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도 마가라(일본어: 近藤 真柄 (こんどう まがら): 1903년 1월 30일 - 1983년 3월 18일)는 일본의…콘도 마가라(일본어: 近藤 真柄 (こんどう まがら): 1903년 1월 30일 - 1983년 3월 18일)는 일본의 사회주의자, 여성운동가다. 사카이 토시히코의 딸. 18세 때 일본 최초의 사회주의 여성단체 적란회 결성에 참가했고, 결성 직후 노동절 데모를 감행하여 회원 전원이 구속되었다. 이 때 최연소 데모 참가자이자 일본 최초의 여성 데모 참가자로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적란회가 자연소멸하고 이듬해인 1922년 제1차 일본공산당에 입당, 오쿠 무메오 등과 함께 부인정치운동촉진회를 결성해 부인전선의 통일을 표방했다. 전후에는 일체의 정당에 속하지 않으면서 일본부인유권자동맹 회장을 지냈으며, 코토쿠 대역사건의 진상규명 요구 운동을 운동을 했다. 타카세 키요시와 결혼했지만 이혼하고 콘도 켄지와 재혼했다. 체포되어 심문받을 때나 연구자 등이 면담을 딸 때나, 평생에 단 한 번도 옛 동지를 팔거나 폄하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야나기 무네요시(일본어: 柳宗悅, 1889년 3월 21일 ~ 1961년 5월 3일)는 일본에서 민예운동을 일으킨 사상가이자…야나기 무네요시(일본어: 柳宗悅, 1889년 3월 21일 ~ 1961년 5월 3일)는 일본에서 민예운동을 일으킨 사상가이자 미술평론가, 미술사학자이다. 학습원(學習院) 고등부에 재학할 때 문예지 《시라카바》(白樺)를 만들었다. 1913년 도쿄 제국 대학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유럽 유학 후 귀국하여 1919년에서 1923년까지 도요 대학에서 종교학 교수로 있었다. '사라지는 한 조선 건축물에 대하여'를 1922년 《개조》(改造) 9월호에 발표하는 등의 논설 활동을 했고, 1924년 서울에 조선 민속 미술관을 세우고 이조 도자기 전람회를 개최했다. 한국의 전통 미술 및 공예품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이에 대한 평론 및 수집을 하였다. 한국의 미를 설명하면서 한국 민족의 특성을 심도있게 분석하였다. 민예학에 조예가 깊었는데 그 대표적인 성과가 1936년 도쿄도 메구로구에서의 민예관 설립이다. 일제 강점기 광화문 철거 당시 철거를 강력하게 반대하여 타국의 문화유산에 대한 가치와 존중을 표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4년 9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히라쓰카 라이초(일본어: 平塚 らいてう, 1886년 2월 10일 ~ 1971년 5월 24일)는 일본의 사상가, 평론가…히라쓰카 라이초(일본어: 平塚 らいてう, 1886년 2월 10일 ~ 1971년 5월 24일)는 일본의 사상가, 평론가, 작가, 여성주의자이며 쇼와 시대의 여성 운동 지도자이다. 본명은 히라쓰카 하루(平塚明).
윌리엄 메렐 보리스(영어: William Merrell Vories, 1880년 10월 28일 ~ 1964년 5월 7일)는…윌리엄 메렐 보리스(영어: William Merrell Vories, 1880년 10월 28일 ~ 1964년 5월 7일)는 일본에서 활동한 미국 출신의 개신교 평신도 선교사·건축가·기업가이다. 캔자스주 레번워스에서 태어났다. 건축가를 지망하여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입학이 결정되었으나, 가정의 경제상황으로 1900년 콜로라도 칼리지 이공계 과정에 입학하였다. 대학에서 YMCA 활동을 시작하여, 1905년 일본으로 건너가 사가 현립 상업학교(지금의 사가 현립 하치만 상업학교)의 영어교사로 2년간 일했으나, 영어 성경 공부를 통해 개종자가 늘어나자 승려들의 집단적인 방해에 의해 학교에서 쫓겨나야 했다 이후 1908년 교토에 건축설계 사무소를 세운 것을 시작으로 일본에 많은 서양식 건축물을 설계·시공하고, 이후 시가현 하치만(지금의 오미하치만시)을 근거지로 '오미 형제단'을 설립해 활동했다. 1919년 일본의 귀족 히토쓰야나기 스에노리 자작의 딸 히토쓰야나기 마키코와 결혼하였고, 1941년 일본 국적을 얻었다. 일본명은 히토쓰야나기 메레루(일본어: 一柳米来留)이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뒤 더글라스 맥아더와 고노에 후미마로 사이를 중재하기도 하여, 논픽션 작가 가미사카 후유코는 그를 “천황을 지킨 아메리카인”이라 평했다. 그는 한반도의 근대 건축물의 설계 등에도 관여해 많은 건축물을 설계하였다. 김정동 교수에 따르면 대한민국 영토에서 그가 설계한 건물은 1910~20년대 35건, 1930년대 54건, 1940년대 19건으로 총 108건이고, 그외에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역에는 38건의 건물을 설계하였고, 그 수는 전체 설계된 건물 중 약 10% 정도가 된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그에 의해 건축된 건물 중 주요 건물로는 이화여자대학교의 파이퍼홀 이나 대천 선교사 수양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