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에마쓰 야스카즈(일본어: 末松 保和, 1904년 8월 10일~1992년 4월)는 일본의 역사가이다. 가쿠슈인 대학의…
스에마쓰 야스카즈(일본어: 末松 保和, 1904년 8월 10일~1992년 4월)는 일본의 역사가이다. 가쿠슈인 대학의 명예교수, 문학박사이다. 조선 역사, 조선 고대사 · 고대 한일 관계사를 연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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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에마쓰 야스카즈(일본어: 末松 保和, 1904년 8월 10일~1992년 4월)는 일본의 역사가이다. 가쿠슈인 대학의…
스에마쓰 야스카즈(일본어: 末松 保和, 1904년 8월 10일~1992년 4월)는 일본의 역사가이다. 가쿠슈인 대학의 명예교수, 문학박사이다. 조선 역사, 조선 고대사 · 고대 한일 관계사를 연구했다.
겐다 미노루(源田實, 1904년 8월 16일 ~ 1989년 8월 15일)는 일본의 해군 군인, 정치인이다.
이상백(李相佰, 1904년 8월 6일(1904-08-06)~1966년 4월 14일(1966-04-14))은 일제강점기와…
이상백(李相佰, 1904년 8월 6일(1904-08-06)~1966년 4월 14일(1966-04-14))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사학자, 체육인, 스포츠 행정가, 작가, 저술가, 언론인, 대학 교수, 정치인이다. 본관은 경주. 호(號)는 상백(想白), 백무일재(百無一齋).
센다 고레야(千田 是也 (せんだ これや)), 1904년(메이지 37년) 7월 15일 - 1994년 12월 21일)는 일본의…
센다 고레야(千田 是也 (せんだ これや)), 1904년(메이지 37년) 7월 15일 - 1994년 12월 21일)는 일본의 연출가, 배우, 디자이너. 극단 하이유샤의 초대 대표이다. 일본 가나가와 현 출신으로 건축가 · 이토 다메키치의 다섯째 아들이다. 실명은 이토 구니오(伊藤 圀夫 (いとう くにお)). 1944년, 히가시노 에이지로, 오자와 에이타로, 아오야마 스기사쿠 등과 극단 하이유샤를 창립, 죽을 때까지 극단 대표를 맡았다. 1949년에 하이유샤 양성소, 1954년에 하이유샤 극장을 개설해, 하이유샤의 리더적 존재로서 활약했다. 센다가 일본 연극사에서 신극계에 부여한 공적은 크고, 서구의 근대극이나 고전극의 상연 기반을 만드는 동시에, 일본의 현대 연극에 있어서 최초의 실천적인 연기론으로 리얼리즘 연기의 명교과서라고 불리는 「근대 배우술」(1949년)을 저술, 근대적인 연기술·배우술을 이론화하였다. 또한 베르톨트 브레흐트의 희곡을 번역, 소개 · 상연도 했다. 텔레비전 드라마 출연은 거의 전무나 다름없지만, 1940년대부터 1970년대경까지 약 100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이름을 날린 일본의 배우이다.
가와스미 히로시(일본어: 河 (かわ)角 (すみ) 廣 (ひろし), 1904년 7월 12일 ~ 1972년 12월 12일) 은…
가와스미 히로시(일본어: 河 (かわ)角 (すみ) 廣 (ひろし), 1904년 7월 12일 ~ 1972년 12월 12일) 은 일본의 지진학자이다. 나가노현 출신. 도쿄 대학 교수. 이학박사.
