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오노에 키쿠고로 ( 일본어: 五代目 尾上菊五郎 ごだいめ おのえ きくごろう[*], 1844년 7월 18일 (덴포 15년…5대 오노에 키쿠고로 ( 일본어: 五代目 尾上菊五郎 ごだいめ おのえ きくごろう[*], 1844년 7월 18일 (덴포 15년 6월 4일) - 1903년 (메이지 36년) 2월 18일)는 메이지 시대에 활동한 가부키 배우이다. 본명은 테라시마 키요시 (寺島 清)이다. 오노에 키쿠고로로써의 야호는 오토와야이다. 정문은 겹부채에 안긴 떡갈나무, 정문 대신 쓰는 문장은 욧츠와이다. 배명은 바이코이다. 이치무라 우자에몬으로써의 야호는 키쿠야이다. 정문은 네아가리타치바나, 정문 대신 쓰는 문장은 우즈마키, 배명은 카키츠이다. 9대 이치카와 단쥬로, 초대 이치카와 사단지와 함께 "단키쿠사 시대"의 황금 시대를 쌓았다.
이노우에 고와시(일본어: 井上毅, 1843년 2월 6일 ~ 1895년 3월 15일)는 일본의 관료, 정치가였다. 동시대의…이노우에 고와시(일본어: 井上毅, 1843년 2월 6일 ~ 1895년 3월 15일)는 일본의 관료, 정치가였다. 동시대의 유명 정치가 이노우에 가오루와 혈연관계는 없다. 자작, 훈1등 욱일장 수훈, 정3위 수위. 구마모토 번의 하급무사 가문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신동이라 불렸다. 메이지 유신 이후 관료 양성기관인 대학남교(大学南校)에서 공부하고 메이지 정부의 사법성에서 벼슬길에 오른다. 1년 간 서구 시찰을 다녀온 후 오쿠보 도시미치에게서 등용되었고 그의 사후 이와쿠라 도모미가 재차 등용하였다. 메이지 14년 정변에서 이토 히로부미 파에 속하였다. 당시 일본의 상황에서 안정적인 정권을 구성할 정부 여당이 나올 수 없다며 의원내각제 도입에 반대하고 독일 제국식 국가체제의 수립을 역설하였다. 국학에도 통달하였고,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대일본제국 헌법, 황실전범, 교육칙어, 군인칙유의 초안 작성에 참가했다. 내각법제국 장관, 추밀원 고문관, 제2차 이토 내각의 문부대신을 역임하였다. 이토와 사상 차이로 사이가 소원해지며 정계에서 은퇴하였고 이후 별장에서 요양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1895년 1월, 자작 작위를 받아 화족이 되었다. 같은 해 3월, 가나가와현 다고에무라(현재의 즈시 시)의 별장에서 51세의 나이로 병사하였다.
데라시마 무네노리(일본어: 寺島宗則, 1832년 ~ 1893년)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작위는 백작이다. 본명은 마쓰키…데라시마 무네노리(일본어: 寺島宗則, 1832년 ~ 1893년)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작위는 백작이다. 본명은 마쓰키 고안(松木弘安). 일본에서는 전기통신의 아버지(電気通信の父)로 불린다. 제4대 외무경을 지냈다. 사쓰마국 이즈미군(지금의 아쿠네시)의 향사 나가노 나리무네(長野成宗)의 차남 도쿠타로(徳太郎, 후의 도타로(藤太郎))으로 태어났다. 5살에 백부 난의(蘭方医) 마쓰키 무네호(松木宗保)의 양자로 입적되어 나가사키에서 난학을 배웠다.
가이에다 노부요시(海江田信義)는 막말의 사쓰마번사출신으로 일본 제국의 정치인, 화족이다. 통칭은 다케지(武次). 막말에는…가이에다 노부요시(海江田信義)는 막말의 사쓰마번사출신으로 일본 제국의 정치인, 화족이다. 통칭은 다케지(武次). 막말에는 아리무라 준사이(有村俊斎)로도 불렸다. 메이지 시대에는 나라현지사도 맡았다.
가토 다미키치(加藤民吉, 1772년 ~ 1824년)는 일본 에도 시대의 도공이다. 세토 도자기를 창시하였다. 그 기술은 당시…가토 다미키치(加藤民吉, 1772년 ~ 1824년)는 일본 에도 시대의 도공이다. 세토 도자기를 창시하였다. 그 기술은 당시 인기가 높았던 아리타 도자기의 기술을 복제한 것이다. 외지에 나가서 결혼을 하였는데, 어느 날 비밀리에 고향인 세토로 돌아왔다. 뒤를 따라온 아내는 남편에게는 이미 본처와 자식들이 있는 것을 보고 이를 섭섭하게 생각해 연못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도쿠가와 미쓰쿠니(일본어: 德川光圀, 1628년 ~ 1701년)은 에도 시대 2대 미토번주이자 유학자이다. 미토…도쿠가와 미쓰쿠니(일본어: 德川光圀, 1628년 ~ 1701년)은 에도 시대 2대 미토번주이자 유학자이다. 미토 고몬(水戶黃門)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며 현재까지 도쿄 방송에서 방영하고 있는 '파나소닉 드라마 시어터'에 속하는 TV 시대극 『미토 고몬』은 미쓰쿠니를 모델로 한 것이다. 1628년, 초대 미토번주 도쿠가와 요리후사(이에야스의 11남)와 측실 히사코 사이에서 삼남으로 태어났다. 유학 및 역사학에 조예가 깊어 명에서 유학자 주순수(朱舜水)를 초빙하여 가르침을 받았으며, 『대일본사(大日本史)』를 편찬하였다. 미쓰쿠니의 후원을 바탕으로 국수주의 색채를 띠는 미토학(水戶學)이 성장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