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金昌秀, 1962년 9월 8일 - )는 IMMJAPAN의 창립자이자 의사이다. 카나야마 마사히데(金山昌秀)는…
김창수(金昌秀, 1962년 9월 8일 - )는 IMMJAPAN의 창립자이자 의사이다. 카나야마 마사히데(金山昌秀)는 1979년 6월 19일에 일본에 귀화함에 따라 개명한 이름이다.
기독교: 5명
김창수(金昌秀, 1962년 9월 8일 - )는 IMMJAPAN의 창립자이자 의사이다. 카나야마 마사히데(金山昌秀)는…
김창수(金昌秀, 1962년 9월 8일 - )는 IMMJAPAN의 창립자이자 의사이다. 카나야마 마사히데(金山昌秀)는 1979년 6월 19일에 일본에 귀화함에 따라 개명한 이름이다.
후치다 미쓰오(일본어: 淵田 美津雄, 1902년 12월 3일 ~ 1976년 5월 30일)는 일본의 해군 군인이며, 기독교…
후치다 미쓰오(일본어: 淵田 美津雄, 1902년 12월 3일 ~ 1976년 5월 30일)는 일본의 해군 군인이며, 기독교 전도사이다. 나라현 기타가쓰라기촌(현재의 가쓰라기시) 출신. 구제 나라 현립 우네비 중학교를 거쳐서, 1924년 7월, 해군병학교(52기)를 졸업했다. 진주만 공격에 있어서 공습 부대의 총지휘관으로, 제1차 공격대(및 예하의 수평폭격대)를 지휘하여「도・도・도」(ト・ト・ト, 전군 공격하라의 뜻) 및「도라, 도라, 도라」(トラトラトラ, 기습에 성공함)이 후치다에게서 타전된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해군 중좌였다. 개전 전, 제3항공전대 참모에서 2번째 항모 아카기(赤城)의 비행대장으로 취임했다. 이례적인「파격인사」였다. 동기이자 친구이며, 사실상의 작전 입안자였던 겐다 미노루(源田実)의 희망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제1항공함대 기함 아카기에서는 1941년 11월 이래, 미드웨이 해전에서 침몰하기까지, 후치다 중좌(1941년 10월 승진), 이타야 시게루(板谷茂) 소좌, 무라타 시게하루(村田重治) 소좌라는 3명의 비행대장이 있는 이례의 배치가 되었다. 미드웨이 해전 때에는 미드웨이에 향하는 도중에 맹장염에 걸려 미드웨이 공습대의 지휘를 잡지 못하여, 항모 아카기에 남았다. 아카기에서 탈출할 때에 양쪽 발이 골절되었다. 일본 송환 후에는 요코스카 항공지휘관, 해군 대학교 겸 육군 대학교 교관을 거쳐서 군령부에 속했고, 제1항공함대 참모, 연합함대・남방군 참모를 맡았다. 종전시에는 해군 대좌였다. 패번 후에는 제2복원성(예전의 해군성)의 사실 조사부, GHQ의 역사과 촉탁으로서 전쟁 중의 자료 정리연구를 했다. 후치다의 나구모 주이치(南雲忠一),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에 대한 평가는 신랄하다. 1949년, 기독교에 입교한 이래 1966년에 은퇴하기까지 미국과 일본 각지에서 전도활동에 종사했다. 미국에서는「진주만 공격의 영웅」으로서 초대된 적이 많았다고 한다. 1967년, 고향에 은거했다. 1976년 5월 30일, 당뇨병의 합병증에 걸려 7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김교신(金敎臣, 1901년 4월 18일 ~ 1945년 4월 25일)은 일제 강점기에 무교회주의 기독교 사상을 전파한 종교인…
김교신(金敎臣, 1901년 4월 18일 ~ 1945년 4월 25일)은 일제 강점기에 무교회주의 기독교 사상을 전파한 종교인, 사상가, 출판인, 교육자이며 독립유공자이다.
우치무라 간조(일본어: 内村鑑三, 1861년 3월 26일 - 1930년 3월 28일)는 일본의 개신교 사상가로, 무교회주의의…
우치무라 간조(일본어: 内村鑑三, 1861년 3월 26일 - 1930년 3월 28일)는 일본의 개신교 사상가로, 무교회주의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서구적인 기독교가 아닌, 일본인들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가르침 즉, 일본적인 기독교를 찾고자 하였다.
혼다 요이쓰(일본어: 本多庸一, 1848년 ~ 1912년)는 일본의 기독교 목회자이며 교육인이다. 아오모리현 히로사키시…
혼다 요이쓰(일본어: 本多庸一, 1848년 ~ 1912년)는 일본의 기독교 목회자이며 교육인이다. 아오모리현 히로사키시 출생이다. 우치무라 간조, 니토베 이나조와 함께 메이지 시대 일본 기독교 교육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초년에는 유학을 공부하고 병법과 검술을 익히다가, 영어를 배우기 위해 요코하마로 간 것을 계기로 1872년에 미국인 선교사를 만나고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이후 고향인 도호쿠 지방에서 교육 사업과 목회를 겸하며 활동하였다. 본래 장로교 목사였으나 1886년에는 감리교 교회의 목회자가 되어 그 사이 교파를 바꾸었다. 미국에 유학하고 돌아온 뒤 아오야마학원 제2대 원장에 올랐고, 일본 감리교회 초대 감독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