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도(吳一島, 1901년 2월 24일 ~ 1946년 2월 28일)는 일제강점기의 시인이다.
시인: 82명
오일도(吳一島, 1901년 2월 24일 ~ 1946년 2월 28일)는 일제강점기의 시인이다.
김동명(金東鳴, 본명: 김동오, 본명 한자: 金東嗚, 1900년 2월 4일~1968년 1월 21일)은 대한민국의 시인이고…
김동명(金東鳴, 본명: 김동오, 본명 한자: 金東嗚, 1900년 2월 4일~1968년 1월 21일)은 대한민국의 시인이고, 정치평론가 겸 시사평론가이자, 수필가 및 대학 교수 겸 정치인이다. 대한제국 강원도 강릉군 출생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호(號)는 초허(超虛)이다. 대한제국 강원도 강릉군 명주 사천면 노동리 71번지에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1902년 대한제국 한성부 남서 회현방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1903년 대한제국 강원도 강릉군 강릉면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고, 1904년 대한제국 함경남도 원산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냈으며, 1905년 대한제국 함경남도 함흥에서 성장하였고, 1908년 대한제국 함경남도 원산으로 재차 이주하였지만, 영생고등보통학교 2학년 시절이던 1913년 6월 4일경을 기하여 다시 일제 강점기 조선 함경남도 함주군 흥남으로 마지막 이주하였다. 제5대 초선 참의원(1960년 7월 ~1961년 5월)을 지내기도 했으며, 이후 1965년 6월경에 시문학 분야도 절필 및 은퇴 선언했고 1968년 고혈압으로 인해 사망한 그의 묘는, 대한민국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노동하리에 있다.
야기 주키치(八木重吉, 1898년 2월 9일 ∼ 1927년 10월 26일)는 다이쇼 말기와 쇼와의 첫 2년까지 활동한 일본의…
야기 주키치(八木重吉, 1898년 2월 9일 ∼ 1927년 10월 26일)는 다이쇼 말기와 쇼와의 첫 2년까지 활동한 일본의 시인이다.
김우진(金祐鎭, 1897년 9월 19일~1926년 8월 4일)은 일제강점기 극작가· 연극 이론가 · 시인이다. 이다. 전남…
김우진(金祐鎭, 1897년 9월 19일~1926년 8월 4일)은 일제강점기 극작가· 연극 이론가 · 시인이다. 이다. 전남 장성 출생. 호는 초성(焦星)· 수산(水山). 희곡을 비롯해 시, 소설, 평론, 공연 연출 등 다양한 장르에서 재능을 발휘하며 48편의 시와 5편의 희곡, 20여편의 평론을 남겼고,'시대를 앞서간 천재 작가'로 당대 문단에 파란과 충격을 던져주었다. 표현주의를 직접 작품으로 실험한 유일한 극작가이자 우리나라 최초로 신극운동을 일으킨 근대예술의 선구자이다.
위다푸(욱달부, 중국어 정체자: 郁達夫, 간체자: 郁达夫, 병음: Yù Dá Fū, 문화어: 유다부, 1896년 12월 7일…
위다푸(욱달부, 중국어 정체자: 郁達夫, 간체자: 郁达夫, 병음: Yù Dá Fū, 문화어: 유다부, 1896년 12월 7일 ~ 1945년 9월 17일)은 중국의 소설가이다. 대표작으로 『몰락(沈淪)』, 『잃어버린 양(迷羊)』 등이 있는데, 『몰락』은 몰락해가는 신경질적 개인의 성적 추구를 집중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거듭나며, 퇴폐적이며 자아 폭로적인 경향에 대해 찬양과 비난이 엇갈리면서 열딘 문학토론의 대상이 되었다.
나혜석(1896년 4월 28일 ~ 1948년 12월 10일)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한민국의 화가이자 작가, 시인, 조각가…
나혜석(1896년 4월 28일 ~ 1948년 12월 10일)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한민국의 화가이자 작가, 시인, 조각가,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 언론인이다.
