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오성(金午星, 1908년 ~ 1953년?)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공산주의 이론가, 문학평론가이다. 본명은 김형준(金亨俊).
평론가: 194명
김오성(金午星, 1908년 ~ 1953년?)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공산주의 이론가, 문학평론가이다. 본명은 김형준(金亨俊).
시미즈 이쿠타로(清水 幾太郎, 1907년 7월 9일 ~ 1988년 8월 10일)는 일본의 사회학자, 문화평론가, 대중…
시미즈 이쿠타로(清水 幾太郎, 1907년 7월 9일 ~ 1988년 8월 10일)는 일본의 사회학자, 문화평론가, 대중 지식인이다. 가쿠슈인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쳤다. 1907년 도쿄 니혼바시에서 태어났다. 1931년 도쿄 제국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였으며 쇼와 연구회와 요미우리 신문에서 활동했다. 전후 1949년에 가쿠슈인 대학 사회학과 교수가 되어 1969년 대학분쟁 중에 이른 은퇴를 하기 전까지 근무했다. 1949년 평화문제담화회(平和問題談話会)를 설립하는 등 일본의 평화 운동과 1960년 안보 투쟁의 주요 인물 중 하나였으며, 1948년 사회학 교재인 《사회학 강의》(社会学講義)를 저술했다. 1988년 사망했다.
김기림(金起林, 1907년 4월 5일~불명)은 한국의 시인이자 문학 평론가이다. 본명은 김인손(金仁孫, 아명(兒名)은…
김기림(金起林, 1907년 4월 5일~불명)은 한국의 시인이자 문학 평론가이다. 본명은 김인손(金仁孫, 아명(兒名)은 金寅孫)이며, 편석촌(片石村)이라는 아호를 사용하였다.
가메이 가쓰이치로(일본어: 亀井勝一郎, 1907년 2월 6일~1966년 11월 14일)는 일본의 문예평론가이다. 일본 예술원…
가메이 가쓰이치로(일본어: 亀井勝一郎, 1907년 2월 6일~1966년 11월 14일)는 일본의 문예평론가이다. 일본 예술원 회원으로, 문예지 《일본낭만파》(日本浪曼派)를 창간하였다. 저서로 《야마토 고사풍물지》(大和古寺風物誌), 《현대사의 과제》(現代史の課題) 등이 있다.
사카구치 안고(일본어: 坂 (さか)口 (ぐち) 安 (あん)吾 (ご), 1906년 10월 20일 ∼ 1955년 2월 17일)은…
사카구치 안고(일본어: 坂 (さか)口 (ぐち) 安 (あん)吾 (ご), 1906년 10월 20일 ∼ 1955년 2월 17일)은 일본의 문학가로 본명은 사카구치 헤이고(坂 (さか)口 (ぐち) 炳 (へい)五 (ご))이다. 1906년 10월 20일 니가타현 니가타시에서 아버지 니이치로와 어머니 아사 사이의 5남으로 태어났다. 사카구치가의 선조는 지금의 후쿠오카현 가라쓰의 도공이었다가 후에 니가타로 이동해 온 지방 부호다. 아버지 니이치로는 당시 중의원 의원이자 니가타 신문사 사장이었고 한시 시인으로도 알려진 정치가로서 언제나 다망했으며 장남을 제외한 자식들에게는 무관심하고 냉담했다. 사카구치가의 재산은 체면과 의리를 중시했던 니이치로의 대에서 탕진되게 된다. 니이치로의 전처와 첩의 아이까지 합한 열세 명의 형제 중 열두 번째 아이로 태어난 안고는, 어린 시절 이미 방랑벽이 있었으며, 골목대장 행세를 하며 싸움질을 하고 돌아다녀 어머니의 미움을 사는 한편, 주로 무사들의 군담을 숙독했고, 남몰래 닌자의 인술을 연구하기도 했다. 1919년 니가타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이 무렵부터 집과 학교를 싫어해서 수업을 빠지고 홀로 방황하는 날들을 보내다 낙제하게 되고,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발자크 등의 소설을 탐독하며 지내다가 결국 1922년에 퇴학당했다. 그해 가을 상경해 부잔 중학교에 입학했고 에드거 앨런 포와 이시카와 다쿠보쿠 등을 인생의 낙오자로서 사랑하며 그들의 작품을 숙독했다. 막연하게 엄격한 구도자의 삶을 동경하여 1926년, 도요 대학 인도철학윤리과에 입학한다. 입학 후 불교서와 철학서를 섭렵하는 데 몸을 혹사하며 공부에 매진한 탓에 생긴 신경쇠약 증세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티베트어, 라틴어, 프랑스어 등 어학을 맹렬히 공부한다. 1930년, 대학을 졸업한 후 동인지 <말>과 <청마>를 창간했다. 1931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바람 박사>와 <구로타니 마을>이 소설가 마키노 신이치의 극찬을 받음으로써 신진 작가로 급부상한다. 1932년 작가 야다 쓰세코를 알고 사랑에 빠지지만 1936년 절교한 후 신생을 기하며 교토를 방랑하면서 그녀와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눈보라 이야기≫를 썼다. 1946년, 전후의 시대적 본질을 예리하게 통찰하고 파악한 <타락론>과 <백치>에 의해 일약 시대의 총아, 오피니언 리더로 떠오르며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1947년 가지 미치요와 결혼하고, 전후의 시대상을 반영한 소설과 에세이, 탐정소설, 역사 연구, 문명 비평 르포르타주 등 다채로운 집필 활동을 전개하여 전후의 난세에 문화와 역사 및 사회의 흐름에 대한 대중의 지적 갈증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와 동시에 세무 당국을 상대로 한 소송, 경륜 부정 사건 고발, 각성제와 수면제 중독에 의한 정신착란 발작 등 실생활 면에서도 언제나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1955년 2월 17일 지방 취재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자택에서 뇌일혈로 급사했다. 향년 50세였다. 전후 일본 사회의 혼란과 퇴폐를 반영한 작풍을 확립하고 시대의 새로운 윤리를 제시함으로써 일본인에게 충격과 감동을 안겨준 사카구치 안고는 다자이 오사무와 오다 사쿠노스케 등과 함께 전후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무뢰파 작가로 평가된다.
