막노동을 비롯해 온갖 잡일을 하던 중 청계천 헌책방 주인에게 얻은 책으로 대입 준비에 들어갔고, 어머니가 좌판 일을 하던 이태원 시장의 상인들 도움으로 등록금을 마련해 고려대학교 상과대학에 입학했다. 이태원시장에서 매일 새벽 청소 일을 하는 환경미화원으로 학업을 이어가던 중 생활고를 피해 군대에 입대했으나 기관지확장증으로 진단받아 훈련소에서 강제 퇴소됐다. 3학년 때 상대 학생회장에 당선 한일협정을 반대하는 6.3 시위를 주도했다. 경찰에 체포돼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6개월간 복역했다. 대학 졸업 후 학생운동 전력으로 취업이 되지 않자 박정희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어렵게 현대건설에 입사해 5년 만에 이사가 됐고 12년 만인 1977년엔 37세 나이로 현대건설 사장이 되면서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렸다. 이 과정에서 1970년엔 6살 연하의 김윤옥과 결혼했다. 1992년에 현대건설 회장직을 그만두고 민주자유당에 입당해 정계에 입문했으며, 14대 전국구 국회의원에 이어 15대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내던 중, 공직선거 및 부정선거방지법위반죄혐의로 피소되어 1997년 9월 1심에서 벌금 400만원을 선고받았다. 1998년 2월 항소를 진행하던 중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사퇴했다. 1998년 4월 항소심서 벌금 400만 원 형이 선고되자 대법원에 상고했다. 이후 서울시장 후보 경선 출마를 포기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으로부터 객원연구원으로 초대를 받아 미국으로 건너갔다.1999년 4월 대법원으로부터 벌금 400만원이 확정되었으나, 2000년 8월 광복절 특사로 사면복권된 후, 민선 3기 32대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돼 청계천 복원 사업, 서울시 대중교통 환승체계 구축 서울숲 조성 등의 업적을 남겼다. 2007년 12월 19일 제17대 대선에서 '실천하는 경제대통령'이라는 슬로건으로 2위인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를 역대 최대 표차인 531만 여표 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이듬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통해 정부 조직의 대대적인 통폐합안을 발표하고, '작은 정부, 큰 시장'을 뼈대로 '경제살리기'의 기치를 내걸었다. 집권 초 한미 쇠고기협상이 타결되자 MBC PD수첩을 비롯한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미국산 쇠고기의 인간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하면서 광우병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이명박 대통령은 사과하고 30개월 이상 소고기의 수입을 금지하는 재협상을 약속하면서 시위는 잦아들었다. 2008년 9월에는 미국발 글로벌금융위기가 발생했다. 글로벌금융위기로 같은 해 4분기 들어 미국과 일본, 유럽 선진국들의 GDP 성장률이 일제히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10월 한 달 동안 아이슬란드, 파키스탄, 우크라이나, 헝가리, 벨로루시 등 5개국이 외환위기를 맞아 IMF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외신들은 한국의 경제를 비관하며 5개국의 뒤를 이어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제일먼저 국가부도를 맞을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한국의 대외신인도를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F) 프리미엄이 급등하는 등 한국의 부도위험은 사상 최고수준으로 치솟았다. 이에 대내적으로는 미국, 일본, 중국 등과 통화스와프 체결, 매주 비상경제대책회의 주재, 확장적 재정정책 등을 통한 위기극복에 나섰고, 대외적으로는 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글로벌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공조를 이끌어 냈다. 그 결과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성공적으로 글로벌금융위기를 극복하며 ‘위기 통제에 만점을 받아 교과서적인 경제회복을 이루어낸 국가’라는 평가를 외신으로부터 받았다. 한편 경제위기 극복이 가시화 되는 상황에서 국정기조를 ‘친 서민 중도실용’으로 삼아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과 서민 살리기 행보에 나섰다. 2010년 4월에는 유럽발 재정위기가 발생하면서 또 한 번 세계경제는 대침체에 빠졌다. 또한 2011년 8월에는 S&P에 의해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되면서 세계 경제는 또 한 번의 충격에 빠졌다. 이에 중국, 일본과 맺은 통화스와프를 확대하고 균형재정을 선언하는 등 위기극복에 나섰다. 그 결과 한국은 2012년 8월 무디스, 피치, S&P등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사상 최고의 국가신용등급을 받았고, 특히 피치로부터 받은 국가신용등급은 사상 처음으로 중국과 일본을 앞섰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반대 진영은 경제효과 의문, 녹조 등 환경파괴, 부실공사, 공기업, 부실재정, 유지보수비용, 기업의 입찰담합 등을 주장하며 대대적인 비난에 나섰다. 