가네코 미쓰하루(일본어: 金子光晴 かねこみつはる[*])는 일본의 시인이자 화가이다. 메이지 시대에 태어나 쇼와 시대의…
가네코 미쓰하루(일본어: 金子光晴 かねこみつはる[*])는 일본의 시인이자 화가이다. 메이지 시대에 태어나 쇼와 시대의 격동기를 살면서, 일본의 군국주의와 전쟁에 대하여 반대하는 왕성한 활동을 했다.
니시와키 준자부로(일본어: 西 (にし)脇 (わき) 順 (じゅん)三 (ざ)郎 (ろう), 1894년 1월 20일 ~ 1982년…
니시와키 준자부로(일본어: 西 (にし)脇 (わき) 順 (じゅん)三 (ざ)郎 (ろう), 1894년 1월 20일 ~ 1982년 6월 5일)는 일본의 시인이자 영문학자로, 일본의 모더니즘 문학을 주도하였다.
오상순(吳相淳, 1894년 8월 9일~1963년 6월 3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수필가이다. 본관은 해주(海州)이고…
오상순(吳相淳, 1894년 8월 9일~1963년 6월 3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수필가이다. 본관은 해주(海州)이고 호(號)는 선운(禪雲), 공초(空超)이며 필명(筆名)은 오성해(吳星海)이고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사토 하루오(佐藤春夫, 1892년 4월 9일 ~ 1964년 5월 6일)는 일본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일본의 다이쇼 시대와…
사토 하루오(佐藤春夫, 1892년 4월 9일 ~ 1964년 5월 6일)는 일본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일본의 다이쇼 시대와 쇼와 시대에 활동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우울감을 탐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미우리상 4등을 수상했다.
호리구치 다이가쿠(堀口 大學, 1892년 1월 8일 ~ 1981년 3월 15일)는 일본의 시인, 가인, 번역가이다.…
호리구치 다이가쿠(堀口 大學, 1892년 1월 8일 ~ 1981년 3월 15일)는 일본의 시인, 가인, 번역가이다. 초현실주의 등 프랑스의 시문학을 번역하여 번역시선집 《월하의 일군》(月下の一群, 1925) 등으로 일본에 소개하였으며 《달빛과 피에로》(月光とピエロ, 1919), 《모래베개》(砂の枕, 1926), 《저녁의 무지개》(夕の虹, 1957) 등의 시집을 냈다. 일본 예술원 회원으로 1970년 11월 문화공로자로 선정되었고 1979년 11월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온치 고시로(일본어: 恩地 孝四郎, 1891년 7월 2일 ~ 1955년 6월 3일)는 일본 도쿄도 출신의 예술가로, 판화…
온치 고시로(일본어: 恩地 孝四郎, 1891년 7월 2일 ~ 1955년 6월 3일)는 일본 도쿄도 출신의 예술가로, 판화 작품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는 20세기 일본의 창작 판화 운동의 아버지로 평가되며, 사진가로도 활동했다. 그의 작품은 1932년 하계 올림픽 미술 경기의 회화 부문에 출품되었다.