오카자키 지로(일본어: 岡崎 次郎 (おかざき じろう): 1904년 6월 29일 - ?? )는 일본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다.…
오카자키 지로(일본어: 岡崎 次郎 (おかざき じろう): 1904년 6월 29일 - ?? )는 일본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다. 홋카이도 에사시 출신. 제1고등학교를 거쳐 1927년 동경제국대학 문학부, 1929년 동 경제학부를 졸업. 전후 1950년부터 큐슈대학 교양부 교수, 호세이대학 경제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1968년 호세이대 교수직을 사임하고 저술에 전념했다. 전후 일본 마르크스 경제학계의 대부였던 사키사카 이츠로가 번역했다고 알려진 이와나미판 『자본론』을 하도급받아 번역한 실제 번역자다. 명의만 사키사카였을 뿐, 거의 관여하지 않아서 실질적으로 오카자기의 번역이다. 1983년 『마르크스에 기댄 60년: 자조생애기』라는 자서전을 출판해서 사키사카를 비판했다. 친구 지인들에게 책을 돌리는 책모임을 겸해 이별모임을 가진 오카자키는 서쪽으로 가겠다는 말만 남기고 이듬해 1984년 6월 6일, 모든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아내와 함께 가출했다. 부부의 발걸음은 시나가와의 호텔에 투숙한 것을 시작으로 이즈반도의 오오히토온천・하마마츠・경도・오카야마・하기・히로시마까지 신용카드 사용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그해 9월 30일 오사카의 한 호텔에 투숙한 것을 끝으로 생활반응이 끊겨, 현재까지도 생사 불명이다.
다카야마 다다오(일본어: 高山 忠雄 (たかやま ただお), 1904년 6월 24일 ~ 1980년 7월 1일)는 일본의 축구…
다카야마 다다오(일본어: 高山 忠雄 (たかやま ただお), 1904년 6월 24일 ~ 1980년 7월 1일)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다.
다니구치 요시로(일본어: 谷口 吉郎, 1904년 6월 24일 ~ 1979년 2월 2일)는 쇼와 시대에 활약한 일본의…
다니구치 요시로(일본어: 谷口 吉郎, 1904년 6월 24일 ~ 1979년 2월 2일)는 쇼와 시대에 활약한 일본의 건축가이다.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 출신이다. 도쿄 공업대학의 교단에서 많은 후진을 지도하였으며, 제국극장(帝国劇場)의 설계자, 정원 연구자, 박물관 메이지촌(博物館明治村)의 초대 관장으로도 알려졌다. 아들 다니구치 요시오도 건축가이다.
이재학(李在鶴, 일본식 이름: 大原郁生, 1904년 5월 31일~1973년 11월 23일)은 일제강점기의 관료이자 대한민국의…
이재학(李在鶴, 일본식 이름: 大原郁生, 1904년 5월 31일~1973년 11월 23일)은 일제강점기의 관료이자 대한민국의 공무원, 정치인이다.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제2·3·4·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최범술(崔凡述, 1904년 음력 5월 26일 사천 ~ 1979년 7월 10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불교 승려이며…
최범술(崔凡述, 1904년 음력 5월 26일 사천 ~ 1979년 7월 10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불교 승려이며 제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초명은 영환(英煥), 당호는 금봉(錦峯), 법호는 효당(曉堂)이다.
정준모(1904년 5월 23일~1978년 11월 26일)는 대한민국의 의사 출신 정치인이다. 제3·4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정준모(1904년 5월 23일~1978년 11월 26일)는 대한민국의 의사 출신 정치인이다. 제3·4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제1공화국에서 제2대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냈다.
류 지슈(일본어: 笠 智衆, 1904년 5월 13일 ~ 1993년 3월 16일)는 일본의 영화 배우이다. 1928년부터…
류 지슈(일본어: 笠 智衆, 1904년 5월 13일 ~ 1993년 3월 16일)는 일본의 영화 배우이다. 1928년부터 1992년까지 155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특히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 54편 중 52편에 출연했다.
홍길선(洪吉善, 1904년 7월 1일~1980년 8월 8일)은 대한민국의 기업인, 사회운동가이다. 고전 음악 피아노 연주자…
홍길선(洪吉善, 1904년 7월 1일~1980년 8월 8일)은 대한민국의 기업인, 사회운동가이다. 고전 음악 피아노 연주자, 겸 서양고전음악평론가로도 활동했다. 정치인으로도 활동했으며 4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도봉섭(都逢渉, 1904년 4월 8일~?)은 한국의 식물학자이자 약학자이다.
가네코 히로시(일본어: 金子 弘, 1904년 3월 27일 ~ ? )는 일본의 배우이다. 도쿄부 도쿄시 시타야구(현재 도쿄도…
가네코 히로시(일본어: 金子 弘, 1904년 3월 27일 ~ ? )는 일본의 배우이다. 도쿄부 도쿄시 시타야구(현재 도쿄도 다이토구) 출신했다.
