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 왕(일본어: 梨本宮守正王 なしもとのみや もりまさおう[*], 1874년(메이지 7년) 3월 9일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 왕(일본어: 梨本宮守正王 なしもとのみや もりまさおう[*], 1874년(메이지 7년) 3월 9일 - 1951년(쇼와 26년) 1월 2일)은 일본 제국의 황족, 육군군인이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로 이왕가의 영친왕에게 시집간 마사코 여왕의 아버지 즉 영친왕의 장인이자, 아키히토 일본 상황(上皇)의 대숙부이다. 구한국의 황손 이진, 이구의 외조부이다. 일본의 패망 이후 일본 황족 중에서는 유일하게 전범으로 기소, 황적이탈되어 궁가의 칭호를 잃어 나시모토 모리마사(梨本守正)로 불리게 된다.
구니노미야 구니요시 왕(일본어: 久邇宮邦彦王, 1873년 7월 23일 ~ 1929년 1월 27일)는 일본 제국의 국구이자…구니노미야 구니요시 왕(일본어: 久邇宮邦彦王, 1873년 7월 23일 ~ 1929년 1월 27일)는 일본 제국의 국구이자 쇼와 시대 초기에 활약한 일본 제국의 황족이자 일본 제국 육군 군인이다. 부인은 시마즈 지카코(島津俔子)이며 옛 사쓰마번주 시마즈 다다요시 공작의 딸이다. 딸은 고준 황후이며 쇼와 천황은 구니요시 왕의 사위이다.
다이쇼 천황(일본어: 大正天皇, 1879년 8월 31일~1926년 12월 25일)은 일본의 제123대 천황이다. 본명은…다이쇼 천황(일본어: 大正天皇, 1879년 8월 31일~1926년 12월 25일)은 일본의 제123대 천황이다. 본명은 요시히토(嘉仁 (よしひと)), 어릴 적 칭호는 하루노미야(明宮 (はるのみや)), 오시루시는 쥬(義 (じゅ))이다. 1879년(메이지 12년) 8월 31일에 메이지 천황의 삼남으로 태어나 유일하게 성년이 된 아들로, 현재의 제126대 천황 나루히토의 증조부에 해당한다. 출생 시부터 병약하여 여러 차례 중병을 앓았다. 어린 시절에는 개인 교습을 받았으나 발달 지연이 있었으며, 가쿠슈인 초등과에 중도 입학한 뒤 중등과 1학년에서 퇴학하였다. 8세에 황태자 책봉 예정자(儲君)에, 11세에 황태자로 정식 책봉되었다. 황태자비 선발 과정에서는 '약혼 해소 사건' 등 혼란을 겪었으나, 이후 구조 사다코(九条節子)와 결혼하여 4명의 황자(황남)를 두었다. 이 중 첫째 황자는 후일의 쇼와 천황이다. 황태자 시절에 오키나와를 제외한 전국의 도도부현을 순회하였고, 1907년(메이지 40년)에는 황태자로서 최초로 해외(대한제국)를 방문하였다. 1912년(메이지 45년/다이쇼 원년) 7월 30일, 메이지 천황의 서거로 제123대 천황으로 즉위하였다. 이는 일본제국 헌법 아래에서 처음 이루어진 황위 계승이었다. 하지만 생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앓은 수막염의 여파로, 즉위 후 건강이 점차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즉위식 이듬해부터는 일상생활과 공무 수행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1920년(다이쇼 9년)부터는 병세가 공표되어 대중에게 알려졌다. 1921년(다이쇼 10년), 장남 히로히토 친왕이 섭정에 임명되었고, 천황은 요양 생활에 들어갔다. 1926년(다이쇼 15년/쇼와 원년) 12월 25일, 폐렴에 따른 심장 마비로 향년 47세에 사망하였다. 그의 죽음은 다이쇼 시대의 종말과 함께 쇼와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다케다노미야 쓰네요시왕(일본어: 竹田宮恒徳王, 1909년 3월 4일 ~ 1992년 5월 11일)은 일본의 방계 황족이다.…다케다노미야 쓰네요시왕(일본어: 竹田宮恒徳王, 1909년 3월 4일 ~ 1992년 5월 11일)은 일본의 방계 황족이다. 일본군 육군 소위인 다케다노미야 쓰네히사 왕과 메이지 천황의 딸인 마사코 내친왕(昌子内親王)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으로, 쇼와 천황의 사촌이다. 일본 육군에 입대하여 관동군 731부대의 마루타 생체실험에 가담하였다. 패전 당시의 직위는 육군 중좌이며 훈등은 대훈위(大勲位)이다. 1947년 신적강하에 의해 방계 황족들의 황족 신분이 박탈되면서 다케다 쓰네요시(일본어: 竹田恒徳)라는 이름으로 평민이 되었다.
미시마 유키오(일본어: 三 (み)島 (しま) 由 (ゆ)紀 (き)夫 (お), 1925년 1월 14일 ~ 1970년 11월…미시마 유키오(일본어: 三 (み)島 (しま) 由 (ゆ)紀 (き)夫 (お), 1925년 1월 14일 ~ 1970년 11월 25일)는 일본의 소설가, 극작가, 수필가, 평론가, 정치활동가이다. 본명은 히라오카 기미타케(일본어: 平 (ひら)岡 (おか) 公 (きみ)威 (たけ)). 전후의 일본문학계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며, 노벨문학상 후보에까지 오르는 등 일본어의 테두리를 넘어 일본국외에 있어서도 폭넓게 받아들여진 작가이다. 《에스콰이어》지의 '세계의 백인'에 처음으로 등재된 일본인으로서 국제방송된 텔레비전 방송에 최초로 출연한 일본인이기도 하다. 만연령과 쇼와의 연수가 일치하여 그 인생의 고비와 활약이 쇼와시대의 일본의 흥폐와 성쇠의 역사적 사건과 맞물려 있는 탓에, '쇼와'와 생애를 같이한, 그 시대가 가진 문제점을 날카롭게 조명한 인물로서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 대표작은 소설에는 《가면의 고백》, 《파도소리》, 《금각사》, 《교코의 집》, 《우국》, 《풍요의 바다》 등, 희곡에는 《근대노가쿠집》, 《로쿠메이칸》, 《사드후작부인》 등이 있다. 풍부한 수사의 현란호화한 시적인 문체, 고전극을 기조로 한 인공성, 구축성 넘치는 유미적 작풍이 특징. 만년에는 정치적인 경향이 강해져 자위대에 체험입대하여 민병조직 '방패회'를 결성. 1970년(쇼와 45년) 11월 25일, 방패회 대원 4명과 더불어 자위대 이치가야 주둔지(현 방위성 본성)을 방문하여 동부방면총감을 감금, 발코니에서 궐기를 촉구하는 연설을 한 후, 할복자살을 행하였다. 이 사건은 사회에 거대한 충격을 주었으며 신우익이 탄생하는 등 국내의 정치운동이며 문학계에 거대한 영향을 주었다(자세히는 미시마 사건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