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張德秀, 1894년 12월 10일 ~ 1947년 12월 2일)는 일제강점기의 정치인, 언론인, 교수이다. 독립운동가…장덕수(張德秀, 1894년 12월 10일 ~ 1947년 12월 2일)는 일제강점기의 정치인, 언론인, 교수이다. 독립운동가 겸 언론인 장덕준의 동생이자 독립운동가 장덕진의 형이다. 본관은 결성(結城), 호는 설산(雪山)이다. 1916년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학사학위 취득 후 일시 귀국했다가 상하이로 건너가 신한청년당과 상하이 임시 정부에 가담했다. 다시 귀국했다가 조선총독부에 의해 체포되어 전라남도 하의도에 유배되었지만 여운형의 도움으로 탈출하였다. 1923년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하고 부사장을 역임하였다. 사회주의 운동과 계몽운동을 하다가 '공산주의 선전비의 남비(濫費) 사건' 이후 유학길에 올라 영국과 미국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1936년 귀국하여 보성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1936년 일장기 말소 사건에 따른 동아일보 정간사태와 1938년 흥업구락부 사건 전후로 친일파로 변절,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국민총력조선연맹, 대화숙(야마토주쿠) 등 일제 어용단체에 참여해 이들 단체에서 주관하는 시국 강연에 적극 나서거나, 내선일체를 찬양하는 수많은 글을 기고하거나 발표하는 등 적극적인 친일 활동에 참여했다. 사후, 여러 사회단체에서 정리한 주요 친일파 목록에 등재되었다. 1945년 광복 후에는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한국민주당 외무부장과 정치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신탁통치 문제에 대해서는 '찬성 후 반대'라는 입장을 내서 이승만, 김구와 갈등을 빚었지만, 이승만의 남한 단독 정부 수립론은 초지일관으로 지지하였다. 1947년 12월 2일 저녁 6시 50분경 동대문구 제기동 자택에서 한국독립당 소속 박광옥, 배희범의 총에 맞고 절명하였다. 이들은 장덕수가 젊어선 공산당, 나중엔 친일파, 게다가 찬탁론자라는 이유로 암살했다고 밝혔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일본어: 松下幸之助, 1894년 11월 27일 ~ 1989년 4월 27일)는 일본의 사업가로 현재의…마쓰시타 고노스케(일본어: 松下幸之助, 1894년 11월 27일 ~ 1989년 4월 27일)는 일본의 사업가로 현재의 파나소닉을 세운 인물이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전기산업 발전에 공헌하였으며, '경영의 신(神)'으로 불리기도 한다. 종교는 장로교이다.
서춘(徐椿, 일본식 이름: 大川慈種오카와 지슈, 大川豊注오카와 호추, 1894년 11월 24일 ~ 1944년 4월 5일)은…서춘(徐椿, 일본식 이름: 大川慈種오카와 지슈, 大川豊注오카와 호추, 1894년 11월 24일 ~ 1944년 4월 5일)은 한국의 언론인이다. 2·8 독립선언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였지만 나중에 친일 언론인으로 변절했으며 호는 오봉(五峰)이다.
나카야마 스케치카(일본어: 中山輔親, 1894년 11월 13일 ~ 1980년 4월 23일)는 일본의 옛 화족이자…나카야마 스케치카(일본어: 中山輔親, 1894년 11월 13일 ~ 1980년 4월 23일)는 일본의 옛 화족이자, 정치인이다. 귀족원 후작 의원으로 재직했다.
에도가와 란포(일본어: 江戸川 乱歩, えどがわ らんぽ, 1894년 10월 21일 ~ 1965년 7월 28일)는 일본의…에도가와 란포(일본어: 江戸川 乱歩, えどがわ らんぽ, 1894년 10월 21일 ~ 1965년 7월 28일)는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이자 평론가이다. 본명은 히라이 다로(일본어: 平井太郎 ひらい たろう)로, 필명인 에도가와는 미국의 문호인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1923년 잡지 신청년에 단편 <2전짜리 동전>으로 데뷔했으며 명탐정 아케치 고고로, 괴도 20면상 등의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일본탐정작가클럽(이후 일본추리작가협회)을 창설해 초대이사장을 지냈다. 추리 작가의 등용문으로 자신의 이름을 붙인 에도가와 란포 상을 만드는 등 미스터리의 발전과 대중화에 힘써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불린다. 《명탐정 코난》에서도 코난이 단골서점에서 《괴도 20면상》을 사오는 장면이 있고, 테이탄 초등학교(청솔초등학교)의 담임교사도 에도가와 란포를 좋아하는 추리문학 팬이다.