엄경섭(嚴敬燮, 1906년 ~ 1979년 9월 6일)은 대한민국의 교육인, 정치인이다. 국민교육헌장 제정심의를 맡았으며…
엄경섭(嚴敬燮, 1906년 ~ 1979년 9월 6일)은 대한민국의 교육인, 정치인이다. 국민교육헌장 제정심의를 맡았으며, 제9대 국회의원도 역임하였다. 양정중고등학교 교장을 지냈다. 아들인 엄규백도 엄경섭의 뒤를 이어 양정고등학교 교장을 지냈다.
조규갑(曺奎甲, 1904년 3월 27일 김해 - 1994년 10월 3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요시카와 코지로〔일본어: 吉川 幸次郎, よしかわ こうじろう、1904년 3월 18일 - 1980년 4월 8일〕는 일본의…
요시카와 코지로〔일본어: 吉川 幸次郎, よしかわ こうじろう、1904년 3월 18일 - 1980년 4월 8일〕는 일본의 중국문학자, 일본 예술원 회원, 문화공로자, 교토대 명예교수이다.
니시무라 에이이치(일본어: 西村 栄一, 1904년 3월 8일~1971년 4월 27일)는 11선 중의원 의원을 역임한 일본의…
니시무라 에이이치(일본어: 西村 栄一, 1904년 3월 8일~1971년 4월 27일)는 11선 중의원 의원을 역임한 일본의 정치인이다. 아들은 6선 중의원 의원을 지낸 니시무라 신고이며 지역구를 물려받은 니시무라 쇼조는 조카로 6선 중의원 의원을 지냈다.
이갑식(李甲植, 1904년 2월 10일 한성부 ~ 1972년 7월 8일)은 제3,4대 민의원의원을 지낸 대한민국의…
이갑식(李甲植, 1904년 2월 10일 한성부 ~ 1972년 7월 8일)은 제3,4대 민의원의원을 지낸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조선식산은행을 거쳐 중공업 분야에 종사한 기업인이기도 하며, 20대 때는 경성 축구단에 소속되어 잠시 축구 선수로도 활약했었다.
쓰카다 주이치로(일본어: 塚田 十一郎 (つかだ じゅういちろう), 1904년 2월 9일~1997년 5월 23일)는 8선 중의원…
쓰카다 주이치로(일본어: 塚田 十一郎 (つかだ じゅういちろう), 1904년 2월 9일~1997년 5월 23일)는 8선 중의원 의원, 2선 니가타현지사, 3선 참의원 의원을 지낸 일본의 정치인이다.
이와쿠라 도모히데(岩倉具栄)는 일본의 영문학자이다. 호세이 대학 교수. 부친 이와쿠라 도모하루 공작 사후 작위를 습작하였다.…
이와쿠라 도모히데(岩倉具栄)는 일본의 영문학자이다. 호세이 대학 교수. 부친 이와쿠라 도모하루 공작 사후 작위를 습작하였다. 도쿄시 가미메구로의 사이고 주도 저택에서 태어났다. 모친은 사이고 주도의 딸 사쿠라코(桜子)이다. 학문,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인물로, 특히 영문학 연구와 번역이 주된 업적이다.
미노베 료키치(일본어: 美濃部亮吉, 1904년 2월 5일~1984년 12월 24일)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미노베 료키치(일본어: 美濃部亮吉, 1904년 2월 5일~1984년 12월 24일)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제6·7·8대(1967년부터 1979년까지) 도쿄도지사를 역임한 인물이다. 일본 현대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회주의자 중 한 명이다.
고이즈미 준야(小泉純也, 1904년 1월 24일 - 1969년 8월 10일)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중의원 의원, 방위청…
고이즈미 준야(小泉純也, 1904년 1월 24일 - 1969년 8월 10일)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중의원 의원, 방위청 장관을 지냈다. 옛 성은 사메지마(鮫島)이고, 별명은 ‘안보남’(安保男)이었다. 중의원 부의장, 체신대신, 요코스카시장 등을 역임한 고이즈미 마타지로의 사위이자, 총리를 지낸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아버지이다. 네즈 재벌의 대점장이었던 사메지마 소이치로는 사촌이다. 요코스카 시의회 의장을 맡은 이료 카츠미는 조카이다.
