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미쓰쿠니(일본어: 德川光圀, 1628년 ~ 1701년)은 에도 시대 2대 미토번주이자 유학자이다. 미토…도쿠가와 미쓰쿠니(일본어: 德川光圀, 1628년 ~ 1701년)은 에도 시대 2대 미토번주이자 유학자이다. 미토 고몬(水戶黃門)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며 현재까지 도쿄 방송에서 방영하고 있는 '파나소닉 드라마 시어터'에 속하는 TV 시대극 『미토 고몬』은 미쓰쿠니를 모델로 한 것이다. 1628년, 초대 미토번주 도쿠가와 요리후사(이에야스의 11남)와 측실 히사코 사이에서 삼남으로 태어났다. 유학 및 역사학에 조예가 깊어 명에서 유학자 주순수(朱舜水)를 초빙하여 가르침을 받았으며, 『대일본사(大日本史)』를 편찬하였다. 미쓰쿠니의 후원을 바탕으로 국수주의 색채를 띠는 미토학(水戶學)이 성장하게 되었다.
이이 나오마사(일본어: 井伊 直政, 1561년 3월 4일 - 1602년 3월 24일)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이이 나오마사(일본어: 井伊 直政, 1561년 3월 4일 - 1602년 3월 24일)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무장·다이묘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천하 통일을 도운 1등 공신이다. 와신상담 끝에 1575년 이에야스와 운명의 만남을 가졌다. 이후 특수부대인 이이 아카조나에(井伊赤備)를 조직하고 고마키·나가쿠테 전투 등의 여러 전쟁에서 도쿠가와 군의 주력으로 활약하였다. 1590년 이에야스의 에도 입성에 동참하였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입은 부상의 후유증으로 1602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후손들은 히코네번의 번주로, 후다이 다이묘의 최고봉으로 막부 정치에서 다이로 등의 역할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아사노 나가코토(浅野長勲)는 막말의 다이묘이며 메이지 시대 초기의 정치인, 외교관, 기업인, 사회사업가이다. 아키 히로시마…아사노 나가코토(浅野長勲)는 막말의 다이묘이며 메이지 시대 초기의 정치인, 외교관, 기업인, 사회사업가이다. 아키 히로시마 신덴번 제6대 번주, 동국 히로시마번 최후의 번주이다. 훈등작위는 훈1등 후작이다. 신덴번주 시절의 이름은 나가오키(長興)이며 1863년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에게 임관할 시절에는 그의 편휘를 받아 모치코토(茂勲)로 불렸다.
다테 마사무네(일본어: 伊達 政宗, 1567년 9월 5일 ~ 1636년 6월 27일)는 센고쿠 다이묘이자 다테씨의 당주로…다테 마사무네(일본어: 伊達 政宗, 1567년 9월 5일 ~ 1636년 6월 27일)는 센고쿠 다이묘이자 다테씨의 당주로,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막부 전기까지 활동했던 무사이다. 그는 한쪽 눈을 천연두로 잃었고, 이로 인해 당대에 "오슈의 독안룡" 또는 간단히 "독안룡"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584년 아버지였던 다테 데루무네가 마사무네에게 가독을 맡긴 이래, 다테 마사무네는 20여 년간 전쟁터에서 생활했다. 1585년 다테 데루무네가 니혼마쓰씨에게 암살당하자 마사무네는 이에 대한 복수로 히토토리바시 전투에서 니혼마쓰씨와 그 연합군을 격퇴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1586년부터 1589년까지 3년 동안 아시나씨 가문을 상대하였고 1589년 스리아게하라 전투에서 아시나 연합군을 격파하였다. 이 전투 이후 다테씨는 무쓰국 남부의 강력한 지도자로 성장하게 되었다.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다와라 정벌 이후 다테 마사무네는 히데요시에게 복종하였다. 그리고 무쓰국 북부의 구노헤성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 다테 마사무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도요토미군에 합류해 반군을 토벌했고 이 공로로 이와데야마성 일대를 영지로 하사받게 되었다. 다테 마사무네는 임진왜란에도 참전했고, 히데요시가 죽은 이후에는 도쿠가와씨를 적극 지지했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가 발발했을 때, 다테 마사무네는 이시다 미쓰나리와 협력하는 우에스기 가게카쓰를 막기 위해 하시도성에 출전해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1615년 오사카 전투 때는 도묘지 전투에서 도요토미군을 격파했다. 1600년부터 다테 마사무네는 센다이번의 다이묘로 임명되었고, 1636년 에도에서 사망하였다. 다테 마사무네는 오늘날 뛰어난 무사이자, 센고쿠 다이묘 중 하나였던 다테씨를 일본 도호쿠 지방의 패자(霸者)로 발돋움하게 하는데 큰 공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 측 기록에 따르면, 다테 마사무네는 회화와 요리 등에도 능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센고쿠 다이묘 중 유일하게 로마 교황에 사절을 보낸 인물이기도 하다.