김경배(金庚培, 1894년 10월 5일/1895년 연안군 - 1965년 4월 17일)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김경배(金庚培, 1894년 10월 5일/1895년 연안군 - 1965년 4월 17일)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평양대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 구택대학 전문부 정치과를 수료하였다. 삼일운동으로 투옥된 경력도 있으며 의성단 부단장을 역임하였다. 연안면장과 연백군수, 연백수리조합장을 역임하였다. 초대, 제2대 국회의원이었다. 초대 국회의원 재임시, 국회 내의 반민특위 조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야마자키 이와오(일본어: 山崎 巌, やまざき いわお, 1894년 9월 16일 ~ 1968년 6월 26일)는 일본의 내무…야마자키 이와오(일본어: 山崎 巌, やまざき いわお, 1894년 9월 16일 ~ 1968년 6월 26일)는 일본의 내무 관료이자 정치인으로, 내무대신, 자치대신 (自治大臣) 을 지냈다. 형은 농림대신, 체신대신을 지낸 중의원 의원 야마자키 다쓰노스케(山崎達之輔, 1880 ~1948)이며, 조카는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중의원 의원을 지낸 야마자키 헤이하치로(山崎平八郎, 1911 ~ 1989)이다.
이시다 센타로 (일본어: 石田 千太郎, 1894년 8월 5일 ~ 몰년 미상)는 일본의 체신 관료이자 정치인이다. 조선총독부…이시다 센타로 (일본어: 石田 千太郎, 1894년 8월 5일 ~ 몰년 미상)는 일본의 체신 관료이자 정치인이다. 조선총독부 체신국장, 아이치현 의회 의원 (5선), 조선석탄 주식회사 사장 등을 역임했다.
기타노 마사지(일본어: 北野 政次, 1894년 7월 14일 ~ 1986년 5월 17일) 은 일본제국 육군의 군인이다.…기타노 마사지(일본어: 北野 政次, 1894년 7월 14일 ~ 1986년 5월 17일) 은 일본제국 육군의 군인이다. 군의관으로서 육군 중장이며, 의학박사이다. 인체에 대한 생체실험으로 악명높았던 731부대에서 근무하였다. 당시 만주에서 유행한 유행성출혈열에 대해 연구했는데 유행성균을 원숭이에게 주입해 결과를 알아보는 논문을 남겼다. 다른 관련자와 마찬가지로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일본에 돌아왔다.
