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다 니코(일본어: 式田 和 (しきだ にこ), 2008년 12월 19일~)는 일본의 여자 축구 선수이다.
12월 19일: 28명
시키다 니코(일본어: 式田 和 (しきだ にこ), 2008년 12월 19일~)는 일본의 여자 축구 선수이다.
가메다 아유무(일본어: 亀田 歩夢 (かめだ あゆむ), 2006년 12월 19일~)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다.
나카노 리키루(일본어: 中野 力瑠 (なかの りきる), 2005년 12월 19일~)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다.
니시고리 마히로(일본어: 西郡 茉優 (にしごおり まひろ), 2003년 12월 19일~)는 일본의 여자 축구 선수이다.
허미미(2002년 12월 19일~)는 일본 태생 대한민국의 유도 선수이다. 2024년 하계 올림픽 여자 라이트급(-57…
허미미(2002년 12월 19일~)는 일본 태생 대한민국의 유도 선수이다. 2024년 하계 올림픽 여자 라이트급(-57 kg) 은메달과 유도 혼성 단체전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2024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와 2026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재일 한국인 3세로, 대한민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본어 이름은 어머니의 성씨를 따 온 이케다 미미(일본어: 池田 (いけだ) 海実 (みみ))이다.
이시이 모모카(일본어: 石井萌々果, 2002년 12월 19일 ~ )는 일본의 아역 배우이다.
카와이 유미(河合 優実 (かわい ゆうみ), 2000년 12월 19일 ~ )는 일본의 배우이다. 도쿄도 네리마구 출신.…
카와이 유미(河合 優実 (かわい ゆうみ), 2000년 12월 19일 ~ )는 일본의 배우이다. 도쿄도 네리마구 출신. 도쿄도립국제고등학교 졸업, 니혼 대학 예술학부 연극학과 중퇴. 돈규클럽 소속으로 신장은 166cm.
와다 하구미(일본어: 和田 育 (わだ はぐみ), 2000년 12월 19일~)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다.
가노 고키(일본어: 加納 虹輝 (かのう こうき), 1997년 12월 19일~)는 일본의 펜싱 선수로 주 종목은 에페이다.…
가노 고키(일본어: 加納 虹輝 (かのう こうき), 1997년 12월 19일~)는 일본의 펜싱 선수로 주 종목은 에페이다. 2018년 아시안 게임에서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2020년 하계 올림픽 에페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일본 최초의 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2024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개인전 금메달을 획득하여 박상영 이후로 두번째로 올림픽 펜싱 에페 남자 개인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
이케지리 마유(일본어: 池尻 茉由 (いけじり まゆ), 1996년 12월 19일 ~ )는 일본의 여자 축구 선수이다.
이케지리 나기사(일본어: 池尻 凪沙 (いけじり なぎさ), 1996년 12월 19일~)는 일본의 여자 축구 선수이다.
오야마 유스케(일본어: 大山 悠輔, 1994년 12월 19일 ~ )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이며, 현재 센트럴 리그인 한신…
오야마 유스케(일본어: 大山 悠輔, 1994년 12월 19일 ~ )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이며, 현재 센트럴 리그인 한신 타이거스의 소속 선수(내야수, 외야수)이다. 이바라키현 시모쓰마시 출신이다.
마치다 야마토(일본어: 町田 也真人 (まちだ やまと), 1989년 12월 19일 ~ )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다.
하야시다 리사(林田理沙, 1989년 12월 19일 ~ )는 일본의 언론인이며 NHK의 여자 아나운서이다. 애칭은…
하야시다 리사(林田理沙, 1989년 12월 19일 ~ )는 일본의 언론인이며 NHK의 여자 아나운서이다. 애칭은 린다짱(リンダちゃん)・린다(リンダ)・린짱(リンちゃん)・보조개 미녀이다.
