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사카베 시로타(일본어: 日 (くさ)下 (か)部 (べ) 四 (し)郎 (ろう)太 (た), 1875년 5월 5일 ~ 1924년…
구사카베 시로타(일본어: 日 (くさ)下 (か)部 (べ) 四 (し)郎 (ろう)太 (た), 1875년 5월 5일 ~ 1924년 7월 3일)는 일본의 지구물리학자로, 암석의 탄성과 지진을 연구하였다.
돼지: 917명
구사카베 시로타(일본어: 日 (くさ)下 (か)部 (べ) 四 (し)郎 (ろう)太 (た), 1875년 5월 5일 ~ 1924년…
구사카베 시로타(일본어: 日 (くさ)下 (か)部 (べ) 四 (し)郎 (ろう)太 (た), 1875년 5월 5일 ~ 1924년 7월 3일)는 일본의 지구물리학자로, 암석의 탄성과 지진을 연구하였다.
다카기 데이지(일본어: 高 (たか)木 (ぎ) 貞 (てい)治 (じ), 1875년 4월 21일 ~ 1960년 2월 28일)는…
다카기 데이지(일본어: 高 (たか)木 (ぎ) 貞 (てい)治 (じ), 1875년 4월 21일 ~ 1960년 2월 28일)는 일본의 수학자로, 유체론 확립에 기여하였다.
오다 미키지로(일본어: 小田幹治郎, 1875년 ~ 1929년)는 일본의 법조인, 조선총독부 관료이다. 효고현 출신이다.…
오다 미키지로(일본어: 小田幹治郎, 1875년 ~ 1929년)는 일본의 법조인, 조선총독부 관료이다. 효고현 출신이다. 법조인 출신이면서 조선어 사전과 유적 조사, 구관(舊慣) 조사 등에 관여하며 문화적 방면에 조예가 있었다.
오구라 마사쓰네(小倉 正恒, おぐら まさつね, 1875년 3월 22일 ~ 1961년 11월 20일)는 일본의 기업인이자…
오구라 마사쓰네(小倉 正恒, おぐら まさつね, 1875년 3월 22일 ~ 1961년 11월 20일)는 일본의 기업인이자 정치인으로, 제2차 고노에 내각의 국무대신, 제3차 고노에 내각의 대장대신을 지냈다. 일본의 자이바쓰 (재벌) 스미토모 자이바쓰의 총 이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우에다 겐키치(일본어: 植田 謙吉 우에다 켄키치[*], 1875년 3월 8일 ~ 1962년 9월 11일)는 일본 제국 육군의…
우에다 겐키치(일본어: 植田 謙吉 우에다 켄키치[*], 1875년 3월 8일 ~ 1962년 9월 11일)는 일본 제국 육군의 군인으로, 할힌골 전투(노몬한 사건) 발발 당시에 관동군의 사령관이었다.
선쥔루(중국어: 沈鈞儒, 병음: shěn jūn rú, 1875년 1월 2일 ~ 1963년 6월 11일)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선쥔루(중국어: 沈鈞儒, 병음: shěn jūn rú, 1875년 1월 2일 ~ 1963년 6월 11일)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다. 청나라,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 세 시기에 걸쳐 관직을 역임하였다. 저장성 가흥(浙江省 嘉興) 출신으로 자는 병보(秉甫), 호는 형산(衡山)이다.
시라니 다케시(일본어: 白仁 武 시라니 타케시[*], 1863년 12월 1일 ~ 1941년 4월 20일)는 일본 제국의…
시라니 다케시(일본어: 白仁 武 시라니 타케시[*], 1863년 12월 1일 ~ 1941년 4월 20일)는 일본 제국의 관료, 기업인이다. 도치기현지사, 야하타 제철소 장관, 일본우선(郵船) 사장, 내무관료 등을 지냈다. 후쿠오카에서 학교를 다니다 1890년 7월 도쿄 제국대학 법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같은해 7월부터 내무성 회계국에서 일했다. 같은해 11월 현치국근무관을 맡았으며, 그 뒤로 내무성 참사관, 홋카이도 도청 참사관, 내무부 군치과장, 내무부 지리과장, 문부서기관, 척식무서기관, 내무사무관, 내무서기관, 대신관방 홋카이도 과장, 내무성 신사국장 겸 총무부 홋카이도 과장 등을 지냈다. 1904년 1월 도치기 현지사로 임명되었으며, 1906년 8월 문부성 보통학무국장으로 옮겨갔다. 이후 간토 도독부 민정장관, 내각 척식국 장관, 1922년부터 1924년까지는 야하타 제철소 장관 등을 맡았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일본우선의 사장이 되었으며, 1929년까지 사장 자리를 맡았다.