후쿠모토 가즈오(일본어: 福本 和夫 (ふくもと かずお): 1894년 7월 4일 - 1983년 11월 16일)는 일본의…후쿠모토 가즈오(일본어: 福本 和夫 (ふくもと かずお): 1894년 7월 4일 - 1983년 11월 16일)는 일본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경제학자・과학기술사학자・사상사학자・문화사학자다. 제2차 일본공산당의 이론적 지도자로, 1920년대 일본공산당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장남이 후쿠모토 쿠니오. 돗토리현 쿠메군 시모호쿠죠촌(지금의 토하쿠군 호쿠에이정)에서 후쿠모토 노부조(福本 信蔵)의 3남으로 태어났다. 구제 쿠라요시중학교, 구제 제1고등학교를 거쳐 1920년 동경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이후 마츠에고등학교(현재의 시마네대학) 교수로 취임. 1922년 문부성 재외연구원으로서 영국・독일・프랑스를 2년 반 유학했다. 유학지인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 사회연구소에서 헝가리 철학자 루카치 죄르지와 독일 사상가 카를 코르슈의 지도하에 마르크스주의를 배웠다. 당시 일본공산당원 대부분은 마르크스 등 사상가들의 저술의 번역본을 읽고 논의한 반면, 동경제대를 졸업하고 3개국 유학 경험이 있던 후쿠모토는 각국 언어 원문으로 글을 이해하고 읽었다고 한다. 1924년 귀국해 야마구치고등상업학교(현재의 야마구치대학) 교수로 전임한다. 귀국 직후 『마르크스주의』지에 게재한 논문 「경제학 비판 가운데에 있어서의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범위를 논함」에서 후쿠다 도쿠조・카와카미 하지메・타카하타 모토유키 등 선행 자본론 연구자들을 비판해서 일약 주목을 받았다. 그 뒤, 야마구치고상을 사직하고 상경, 당시 탄압으로 인해 해산되었던 일본공산당의 재건을 도모하였고, 1925년 사노 마나부가 결성한 공산당 재건뷰로에 참여했다. 후쿠모토는 당시 사회주의 운동에서 큰 영향력을 가졌던 야마카와 히토시의 논문 「무산계급운동의 방향전환」(1922년)을 『마르크스주의』 1926년 2・5월호에 발표한 「야마카와씨의 방향전환론의 전환보다 시작을 해야 한다」에서 비판했다. 이어서 발표한 논문 「방향전환은 어떠한 제과정을 취할까」, 「경제학 비판에 있어서 마르크스 자본론의 범위를 논함」 등에서는 마르크스의 유물변증법적 방법으로 자본주의 사회현실의 운동법칙을 밝히고 “분리・결합론”을 전개했다. 『마르크스주의』 1925년 2월호에 발표한 「유물사관의 구성과정」에서는 카와카미 하지메의 유물사관 연구방법론을 공격했다. 후쿠모토는 야마카와주의를 경제운동과 정치운동의 차이를 명확히 하지 않은 “절충주의”이자 “조합주의”라고 비판하고, 운동을 정치투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이론투쟁을 통해 노동자 외부에서 마르크스주의적 의식을 주입하는 첨예한 전위당에 의한 이론투쟁과 정치투쟁이 필요함을 설했다. 1926년 2월 12일 『사회의 구성: 나란한 변화의 과정』, 1926년 3월 22일 『유물사관과 중간파사관』, 1926년 5월 27일 『경제학 비판의 방법론』, 1926년 11월 20일 『이론투쟁』이 연달아 간행되고, 이 무렵 후쿠모토주의가 일본 좌파 사상계를 풍미했다. 1926년 12월, 고시키온천에서 극비리에 개최된 일본공산당 제3회 대회에서 당의 재건이 결의되자 입당하여 제2차 일본공산당 상임위원・당정치부장에 취입하고, 이론적 지도자로서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코민테른에서 발령한 27년 테제에서 후쿠모토주의가 비판받자 냉큼 실각당하여 당내 영향력을 상실했다. 1928년 6월 3・15 사건에 연루되어 검거되었고, 이후 1942년까지 14년간 옥살이를 했다. 석방된 뒤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문화사에 대한 관심으로 야나기타 쿠니오와 서신을 왕래했다. 아들 후쿠모토 쿠니오(당시 17세)를 보내 책을 빌려가기도 했다고 야나기타의 일기에도 기재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요양하다가 1950년 당활동에 복귀했다. 같은 해 실시된 제2회 참원선에서 돗토리현 선거구에 일본공산당 공천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후쿠모토는 2만 6508표를 득표했고, 당선자 나카타 요시오(일본사회당)는 13만 1376표, 차점 낙선자 토쿠야마 지츠조는 9만 5731표였다. 1951년 9월 미군정 점령정책을 위반했다고 체포되었으나 불기소 처분되었다. 코민포름의 일본공산당 비판에서 비롯된 50년 문제에서는 통일협의회를 조직해 당의 재건을 주장했다. 육전협 이후 당중앙과의 대립이 심화되어 1958년경 당에서 제명된 것으로 여겨지며, 이후로는 독립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입장을 취했다. 다만 후쿠모토가 정말 제명되었는지 여부는 현재까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 공산당에서 쫓겨난 뒤로는 농업문제, 과학기술사 연구에 전념했다. 후쿠모토는 근세 포경기술 등을 연구하여 일본 르네상스론을 구축하려 한 독특한 과학기술사학자로 알려져 있다. 또한 옥중에서부터 우키요에와 프랑스 인상파의 영향관계의 연구자로서의 개척자가 되어 『호쿠사이와 인상파・입체파 사람들』(1955년) 등을 출판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문화대혁명을 일정 유보하면서도 지지했다. 1983년 사망. 향년 89세. 혁마르파의 코부시서방에서 저작집이 간행되었고, 2011년 5월 완결기념모임이 개최되었다.