후지오카 고타(일본어: 藤岡康太, 1988년 12월 19일 ~ 2024년 4월 10일)는 일본의 경마 기수다. 시가현 릿토시…
후지오카 고타(일본어: 藤岡康太, 1988년 12월 19일 ~ 2024년 4월 10일)는 일본의 경마 기수다. 시가현 릿토시 출신으로, 중앙경마(JRA) 릿토 트레센에 소속되어 있었다. 2024년 4월 6일에 한신 경마장에서 개최된 한신 7라운드 더트 경주에서 스위트 스카를 타고 달리던 도중 낙마하여 후속마들로 인한 중상을 입었고, 나흘 뒤인 4월 10일에 생을 마감했다. 후지오카 고타는 기수로 활동하는 동안 대상 25승을 포함해 총 821승을 거두었다. G1 우승은 총 2회로, 2009년 NHK 마일컵과 2023년 마일 챔피언십이다.
이시이 사토시(일본어: 石井 慧 (いしい さとし), 크로아티아어: Satoshi Ishii, 1986년 12월 19일~)는…
이시이 사토시(일본어: 石井 慧 (いしい さとし), 크로아티아어: Satoshi Ishii, 1986년 12월 19일~)는 일본의 유도, 종합격투기, 권투 선수이다. 2004년에 일본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 2008년 하계 올림픽 남자 헤비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올림픽 금메달 획득 후에 유도를 그만두고 종합격투기로 전향하였다. 크로아티아의 격투기 선수인 미르코 필로포비치와의 인연으로 2019년에 크로아티아 국적을 취득하여 크로아티아에 거주하고 있다.
리 다다나리(일본어: 李 忠成 (り ただなり), 1985년 12월 19일~)는 재일 한국인 4세 출신 일본의 전직 축구…
리 다다나리(일본어: 李 忠成 (り ただなり), 1985년 12월 19일~)는 재일 한국인 4세 출신 일본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경영인으로 한국 이름은 이충성 (李忠成), 일본식 통명은 오야마 다다나리(일본어: 大山 忠成 (おおやま ただなり))이며 현재 싱가포르 프리미어리그 탬피니스 로버스의 부사장 겸 스포츠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2004년 대한민국 U-19 축구 국가대표팀 예비 후보로 뽑혔고 이충성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보다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동하고 싶었기 때문에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동하였던 한국인 선수의 권유로 파주 트레이닝 센터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 이후 부상까지 겹쳐 부진하였지만 점차 실력을 발휘하였다. 2006년 일본 올림픽 대표팀(U-23) 감독이 귀화를 권유하자 2007년 일본어 이름인 리 다다나리로 개명하고 일본으로 귀화하였다. 2008년에는 일본 올림픽 대표팀(U-23)의 일원이었으며 FC 도쿄 시절 같은 팀 동료였던 오장은 선수와 절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가시와 레이솔에서 뛸 때는 같은 팀의 홍명보가 달았던 20번을, 산프레체 히로시마로 이적하였을때는 같은 팀의 노정윤이 달았던 9번을 달아 화제가 되었다.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의 2011년 AFC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연장전 후반 4분에 결승골(이 골은 그의 A매치 첫 골이기도 하다)을 넣어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우승컵을 안겼다.
타니가와 나가루(일본어: 谷川 流, 1970년 12월 19일 ~ )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라이트 노벨인 스즈미야 하루히…
타니가와 나가루(일본어: 谷川 流, 1970년 12월 19일 ~ )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라이트 노벨인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를 집필했다. 원래는 여성복 체인점의 점장이었으나 2003년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로 제8회 스니커 대상을 받으면서 데뷔하였다.
가미야 히데키(일본어: 神谷 英樹, 1970년 12월 19일 ~ )는 일본의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이다. 그는 독립 스튜디오…
가미야 히데키(일본어: 神谷 英樹, 1970년 12월 19일 ~ )는 일본의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이다. 그는 독립 스튜디오 클로버스의 설립자이자 플래티넘게임즈의 공동 설립자입니다.