박종환(朴鍾煥, 1904년 1월 17일 청도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조선 말기 관상가 박유붕(朴有鵬)의 후손이다.
조경규(趙瓊奎, 1904년~1983년 1월 13일)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2·3·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조경규(趙瓊奎, 1904년~1983년 1월 13일)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2·3·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대구민보 사장, 국민회 경북도지부장, 징계자격·내무위원장, 대구시사신보 사장, 대한노총 최고위원, 자유당 중앙위원, 국회 부의장, 국민회 중앙본부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사쿠라다 이치로(桜田 一郎, 1904년 1월 1일 ~ 1986년 6월 23일)는 일본의 화학자이다. 교토 대학의…
사쿠라다 이치로(桜田 一郎, 1904년 1월 1일 ~ 1986년 6월 23일)는 일본의 화학자이다. 교토 대학의 명예교수였으며 일본 학사원의 회원이기도 했다. 1939년 일본 최초의 합성 섬유인 폴리비닐알코올계 합성 섬유(비닐론)를 리승기, 가와카미 히로시(川上博) 등과 공동 개발했다. 이 밖에도 고분자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통해 일본의 고분자화학의 기반을 다졌다. 고분자라는 일본어를 정착시킨 것도 그이다.
김헌식(金憲植, 1903년 9월 15일~1975년 6월 26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일본 교토 제국대학 연구과를…
김헌식(金憲植, 1903년 9월 15일~1975년 6월 26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일본 교토 제국대학 연구과를 졸업하고, 제2대 국회의원, 논산읍 소방서장을 역임하였다. 한국 전쟁 때 납북되었다.
김정실(金正實, 1904년 4월 27일 ~ 1969년 10월 27일)은 대한민국의 교육자이자 정치인이다.
오용국(吳龍國, 1904년 남제주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윤영선(尹泳善, 1904년 ~ 1997년 12월 18일)은 대한민국의 공무원, 정치인으로 제2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해남…
윤영선(尹泳善, 1904년 ~ 1997년 12월 18일)은 대한민국의 공무원, 정치인으로 제2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해남 윤씨 13대 종손이며, 중추원 참의를 지낸 윤정현의 아들이다. 일본 도쿄의 호세이 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하고 초대 광주시장, 흥덕해운회장, 제2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현재 그의 아들 윤형식(尹亨植)은 해남 윤씨 14대 종손으로서 녹우당을 지키고 있다.
류인곤(柳寅坤, 1904년 ~ 1970년 10월 10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도이 다쓰오(일본어: 土井辰雄, どい たつお), 1892년 12월 22일 ~ 1970년 2월 21일)은 일본의 가톨릭…
도이 다쓰오(일본어: 土井辰雄, どい たつお), 1892년 12월 22일 ~ 1970년 2월 21일)은 일본의 가톨릭 성직자이다. 세례명은 베드로이다. 1960년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추기경의 자리에 올랐다. 미야기현 센다이 출신이며, 1902년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신학교를 마친 후 사제 서품을 받았고, 로마에 유학했다. 그 후 일본의 교황 대사 비서를 지냈다. 1937년 교황 비오 11세는 그를 도쿄 대교구 대주교로 임명하였다. 그 후 계속 대주교로 재직했으며, 일본 가톨릭 발전을 위한 기대 속에 교황 요한 23세 시대인 1960년, 일본인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무토 아키라(일본어: 武藤 章, 1892년 12월 15일 - 1948년 12월 23일)는 일본 제국의 군인으로, 최종 계급은…
무토 아키라(일본어: 武藤 章, 1892년 12월 15일 - 1948년 12월 23일)는 일본 제국의 군인으로, 최종 계급은 육군 중장이다. 극동 국제 군사 재판에서 필린핀 포로학대죄로 유일하게 중장으로서 교수형 판결을 받았으며, 1978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었다.