구본웅(具本雄, 1906년 3월 7일 ~ 1952년 2월 2일)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서양화가, 조각가, 미술평론가이다.…
구본웅(具本雄, 1906년 3월 7일 ~ 1952년 2월 2일)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서양화가, 조각가, 미술평론가이다. 아호는 서산(西山)이다.
김광섭(金珖燮, 1905년 9월 22일~1977년 5월 23일)은 일제강점기 시대부터 활동했던,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대학…
김광섭(金珖燮, 1905년 9월 22일~1977년 5월 23일)은 일제강점기 시대부터 활동했던,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대학 교수였었다. 경희대 국문과 교수(1961.08.~1962.08.)를 지낸 그는 아울러, 번역문학가 겸 문학평론가이기도 하였으며, 전직 정치인이었었다. 호(號)는 이산(怡山)이다. 그의 사후, 그의 정신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1989년에 그의 12주기를 기하여, 《이산문학상》이 만들어져, 〈문학과지성사〉의 주관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토 세이(일본어: 伊藤整, いとう せい, 1905년 1월 16일 - 1969년 11월 15일)는 일본의 소설가, 시인 겸…
이토 세이(일본어: 伊藤整, いとう せい, 1905년 1월 16일 - 1969년 11월 15일)는 일본의 소설가, 시인 겸 평론가이다. 본명은 이토 히사시이다. 홋카이도 마쓰마에 군 태생으로 1906년에 시오타니 촌(현재의 오타루시 시오타니 정)으로 이주하였다. 구제 오타루 중학교를 거쳐 오타루고등상업학교 졸업후 교편을 잡다가 도쿄로 상경하여 도쿄상과대학(현재의 히토쓰바시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하였다. 20세기 일본문학의 중요한 문예평론가 중 한 명이다. 쇼와 초기에 제임스 조이스의 영향을 받아 신심리주의를 제창하였고, 작품 《율리시즈》를 번역하였다. 초기에는 시인으로서 활동하였으나, 이후 소설 및 평론 쪽으로 관심을 옮겼다. 사소설 문학의 논리화를 추구함과 동시에 창작 및 집필 활동을 병행하였다. 그의 소설에 《나루미 센키치(鳴海仙吉)》 《범람(氾濫)》등이 있다. 평론서로 《일본문단사》 등을 저술하였다. 1969년 11월 15일, 위암으로 사망하였고, 1972년 신초샤에서 《이토 세이 전집》이 간행되었다. 장남 이토 시게루는 도쿄 대학 명예교수로 도시공학 전공이며, 차남 이토 레이는 전직 교수로 수필가이다.
아마치 슌이치(일본어: 天知 俊一, 1903년 12월 30일 ~ 1976년 3월 12일)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지도자 및…
아마치 슌이치(일본어: 天知 俊一, 1903년 12월 30일 ~ 1976년 3월 12일)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지도자 및 야구 평론가이다.
곤 히데미(일본어: 今 日出海, 1903년 11월 6일 ~ 1984년 7월 30일)는 일본의 쇼와 시대에 활동한 문학평론가…
곤 히데미(일본어: 今 日出海, 1903년 11월 6일 ~ 1984년 7월 30일)는 일본의 쇼와 시대에 활동한 문학평론가, 수필가이다. 1903년 11월 6일 홋카이도 하코다테시에서 태어난 곤은 1918년 도쿄로 이주하여 1928년 도쿄 제국대학 프랑스어문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작품》(作品) 등 잡지의 동인으로 참여하고 《문학계》에 합류하였다. 1935년 최승희를 주연으로 한 영화 《반도의 무희》(半島の舞姫)를 제작했다. 1939년 메이지 대학 교수로 근무하다가 1941년 11월 징집되어 필리핀에서 육군 보도반원으로 복무했다. 전후에 문부성에서 근무하였다. 1950년 단편소설 《천황의 모자》(天皇の帽子)로 23회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 1968년부터 1972년까지 문부성에서 초대 문화청 장관을 지냈다. 1984년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에서 뇌경색으로 사망하였다.