가와이 도시노부(일본어: 河合 季信, かわい としのぶ, 1967년 12월 19일~)는 일본의 쇼트트랙 선수이다. 1992년…
가와이 도시노부(일본어: 河合 季信, かわい としのぶ, 1967년 12월 19일~)는 일본의 쇼트트랙 선수이다. 1992년 동계 올림픽 5000m 계주에서 팀 동료 아카사카 유이치, 이시하라 다쓰요시, 가와사키 쓰토무와 함께 동메달을 획득했다. 1992년 이전에, 그는 1985년과 1987년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 2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는 현재 쓰쿠바 대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아베 오사무(일본어: 安部 理, 1962년 12월 19일 ~ )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야구 지도자, 야구…
아베 오사무(일본어: 安部 理, 1962년 12월 19일 ~ )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야구 지도자, 야구 해설가·평론가이다. 미야기현 시로이시시 출신이며 현역 시절 포지션은 외야수였다.
스즈키 야스히토(일본어: 鈴木 康仁 (すずき やすひと), 1959년 12월 19일 ~ )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다.
아키바 다케오(일본어: 秋葉剛男, 1958년 12월 19일~)는 일본의 외교관이다. 외무성에서 외교관으로 오랫동안…
아키바 다케오(일본어: 秋葉剛男, 1958년 12월 19일~)는 일본의 외교관이다. 외무성에서 외교관으로 오랫동안 근무하였으며,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외무성 사무차관을, 2021년부터 2025년 1월까지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국가안보국장을 지냈다.
유우키 마사미(ゆうき まさみ, 본명 : 사토 슈지 (일본어: 佐藤 修治), 1957년 12월 19일 ~ )는 일본의 남성…
유우키 마사미(ゆうき まさみ, 본명 : 사토 슈지 (일본어: 佐藤 修治), 1957년 12월 19일 ~ )는 일본의 남성 만화가이다. 홋카이도 삿포로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양친의 고향인 아부타 군 굿찬정으로 이사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1980년 미노리 쇼보의 잡지 《월간 OUT》에 〈더 라이벌〉를 연재하면서 만화가로 데뷔하였다. 초기에는 프로 만화가가 될 생각은 없었고샐러리맨을 생업으로 삼고 만화가는 부업으로 하였으나, 퇴직 후 《변덕 사이킹》을 쇼가쿠칸의 만화 잡지 《주간 소년 선데이》에 연재하면서 본격적으로 프로 만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에키다 유키코(일본어: 浴田 (えきだ) 由紀子 (ゆきこ): 1950년 12월 19일 - )는 일본의 테러리스트다.…
에키다 유키코(일본어: 浴田 (えきだ) 由紀子 (ゆきこ): 1950년 12월 19일 - )는 일본의 테러리스트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대지의 엄니" 그룹 소속. 야마구치현 나가토시 출신. 지주 집안 출신이었으나, 농지개혁으로 집안이 몰락했다. 1969년 야마구치현립 오오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키타사토대학 위생학부에 일반입시로 입학했다. 일반입시 수험 전에 추천입시에서 불합격했는데, 친족의 소개로 지역구 국회의원 아베 신타로의 동경 저택에서 서생을 하면서 키타사토 야학에 다닐 준비를 했다. 원래 학생운동권과 연이 없었는데, 1971년 고등학교 동창이 체포된 것을 계기로 그 친구의 구명활동을 하다가 다테 마사야스 등과 알게 되었다. 같은 해 초여름, 시부야역 앞에서 단식투쟁을 하던 히라오카 마사아키 등 텍크사 투쟁을 거쳐 사이토 노도카와 만나게 된다. 