김도연(金度演, 1894년 6월 16일 ~ 1967년 7월 19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이다. 1919년 2·8…김도연(金度演, 1894년 6월 16일 ~ 1967년 7월 19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이다. 1919년 2·8 독립선언 당시 11명의 대표 중 한 사람이다. 유학 후 교육자로 활동하였다. 광복 직후 한민당 창설에 참여하였고,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제1대 재무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48년 5월 제헌국회의 입법선거 때에는 서대문구에 한민당원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어 재경분과 위원장에 피선되었으며 이후 제헌(서대문, 한국민주당), 제3대(서대문갑, 민주국민당), 제4대(서대문갑, 민주당), 제5대(서대문갑, 민주당), 제6대(전국, 자유민주당), 제7대(전국, 신민당)국회의원을 지냈다. 이후 민주당 창설에 참여하여 민주당 구파의 리더로 활약하였다. 제2공화국 당시 국무총리에 두 번 지명되었으나 인준부결되었고, 군사 정권에서는 야당 정치인으로 활약하였다. 제1공화국 당시 한민당 출신 유일한 초대 내각 입각자이기도 하다. 본관은 영천(永川)이고 호는 상산(常山)이다. 경기도 김포 출신이다.
아베 간(일본어: 安 (あ)倍 (べ) 寛 (かん), 1894년 4월 29일 ~ 1946년 1월 30일)은 일본의 정치인이다.…아베 간(일본어: 安 (あ)倍 (べ) 寛 (かん), 1894년 4월 29일 ~ 1946년 1월 30일)은 일본의 정치인이다. 중의원을 2선 역임했다. 소속 정당은 일본진보당. 외무대신을 역임한 정치가 아베 신타로의 부친이며,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의 친조부가 된다.
고타키 모토이(일본어: 上滝 基, 1894년 ~ ?)는 일본의 조선총독부 관료이다. 후쿠오카현 출신이다. 1917년 고등시험…고타키 모토이(일본어: 上滝 基, 1894년 ~ ?)는 일본의 조선총독부 관료이다. 후쿠오카현 출신이다. 1917년 고등시험 행정과에 합격하고, 이듬해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 프랑스법과를 졸업하여 바로 조선총독부 시보(試補)가 되었다. 1919년 도 사무관으로 승진하여, 총독부 임야조사위원회 사무관 겸 총독부 사무관, 식산국 사무관, 전매국 서무과장, 전매국 제조과장, 전매국 사업과장 등을 역임하였다. 1931년, 총독부 사무관 겸 중추원 서기관, 총독관방 인사과장에 임명되었다. 1933년부터 1936년까지 조선사 편수회 간사를 겸직하였고, 1936년 9월부터 1941년 1월까지 경상북도 지사로 재직하였다. 말년에는 조선총독부 인사와 관련된 기록들을 남겼다.