김진섭(金晉燮, 1903년 8월 24일~?)은 일제강점기 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문학 평론, 연극 평론, 수필, 시문학…
김진섭(金晉燮, 1903년 8월 24일~?)은 일제강점기 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문학 평론, 연극 평론, 수필, 시문학 등의 분야에서 활동한 작가이다. 번역가, 독문학자, 방송인, 교육인으로도 활동했다.
양주동(梁柱東, 1903년 8월 16일~1977년 2월 4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문학평론가, 국문학·영문학자, 문학번역가…
양주동(梁柱東, 1903년 8월 16일~1977년 2월 4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문학평론가, 국문학·영문학자, 문학번역가, 수필가였으며, 문학 담당 대학 교수이기도 하였었다. 본관은 남해(南海)이며, 호(號)는 무애(无涯)로,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후펑(胡風, 1902년 11월 2일 ~ 1985년 6월 8일)은 중국 현대의 평론가, 좌익 작가이다. 본명은…
후펑(胡風, 1902년 11월 2일 ~ 1985년 6월 8일)은 중국 현대의 평론가, 좌익 작가이다. 본명은 장광인(張光人). 필명은 곡비(谷非)라고도 한다. 후베이성(湖北省) 치춘 사람. 1926-1927년 기간 북벌에 참여하였다. 1929년 일본 유학 후 1931년 일본 공산당에 가입하여 좌련 동경지부를 거쳐 1933년 귀국하여 루쉰의 상하이 중국좌익작가연맹에서 선전부장 등을 맡아 활동하였다. 국방문학논전(國防文學論戰) 등에서 저우양(周揚) 등과 대립하였고, 항일전쟁 중에는 중국 공산당의 영도 하에서 충칭(重慶)에서 <칠월(七月)> <희망(希望)> 등을 발간하여 혁명 활동을 폈으며, 혁명 문학의 '주관적 전투정신(主觀的戰鬪精神)'을 주장하여 <문예강화(文藝講話)> 노선과 다른 혁명 문학 정신을 제창하기도 했다. 중공 정권 성립 이후 중국작가협회 이사, 전인대 위원 등직에서 활동하였고 항미원조 운동을 지지하는 저술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1954년에는 마오쩌둥주의 문예 정책의 근본적 변경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하여 1955년 중공 지도부로부터 전면적 비판을 받았으며 반혁명분자로 지목되어 체포당했다. 중국 개혁개방 후인 1979년 석방되었으며 1980년대에 와서 중국 공산당에 의해서 복권이 이루어졌다. 죽기 전에, 중국작가협회 고문, 정협 위원 등직을 맡았으며, 1985년 베이징에서 사망하였다.
고바야시 히데오(小林 秀雄, 1902년 4월 11일 ~ 1983년 3월 1일)는 일본의 문예평론가, 편집자, 작가, 고미술…
고바야시 히데오(小林 秀雄, 1902년 4월 11일 ~ 1983년 3월 1일)는 일본의 문예평론가, 편집자, 작가, 고미술 수집 감정가이다. 1902년 4월 11일 도쿄도 간다에서 태어났다. 1928년 도쿄제국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고, 1929년 문예지 《개조》에 평론으로 입상했다. 1933년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과 잡지 《문학계》를 창간했다. 1935년부터 《문학계》의 편집자로 〈도스토옙스키의 생활〉을 연재했다. 1938년 일본군의 초청을 받아 분게이슌주의 특파원으로 중국을 방문하고, 같은해 6월 메이지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었다. 1940년 일본의 전쟁동원을 지원하는 문예총후운동(文芸銃後運動)의 일환으로 조선과 만주국을 순회했으며, 같은해 《문학계》의 편집위원을 사임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에는 이전의 행적을 비판받았으나, 미군정의 기소를 받지는 않았다. 1946년 8월 메이지대학 교수직을 사임했다. 그 후 고미술품을 수집하며, 수필 《나의 인생관》(私の人生観) 등을 집필했다. 1967년 일본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고바야시 히데오(小林 秀雄, 1902년 4월 11일 ~ 1983년 3월 1일)는 일본의 문예평론가, 편집자, 작가, 고미술…