서성달(徐成達, 1892년 12월 7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본관은 이천이다. 니혼 대학 법과를 졸업하였다. 제헌…
서성달(徐成達, 1892년 12월 7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본관은 이천이다. 니혼 대학 법과를 졸업하였다. 제헌 국회의원 선거 당시 고양군 갑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후 제헌 국회 내의 반민특위 조사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제헌 국회의원 임기 중 민주국민당에 입당하였다. 이후 제2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위해 대한국민당에 입당했다. 하지만 제2대 국회의원 선거는 대한노동총연맹의 후보로 출마했으며 3위로 낙선했다.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같은 선거구에 대한국민당의 후보로 출전했지만 5위로 낙선했다.
궈모뤄(중국어: 郭沫若, 병음: Guō Mòruò, 한자음: 곽말약, 1892년 11월 16일 ~ 1978년 6월 12일)는…
궈모뤄(중국어: 郭沫若, 병음: Guō Mòruò, 한자음: 곽말약, 1892년 11월 16일 ~ 1978년 6월 12일)는 중국의 신문학 활동가, 극작가,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가, 마오쩌둥주의 문학 사상 공작자이다. 본명은 카이전(開貞), 호는 딩탕(鼎堂)이며, 모뤄(沫若)는 자이다. 하카계 출신이며, 쓰촨성 쟈딩 푸(嘉定府)의 중류 정도의 지주의 셋째 아들로서 출생하였다. 쓰촨성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으며 1914년 일본 제국의 규슈대 의학부에 입학하여 근대적 연구 방법을 익혔다. 이 사이에 시작(詩作)을 시작했고 1921년에는 혁명 문학 단체 창조사(創造社)를 결성하였으며 중국에서 반봉건 혁명 낭만주의 운동을 일으킨 초기 활동가 중 하나였다. 그는 그러다 일본 제국의 여자와 결혼하고 극작가로서 여성 해방을 혁명 테마로 한 <3인의 반역적 여성>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중국 공산당의 신문학 운동 시기의 본격적 사극의 하나로 말해지기도 한다. 중국 국내에서 혁명의 기운이 고조된 후 1926년 국민혁명군이 북벌을 개시하자 리다자오 등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진영에서 거기에 참가하여 우한·상하이 등지에서 여러 직책으로 활동하다가, 1927년 난창 봉기에 가담한 후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그 후 공산주의자에 대한 탄압을 피해서 일본 제국에 망명하였고, 이 기간에 유물사관을 가지고 중국 고대 사회를 연구하는 혁명 작업을 하였으며, 그것은 중국 고대 사회를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시각을 가져다 연구한 것이었다. 1937년 중일 전쟁 때 충칭으로 귀국해서 중국 공산당 측의 문학 평론 공작의 책임을 맡고 공산당 혁명의 항일 전선에 참가하여 선전 활동에 종사하는 중에 극작(劇作)이나 평론 등도 많이 발표하였다. 그때 발표된 희곡 <굴원(屈原)>(1942)의 내용은 굴원을 항쟁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것으로, 중국 고대 애국 시인의 말을 따서 국민당의 부패 양상을 들춰내기도 하였다. 1949년, 1950년 파리와 바르샤바에서 열린 세계 평화 회의에 마오쩌둥 측의 문인 대표로 참가하였고, 중국 공산당 정권 성립 이후로 정무원 부총리 겸 과학원장, 중앙인민정부 위원, 중국과기대 학장, 중국 공산당 문학예술계연합회 주석, 중국 정무원 문화교육위원회 주임 등을 맡았으며, 마오둔, 저우양, 천보다 등과 함께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정권에서 마오쩌둥주의 문학 사상 노선의 조타수가 되었다. 그는 마오쩌둥의 중국 공산당 정권에서 크게 권력을 행사했던 마르크스-레닌주의 문학, 사상 방면의 공작자 중의 하나이었다. 문혁 초기에는 사인방의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지만, 얼마 후 마오쩌둥은 그의 보호를 사인방과 저우언라이에게 요구하였다. 문혁이 끝난 뒤는 화궈펑에 의해서 당내 정치적 지위를 회복하였다. 마오쩌둥이 죽었을 때 화궈펑 정권에서 마오의 장례식에 참석하였다.
