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오 시오리(일본어: 山尾志桜里, 1974년 7월 24일~)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마에하라 세이지 대표 아래에서 민진당…야마오 시오리(일본어: 山尾志桜里, 1974년 7월 24일~)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마에하라 세이지 대표 아래에서 민진당 간사장으로 지명됐으나 9살 연하남과의 불륜 보도가 터지면서 물러났다. 전 국민민주당의 중의원 의원을 역임했다. 지역구는 아이치현 제7구인데 2021년 10월에 제49회 중의원 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와카사 마사루(일본어: 若狭 勝, 1956년 12월 6일 - )는 일본의 변호사, 정치가이다. 전 중의원 의원(2기), 검사…와카사 마사루(일본어: 若狭 勝, 1956년 12월 6일 - )는 일본의 변호사, 정치가이다. 전 중의원 의원(2기), 검사 출신으로, 전 도쿄 지검 특수부 부부장이었다. 일본 퍼스트 회(日本ファーストの会)의 대표
오가와 도시오(일본어: 小川敏夫, 1948년 3월 18일 ~ )는 일본의 정치인이자 전직 변호사, 판사, 검사이다.…오가와 도시오(일본어: 小川敏夫, 1948년 3월 18일 ~ )는 일본의 정치인이자 전직 변호사, 판사, 검사이다. 입헌민주당 소속 참의원 의원이자 입헌민주당 상임고문이며, 제32대 참의원 부의장이다. 간 제1차 개조 내각 및 간 제2차 개조 내각, 노다 내각에서 법무 부(副)대신을 지냈으며, 노다 제1차 개조 내각에서 법무대신(제89대)을 지냈다. 과거 재판관 탄핵재판소의 재판장을 맡았으며, 민진당 시기에 참의원 간사장, 참의원 의원회장을 지냈다. 민주당 시절에는 민주당 참의원 간사장 및 참의원 정책심의회장,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 위원장, 농림수산위원회 위원장, 내각위원회 위원장, 결산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구마자키 가쓰히코(일본어: 熊﨑 勝彦, 1942년 1월 24일~2022년 5월 13일)는 일본의 변호사이자 전직 검사이며…구마자키 가쓰히코(일본어: 熊﨑 勝彦, 1942년 1월 24일~2022년 5월 13일)는 일본의 변호사이자 전직 검사이며 구마자키 가쓰히코 종합법률사무소 소장이다. 2014년 1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일본 야구 기구 커미셔너(제13대)를 맡았다.
정희택(鄭喜澤, 1919년 4월 8일 ~ 2000년 2월 10일)은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주오…정희택(鄭喜澤, 1919년 4월 8일 ~ 2000년 2월 10일)은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주오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였다. 검사를 거쳐 변호사로 일하다 제5공화국 헌법 개정 작업에 참여한 뒤 제11대 국회의원과 감사원장을 역임했다.
이경호(李坰鎬, 1917년 11월 1일 ~ 1987년 2월 28일)는 대한민국의 공무원 출신 정치인이다. 제14대…이경호(李坰鎬, 1917년 11월 1일 ~ 1987년 2월 28일)는 대한민국의 공무원 출신 정치인이다. 제14대 보건사회부장관을 지냈으며 제10대 국회의원이었다.
김준태(金濬泰, 1915년 9월 5일 ~ 1987년 10월 1일)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2·5·6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김준태(金濬泰, 1915년 9월 5일 ~ 1987년 10월 1일)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2·5·6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부흥부 정무차관을 지냈다.
이호(李澔 1914년 2월 7일 ~ 1997년 5월 24일)는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이다. 광복 후에도…이호(李澔 1914년 2월 7일 ~ 1997년 5월 24일)는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이다. 광복 후에도 1946년~1948년 검사로 활동하다가 1949년 내무부 경찰부서인 치안국장을 역임하고 1949년부터는 군법무관으로 활동하다가 1955년 준장으로 예편했다. 1954년 국방부 차관을 역임하고 1955년 예편 후 이승만 정권의 법무부 장관, 허정 과도내각 내무부장관 1968년 박정희 정권에서 다시 법무부장관 등을 지냈다. 1971년~1973년에는 주일본 한국대사를 역임했다.