최 남선(崔 南善, 1890년 4월 26일 ~ 1957년 10월 10일)은 대한민국의 문화운동가이며 근대 문학 발전에 기여한…
최 남선(崔 南善, 1890년 4월 26일 ~ 1957년 10월 10일)은 대한민국의 문화운동가이며 근대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있는 반면, 이광수와 함께 거론되는 변절한 친일파이다. 아명은 창흥(昌興), 자는 공륙(公六), 아호는 육당(六堂)이며, 본관은 동주. 한성부에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강원도 철원을 거쳐 경상남도 창원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대한제국의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으나 중퇴와 복학을 되풀이하다가 1907년 와세다 대학 재학 중 동맹 휴학 사건으로 인하여 퇴학 처분되어 귀국했다. 1908년 이광수와 함께 소년지를 창간했으나 한일 합방 후 일제의 압력으로 폐간되었고, 1912년 이광수의 도움으로 《붉은 저고리》, 1913년 《아이들 보이》, 《새별》등의 잡지를 발간하였으나 조선 총독부의 '신문지법' 명령으로 모두 강제 폐간되었다. 1914년에는 잡지 《청춘》을 발간했으나 1918년 일본의 압력으로 폐간당했다. 1919년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49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고,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 낭독하였다. 3.1 운동을 사주한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투옥, 1921년에 석방되었다. 1922년 동명사(東明社)를 설립, 주간잡지 《동명(東明)》을 발행하였고 1924년 《시대일보 (時代日報)》를 창간, 사장에 취임했으나 자금과 총독부의 압력 등으로 폐간, 1925년 동아일보의 객원과 조선일보 객원 논설위원을 지냈다. 1927년 총독부의 연구비와 생계 지원 유혹으로 조선사 편수회에 참여하면서 친일 성향으로 전향하여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친일 행적은 적극적인 친일이 아니라는 반론이 1950년대에 장준하 등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1957년 10월 10일 뇌일혈로 별세한 그는 일제 강점기 시대 동안에 이광수, 홍명희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대표되었던 인물이다.
미키 로후(三木露風, 1889년 6월 23일 ~ 1964년 12월 29일)는 시인이자 비평가·동요 작가·작사가·수필가이다.…
미키 로후(三木露風, 1889년 6월 23일 ~ 1964년 12월 29일)는 시인이자 비평가·동요 작가·작사가·수필가이다. 미키 로후는 필명으로, 본명은 미키 마사오(三木操)이다. 문학을 비롯해 미술사와 미학 등 예술 전반에 조예가 깊어 다양한 이론서를 남겼으며 강의를 통해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도 힘썼다. 그는 효고현(兵庫県) 다쓰노정(龍野町)에서 은행원인 아버지 세쓰지로와 어머니 미도리카와 가타 사이 장남으로 태어났다. 로후가 일곱 살이 되던 해 아버지의 방탕한 생활로 부모가 이혼을 하게 되는데, 어머니는 당시 한 살이던 로후의 동생만을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고 로후는 조부모의 집에 맡겨진다. 청소년기에는 수석으로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문학에만 관심을 쏟은 탓에 졸업이 어려워 오카야마현에 있는 시즈타니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1905년 진학을 위해 도쿄에 가서도 문학에만 심취해 중학교 편입 시험에 떨어지기도 한다. 1907년부터 소마 교후(相馬御風), 노구치 우조(野口雨情) 등과 함께 <와세다 시사(早稲田詩社)>를 결성하고 그해 9월 와세다대학에 입학한다. 이 무렵 그는 단카(短歌)와 절연하고 시에만 전념했는데 매월 서너 군데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 간다. 그러나 이듬해 그동안의 불안정한 생활로 병을 얻게 되어 와세다 병원에 입원했다가 결국 귀향해 요양 생활을 한다. 스물한 살에는 ≪폐원(廢園)≫(1909)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끌었고 1년 만에 다시 ≪적막한 새벽(寂しき曙)≫(1910)을 상재하며 상징주의 시인으로서 입지를 다진다. 