마쓰다 마사유키(松田正之)는 일본의 체신·척무관료, 정치인이다. 남양청장관, 귀족원 남작 의원. 이전의 이름은…
마쓰다 마사유키(松田正之)는 일본의 체신·척무관료, 정치인이다. 남양청장관, 귀족원 남작 의원. 이전의 이름은 사다노스케(定之助)이다. 도쿄부 출신으로 백작 아리마 요리쓰무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후에 정치인 마쓰다 마사히사의 양자로 입적되었고 마사히사 사후 남작위를 습작하였다. 마사유키는 후작 하치스카 마사하키(후작 하치스카 모치아키의 장남)의 사위이며 외교관 가야 하루노리(가야 쓰네노리의 차남)의 장인이다.
구사카 류노스케(일본어: 草鹿 龍之介, 1892년 9월 25일 ~ 1971년 11월 23일)는 일본 제국의 군인이다.
야마구치 다몬(일본어: 山口 多聞, 1892년 8월 17일 ~ 1942년 6월 6일) 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제국…
야마구치 다몬(일본어: 山口 多聞, 1892년 8월 17일 ~ 1942년 6월 6일) 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제국 해군의 제독으로,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이시이 시로(일본어: 石井 四郎, 1892년 6월 25일 ~ 1959년 10월 9일)는 일본의 군인 및 정수기 개발자로…
이시이 시로(일본어: 石井 四郎, 1892년 6월 25일 ~ 1959년 10월 9일)는 일본의 군인 및 정수기 개발자로, 731부대 사령관에 임명되어 중일전쟁 중 일본 제국 군대의 생물학전을 담당했다.
나루세 세이이치(成瀬正一, 1892년 4월 26일 ~ 1936년 4월 13일)는 일본의 작가이자 프랑스 낭만주의 연구자이다.…
나루세 세이이치(成瀬正一, 1892년 4월 26일 ~ 1936년 4월 13일)는 일본의 작가이자 프랑스 낭만주의 연구자이다. 규슈 대학의 프랑스 문학 교수이기도 한 그는 로맹 롤랑과 교류한 첫 일본인으로, 고지로 마쓰카타와 협업하여 회화와 조각상을 수집한 도쿄 우에노 국립서양미술관의 마쓰카타 컬렉션으로도 알려져 있다.
호시노 나오키(일본어: 星野 直樹, ほしの なおき, 1892년 4월 10일~1978년 1월 26일)는 일본의 관료이자…
호시노 나오키(일본어: 星野 直樹, ほしの なおき, 1892년 4월 10일~1978년 1월 26일)는 일본의 관료이자 정치가로, 만주국의 총무 장관이었다. 호시노 나오키는 1892년 4월 10일, 일본 가나가와현의 요코하마시에서 태어났다. 1916년에 고등 문관 시험에 급제한 뒤, 1917년,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대장성에 들어갔다. 1932년 3월 1일, 만주국을 건설할 당시에 관동군으로부터 대장성에서 인재를 파견해달라는 요청에 따라 만주로 건너가게 되었다. 만주에 건너간 이후에는 만주국 재정부 이사관, 재정부 총무사장, 재정부 차장, 국무원 총무청장을 거쳤고, 1937년에는 국무원 총무 장관으로 취임하였다. 당시 일본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에선 일본인이 맡는 국무원 총무 장관이 실질적으로 총리 역할을 해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하며, 호시노 나오키는 재임 기간 중 만주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2키 3스케 중 한 명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A급 전범이 된 호시노 나오키는 극동 국제 군사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1958년에 석방돼 후에는 도쿄 힐튼 호텔 부사장, 도쿄 급행 전철 이사, 아사히 해운 사장, 다이아몬드 사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사토 하루오(佐藤春夫, 1892년 4월 9일 ~ 1964년 5월 6일)는 일본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일본의 다이쇼 시대와…
사토 하루오(佐藤春夫, 1892년 4월 9일 ~ 1964년 5월 6일)는 일본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일본의 다이쇼 시대와 쇼와 시대에 활동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우울감을 탐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미우리상 4등을 수상했다.