고바야시 히데오(小林 秀雄, 1902년 4월 11일 ~ 1983년 3월 1일)는 일본의 문예평론가, 편집자, 작가, 고미술 수집 감정가이다. 1902년 4월 11일 도쿄도 간다에서 태어났다. 1928년 도쿄제국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고, 1929년 문예지 《개조》에 평론으로 입상했다. 1933년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과 잡지 《문학계》를 창간했다. 1935년부터 《문학계》의 편집자로 〈도스토옙스키의 생활〉을 연재했다. 1938년 일본군의 초청을 받아 분게이슌주의 특파원으로 중국을 방문하고, 같은해 6월 메이지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었다. 1940년 일본의 전쟁동원을 지원하는 문예총후운동(文芸銃後運動)의 일환으로 조선과 만주국을 순회했으며, 같은해 《문학계》의 편집위원을 사임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에는 이전의 행적을 비판받았으나, 미군정의 기소를 받지는 않았다. 1946년 8월 메이지대학 교수직을 사임했다. 그 후 고미술품을 수집하며, 수필 《나의 인생관》(私の人生観) 등을 집필했다. 1967년 일본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나카노 시게하루(일본어: 中野 重治, 1902년 1월 25일 ~ 1979년 8월 24일)는 일본의 시인, 소설가…
나카노 시게하루(일본어: 中野 重治, 1902년 1월 25일 ~ 1979년 8월 24일)는 일본의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정치인이다. 대표작으로 소설 《노래의 이별》(歌のわかれ), 《마음》(むらぎも), 《갑을병정》(甲乙丙丁) 등이 있으며, 대한민국에서는 주로 1929년 《카이조》에 게재한 시 〈비 내리는 시나가와역〉(雨の降る品川驛)으로 알려져 있다. 1902년 후쿠이현에서 태어났다. 도쿄 제국대학 독일문학과를 졸업했다. 1931년 일본공산당에 입당하였으나 1934년 검거 후 전향을 조건으로 출옥되었고, 1937년 집필 금지 처분을 받았다. 1945년 복귀하여 신일본문학회의 월간지 《신일본문학》 창간에 참여하였다. 1959년 《배꽃》(梨の花)으로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했다. 1947년부터 1950년까지 일본공산당 소속으로 참의원 의원을 지냈으나 1964년 출당되었다. 1979년 담낭암으로 사망하였다.
가와카미 데쓰타로(일본어: 河上 徹太郎 1902년 1월 8일 ~ 1980년 9월 22일)는 일본의 문예평론가이자…
가와카미 데쓰타로(일본어: 河上 徹太郎 1902년 1월 8일 ~ 1980년 9월 22일)는 일본의 문예평론가이자 음악평론가이다. 일본에 발레리와 지드를 번역, 소개하며 프랑스 상징주의를 바탕으로 평론을 전개하였고, 셰스토프를 일본에 소개했다. 고바야시 히데오, 나카하라 주야 등과 교류했다. 1962년 일본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하마자키 신지(일본어: 浜崎 真二, 1901년 12월 10일~1981년 5월 6일)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야구…
하마자키 신지(일본어: 浜崎 真二, 1901년 12월 10일~1981년 5월 6일)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야구 지도자, 야구 해설가·평론가이다. 히로시마현 구레시 출신이며 현역 시절 포지션은 투수였다. 현역 시절 한큐 브레이브스에서 활약했고 선수 겸임 감독으로서 일본 프로 야구 역대 최고령 공식전 출장 기록을 2014년 9월 5일 야마모토 마사(주니치)에 의해서 깨질 때까지 64년 간에 걸쳐 보유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신장은 150cm에서 160cm까지 등의 여러 설이 있어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가장 키가 작은 선수로 여겨질 수 있다. 친동생 하마자키 다다하루도 히로시마 상업학교 시절 쓰루오카 가즈토 등과 함께 고교 야구 하계 및 춘계 대회에서 연패 달성했을 때의 선수(투수·내야수)로 활약했고 그 후 심판으로서 헤이와다이 사건의 주심을 맡아 역사적인 판단을 내린 것으로도 알려졌다.
오자키 호쓰미(일본어: 尾崎 秀実, 1901년 4월 29일 ~ 1944년 11월 7일)는 일본의 언론인이다. 아사히 신문에서…
오자키 호쓰미(일본어: 尾崎 秀実, 1901년 4월 29일 ~ 1944년 11월 7일)는 일본의 언론인이다. 아사히 신문에서 근무하였으며, 공산주의자였다. 총리 고노에 후미마로의 자문역이었으며, 소련의 정보요원이자 리하르트 조르게의 정보원이었다. 1941년 10월 간첩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1944년 11월 7일 외환죄로 처형되었다. 오자키는 감옥에서 아내와 딸에게 편지를 썼는데, 사후인 1946년 《사랑은 별들의 소나기와 같다》(愛情はふる星のごとく : 獄中通信)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나카이 마사카즈(일본어: 中井正一, 1900년 2월 14일 ~ 1952년 5월 18일)는 일본의 미학가, 평론가…
나카이 마사카즈(일본어: 中井正一, 1900년 2월 14일 ~ 1952년 5월 18일)는 일본의 미학가, 평론가, 사회운동가이다. 히로시마현 다케하라시 출신으로, 오노미치시에서 성장하였다. 1933년에는 다키가와 사건과 관여되어 있어 주요 목적으로는 처분을 반대하게 되는 그룹 멤버의 일원으로 참여시킨 바 있다. 또한 1952년에는 위암으로 타계하였다. 주요한 연구 분야는 미학이다.