야마시타 겐타로(山下源太郎)는 일본 제국의 해군군인이다. 최종 계급은 제독 정2위 훈1등 공3급 남작. 러일전쟁 당시 군령부…
야마시타 겐타로(山下源太郎)는 일본 제국의 해군군인이다. 최종 계급은 제독 정2위 훈1등 공3급 남작. 러일전쟁 당시 군령부 작전반장(후에 작전부장), 연합함대사령장관, 군령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요네자와번 출신으로 1879년 해군병학교에 입학하였다. 이후 여러 전공을 세우다가 말년 1928년 7월 1일 예비역 해군 대장으로 예편하여 쇼와 천황은 그에게 남작위를 수여하였다. 3년 뒤인 1931년 사망하여 데릴사위 야마시타 도모히코가 그의 뒤를 이어 남작위를 습작하였다.
야마기와 가쓰사부로(일본어: 山 (やま)極 (ぎわ) 勝 (かつ)三 (さぶ)郎 (ろう), 분큐 3년 2월 23일(1863년…
야마기와 가쓰사부로(일본어: 山 (やま)極 (ぎわ) 勝 (かつ)三 (さぶ)郎 (ろう), 분큐 3년 2월 23일(1863년 4월 10일) ~ 1930년 3월 2일)는 일본의 병리학자이다. 암의 원인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를 수행한 병리학자로 화학적 발암을 최초로 입증한 사람이다.
도쿠토미 소호(일본어: 徳富 蘇峰 (とくとみ そほう), 일본어 발음: [to.kɯ̥.toꜜ.mʲi soꜜ.hoː]…
도쿠토미 소호(일본어: 徳富 蘇峰 (とくとみ そほう), 일본어 발음: [to.kɯ̥.toꜜ.mʲi soꜜ.hoː], 1863년 3월 14일~1957년 11월 2일)는 일본의 사상가, 수필가, 평론가이며 평민적 구화주의를 제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판사 민유사를 설립했으며, 잡지 국민의 벗과 신문 국민신문을 창간했다. 그는 소설가인 도쿠토미 겐지로의 형으로도 알려졌다.
사카타니 요시로(일본어: 阪谷芳郎, 1863년 3월 5일(분큐 3년 1월 16일) ~ 1941년(쇼와 16년) 11월…
사카타니 요시로(일본어: 阪谷芳郎, 1863년 3월 5일(분큐 3년 1월 16일) ~ 1941년(쇼와 16년) 11월 14일)는 일본 제국의 관료이자 정치가이다. 오카야마현 비세이 쵸(美星町, 현재 이바라시) 출신으로 대장대신, 도쿄시장, 귀족원의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법학박사이고 자작이다. 증손인 구미코(久美子)는 전 내각총리대신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의 부인이다.
오카쿠라 덴신(일본어: 岡倉 天心 오카쿠라 텐신[*], 1863년 2월 14일 ~ 1913년 9월 2일)은 일본 메이지…
오카쿠라 덴신(일본어: 岡倉 天心 오카쿠라 텐신[*], 1863년 2월 14일 ~ 1913년 9월 2일)은 일본 메이지 시대에 활약한 우익 사상가, 문인, 철학자이다. 미학과 관련된 글을 여러개 썼으며, 미술사, 미술 평론, 미술가 양성 활동도 했다. 본명은 가쿠조 (覚三 (かくぞう) 카쿠조[*])이다. 한국에서는 '조선은 원래 일본의 영토'라는 주장으로 악명 높은 정한론자들중 한명이기도 하다.