그러나 2015년에 대법원은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서 진행된 4대강 사업 모두 적법 판결을 내렸다. 또한 2015년에는 4대강 보의 물을 가뭄지역에 공급하는 사업이 추진되기도 하였다. 대북 정책에 있어서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천안함·연평도 포격 사건 및 북핵 문제 등과 같은 북한의 도발에 대해 금강산 관광 중단, 5.24조치 실시 등 강력한 대북경제제재를 취하며 국제사회에 공조 하여 대북압박에 나섰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북한이 대북지원을 요구하며 수차례 집요하게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요구해 왔지만 원칙 있는 대북 정책을 위해 이를 거부했다. 외교정책은 '더 큰 대한민국(Global Korea)'를 국정지표로 삼아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 2011년 부산 원조개발총회, 2012년엔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등을 개최하면서 한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함양했다. 또한 2009년엔 UAE 원전을 수주하면서 세계 6번째로 원전수출국의 반열에 섰으며,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소말리아 해적을 소탕한 아덴만의 여명작전 등 외교 안보적 업적을 남겼다. 대미외교는 임기 중 한미FTA 발효를 통해 60여 년간 이어진 한·미 군사동맹을 ‘안보+경제’의 포괄동맹으로 진일보 시켰다. 또한 한·미 간 미사일지침 개정을 통해 미사일 사거리를 연장하고, 미국비자 면제 프로그램(VWP) 가입하는 등 한미관계는 강화됐다. 대일외교는 과거를 직시하면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을 지향했다.일본 총리로부터 과거사 반성을 담은 간 나오토 총리 담화를 이끌어내고, 조성왕실 의궤를 돌려받는 등 과거사 문제에도 큰 진전이 있었다. 임기 말에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했으나 일본 총리가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등 일본 정부가 점차 우경화 되면서 한일 관계는 악화됐고, 일본정부는 이를 독도방문과 일왕 발언 등으로 책임을 돌렸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후, 다스를 비롯한 각종 비리에 대한 논란과 비판이 잇따랐으며, 뇌물수수,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되었다. 역대 대통령들 중 4번째로 구속되었다. 이후 2018년 10월 5일 1심에서 징역 15년, 벌금 130억 원을 선고받았다. 2020년 10월 29일에는 대법원이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원, 추징금 57억8천여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명박의 징역형이 확정되면서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는 모두 박탈되었다.
다케모토 나오카즈(竹本直一, 1940년 11월 23일~)는 일본의 전 정치인이다. 자유민주당 소속 8선 의원을 역임했다.…
다케모토 나오카즈(竹本直一, 1940년 11월 23일~)는 일본의 전 정치인이다. 자유민주당 소속 8선 의원을 역임했다. 오사카에서 태어나 교토 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2021년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다케모토는 ‘일본의 인장제도·문화를 지키는 의원 연맹’(日本の印章制度・文化を守る議員連盟, ‘도장 연맹’)의 회장을 맡고 있다. 2019년 9월 12일 IT 담당대신으로 취임하는 날 기자회견에서 도장 문화를 지켜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노사카 아키유키(野坂 昭如, 1930년 10월 10일 ~ 2015년 12월 9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
노사카 아키유키(野坂 昭如, 1930년 10월 10일 ~ 2015년 12월 9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 출생으로, 1983년 참의원을 지낸 바 있다. 소설가 이외에 아키 유키오(阿木 由紀夫)라는 예명으로 방송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클로드 노사카(クロード 野坂)라는 예명으로 샹송 가수로 활동하였다. 2015년 12월 9일 자택에서 심근 경색으로 의식을 잃은 뒤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며, 병원에 도착한 뒤 사망 판정을 받았다. 노사카는 사망 이틀 전인 7일 TBS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편지에서 "나는 일본이 하나의 갈림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었고, 사망 몇 시간 전인 9일 오후 4시께 신쇼샤(新朝社)에 보낸 잡지 연재 마지막 원고의 말미에는 "이 나라에, '전전'(戰前,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시작하기 전 시기를 의미)이 차츰 다가오고 있음은 확실하리라"(この国に、戦前がひたひたと迫っていることは確かだろう)고 적었다.
현오봉(玄梧鳳, 1923년 3월 26일~1982년 10월 16일)은 대한민국의 제4·6·7·8·9·10대 국회의원을 지낸…
현오봉(玄梧鳳, 1923년 3월 26일~1982년 10월 16일)은 대한민국의 제4·6·7·8·9·10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본관은 연주이며, 제주도 남제주군 출신이다.