사카이 다다즈미(일본어: 酒井忠篤, 1853년 3월 22일 ~ 1915년 6월 6일)는 막말의 다이묘로, 데와 쇼나이번의…사카이 다다즈미(일본어: 酒井忠篤, 1853년 3월 22일 ~ 1915년 6월 6일)는 막말의 다이묘로, 데와 쇼나이번의 11대 번주이다. 어릴적 이름은 시게노조(繁之丞)이고, 관위는 종4위하, 사에몬노조(左衛門尉)이며, 메이지 시대에 백작이 되었다. 가에이 6년(1853년) 2월 13일, 9대 번주 사카이 다다아키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분큐 2년(1862년), 10대 번주 사카이 다다토모가 사망하자, 그 양자가 되어 번주직을 계승했다. 분큐 3년(1863년) 10월 26일, 종4위하, 사에몬노조에 서임되었다. 막말의 동란의 와중에, 후다이 다이묘 중에서도 힘 있는 명문가 출신(조상은 초대 쇼군 이에야스의 고모부 사카이 다다쓰구)이었기 때문에, 분큐 3년 4월 15일에 신초구미의 관리를 맡았고, 11월에는 에도 시내 단속을 담당했다. 겐지 원년(1864년) 8월 18일, 다가와군, 유리군 두 개 군의 약 2만 7천 석을 추가로 받아 17만 석의 다이묘가 되었다. 게이오 2년(1866년), 대흉작으로 감세를 요구하는 군중 소동이 일어났으나, 마쓰다이라 곤주로(松平権十郎) 등의 주류파(좌막 세력)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 공적으로 번내에서 세력을 얻은 주류파는 게이오 3년(1867년)에 번 통치 개혁과 정치 방침 면에서 대립하고 있던 사카이 우쿄 등의 공무합체파를 체포, 투옥, 숙청하여, 번의 논의를 좌막파로 통일하였다. 그리고 같은해 12월 25일, 사쓰마번 에도 저택을 불태웠다. 게이오 4년(1868년) 보신 전쟁에서는, 막부군이 패배한 뒤에도 오우에쓰 열번 동맹의 일원으로서 신정부군을 상대로 싸웠다. 아키타 번과 신조번, 그리고 신정부군 본군에 의한 공격도 격파하고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주변의 막부파 번들이 속속 신정부측에 항복하게 되면서, 9월 25일 어쩔 수 없이 항복하였고, 9월 27일에는 성문을 열고 근신을 명령받았다. 12월 7일에는 신정부에 반역하였다는 죄목으로 영지 몰수에 처해졌다. 나중에 쇼나이 번은 동생인 사카이 다다미치가 번주가 되어, 12만 석으로 삭감된 상태로 존속을 허락받았다. 메이지 2년(1869년) 9월 23일, 다다즈미는 죄를 용서받고, 이듬해 사쓰마로 옮겨갔다. 메이지 4년(1871년) 7월에는 병부성에 출사하였고, 메이지 5년(1872년) 2월에 육군 소좌로 임관하였으나, 같은해 3월에 사임하고 4월부터 군제 연구를 위해 독일로 유학을 가서, 1879년 6월에 귀국하였다. 그러는 사이 1877년 10월 4일 육군 중위에 임관하였다. 1880년 2월, 동생이자 양자인 다다미치가 은거함에 따라 다시 가문을 상속하였다. 같은해 3월, 정계로부터 은퇴하였고 4월에 육군 보병 중위를 사임하였다. 1881년에 쓰루오카(鶴岡)로 돌아갔다. 1884년 7월에는 화족령에 의해 백작이 되었다. 1915년 6월 6일 6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다다즈미 사후 백작위는 차남 다다나가(동생 다다미치의 양자)가 뒤를 이었다.
사카이 다다미치(일본어: 酒井忠宝, 1856년 7월 14일 ~ 1921년 9월 17일)는 일본 에도 시대의 다이묘로…사카이 다다미치(일본어: 酒井忠宝, 1856년 7월 14일 ~ 1921년 9월 17일)는 일본 에도 시대의 다이묘로, 쇼나이번(오이즈미 번)의 12대(마지막) 번주이다. 관위는 종5위이며, 제국 시대에 백작이 되었다. 안세이 3년(1856년) 6월 13일, 쇼나이 번의 9대 번주 사카이 다다아키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보신 전쟁에서 형이자 11대 번주인 사카이 다다즈미가 신정부군에 항복하고, 영구 칩거 처분을 받은 뒤, 가문의 재흥을 허가받아 다다미치가 번주직에 취임하게 되었다. 메이지 원년부터 2년까지 아이즈번, 이와키 다이라 번 등으로 옮겨다니다, 70만 냥을 헌납하고 메이지 2년(1869년) 7월 22일에 쇼나이 번으로 돌아왔다. 같은 해에 판적봉환으로 지번사가 되었고, 메이지 4년(1871년) 폐번치현으로 면직되었다. 1880년 2월에 은거하였고, 양아버지이자 친형인 다다즈미에게 가문을 상속하게 하였다. 1921년 66세로 사망하였다.
조소카베 모토치카(일본어: 長宗我部 元親 ちょうそかべ もとちか[*], 덴분 8년(1539년) ~ 게이초 4년(1599년 5월…조소카베 모토치카(일본어: 長宗我部 元親 ちょうそかべ もとちか[*], 덴분 8년(1539년) ~ 게이초 4년(1599년 5월 19일))는 도사의 센고쿠 다이묘다. 조소카베씨 제20대 당주. 전성기에는 시코쿠의 대부분을 지배할 정도로 세력을 확장했다. 1586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공을 받고 항복, 이후에도 도사의 영유권을 인정받았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도 참전했다.
이이 나오스케(일본어: 井伊直弼, 음력 1815년 10월 29일 ~ 음력 1860년 3월 3일)는 오미 히코네번의 제15대…이이 나오스케(일본어: 井伊直弼, 음력 1815년 10월 29일 ~ 음력 1860년 3월 3일)는 오미 히코네번의 제15대 번주이자 에도 막부의 다이로이다.
나가이 나오카쓰(일본어: 永井直勝)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전기까지의 무장, 하타모토, 다이묘이다. 고즈케 오바타…나가이 나오카쓰(일본어: 永井直勝)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전기까지의 무장, 하타모토, 다이묘이다. 고즈케 오바타 번주, 히타치 가사마번주, 시모사 고가 번 초대 번주를 지냈다. 나가이 종가(永井宗家) 시조. 참고로 오사카 전투때 참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