히라오카 고타로(일본어: 平岡浩太郎, 1851년 7월 21일 ~ 1906년 10월 24일)는 일본의 자유민권운동가로, 일본의…
히라오카 고타로(일본어: 平岡浩太郎, 1851년 7월 21일 ~ 1906년 10월 24일)는 일본의 자유민권운동가로, 일본의 정치단체 겐요샤의 초대 회장이다.
오카자키 세이조(일본어: 岡崎生三, 1851년 2월 3일(가에이 4년 1월 3일) ~ 1910년(메이지 43년) 7월…
오카자키 세이조(일본어: 岡崎生三, 1851년 2월 3일(가에이 4년 1월 3일) ~ 1910년(메이지 43년) 7월 27일)는 일본 제국의 군인이다. 최종 계급은 육군 중장이며 작위는 남작이다.
가가와 게이조(일본어: 香川敬三, 1841년 12월 27일(덴포 12년 11월 15일) ~ 1915년(다이쇼 4년) 3월…
가가와 게이조(일본어: 香川敬三, 1841년 12월 27일(덴포 12년 11월 15일) ~ 1915년(다이쇼 4년) 3월 18일)은 미토번 출신의 근황지사이다. 도산도군총독부대군감, 황후궁대부, 황태후궁대부, 추밀원문관 등을 역임하였다. 작위 제도가 시행되면서 자작을 수여받았으며 이후에 백작이 되었다.
야마구치 마스카/나오요시(일본어: 山口 尚芳, 1839년 음력 5월 11일 ~ 1894년 6월 12일)는 사가 번사, 일본…
야마구치 마스카/나오요시(일본어: 山口 尚芳, 1839년 음력 5월 11일 ~ 1894년 6월 12일)는 사가 번사, 일본 제국의 관료, 정치인이다. 통칭은 한조(範蔵 (はんぞう)).
오구리 다다마사(일본어: 小栗 (おぐり) 忠順 (ただまさ), 분세이 10년 6월 23일 ~ 게이오 4년 윤4월 6일)는…
오구리 다다마사(일본어: 小栗 (おぐり) 忠順 (ただまさ), 분세이 10년 6월 23일 ~ 게이오 4년 윤4월 6일)는 막말의 무사, 막신이다. 미카와 오구리씨 제12대 당주로서 별명은 마타이치(又一). 안세이 6년(1859년) 종5위하 분고노카미에 서임되었다. 분큐 3년(1863년) 고즈케노스케로 이임했다. 감정봉행, 에도 정봉행, 외국봉행을 역임했다. 안세이 7년(1860년) 미일수호통상조약 비준을 위해 미해군함 USS 포우하탄을 타고 도미, 세계를 일주하고 귀국했다. 이후 여러 봉행직을 맡아 막부의 재정 재건과 서양식 군대 정비, 요코스카 제철소 건립 등을 실시했다. 게이오 4년(1868년) 보신 전쟁 때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공순과 에도성 개성에 반대하여 삿초 웅번에 대한 주전론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파면당했다. 영지인 고즈케국 군마군 곤다촌(현 군마현 다카사키시 구라부치촌)에 은거했다. 동년 윤 4월 삿초군의 추토령과 무장해제에 응하여 양자를 증인으로 보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체포되어 다음날 냉큼 참수되었다. 체포 사유로는 대포 2문・소총 20정을 소지해 농병을 훈련시켰기 때문이라는 설과, 감정봉행 시절 도쿠가와 가문의 거금을 은닉했다는 설(도쿠가와 매장금설) 등이 있지만, 어느 설도 오늘날까지 물증은 없다. 후세에 메이지 정부 중심의 역사관이 희미해지면서 평가가 재검토되기 시작했고, 오쿠마 시게노부와 도고 헤이하치로에게 막부측의 근대화 정책 시행자로 평가받았다. 시바 료타로는 오구리를 “메이지의 아버지”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