김동명(金東鳴, 본명: 김동오, 본명 한자: 金東嗚, 1900년 2월 4일~1968년 1월 21일)은 대한민국의 시인이고…
김동명(金東鳴, 본명: 김동오, 본명 한자: 金東嗚, 1900년 2월 4일~1968년 1월 21일)은 대한민국의 시인이고, 정치평론가 겸 시사평론가이자, 수필가 및 대학 교수 겸 정치인이다. 대한제국 강원도 강릉군 출생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호(號)는 초허(超虛)이다. 대한제국 강원도 강릉군 명주 사천면 노동리 71번지에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1902년 대한제국 한성부 남서 회현방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1903년 대한제국 강원도 강릉군 강릉면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고, 1904년 대한제국 함경남도 원산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냈으며, 1905년 대한제국 함경남도 함흥에서 성장하였고, 1908년 대한제국 함경남도 원산으로 재차 이주하였지만, 영생고등보통학교 2학년 시절이던 1913년 6월 4일경을 기하여 다시 일제 강점기 조선 함경남도 함주군 흥남으로 마지막 이주하였다. 제5대 초선 참의원(1960년 7월 ~1961년 5월)을 지내기도 했으며, 이후 1965년 6월경에 시문학 분야도 절필 및 은퇴 선언했고 1968년 고혈압으로 인해 사망한 그의 묘는, 대한민국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노동하리에 있다.
미야모토 유리코(일본어: 宮本 百合子, 1899년 2월 13일 ~ 1951년 1월 21일)는 일본의 소설가, 사회 활동가이자…
미야모토 유리코(일본어: 宮本 百合子, 1899년 2월 13일 ~ 1951년 1월 21일)는 일본의 소설가, 사회 활동가이자 문학평론가로 다이쇼 시대와 초기 쇼와 시대에 활동하였다. 프롤레타리아 해방과 여성 해방 운동에 참여한 것과 그의 자서전으로 알려져 있다. 미야모토는 미국과 소련을 다녀와 귀국하였으나 여러 저술들이 검열되었고 정치적 관점으로 인해 반복적으로 구속되었다. 주요한 저술로 《반슈 평야》(播州平野), 《풍지초》(風知草) 등이 있다. 그와 남편인 미야모토 겐지는 일본의 여성과 노동계급 해방운동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평가된다. 혼전 성은 주조(中條)이다.
요코미쓰 리이치(일본어: 横 (よこ)光 (みつ) 利 (り)一 (いち), 1898년 3월 17일 ~ 1947년 12월…
요코미쓰 리이치(일본어: 横 (よこ)光 (みつ) 利 (り)一 (いち), 1898년 3월 17일 ~ 1947년 12월 30일)는 일본의 소설가, 문학 비평가이다. 기쿠치 간의 제자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함께 다이쇼 시대와 쇼와 시대의 신감각파(일본어: 新感覚派)로 분류되는 주요 소설가로 활동했다. 소설 《태양》(日輪)과 《파리》(蝿)로 등단했으며, 1931년에 발표한 소설 《기계》는 일본 모더니즘 문학의 정점에 올랐다고 평가받았다. 또 1935년에는 형식주의를 비판한 논문인 《순수소설론》(純粋小説論)을 발표하여 문학 평론 활동을 벌였다. 1937년에는 서양과 동양 문명의 갈등을 표현한 장편 소설 《여수》(旅愁)의 집필을 시작했으나 도중에 집필을 중단하는 등 완성하지 못하고 미완으로 남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에는 일본 제국의 패전 직후 당시 사회상에서 느낀 단상을 표현한 《밤의 구두》(夜の靴)를 집필했다.
미키 기요시(일본어: 三木 淸 미키 키요시[*], 1897년 1월 5일 - 1945년 9월 26일)는 일본의 철학자…
미키 기요시(일본어: 三木 淸 미키 키요시[*], 1897년 1월 5일 - 1945년 9월 26일)는 일본의 철학자, 문학평론가이다. 윤리철학자인 니시다 기타로의 제자로, 교토 학파의 주요한 일원이었다. 한때 일본 마르크스주의 운동에 가담하였다. 1945년 9월 도요타마 형무소에서 신장염으로 사망했다.
