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코시 쿄타로(일본어: 山越 享太郎 (やまこし きょうたろう), 1991년 3월 18일 ~ )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다.
도치기현: 8명
야마코시 쿄타로(일본어: 山越 享太郎 (やまこし きょうたろう), 1991년 3월 18일 ~ )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다.
에다노 유키오(일본어: 枝野 幸男 えだの ゆきお[*], 1964년 5월 31일~)는 일본의 변호사이자 정치인으로, 현…
에다노 유키오(일본어: 枝野 幸男 えだの ゆきお[*], 1964년 5월 31일~)는 일본의 변호사이자 정치인으로, 현 입헌민주당 소속 중의원 의원이며 대표을 역임했다. 과거엔 간 제2차 개조 내각의 내각관방장관,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오키나와 및 북방 대책 담당, 행정 쇄신 담당), 경제산업대신, 민주당 간사장, 민주당 정책 조사회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모테기 도시미쓰(일본어: 茂木 敏充, 1955년 10월 7일 ~ )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자유민주당 소속의 중의원…
모테기 도시미쓰(일본어: 茂木 敏充, 1955년 10월 7일 ~ )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자유민주당 소속의 중의원 의원(10선)이고 경제산업대신을 재임했으며 제147~149대 외무대신을 역임 그리고 제155대 외무대신이 되었다. 지역구는 중의원 도치기현 제5구이다. 현재 자유민주당 간사장을 맡고 있다. 도치기현 출신으로 도쿄 대학 경제학부 졸업 후 요미우리 신문에 입사하여 정치부 및 경제부 기자로 활동하였다. 그 후 언론계에서 재계로 활동무대를 옮겨서 마루베니 종합상사에서 근무했고 글로벌 컨설팅펌인 맥킨지 & 컴퍼니에서도 근무하였다.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 유학하여 공공정책과정을 수료하였다. 1993년에 정계로 입문하여 제4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일본신당 소속으로 고향인 도치기현에서 처음 당선되었다. 이후 연속으로 일곱 번 당선되었다. 1994년 일본신당 해산 후 신진당 결성에 동참하지 않고 무소속 의원으로 있다가, 1년 후인 1995년에 자유민주당에 입당하였다. 2008년 8월 금융담당대신 겸행정개혁담당 대신. 2012년 12월부터 2014년 9월까지 경제산업대신을 역임하였다. 2019년 9월 11일 제4차 아베 신조 내각 (제2차 개조)에서 제152대 외무대신으로 부임해 2021년 11월 4일까지 스가 요시히데 내각과 기시다 후미오 내각까지 역임했다가 아마리 아키라 간사장이 사임을 하면서 자유민주당 간사장이 되었다.
사토 쓰토무(일본어: 佐藤 勉 사토 츠토무[*], 1952년 6월 20일 ~)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자민당 소속 중의원…
사토 쓰토무(일본어: 佐藤 勉 사토 츠토무[*], 1952년 6월 20일 ~)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자민당 소속 중의원 의원이다. 도치기현의회 의원,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오키나와 및 북방 대책·방재 담당), 총무대신,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지방 분권 개혁 담당) 을 지냈다.
후지오 마사유키(일본어: 藤尾 正行 (ふじお まさゆき), 1917년 1월 1일~2006년 10월 22일)는 11선 중의원…
후지오 마사유키(일본어: 藤尾 正行 (ふじお まさゆき), 1917년 1월 1일~2006년 10월 22일)는 11선 중의원 의원을 지낸 일본의 정치인이다.
유자와 미치오(일본어: 湯沢 三千男, ゆざわ みちお, 1888년 5월 20일 ~ 1963년 2월 21일)는 일본의 내무…
유자와 미치오(일본어: 湯沢 三千男, ゆざわ みちお, 1888년 5월 20일 ~ 1963년 2월 21일)는 일본의 내무 관료이자 정치인이다. 미야기, 히로시마, 효고 현 지사, 도조 내각의 내무대신, 자유민주당 소속 참의원을 지냈다. 유자와는 1888년, 도치기현에서 태어나, 1912년 도쿄 제국대학을 졸업하였다. 졸업 후, 내무성에 들어갔으며, 1929년에 미야기현 지사, 1931년에 토목국장, 히로시마현 지사, 1935년에 효고현 지사가 되었으며, 1936년, 우시오 시게노스케 (潮恵之輔) 내무대신 아래에서 내무차관을 맡았다. 히로타 내각이 무너진 후 물러나, 1938년에 중화민국 임시 정부 고문으로 중국에 건너가, 그곳에서 북지나방면군 (北支那方面軍)의 참모장인 무토 아키라와 친해졌다. 무토와의 인연으로 육군과 가까워진 그는, 1940년에 대일본산업보국회 (大日本産業報国会)의 이사장이 되었다. 1941년 도조 내각이 성립되고, 도조 히데키 수상이 개전파에 의한 쿠데타 방지를 이유로 내무 대신을 겸임하자, 그는 도조의 보좌를 위해 내무차관에 추천되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여 총선거는 정세를 이유로 연기되었으나, 초반 승리에 열광하는 국민 감정을 이용해 국회를 독점하고자 한 도조 히데키는, 후에 익찬선거 (翼賛選挙)의 준비를 위해 1942년 2월, 유자와에게 내무대신의 지위를 양보하였다. 내무대신이 된 유자와는, 익찬의원동맹 (翼賛議員同盟)의 실력자 야마자키 다쓰노스케 (山崎達之輔)의 동생으로, 내무성의 요직을 지낸 야마자키 이와오 (山崎巌)를 내무차관으로 삼아, 구 (舊) 기성 정당 관계자와 제휴를 도모하였다. 1943년, 지방자치 개정 법안을 둘러싼 문제로 내무대신에서 경질되었고, 직후 귀족원 의원을 지내고, 종전을 맞이하였다. 전후에는 공직에서 추방되었으나, 추방 해제 후에 중앙사회보험의료 협의회 회장, 시읍면 건설 촉진 중앙 심의회 회장, 메이지 신궁 대표 등을 지냈고, 1959년 제5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 자유민주당 공인 후보로서, 도치기현 선거구에 입후보해 당선되었다. 1963년, 사망하였다.
고이소 구니아키(일본어: 小磯 國昭, 1880년 3월 22일 ~ 1950년 11월 3일)는 일본의 육군 군인, 정치인이다.…
고이소 구니아키(일본어: 小磯 國昭, 1880년 3월 22일 ~ 1950년 11월 3일)는 일본의 육군 군인, 정치인이다. 최종 계급은 육군 대장. 제41대 일본 내각총리대신을 지냈다.
다나카 쇼조(田中正造, たなか しょうぞう, 1841년 11월 3일 ~ 1913년 9월 4일)은 메이지 시대의 정치인이다.…
다나카 쇼조(田中正造, たなか しょうぞう, 1841년 11월 3일 ~ 1913년 9월 4일)은 메이지 시대의 정치인이다. 일본 최초의 공해사건인 아시오 광독 사건을 사회문제화 하여 메이지 천황에게 고하려 시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