그렇지만 1911년 부모를 대신하던 조부가 사망하자 깊은 방황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 ≪흰 손의 사냥꾼(白き手の獵人)≫(1913)을 발표하며 비로소 완성도 높은 상징시의 세계를 구축한다. 또한 가와지 류코(川路柳虹),사이조 야소(西條八十), 야나기사와 다케시(柳澤健) 등과 함께 <미래사(未來社)>라는 순수 예술을 지향하는 모임을 결성하기도 한다. 이렇듯 공백이 없는 활발한 전성기와 높은 문학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뿌리 깊은 고독과 공허함은 그를 고통스럽게 했고 이로 인해 이 시기 종교에 서서히 빠져들며 신앙과 시작(詩作)을 병행한다. ≪환상의 전원(幻の田園)≫(1915)을 출간한 이후에는 홋카이도에 있는 트라피스트 수도원(Trappist Monastery)에 머물며 그 체험 중에 쓴 시를 바탕으로 종교시집인 ≪양심(良心)≫(1915)을 발표한다. 이후 두 차례 더 수도원에 체재한 뒤 1920년 5월에는 문학 개론 및 미학론의 강사직을 제안받아 정주(定住)하기에 이른다. 이후 약 5년간 수도원에서 생활하며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 로후는 수도원 생활을 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창작을 이어 간다. 그러나 수도원에서의 생활은 급격히 변모하는 시단의 변화를 따라잡기 어려워 서서히 문단의 중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1924년 수도원에서 나온 로후는 지금의 도쿄 미타카(三鷹)에 터전을 잡고 문학 활동과 후학의 양성에 힘쓴다. 이 무렵 그의 신앙심은 더욱 깊어져 종교와 관련한 시와 수필을 발표하고 강연을 하며 포교 활동에 힘썼는데, 이에 1927년 일본 최초로 로마 교황으로부터 훈4등급(勳四等) 훈장인 성 세퓔크레 기사장(Chevalier Saint Sépulcre)과 홀리나이트(Holy Knight)의 칭호를 받는 영예를 얻는다. 1964년 12월 21일 로후는 미타카 자택 근처의 우체국 앞에서 택시에 치이는 사고로 치료를 받던 중 12월 29일 76세의 나이로 영면에 든다. 12월 31일 장례식 이후 다마(多摩) 화장터에서 화장했고, 다음 해 1월 18일 가톨릭 기치조지(吉祥寺)교회에서 고별식을 거행했다. 그의 묘는 미타카시 다이세이사(大盛寺) 별원 묘지에 안치되어 있다.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 朔太郎, 1886년 11월 1일 ~ 1942년 5월 11일 )는 일본 근대의 시인이다. 일본 근대시의…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 朔太郎, 1886년 11월 1일 ~ 1942년 5월 11일 )는 일본 근대의 시인이다. 일본 근대시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이시카와 다쿠보쿠(일본어: 石 (いし)川 (かわ)啄 (たく)木 (ぼく))(1886년 2월 20일 ~ 1912년 4월…
이시카와 다쿠보쿠(일본어: 石 (いし)川 (かわ)啄 (たく)木 (ぼく))(1886년 2월 20일 ~ 1912년 4월 13일)는 일본 메이지 시대의 시인 겸 문학평론가이다. 본명은 이시카와 하지메(일본어: 石 (いし)川 (かわ) 一 (はじめ))이다.
무샤노코지 사네아쓰(武者小路実篤)는 일본의 소설가, 시인, 극작가, 화가, 귀족원칙선의원이다. 동료들에게는 무샤(武者)라는…
무샤노코지 사네아쓰(武者小路実篤)는 일본의 소설가, 시인, 극작가, 화가, 귀족원칙선의원이다. 동료들에게는 무샤(武者)라는 호칭(애칭)으로 많이 불렸다고 한다. 일본 예술원 회원이며 문화훈장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증 종3위.
기타하라 하쿠슈(일본어: 北原 白秋 きたはら はくしゅう[*], 1885년 1월 25일 ~ 1942년 11월 2일)는 일본의…
기타하라 하쿠슈(일본어: 北原 白秋 きたはら はくしゅう[*], 1885년 1월 25일 ~ 1942년 11월 2일)는 일본의 시인・가인이다. 본명은 류키치. 후쿠오카현 출신. 와세다 대학 동문.
사토 기요시(佐藤清, 1885년 1월 11일~1960년 8월 15일)는 일본의 시인, 영문학자이다. 미야기현 센다이시…
사토 기요시(佐藤清, 1885년 1월 11일~1960년 8월 15일)는 일본의 시인, 영문학자이다. 미야기현 센다이시 출신으로 본성은 오카(岡)이다. 도쿄 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 간세이 학원에서 근무하던 중 영국으로 유학갔으며 1923년 도쿄 여자고등사범학교의 교수로 취임하였다. 1924년 경성제국대학 창립 시 교수로 부임되어 재차 영국으로 유학갔다. 1945년 정년퇴임 후 아오야마 가쿠인 대학의 교수를 지냈다. 존 키츠, 윌리엄 워즈워스, 퍼시 비시 셸리 등 영국 낭만파 시인을 연구하였다.