그해 가을 사이토 등과 함께 남한으로 “학습여행“을 간 것이 큰 계기가 되어 반일사상을 발전시켜 나갔다. 1973년 대학을 졸업하고 신주쿠의 미츠코시진료소에서 임상검사기사로 취직했다. 같은 해 히라오카・다테・아사쿠라 쿄우지 등과 함께 양명웅(楊明雄) 전후보상 투쟁, 대니얼 로페스 전후보상 투쟁, 미크로네시아 독립 투쟁 등에 참여했다. 로페스 투쟁 당시 로페스의 신원인수인이 되기 위해 그와 위장약혼을 했는데, 로페스와의 생활에 지치고 우익 및 야쿠자와 공투하는 히라오카의 투쟁방향성에 의문을 느끼던 무렵, 그 고민의 상담 상대가 되어준 것이 사이토였다. 1974년 모교의 연구직으로 전업했고, 그 조금 뒤에 사이토와 동거를 시작했다. 원래는 전과가 없고 경찰에 채증당하지 않은 에키다가 갈 곳 없는 사이토에게 아지트를 제공하기 위한 동거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사실혼 관계가 되었다. 동년 10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대지의 엄니" 그룹에 정식으로 가입했고, 10월 14일 미쓰이물산 폭파사건에서 폭탄을 설치하는 등, "대지의 엄니"가 일으킨 기업폭파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에키다 본인은 폭탄제조 지식이 없었고, 자명종을 베이스로 만든 시한장치를 만들어 1974년 8월 중순경 사이토에게 주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범행에 실제 사용되었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1975년 2월, 아사히생명 성인병연구소로 이직했다. 동년 5월 19일 아침 8시경, 고토구 카메이도의 츠타바맨숀에서 취침하던 중 들이닥친 경찰에게 사이토와 함께 체포당했다. 사이토는 체포 직후 청산가리를 음독해 당일 사망했다. 에키다는 체포될 때까지 사실혼 남편인 사이토의 명자 "和"의 독법을 몰랐다고 한다. 사이토가 죽자 경찰은 에키다에게서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해 사이토의 사십구재라고 싸리떡을 주어 회유하거나, 사이토의 친족을 자칭하는 여성을 투입해 위협하거나 따위의 수작을 부렸다. 이는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켜 에키다는 옥중자조합에서 만나게 된 다이도지 아야코 등과 함께 "KF부대"를 결성하고(K는 사이토의 별명 "카즈", F는 아키히토 황태자의 오키나와 방문에 항의해서 분신자살한 후나모토 슈지를 의미했다) 첫 공판에서 자신은 “혁명전사다, 직업은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병사. 본적지는 전세계인민공화국”이라고 자기소개를 하며 대들었다. 1977년, 다카 사건을 일으킨 일본적군의 요구에 따른 초법적 조치로 석방되었다. 이후 일본적군에 가입하고, 국제수배되었다. 1981년 아이를 출산했다. 1995년 일본계 페루인을 가장해 페루에서 루마니아로 입국해 잠행활동을 하다가 3월 20일 구속되었다.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국외퇴거당했고, 일본행 비행기 기내에서 체포되었다. 이에 대하여 이후의 재판에서 변호인 측은 당사자가 일본행을 거부했던 점, 이송 상황이 강제송환이라고 생각되는 점 등을 들어 위법성을 지적했다. 2002년 7월 5일, 검찰이 무기징역을 구형했으나 동경지방재판소는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대지의 엄니" 그룹의 단독사건에 대한 재판소 판결은 이것이 최초 사례였다. 검찰측과 변호측 모두 양형이 부당하다며 항소했으나 2004년 5월 11일 동경고등재판소에서 쌍방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에키다가 8월 5일 상고를 취하함으로써 징역 20년형이 확정되었다. 이후 토치기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2017년 3월 23일 만기출소했다. 석방 당시에는 동경구치소로 이감되어 있었다.