노사카 산조(일본어: 野坂参三, 1892년 3월 30일 ~ 1993년 11월 14일)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이광수(李光洙, 1892년 3월 4일(1892-03-04) ~ 1950년 10월 25일(1950-10-25))는 일제강점기…
이광수(李光洙, 1892년 3월 4일(1892-03-04) ~ 1950년 10월 25일(1950-10-25))는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언론인, 문학가, 시인, 평론가, 번역가이다. 애국계몽운동가로서의 공로가 있으나, 최남선 등과 함께 변절한 친일파로 평가된다. 본관은 전주이며, 조선 목조의 차남 안원대군의 후손이다. 자는 보경(寶鏡), 호는 춘원(春園)·고주(孤舟)·외배·올보리·장백산인(長白山人), 필명은 춘원생·경서학인(京西學人)·노아자닷뫼당백·Y생·장백·장백산인 등. 일제강점기 독립 운동에 참여, 신한청년당과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고, 임정 사료편찬위원회 그리고 신한청년당의 독립운동지 신한청년(新韓靑年)에 주필로서 참여하였다. 언론인으로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조선일보 부사장을 지냈고 또한 문학 번역가로도 활동하며 영미권의 작품을 한국어로 번안하여 국내에 소개했다. 아울러 순한글체 소설을 쓰며 소설 문학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한 인물로 평가되며, 소설가로는 구한말과 일제시대 동안 '만인의 연인'이라는 별명과 함께 청소년 남녀 문인의 우상이었고 최남선, 홍명희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대표되었던 인물이었다. 1909년 첫 작품 《사랑인가》를 발표한 이후 일본 유학 중 소설과 시, 논설 등을 발표하였다. 귀국 후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다 망명, 1919년 도쿄 조선인 유학생의 2·8 독립 선언을 주도했으며, 2·8 독립 선언서를 기초한 후 3·1 운동 전후 상하이로 건너가 상하이 임시정부에 참가하고 그 후 독립운동지 신한청년 등에서 주필을 역임하였다. 임시정부의 일원으로서 대한의 독립의 정당성을 세계에 홍보하려 노력하였으며 임시정부에서 발간하는 기관지 《독립신문사》 사장을 맡아 활동했다. 그러나 허영숙이 상하이로 찾아와 귀국을 종용하자 상하이에서의 독립운동을 접고 1921년 3월 귀국하여 허영숙과 결혼하였다. 1922년 5월 개벽지에 《민족개조론》을 발표하여 '도덕적 타락'이 한민족의 쇠퇴의 원인이라 주장했다. 192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을 지내고, 1933년 《조선일보》 부사장을 거치는 등 언론계에서 활약하면서 《재생》(再生), 《마의태자》(麻衣太子), 《단종애사》(端宗哀史), 《흙》 등 많은 작품을 쓰며 동시에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반년 간 투옥된 이후 친일(대일협력) 성향으로 기울어 친일어용단체 조선문인협회 회장이 되어 전선병사 위문대·위문문 보내기를 주도하였다. 1940년 2월 15일자 《매일신보》에 〈국민문학의 의의〉를 게재하고 황민화운동을 지지하였으며, 2월 20일자 《매일신보》의 〈창씨와 나〉에서는 창씨개명 정책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힘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으로 바꾼 이유를 밝혔다. 1941년 9월 《매일신보》에 〈반도민중의 애국운동〉을 게재해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을 지지하였고, 영미타도대강연회에서 ‘사상 함께 영미를 격멸하라’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특히 일본제국의 징병제를 선전하고 긍정하는 내용의 글을 집필하고 연설을 한 것이 눈에 띄며 1942년 5월 조선임전보국단 주최의 징병제도연설회에서는 ‘획기적 대선물' 제하에 연설하였으며, 《신시대》 1942년 4월호 〈징병과 여성〉을 게재해 징병제 실시를 환영하는 입장을 보였다. 1943년 11월 임시특별지원병제도 경성익찬회 종로위원회 실행위원으로 활동하였고 같은 달 최남선 등과 함께 일본 주재 한국인 유학생에게 입대를 권유하는 '선배 격려대'에 참여하였다. 