하야마 요시키(葉山嘉樹, 1894년 3월 12일 ∼ 1945년 10월 18일)는 일본 후쿠오카 현 출신 프롤레타리아…하야마 요시키(葉山嘉樹, 1894년 3월 12일 ∼ 1945년 10월 18일)는 일본 후쿠오카 현 출신 프롤레타리아 작가이다. 와세다대학에 진학하지만 학비 미납으로 제적당했다. 외항 선원으로서 홋카이도와 인도 콜카타를 왕래하는 화물선에서 근무한 경험을 훗날 작품으로 발표하기도 하고, 1920년에는 나고야 시멘트 공장에 근무하면서 노동조합 결성을 시도하다가 해고당하기도 한다. 그 후 나고야 노동자 협회에 가입해 각종 노동 쟁의를 지도하고, 1923년에 나고야 공산당 사건으로 검거된 후 미결수로 투옥되어, 옥중에서 창작 활동에 열중하는 한편 관동 대지진을 경험하기도 한다. 1925년 출옥 후 그의 대표작이자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매춘부>, <바다에 사는 사람들>, <시멘트 통 속의 편지>를 발표해 신진 작가로서 최고의 명성을 얻게 된다. 다소 도식적이고 관념적이던 기존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비해 하야마는 그의 작품에서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꾸밈없이 그려 내어 문학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한 단계 높였다. 그러나 1934년 무렵, 특별 고등 경찰에 의한 사상 통제가 강화되고 일본의 국론이 중국 대륙 진출로 통일되자 하야마는 전향해 당시의 체제에 대한 지지 입장을 강화하게 된다. 1945년 만주로 이주하기 위해 건너갔던 그는 소련군의 만주 점령과 일본의 패전으로 인해 귀국하던 도중, 그해 10월 열차 내에서 뇌일혈로 사망했다.
아베 겐키(일본어: 安倍源基, 1894년 2월 14일 ~ 1989년 10월 6일)는 일본 제국의 내무관료, 전후 일본의…아베 겐키(일본어: 安倍源基, 1894년 2월 14일 ~ 1989년 10월 6일)는 일본 제국의 내무관료, 전후 일본의 변호사이다. 경시청 특별고등경찰부장, 경시총감, 내무대신을 지냈다. 아베는 1894년,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나, 1920년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내무성에 들어갔다. 1932년, 경시청에서 초대 특별고등경찰부장이 되었으며,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을 엄격히 다스려 잡아들였기 때문에 "빨갱이 잡는 아베"라는 이름으로 위세를 떨쳤다. 1936년 2·26 사건 당시에는 특별고등경찰 부장으로, 계엄 회의의 구성원이었다. 그 후, 내무성 보안 과장, 내무성 경보국장, 내무성 경시총감을 지냈다. 1941년, 기획원 차장이 되었고,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5년, 스즈키 간타로 내각에서 내무대신 및 기획원 총재가 되었다. 그는 도요다 소에무 등과 함께 포츠담 선언 수락에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A급 전범 용의자 가운데 한 명으로 기소되었지만,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7명의 처형이 끝나고, 점령 정책의 전환으로 불기소가 되어 석방되었다. 석방된 후에는 기시 노부스케, 기무라 도쿠타로 (木村篤太郎) 등과 함께 신일본 협의회를 결성하고 대표 이사가 되었다. 후에 전국경우회 연합회 회장, 도쿄 도 경우회 회장을 역임하고, 종3위훈1등(従三位勲一等) 을 받았다. 1956년, 제4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 자유민주당 공인으로 야마구치 지방구에 입후보했으나 낙선하였다. 1989년에 사망하였다.
성원경(成元慶, 1894년 2월 14일 ~ 1975년 7월 30일)은 한국의 기업인 겸 정치인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성원경(成元慶, 1894년 2월 14일 ~ 1975년 7월 30일)은 한국의 기업인 겸 정치인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대한민국에서는 민의원의원을 지냈다.
백남운(白南雲, 1894년 2월 11일 ~ 1979년 6월 12일)은 일제강점기의 경제학자 겸 교육자이자…백남운(白南雲, 1894년 2월 11일 ~ 1979년 6월 12일)은 일제강점기의 경제학자 겸 교육자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제학자 겸 정치인이다. 연희전문학교의 경제학 교수와 조선공산당의 경제이론가였고, 이순탁과 함께 일제 강점기 당시 사회주의 경제학자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광복 후에는 일부 자산계급과 연대를 전제로 '조선 민족의 진로'라는 글에서 '연합성 신민주주의(민족 통일전선)'를 제창하였다. 해방 후 김두봉, 허정숙, 최창익 등과 연결, 남조선신민당과 민족주의민주전선에서 활동하다가 1948년 4월의 남북 협상차 김구, 김규식, 장건상 등과 함께 월북한 후 내려오지 않았다.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초대 문교상과 이후 최고인민회의 의장 등을 지냈다.