다케히사 유메지(일본어: 竹久 夢二, 본명: 다케히사 모지로(일본어: 竹久 茂次郎), 1884년 9월 16일 ~ 1934년…
다케히사 유메지(일본어: 竹久 夢二, 본명: 다케히사 모지로(일본어: 竹久 茂次郎), 1884년 9월 16일 ~ 1934년 9월 1일)는 일본의 시인이자 화가이다. 그는 주로 아름다운 여성과 소녀를 그린 일본화 삽화로 알려져 있으며, 이 밖에도 책 표지, 신문 연재 삽화, 후로시키, 엽서, 문양이 들어간 와시 등 다양한 작품을 제작했다.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郎, 1883년 3월 13일 ~ 1956년 4월 2일)는 일본에서 국민 시민으로 알려진 일본의…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郎, 1883년 3월 13일 ~ 1956년 4월 2일)는 일본에서 국민 시민으로 알려진 일본의 시인이자 조각가이다. 그의 생애 동안 720여 편에 달하는 자연과 인간, 사랑을 노래하는 시 작품을 남겼다. 또한 그는 70여 점의 조각 작품을 완성한 조각가로 활약했으며, 이외에도 번역, 평론 등에서 업적을 남긴 예술인으로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노구치 우조(일본어: 野口雨情, 1882년 5월 29일 ~ 1945년 1월 27일)는 일본의 시인, 동요·민요 작사가이다.…
노구치 우조(일본어: 野口雨情, 1882년 5월 29일 ~ 1945년 1월 27일)는 일본의 시인, 동요·민요 작사가이다. 기타하라 하쿠슈, 사이조 야소와 함께 일본 아동문학계의 3대 시인으로 손꼽혔다. 본명은 노구치 에이키치(野口英吉)였으며, 이바라키현 다가 군 이소하라 정 (지금의 기타이바라키시) 출신이다.
오사나이 가오루(일본어: 小 (お)山 (さ)内 (ない) 薫 (かおる), 1881년 7월 26일 ~ 1928년 12월…
오사나이 가오루(일본어: 小 (お)山 (さ)内 (ない) 薫 (かおる), 1881년 7월 26일 ~ 1928년 12월 25일)는 일본의 극작가, 소설가, 시인 연극연출가로, 일본 최초의 서구식 소극장인 쓰키지 소극장(일본어: 築 (つき)地 (じ)小 (しょう)劇 (げき)場 (じょう) 쓰키지쇼게키조[*])을 세워 일본에 근대 연극을 소개하였다.
스스키다 규킨(일본어: 薄田 泣菫, 1877년 5월 19일 ~ 1945년 10월 9일)은 제국 시대의 일본의 시인. 본명은…
스스키다 규킨(일본어: 薄田 泣菫, 1877년 5월 19일 ~ 1945년 10월 9일)은 제국 시대의 일본의 시인. 본명은 쥰스케(일본어: 淳介)이다. 시마자키 도손의 영향으로 1899년 처녀 시집 <보테키슈>(暮笛集)을 간행하여 일약 유명해졌고, 1960년 대표시집 <하쿠요큐>(白羊宮)를 간행하여 시단의 제일인자가 되었다. 시풍은 단정·전아(典雅), 고어·아어(雅語)를 자유로이 구사하여 왕조적 기품을 담아 일본 근대시 중 가장 완성된 풍격을 보이고 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나 기타하라 하쿠슈 등 동시대 이후의 시인에게 준 영향은 적지 않다.