이명박(李明博, 1941년 12월 19일~)은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이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해 현대건설에…
이명박(李明博, 1941년 12월 19일~)은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이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해 현대건설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 회장직까지 승진했다. 이후 정계에 입문해 제14·15대 국회의원직과 제32대 서울특별시장직을 역임했다. 본관은 경주이며 일본 오사카 출생이다. 호는 원래 일송(一松)이나 서울특별시장 시절이던 2005년 10월 26일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 전체 회의에 참석한 고대 동문 김정배 위원장의 권유에 따라 청계(淸溪)로 바꿨다. 1970년 12월 19일 김윤옥 여사와 결혼하여 1남 3녀를 두었다. 아들은 시형, 딸은 주연, 승연, 수연이다. 서울특별시장으로 있던 2006년 2월 21일 제33회 초교파 전국 목회자 부부 영성 세미나에서 "가난한 집안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머니의 기도와 신앙을 통해 성공했다"고 간증했다. 일제 강점기 때 오사카에서 목장 노동자였던 아버지 이충우(李忠雨)와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 채태원 사이에 4남 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해방 직후 귀국해 포항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서울로 이사하여 막노동을 비롯해 온갖 잡일을 하던 중 청계천 헌책방 주인에게 얻은 책으로 대입 준비에 들어갔고, 어머니가 좌판 일을 하던 이태원 시장의 상인들 도움으로 등록금을 마련해 고려대학교 상과대학에 입학했다. 이태원시장에서 매일 새벽 청소 일을 하는 환경미화원으로 학업을 이어가던 중 생활고를 피해 군대에 입대했으나 기관지확장증으로 진단받아 훈련소에서 강제 퇴소됐다. 3학년 때 상대 학생회장에 당선 한일협정을 반대하는 6.3 시위를 주도했다. 경찰에 체포돼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6개월간 복역했다. 대학 졸업 후 학생운동 전력으로 취업이 되지 않자 박정희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어렵게 현대건설에 입사해 5년 만에 이사가 됐고 12년 만인 1977년엔 37세 나이로 현대건설 사장이 되면서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렸다. 이 과정에서 1970년엔 6살 연하의 김윤옥과 결혼했다. 1992년에 현대건설 회장직을 그만두고 민주자유당에 입당해 정계에 입문했으며, 14대 전국구 국회의원에 이어 15대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내던 중, 공직선거 및 부정선거방지법위반죄혐의로 피소되어 1997년 9월 1심에서 벌금 400만원을 선고받았다. 1998년 2월 항소를 진행하던 중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사퇴했다. 1998년 4월 항소심서 벌금 400만 원 형이 선고되자 대법원에 상고했다. 이후 서울시장 후보 경선 출마를 포기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으로부터 객원연구원으로 초대를 받아 미국으로 건너갔다.1999년 4월 대법원으로부터 벌금 400만원이 확정되었으나, 2000년 8월 광복절 특사로 사면복권된 후, 민선 3기 32대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돼 청계천 복원 사업, 서울시 대중교통 환승체계 구축 서울숲 조성 등의 업적을 남겼다. 2007년 12월 19일 제17대 대선에서 '실천하는 경제대통령'이라는 슬로건으로 2위인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를 역대 최대 표차인 531만 여표 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이듬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통해 정부 조직의 대대적인 통폐합안을 발표하고, '작은 정부, 큰 시장'을 뼈대로 '경제살리기'의 기치를 내걸었다. 집권 초 한미 쇠고기협상이 타결되자 MBC PD수첩을 비롯한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미국산 쇠고기의 인간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하면서 광우병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이명박 대통령은 사과하고 30개월 이상 소고기의 수입을 금지하는 재협상을 약속하면서 시위는 잦아들었다. 2008년 9월에는 미국발 글로벌금융위기가 발생했다. 글로벌금융위기로 같은 해 4분기 들어 미국과 일본, 유럽 선진국들의 GDP 성장률이 일제히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10월 한 달 동안 아이슬란드, 파키스탄, 우크라이나, 헝가리, 벨로루시 등 5개국이 외환위기를 맞아 IMF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외신들은 한국의 경제를 비관하며 5개국의 뒤를 이어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제일먼저 국가부도를 맞을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한국의 대외신인도를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F) 프리미엄이 급등하는 등 한국의 부도위험은 사상 최고수준으로 치솟았다. 