1944년 결전태세즉응(決戰態勢卽應) 재선(在鮮) 문학자 총궐기대회 의장을 맡았으며, 8월 적국항복 문인대강연회에서 ‘전쟁과 문학’이란 제목으로 강연, 1945년 2월 대화동맹 준비위원 겸 이사, 6월 조선언론보국회 명예회원 및 대의당(大義黨) 위원이 되었다. 해방 후 《백범일지》의 교정, 윤문과 안창호의 일대기 집필을 직접 맡아 주관하기도 했다. 1949년 반민특위에 기소가 제기됐으나 석방되었고, 1950년 6월 한국 전쟁 당시 서울에 있다 북한 인민군에 의해 납북되었다. 그간 생사불명이다가 1950년 만포에서 병사한 것이 확인되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일본어: 芥川 龍之介 (あくたがわ りゅうのすけ), 1892년 3월 1일~1927년 7월 24일)는 일본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일본어: 芥川 龍之介 (あくたがわ りゅうのすけ), 1892년 3월 1일~1927년 7월 24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호는 징강당주인(澄江堂主人)이며 하이쿠 작가로서의 호는 가키(我鬼)이다. 일본의 《곤자쿠 이야기집》·《우지슈이 이야기》와 같은 전통적인 고전들에서 제재를 취해 「참마죽」, 「덤불 속」, 「지옥변」 등과 같은 단편 소설들을 주로 저술했고 「거미줄(원제: 蜘蛛の糸)」, 「두자춘(杜子春)」 등 어린이를 위한 작품들, 예수를 학대한 유대인이 예수가 세상에 다시 올 때까지 방황한다는 내용의 「방황하는 유대인」을 저술했다.
단 이노(團伊能, 1892년 2월 21일 ~ 1973년 2월 9일)는 일본의 기업인, 정치인이다. 작위는 남작이다. 남작 단…
단 이노(團伊能, 1892년 2월 21일 ~ 1973년 2월 9일)는 일본의 기업인, 정치인이다. 작위는 남작이다. 남작 단 다쿠마의 장남으로 후쿠오카현 오무타시에서 태어났다. 부친 사후 남작위를 습작하였다.
히라사와 사다미치(일본어: 平沢 貞通, ひらさわ さだみち, 1892년 2월 18일 ~ 1987년 5월 10일)는 일본의…
히라사와 사다미치(일본어: 平沢 貞通, ひらさわ さだみち, 1892년 2월 18일 ~ 1987년 5월 10일)는 일본의 템페라 화가이다. 도쿄도에서 태어났으며 홋카이도에서 자랐다. 호(號)는 대장 (일본어: 大暲 다이쇼[*])이다.
다카기 다케오(일본어: 高木武雄, 1892년 1월 25일 ~ 1944년 7월 1일)는 일본 제국 해군의 군인으로 후쿠이현…
다카기 다케오(일본어: 高木武雄, 1892년 1월 25일 ~ 1944년 7월 1일)는 일본 제국 해군의 군인으로 후쿠이현 출신이다. 해군병학교를 졸업하였다. 다카기는 어릴 적부터 머리가 비상해 최연소로 소위에 임관되었고, 태평양 전쟁 발발 당시에는 제5전대 사령관으로 산호해 해전에 참가하였다. 그 후에는 사이판에 갇힌 나구모 주이치(南雲忠一) 중장에게 대본영의 철수 명령을 알리려 가다 미군에 의해 사이판에서 전사했다. 사후에 대장으로 추서되었다.
호리구치 다이가쿠(堀口 大學, 1892년 1월 8일 ~ 1981년 3월 15일)는 일본의 시인, 가인, 번역가이다.…
호리구치 다이가쿠(堀口 大學, 1892년 1월 8일 ~ 1981년 3월 15일)는 일본의 시인, 가인, 번역가이다. 초현실주의 등 프랑스의 시문학을 번역하여 번역시선집 《월하의 일군》(月下の一群, 1925) 등으로 일본에 소개하였으며 《달빛과 피에로》(月光とピエロ, 1919), 《모래베개》(砂の枕, 1926), 《저녁의 무지개》(夕の虹, 1957) 등의 시집을 냈다. 일본 예술원 회원으로 1970년 11월 문화공로자로 선정되었고 1979년 11월 문화훈장을 수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