미시마 미치하루(三島彌太郎)는 일본의 소설가, 극작가, 연극 평론가이다. 작위는 자작. 필명은 미시마 쇼도(三島章道). 시조…
미시마 미치하루(三島彌太郎)는 일본의 소설가, 극작가, 연극 평론가이다. 작위는 자작. 필명은 미시마 쇼도(三島章道). 시조 다카우타(四条隆謌) 후작의 외손. 미시마 야히코의 조카
아사카와 다쿠미(일본어: 浅川 巧 (あさかわ たくみ) 아사카와 다쿠미[*], 1891년 1월 15일 ~ 1931년 4월…
아사카와 다쿠미(일본어: 浅川 巧 (あさかわ たくみ) 아사카와 다쿠미[*], 1891년 1월 15일 ~ 1931년 4월 2일)는 일제강점기 시대 한국에서 근무한 일본의 도예학자이며, 조선 도예의 고유성을 연구하여 현대 한국의 도예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야마카와 기쿠에(일본어: 山 (やま)川 (かわ) 菊 (きく)栄 (え), 1890년 11월 3일 ~ 1980년 11월 2일)는…
야마카와 기쿠에(일본어: 山 (やま)川 (かわ) 菊 (きく)栄 (え), 1890년 11월 3일 ~ 1980년 11월 2일)는 일본의 수필가, 사회주의 운동가, 여성해방운동가다. 도쿄에서 개명된 무가의 여식으로 태어나 1912년 여성영학숙(츠다주쿠대학의 전신)을 졸업했다. 1916년 야마카와 히토시와 결혼했다. 전전시대에 키쿠에는 적란회를 비롯한 사회주의 여성단체의 설립회원으로서 일본 여성주의의 전개에 지대하게 기여했다. 그녀는 자유주의적 여성주의 진영을 “부르주아 부인들의 자선도락”이라고 맹공하는 한편, 사회주의 조직의 남성중심성 역시 비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인 1947년 노동성 초대 부인소년국장으로 취임하여 1951년까지 재직했다.
야나기 무네요시(일본어: 柳宗悅, 1889년 3월 21일 ~ 1961년 5월 3일)는 일본에서 민예운동을 일으킨 사상가이자…
야나기 무네요시(일본어: 柳宗悅, 1889년 3월 21일 ~ 1961년 5월 3일)는 일본에서 민예운동을 일으킨 사상가이자 미술평론가, 미술사학자이다. 학습원(學習院) 고등부에 재학할 때 문예지 《시라카바》(白樺)를 만들었다. 1913년 도쿄 제국 대학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유럽 유학 후 귀국하여 1919년에서 1923년까지 도요 대학에서 종교학 교수로 있었다. '사라지는 한 조선 건축물에 대하여'를 1922년 《개조》(改造) 9월호에 발표하는 등의 논설 활동을 했고, 1924년 서울에 조선 민속 미술관을 세우고 이조 도자기 전람회를 개최했다. 한국의 전통 미술 및 공예품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이에 대한 평론 및 수집을 하였다. 한국의 미를 설명하면서 한국 민족의 특성을 심도있게 분석하였다. 민예학에 조예가 깊었는데 그 대표적인 성과가 1936년 도쿄도 메구로구에서의 민예관 설립이다. 일제 강점기 광화문 철거 당시 철거를 강력하게 반대하여 타국의 문화유산에 대한 가치와 존중을 표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4년 9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 朔太郎, 1886년 11월 1일 ~ 1942년 5월 11일 )는 일본 근대의 시인이다. 일본 근대시의…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 朔太郎, 1886년 11월 1일 ~ 1942년 5월 11일 )는 일본 근대의 시인이다. 일본 근대시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히라쓰카 라이초(일본어: 平塚 らいてう, 1886년 2월 10일 ~ 1971년 5월 24일)는 일본의 사상가, 평론가…
히라쓰카 라이초(일본어: 平塚 らいてう, 1886년 2월 10일 ~ 1971년 5월 24일)는 일본의 사상가, 평론가, 작가, 여성주의자이며 쇼와 시대의 여성 운동 지도자이다. 본명은 히라쓰카 하루(平塚明).
기타 레이키치(일본어: 北 (きた) 昤 (れい)吉 (きち): 1885년 7월 21일-1961년 8월 5일)는 일본의 평론가…
기타 레이키치(일본어: 北 (きた) 昤 (れい)吉 (きち): 1885년 7월 21일-1961년 8월 5일)는 일본의 평론가, 교육자, 정치가다. 중의원의원, 일본자유당 정조회장을 역임했으며 다마 미술대학의 설립자다. 기타 잇키의 남동생이다.
이쿠타 조코(生田長江, 1882년 (메이지 15년) 4월 21일 ~ 1936년 (쇼와 11년) 1월 11일)는 일본의…
이쿠타 조코(生田長江, 1882년 (메이지 15년) 4월 21일 ~ 1936년 (쇼와 11년) 1월 11일)는 일본의 평론가, 번역가, 소설가, 극작가이다. 그러나 1936년에는 나병에 시달리다가 사망하였다. 그래서 일본에서 매우 유능한 소설가로도 유명하다.