이에 대내적으로는 미국, 일본, 중국 등과 통화스와프 체결, 매주 비상경제대책회의 주재, 확장적 재정정책 등을 통한 위기극복에 나섰고, 대외적으로는 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글로벌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공조를 이끌어 냈다. 그 결과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성공적으로 글로벌금융위기를 극복하며 ‘위기 통제에 만점을 받아 교과서적인 경제회복을 이루어낸 국가’라는 평가를 외신으로부터 받았다. 한편 경제위기 극복이 가시화 되는 상황에서 국정기조를 ‘친 서민 중도실용’으로 삼아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과 서민 살리기 행보에 나섰다. 2010년 4월에는 유럽발 재정위기가 발생하면서 또 한 번 세계경제는 대침체에 빠졌다. 또한 2011년 8월에는 S&P에 의해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되면서 세계 경제는 또 한 번의 충격에 빠졌다. 이에 중국, 일본과 맺은 통화스와프를 확대하고 균형재정을 선언하는 등 위기극복에 나섰다. 그 결과 한국은 2012년 8월 무디스, 피치, S&P등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사상 최고의 국가신용등급을 받았고, 특히 피치로부터 받은 국가신용등급은 사상 처음으로 중국과 일본을 앞섰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반대 진영은 경제효과 의문, 녹조 등 환경파괴, 부실공사, 공기업, 부실재정, 유지보수비용, 기업의 입찰담합 등을 주장하며 대대적인 비난에 나섰다. 그러나 2015년에 대법원은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서 진행된 4대강 사업 모두 적법 판결을 내렸다. 또한 2015년에는 4대강 보의 물을 가뭄지역에 공급하는 사업이 추진되기도 하였다. 대북 정책에 있어서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천안함·연평도 포격 사건 및 북핵 문제 등과 같은 북한의 도발에 대해 금강산 관광 중단, 5.24조치 실시 등 강력한 대북경제제재를 취하며 국제사회에 공조 하여 대북압박에 나섰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북한이 대북지원을 요구하며 수차례 집요하게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요구해 왔지만 원칙 있는 대북 정책을 위해 이를 거부했다. 외교정책은 '더 큰 대한민국(Global Korea)'를 국정지표로 삼아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 2011년 부산 원조개발총회, 2012년엔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등을 개최하면서 한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함양했다. 또한 2009년엔 UAE 원전을 수주하면서 세계 6번째로 원전수출국의 반열에 섰으며,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소말리아 해적을 소탕한 아덴만의 여명작전 등 외교 안보적 업적을 남겼다. 대미외교는 임기 중 한미FTA 발효를 통해 60여 년간 이어진 한·미 군사동맹을 ‘안보+경제’의 포괄동맹으로 진일보 시켰다. 또한 한·미 간 미사일지침 개정을 통해 미사일 사거리를 연장하고, 미국비자 면제 프로그램(VWP) 가입하는 등 한미관계는 강화됐다. 대일외교는 과거를 직시하면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을 지향했다.일본 총리로부터 과거사 반성을 담은 간 나오토 총리 담화를 이끌어내고, 조성왕실 의궤를 돌려받는 등 과거사 문제에도 큰 진전이 있었다. 임기 말에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했으나 일본 총리가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등 일본 정부가 점차 우경화 되면서 한일 관계는 악화됐고, 일본정부는 이를 독도방문과 일왕 발언 등으로 책임을 돌렸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후, 다스를 비롯한 각종 비리에 대한 논란과 비판이 잇따랐으며, 뇌물수수,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되었다. 역대 대통령들 중 4번째로 구속되었다. 이후 2018년 10월 5일 1심에서 징역 15년, 벌금 130억 원을 선고받았다. 2020년 10월 29일에는 대법원이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원, 추징금 57억8천여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명박의 징역형이 확정되면서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는 모두 박탈되었다.
타미야 슌사쿠(일본어: 田宮 俊作 (たみや しゅんさく) 타미야 슌사쿠[*], 1934년 12월 19일 ~ 2025년 7월…
타미야 슌사쿠(일본어: 田宮 俊作 (たみや しゅんさく) 타미야 슌사쿠[*], 1934년 12월 19일 ~ 2025년 7월 18일)는 일본의 기업인으로 프라모델 제작으로 유명한 주식회사 타미야의 대표이사 회장 및 사장이다.
윤기중(尹起重, 1931년 12월 19일~2023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다. 연세대학교 응용통계학과…
윤기중(尹起重, 1931년 12월 19일~2023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다. 연세대학교 응용통계학과 명예교수이며, 윤석열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의 부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