조재천(曺在千, 1912년 11월 19일 ~ 1970년 7월 5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일제강점기 때 사법시험에…조재천(曺在千, 1912년 11월 19일 ~ 1970년 7월 5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일제강점기 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판사로 근무하였다. 이로 인해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등재되었다. 해방 뒤 경북도경찰국장 등을 지내고 1954년 총선거 때 경북 달성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출마, 제3대 민의원의원에 당선됨으로써 정계에 진출하였다. 1956년의 제3대 정·부통령 선거에서는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선거구호를 내걸고 민주당 선전부장으로서 맹활약을 하였던 반공보수주의자였다. 1958년 대구에서 제4대 민의원의원에 당선되었으며, 1960년 제2공화국에서는 제5대 민의원의원으로 당선, 법무장관에 이어 1961년 내무장관이 되었으나 5·16군사정변으로 정당활동이 금지되어 잠시 변호사를 개업하였다. 1963년 정치규제가 풀리고, 그해 전국구로 제6대 국회의원(민주당)으로 당선되어 야당통합에 앞장섰으며, 1965년 민주당 총재를 지냈다.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반대해 '황태성 생존설’을 계속 주장했다.
김달호(金達鎬, 일본식 이름: 金橋 健, 1912년 3월 26일 ~ 1979년 3월 4일)는 해방 이후 사회대중당…김달호(金達鎬, 일본식 이름: 金橋 健, 1912년 3월 26일 ~ 1979년 3월 4일)는 해방 이후 사회대중당 앙집행위원장, 제3대민의원 등을 역임한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이다. 본관 울산(蔚山)이다.
이태희(李太熙, 일본식 이름: 三江太熙 또는 三江達夫, 1911년 11월 8일 ~ 1999년 10월 27일)는 일제강점기와…이태희(李太熙, 일본식 이름: 三江太熙 또는 三江達夫, 1911년 11월 8일 ~ 1999년 10월 27일)는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일제의 검사였고, 보도연맹 최고지도위원이었으며, 제8대 검찰총장을 지냈다.
김의준(金意俊, 1909년 4월 28일 ~ 1985년 2월 14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었다. 일본 메이지 대학 법과를…김의준(金意俊, 1909년 4월 28일 ~ 1985년 2월 14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었다. 일본 메이지 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판사, 검사, 변호사를 지냈다. 법사위원장, 고등고시위원, UN총회한국대표, 자유당 중앙당 선전부장과 제2대, 제3대, 제4대 민의원의원을 역임하였다. 1985년 미국 워싱턴주에서 별세하였다.
기무라 도쿠타로(木村篤太郎, 1886년 2월 7일 ~ 1982년 8월 8일)는 일본의 법조인, 정치인이다. 제19대…기무라 도쿠타로(木村篤太郎, 1886년 2월 7일 ~ 1982년 8월 8일)는 일본의 법조인, 정치인이다. 제19대 검사총장, 초대 법무대신, 초대 방위청 장관을 역임하였다. 검도가로도 활동하며 초대 전일본검도연맹 회장을 맡았다. 재야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시데하라 내각에서 검사총장에 등용되었고 요시다 내각 하에서 여러 차례 법무대신과 방위청 장관 직을 지내었다. 일본국 헌법의 서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으며 일본공산당의 무장 혁명의 가능성을 경계하여 파괴활동방지법의 도입을 주도하였다.
이인(李仁, 1896년 10월 26일 ~ 1979년 4월 5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출신 법조인, 정치인이다. 자(字)는…이인(李仁, 1896년 10월 26일 ~ 1979년 4월 5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출신 법조인, 정치인이다. 자(字)는 자옥(子玉), 호(號)는 애산(愛山). 일본 유학 후, 1923년 변호사시험에 합격, 변호사를 개업하고 이후 일제강점기 당시 김병로, 허헌과 함께 독립운동가 및 애국자, 사회저명인사들을 상대로 무료변호를 하여 등과 함께 3대 민족 인권 변호사로서 명망을 날렸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창씨개명을 거절하였고, 해방 후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론에 가담하였다. 1948년 5월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정부수립 이후 국회의원과 법무부장관을 역임하였다. 1949년 7월에 반민특위 위원장에 임명되어 반민특위를 와해, 해체시켰다. 제1공화국 붕괴 이후에는 군사정권에 맞서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하였으며, 야당 원로로서 범 야당통합을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54년 제3대 민의원에 당선되고 1960년 참의원(參議員)에 당선되었다. 1962년 유엔인권옹호한국연맹 이사에 임명되었고, 1972년 민족통일촉진회장 ·국토통일원 고문 등을 역임했다. 자(字)는 자옥(子玉), 아호는 애산(愛山)이며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대구광역시 중구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