시마자키 도손(일본어: 島崎 藤村; 1872년 3월 25일 ~ 1943년 8월 22일)은 일본 메이지 시대의 시인이자…
시마자키 도손(일본어: 島崎 藤村; 1872년 3월 25일 ~ 1943년 8월 22일)은 일본 메이지 시대의 시인이자 메이지에서 쇼와까지의 소설가다. 본명은 시마자키 하루키(島崎春樹)이다. 1897년 시집 <와카나슈(若菜集)>를 낸 후 <히토하부네(一葉舟)>(1898), <라쿠바이슈(落梅集)>(1901) 등을 발표, 화려한 낭만시인으로서 출발했다. 그러나 1899년부터 산문으로 전환, 1903년 <와라조리(藁草履)> 등을 발표했고, 1906년 3월 <하카이>를 발표하여 근대문학에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고 동시에 문단에 확고한 지위를 구축했다. 1943년 8월 22일 뇌출혈로 죽었다. 근대문학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문호(文豪)이다.
구니키다 돗포(일본어: 国木田 独歩, 1871년 8월 30일 ∼ 1908년 6월 23일)는 메이지시대에 활동한 일본 소설…
구니키다 돗포(일본어: 国木田 独歩, 1871년 8월 30일 ∼ 1908년 6월 23일)는 메이지시대에 활동한 일본 소설, 낭만시 저자이며 일본 자연주의의 발명가들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돗포의 작품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잔잔하면서도 인간의 심부를 해부하는 예리함, 내면의 자신과 직면하게 만드는 강한 흡입력, 스토리의 전개에 따른 의외성과 진실의 보편성을 아우르는 문학적 균형 감각을 갖추고 인생의 해답을 끊임없이 자문하게 만든다.
기타무라 도코쿠(일본어: 北村透谷, 1868년 11월 16일 ~ 1894년 11월 15일)는 일본의 비평가, 시인, 메이지…
기타무라 도코쿠(일본어: 北村透谷, 1868년 11월 16일 ~ 1894년 11월 15일)는 일본의 비평가, 시인, 메이지 시대의 문학평론을 이끌었으며 시마자키 도손에게 영향을 주었다.
호리구치 구마이치(일본어: 堀口九萬一, 1865년 2월 23일 ~ 1945년 10월 30일)은 일본의 외교관, 언론인…
호리구치 구마이치(일본어: 堀口九萬一, 1865년 2월 23일 ~ 1945년 10월 30일)은 일본의 외교관, 언론인, 한시인(漢詩人), 수필가이다. 호는 조조(일본어: 長城)이다. 시인 호리구치 다이가쿠(일본어: 堀口大學)의 아버지이다.
오와다 다케키(일본어: 大和田建樹, 1857년 5월 22일 ~ 1910년 10월 1일)는 일본의 시인, 작사가…
오와다 다케키(일본어: 大和田建樹, 1857년 5월 22일 ~ 1910년 10월 1일)는 일본의 시인, 작사가, 고문학자이다. 도쿄 고등 사범학교(현재:쓰쿠바 대학교)의 교수.