미노다 무네키(일본어: 蓑田 (みのだ) 胸喜 (むねき): 메이지 27년[1894년] 1월 26일 - 쇼와 21년[1946년]…미노다 무네키(일본어: 蓑田 (みのだ) 胸喜 (むねき): 메이지 27년[1894년] 1월 26일 - 쇼와 21년[1946년] 1월 30일)는 일본의 국수주의, 반공주의 사상가다. 구마모토현 출신, 동경제국대학 문과대학 종교학과 졸업. 게이오기주쿠대학 예과 교수, 국사관전문학교 교수, 원리일본사 주재(主宰), 국제반공연맹 평의원을 역임했다.
지바 사부로(일본어: 千葉 三郎 (ちば さぶろう), 1894년 1월 25일~1979년 11월 29일)는 12선 중의원 의원을…지바 사부로(일본어: 千葉 三郎 (ちば さぶろう), 1894년 1월 25일~1979년 11월 29일)는 12선 중의원 의원을 지낸 일본의 정치인이다.
다카기 마사나리(高木正得, 1894년 1월 20일~?)는 일본 제국의 곤충학자, 귀족원의원이다. 작위는 자작. 선대 자작…다카기 마사나리(高木正得, 1894년 1월 20일~?)는 일본 제국의 곤충학자, 귀족원의원이다. 작위는 자작. 선대 자작 다카기 마사요시의 아들이자 다카히토 친왕비 유리코의 아버지이다.
니시와키 준자부로(일본어: 西 (にし)脇 (わき) 順 (じゅん)三 (ざ)郎 (ろう), 1894년 1월 20일 ~ 1982년…니시와키 준자부로(일본어: 西 (にし)脇 (わき) 順 (じゅん)三 (ざ)郎 (ろう), 1894년 1월 20일 ~ 1982년 6월 5일)는 일본의 시인이자 영문학자로, 일본의 모더니즘 문학을 주도하였다.
전영택(田榮澤, 1894년 1월 18일~1968년 1월 16일)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소설가 겸 수필 작가이자…전영택(田榮澤, 1894년 1월 18일~1968년 1월 16일)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소설가 겸 수필 작가이자 프로테스탄트 장로회 목회자이고, 대학 교수 겸 기독교 교육인이다. 본은 담양(潭陽)이고, 호(號)는 늘봄·추호(秋湖)이며, 1894년 당시 조선의 평안도 평양 출생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대 평안남도 평양에서도 오롯이 모태 기독교인의 삶을 지내다가, 1945년 8월 15일 당시 광복(을유해방)이 성립되자 삼팔선 남쪽으로 월남했다.
야나기모토 류사쿠(일본어: 柳本 柳作, 1894년 9월 1일 ~ 1942년 6월 5일)는 일본 제국 해군의 군인으로, 제2차…야나기모토 류사쿠(일본어: 柳本 柳作, 1894년 9월 1일 ~ 1942년 6월 5일)는 일본 제국 해군의 군인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 소류의 함장이었다.
오상순(吳相淳, 1894년 8월 9일~1963년 6월 3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수필가이다. 본관은 해주(海州)이고…오상순(吳相淳, 1894년 8월 9일~1963년 6월 3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수필가이다. 본관은 해주(海州)이고 호(號)는 선운(禪雲), 공초(空超)이며 필명(筆名)은 오성해(吳星海)이고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김효석(金孝錫, 1895년 12월 19일 ~ 1966년 4월 15일)은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초대 국회의원 재임시, 대한민국…김효석(金孝錫, 1895년 12월 19일 ~ 1966년 4월 15일)은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초대 국회의원 재임시, 대한민국 내무부 장관과 국회 내의 반민특위 조사위원으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