시오카와 마사주로(일본어: 塩川 正十郎, 1921년 10월 13일 ~ 2015년 9월 19일)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전…
시오카와 마사주로(일본어: 塩川 正十郎, 1921년 10월 13일 ~ 2015년 9월 19일)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전 자유민주당 소속 중의원 의원이었다. 운수대신, 문부대신, 내각관방장관, 자치대신,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재무대신 등을 지냈으며, 2010년 8월 자유국민회의 대표 (自由国民会議代表), 도요 대학 총장, 재단법인 간사이 기원(関西棋院) 이사장을 맡았다.
하라다 겐(일본어: 原田 憲 (はらだ けん), 1919년 2월 12일~1997년 1월 29일)는 14선 중의원 의원을 지낸…
하라다 겐(일본어: 原田 憲 (はらだ けん), 1919년 2월 12일~1997년 1월 29일)는 14선 중의원 의원을 지낸 일본의 정치인이다. 장남은 4선 중의원 의원을 지낸 하라다 겐지다.
강기문(姜己文, 1908년~?)은 한국의 정치인이다.
사토 나오타케(일본어: 佐藤 尚武, 1882년 10월 30일 ~ 1971년 12월 18일)는 일본의 외교관이자 정치인으로…
사토 나오타케(일본어: 佐藤 尚武, 1882년 10월 30일 ~ 1971년 12월 18일)는 일본의 외교관이자 정치인으로, 하야시 센주로 내각에서 외무대신을 지냈다. 전후에는 참의원 의장 등을 지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소비에트 연방의 대일 선전포고 당시, 주 소비에트 연방 대사이기도 했다. 오사카부 출신으로 히로사키번사이자 오키나와현 경찰부장 다나카 곤로쿠(田中坤六)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904년 도쿄 상업학교 (지금의 히토츠바시 대학) 전과를 졸업하고, 1905년 외교관 및 영사관 시험에 합격해 외무성에 들어갔다. 하얼빈 총영사, 국제 연맹 사무국장을 거쳐 1929년 런던 해군 군축 조약 사무총장, 1930년 주 벨기에 특명 전권대사, 1933년 주 프랑스 특명 전권대사, 1937년 일본의 외무대신, 1938년 일본 외무성 외교 고문, 1940년 주 이탈리아 특명 전권대사를 지내고, 1942년 도고 시게노리 당시 일본 외무대신의 요청으로 주 소비에트 연방 특명 전권대사가 되었다. 외무대신 시절에는 제국 의회에서 전쟁 회피를 주장하였으며, 그의 주 소비에트 연방 대사 임명은, 일본의 전세 악화 가운데 일소 중립 조약을 체결했던 소비에트 연방의 중개를 통해 연합국과의 평화 모색을 위한 임무 중 하나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사토는 이미 전쟁의 대세가 정해진 이상 소비에트 연방이 중개역에 설 가능성은 적다고 판단하였고, 조기 종전을 재촉하는 기밀 전보를 도쿄로 돌려보냈다. 결국 1945년 8월 8일, 크렘린에서 소비에트 연방의 외무장관 뱌체슬라프 몰로토프에 의해 대일 선전 포고가 선언되었으며, 일제가 그 해 8월 15일 항복하여 전쟁은 막을 내렸다. 전후에는 참의원 의원에 당선되었으며, 1949년부터 1953년까지 참의원 의장을 지냈다.
스즈키 간타로(일본어: 鈴木貫太郎, 1868년 1월 18일 ~ 1948년 4월 17일)는 일본의 해군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스즈키 간타로(일본어: 鈴木貫太郎, 1868년 1월 18일 ~ 1948년 4월 17일)는 일본의 해군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작위는 남작. 연합 함대 사령장관, 해군 군령 부장 등을 역임하였고, 1945년 4월부터 태평양 전쟁의 일본의 항복 직후까지 제42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냈다. 에도 시대에 태어난 마지막 내각총리대신이기도 하다. 퇴역 이후에는 천황의 측근인 시종장으로 근무하다가 2.26 사건때는 과격 청년 장교들의 암살 표적이 되어 총상을 입기도 했으나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요시무라 히로후미(吉村洋文, 1975년 6월 17일 ~ )는 일본의 변호사, 세무사, 정치인이다. 오사카 유신회 소속으로…
요시무라 히로후미(吉村洋文, 1975년 6월 17일 ~ )는 일본의 변호사, 세무사, 정치인이다. 오사카 유신회 소속으로, 현재 오사카부 지사, 오사카 유신회 대표, 일본유신회 대표직에 있다. 과거에는 오사카시장(1기), 중의원 의원(1기), 오사카시의회 의원(1기), 오사카 유신회 정무위원회장, 오사카 유신회 정무조사회장, 동 대표대행, 일본유신회 부대표, 동 공동대표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