야마카와 히토시(일본어: 山川 均 (やまかわ ひとし): 1880년 12월 20일 - 1958년 3월 23일)는 일본의…
야마카와 히토시(일본어: 山川 均 (やまかわ ひとし): 1880년 12월 20일 - 1958년 3월 23일)는 일본의 사회주의 운동가, 재야 경제학자다. 노농파 마르크스주의의 지도적 이데올로그였다.
다카야마 조규(高山樗牛, 1871년 2월 28일 ∼ 1902년 12월 24일)는 일본의 저자이자 문학평론가의 필명이다.
기타무라 도코쿠(일본어: 北村透谷, 1868년 11월 16일 ~ 1894년 11월 15일)는 일본의 비평가, 시인, 메이지…
기타무라 도코쿠(일본어: 北村透谷, 1868년 11월 16일 ~ 1894년 11월 15일)는 일본의 비평가, 시인, 메이지 시대의 문학평론을 이끌었으며 시마자키 도손에게 영향을 주었다.
나쓰메 소세키(일본어: 夏 (なつ)目 (め) 漱 (そう)石 (せき), 1867년(게이오 3년) 1월 11일~1916년(다이쇼…
나쓰메 소세키(일본어: 夏 (なつ)目 (め) 漱 (そう)石 (せき), 1867년(게이오 3년) 1월 11일~1916년(다이쇼 5년) 1월 9일)는 일본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영문학자이다. 본명은 나쓰메 긴노스케(일본어: 夏 (なつ)目 (め) 金 (きん)之 (の)助 (すけ))이다. 《도련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마음》 등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있으며, 모리 오가이와 더불어 메이지 시대의 대문호로 꼽힌다. 소설, 수필, 하이쿠, 한시 등 여러 장르에 걸쳐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그의 사상과 윤리관 등은 후대 일본의 많은 근현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초상은 일본 지폐 천엔(千円)권에 담겨 있었으나, 현재 천엔(千円)권에는 노구치 히데요로 바뀌었다. 현재는 해외에까지 그 이름이 알려져서 중국, 미국, 영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일본의 근대작가 중에서 가장 폭넓게 연구되고 있다.
도쿠토미 소호(일본어: 徳富 蘇峰 (とくとみ そほう), 일본어 발음: [to.kɯ̥.toꜜ.mʲi soꜜ.hoː]…
도쿠토미 소호(일본어: 徳富 蘇峰 (とくとみ そほう), 일본어 발음: [to.kɯ̥.toꜜ.mʲi soꜜ.hoː], 1863년 3월 14일~1957년 11월 2일)는 일본의 사상가, 수필가, 평론가이며 평민적 구화주의를 제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판사 민유사를 설립했으며, 잡지 국민의 벗과 신문 국민신문을 창간했다. 그는 소설가인 도쿠토미 겐지로의 형으로도 알려졌다.
모리 오가이(일본어: 森 (もり) 鷗 (おう)外 (がい), 신자체: 森 鴎外, 1862년 2월 17일 ~ 1922년 7월…
모리 오가이(일본어: 森 (もり) 鷗 (おう)外 (がい), 신자체: 森 鴎外, 1862년 2월 17일 ~ 1922년 7월 8일)는 일본 메이지·다이쇼 시대의 소설가·번역가·극작가다. 육군 군의총감 정4위 훈2등 공3급 의학박사 문학박사. 제1차 세계대전 이래, 나츠메 소세키와 나란히 문호(文豪)라고 불렸다. 본명은 모리 린타로(일본어: 森林太郎)이다. 도쿄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육군 군의관이 되어 일본 육군성에서 파견한 유학생으로서 독일에서 4년을 보냈다. 귀국 후, 번역시 "오모카게(於母影)", 소설 "무희(舞姫)", 번역시집 "즉흥시인"을 발표했고, 또 스스로 문예잡지 "시가라미 소시(しがらみ草紙)"를 창간해서 문필 활동에 들어갔다. 그 후, 군의총감(중장에 해당)이 되어, 한때 창작 활동에서 멀어졌지만, "스바루(スバル)" 창간 후에 "위타 세쿠스아리스(ヰタセクスアリス)" "기러기" 등을 집필했다. 노기 마레스케의 순사에 영향을 받아서 "오키쓰 야고에몬의 유서(興津弥五右衛門の遺書)"를 발표한 뒤에는, "아베 일족(阿部一族)" "다카세부네(高瀬舟)" 등의 역사소설, 사전(史伝) "시부에 주사이(渋江抽斎)"를 썼다. 또,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 총장이나 제국 미술원(帝国美術院, 현재의 일본 예술원日本芸術院) 초대 원장 등도 역임했다.