이노우에 데쓰지로(일본어: 井上 (いのうえ) 哲次郎 (てつじろう): 1856년 2월 1일(안정 2년 12월…
이노우에 데쓰지로(일본어: 井上 (いのうえ) 哲次郎 (てつじろう): 1856년 2월 1일(안정 2년 12월 25일)-1944년(소화 19년) 12월 7일)는 일본의 철학자・시인이다. 호는 손헌(巽軒). 형이상(形而上, Metaphysical)이라는 한역어의 고안자이며, 기독교를 일본의 국체와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기독교도는 국가에 불충한 것이라고 공격했다. 치쿠젠국 태생. 서양철학을 일본에 소개하여 제국대학에서 일본인 최초의 철학 교수가 되었다. 또한 동양철학 연구의 개척자이기도 하며, 정치적 이데올로그였고, 신체시 운동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대동문화학원 제2대 총장 등을 역임했다. 치쿠젠국 다자이후에서 의사 후나코시 토시타츠(船越俊達)의 3남으로 태어났다. 메이지 원년 하카타에서 영어를 배우고 1871년 나가사키의 영학숙 광운관에 입학. 1875년 동경개성학교에 입학. 1877년 동경대학에 입학해 철학과 정치학을 전공했다. 1880년 졸업, 졸업식 학생대표를 맡았다. 이후 문부성 어용괘(御用掛)가 되어 『동양철학사』를 편찬하기 시작했다. 1882년 동경대 조교수. 동년 토야마 마사카즈, 야타베 료키치와 『신체시초』를 간행했다. 1884년 독일 유학(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라이프치히 대학교, 베를린 대학교), 1890년 귀국해 동경제국대학 문학과 교수가 되었다. 1891년 박사학위를 받고 1895년 동경학사회원(제국학사원의 전신) 회원으로 임명되었다. 1898년 동경제대 문과대 학장이 되었고 1923년 퇴직했다. 1924년 10월부터 1925년 11월까지 초대 귀족원 제국학사원회원의원을 지냈다. 1925년에는 대동문화학원 제2대 총장에 취임했다. 하라 탄잔에게서 배운 불교에서 힌트를 얻어 이노우에 엔료 등과 함께 원융실재론을 제창했다. 국가주의의 입장에서 종교에 대한 국가의 우월성을 주장했다. 기독교도 우치무라 칸조가 교육칙어 봉독식에서 천황 친필 서명에 절하지 않은 불경사건 당시 기독교를 격렬히 비난하고 우에무라 마사히사와 논쟁했다. 그 밖에도 체제 측의 이데올로그로서 메이지 정부의 도덕주의 사상계의 칼잡이 대장 노릇을 했다. 그러나 국민도덕으로서의 교육칙어에 한계를 느끼고 세계도덕을 설파하기에 이르렀으며, 원융실재론을 원용하여 국민도덕과 세계도덕의 모순을 해소하고자 했다. 1927년 『우리 국체와 국민도덕』에서 “삼종신기 가운데 검과 거울은 없어졌고, 지금 남아있는 것은 모조품”이라고 썼다가 토야마 미츠루 등 국가주의자들에게 불경이라고 비판받아 책은 발매금지 처분되고 공직을 사직했다.
라이 산요 (頼 山陽, らい さんよう, 안에이 9년 12월 27일(1781년 1월 21일) - 덴포 3년 9월…
라이 산요 (頼 山陽, らい さんよう, 안에이 9년 12월 27일(1781년 1월 21일) - 덴포 3년 9월 23일(1832년 10월 16일))는 오사카 출생의 에도 시대 후기의 역사가, 사상가, 한시인, 문인이다. 아명은 히사타로(久太郎(ひさたろう)), 이름은 노보루(襄(のぼる)), 자는 자성(子成)이다. 산요(山陽)라는 호 외에도 삼십육봉외사(三十六峯外史)라는 호도 있었다. 주요 저서인 《일본외사》는 막부 말기 일본의 존왕양이 운동에 영향을 주어 일본 역사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산요는 1891년(메이지 24년) 정4위로 추증되었고, 1931년(쇼와 6년) 종3위로 추증되었다.
미야자와 겐지(일본어: 宮 (みや)沢 (ざわ) 賢 (けん)治 (じ), 1896년 8월 27일 ~ 1933년 9월 21일)는…
미야자와 겐지(일본어: 宮 (みや)沢 (ざわ) 賢 (けん)治 (じ), 1896년 8월 27일 ~ 1933년 9월 21일)는 이와테현 출신의 일본의 문인이자 교육자, 에스페란티스토이다. 향토애가 짙은 서정적인 필치의 작품을 다수 남겼으며, 작품 중에 다수 등장하는 이상향을 고향인 이와테의 에스페란토식 발음인 ihatovo라고 명명하였다. 지주들의 수탈로 가난에 허덕이던 농촌의 비참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의 원작인 《은하철도의 밤》을 짓는 등의 문학활동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사후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점점 높아져 국민작가의 이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널리 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