미야케 세쓰레이(일본어: 三宅雪嶺, 1860-1945)는 일본의 철학자, 국수주의자, 평론가이다. 가가국 가나자와 출생.…
미야케 세쓰레이(일본어: 三宅雪嶺, 1860-1945)는 일본의 철학자, 국수주의자, 평론가이다. 가가국 가나자와 출생. 본명은 유지로(雄二郎). 사위는 중의원 의원을 거친 나카노 세이고. 가가번 가로 혼다 마사치카의 유의(儒医) 미야케 히사시(三宅恒)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이세이 학교를 거쳐 제국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고토 쇼지로의 대동 단결 운동 과 조약 개정 반대 운동 등 자유 민권 운동에 관여한다. 1888년 시가 시게타카, 스기우라 주고 등과 정교사(政教社)를 설립하고 국수주의적 입장 설파를 위해 잡지 일본인을 창간했다. 하야시 내각에서 문부대신 입각요청이 있었으나 거절했다. 1937년 제국 예술원 회원, 1943년 문화 훈장을 받았다. 수상.
쓰보우치 쇼요(일본어: 坪 (つぼ)内 (うち) 逍 (しょう)遥 (よう), 1859년 6월 22일(안세이 6년 5월 22일)…
쓰보우치 쇼요(일본어: 坪 (つぼ)内 (うち) 逍 (しょう)遥 (よう), 1859년 6월 22일(안세이 6년 5월 22일) ~ 1935년(쇼와 10년) 2월 28일)는 일본의 소설가, 평론가, 번역가, 극작가이며, 본명은 쓰보우치 유조(일본어: 坪 (つぼ)内 (うち) 雄 (ゆう)蔵 (ぞう))이다. 소설가로서 주로 메이지 시대에 활약했으며 대표작으로 《소설신수》, 《당세서생기질》 및 셰익스피어 전집 번역이 있다. 근대 일본문학 성립과 연극개량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별호는 "어슴푸레한 달밤에 견줄만한 것은 없을진저(朧ろ月夜に如くものぞなき)"라는 고사에서 연관지은 하루노야오보로(春のやおぼろ), 하루노야슈진(春のや主人) 등. 하이쿠를 짓기도 하였다.
구가 가쓰난(일본어: 陸羯南 (くが かつなん), 1857년~1907년)은 일본의 국민주의 정치평론가이자 언론인이었다.…
구가 가쓰난(일본어: 陸羯南 (くが かつなん), 1857년~1907년)은 일본의 국민주의 정치평론가이자 언론인이었다. 마사오카 시키의 스승이었으며, 아명은 巳之太郎 혹은 実. 가쓰난은 호이다.
아에바 고손(饗庭 篁村; August 15, 1855 – June 20, 1922)은 일본의 작가이자 연극평론가이자…
아에바 고손(饗庭 篁村; August 15, 1855 – June 20, 1922)은 일본의 작가이자 연극평론가이자 서예인이다. 본명은 아에바 요사부로(饗庭與三郎)이다. 그는 또한 "대나무 오두막집의 주인(竹の屋主人)"이라고 불렸다. 그는 도쿄 다이토구에서 태어났다. 그의 작업 중 하나는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 번역이다. 그는 도쿄의 소메이 묘지에 묻혔다.
우에쿠사 가즈히데(일본어: 植草一秀, 1960년 12월 18일 ~ )는 일본 도쿄도 출생으로 경제학자, 경제 평론가, 대학…
우에쿠사 가즈히데(일본어: 植草一秀, 1960년 12월 18일 ~ )는 일본 도쿄도 출생으로 경제학자, 경제 평론가, 대학 교수, 대표 이사, 컨설턴트 등의 다채로운 경력을 가진 인물이다. 흔히 우에쿠사 교수로 불린다. 거듭되는 성추행 파문으로 유명하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일본어: 川端 康成 (かわばた やすなり), 1899년 6월 14일~1972년 4월 16일)는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일본어: 川端 康成 (かわばた やすなり), 1899년 6월 14일~1972년 4월 16일)는 일본의 소설가이자 1968년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오사카부 오사카시 기타구의 차화정(此花町, 지금의 덴진바시 부근)에서 태어났다.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요코미쓰 리이치 등과 함께 『분게이지다이(文藝時代)』를 창간하여 당시 유럽의 허무주의, 미래파, 표현주의 영향을 받아서 생긴 문학 유파였던 신감각파(新感覺派)의 대표적 작가로서 활약하였다. 『이즈의 무희(伊豆の踊子)』, 『설국』, 『천 마리의 종이학(千羽鶴)』, 『산소리(山の音)』, 『잠든 미녀(眠れる美女)』, 『고도(古都) 』 등 죽음이나 유전 속 '일본미(日本美)'를 표현한 작품을 발표했고, 1968년(쇼와 43년)에 일본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72년(쇼와 47년)에 만 72세(향년74세)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