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근(李昌根, 일본식 이름: 히라마쓰 쇼콘(平松昌根), 1900년 7월 19일 ~ ?)은 일제강점기의 관료, 대한민국의…이창근(李昌根, 일본식 이름: 히라마쓰 쇼콘(平松昌根), 1900년 7월 19일 ~ ?)은 일제강점기의 관료, 대한민국의 기업인으로, 본적은 평안남도 대동군이다. 1942년 10월 23일 충청북도지사에 임명되고, 1944년 8월 17일부터 1945년 6월 16일까지 경상북도지사를 역임했다. 광복 이후에는 기업인으로 활동했다. 본관은 연안이다.
한근조(韓根祖, 1895년 7월 19일 ~ 1972년 2월 8일)는 일제강점기의 법조인이며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대한민국…한근조(韓根祖, 1895년 7월 19일 ~ 1972년 2월 8일)는 일제강점기의 법조인이며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대한민국 국회의 제4,5,6대 3선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평안남도 강서군 출신.
야마자키 이와오(일본어: 山崎 巌, やまざき いわお, 1894년 9월 16일 ~ 1968년 6월 26일)는 일본의 내무…야마자키 이와오(일본어: 山崎 巌, やまざき いわお, 1894년 9월 16일 ~ 1968년 6월 26일)는 일본의 내무 관료이자 정치인으로, 내무대신, 자치대신 (自治大臣) 을 지냈다. 형은 농림대신, 체신대신을 지낸 중의원 의원 야마자키 다쓰노스케(山崎達之輔, 1880 ~1948)이며, 조카는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중의원 의원을 지낸 야마자키 헤이하치로(山崎平八郎, 1911 ~ 1989)이다.
김효석(金孝錫, 1895년 12월 19일 ~ 1966년 4월 15일)은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초대 국회의원 재임시, 대한민국…김효석(金孝錫, 1895년 12월 19일 ~ 1966년 4월 15일)은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초대 국회의원 재임시, 대한민국 내무부 장관과 국회 내의 반민특위 조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다나카 다케오(일본어: 田中武雄, 1891년 1월 17일 ~ 1966년 4월 30일)는 일본의 관료이자 정치가이다. 미에현…다나카 다케오(일본어: 田中武雄, 1891년 1월 17일 ~ 1966년 4월 30일)는 일본의 관료이자 정치가이다. 미에현 출신으로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등을 역임하였다.
송진우(宋鎭禹, 1890년 6월 11일~1945년 12월 30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교육자, 외교가…송진우(宋鎭禹, 1890년 6월 11일~1945년 12월 30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교육자, 외교가, 사상가, 정치인이다. 본관은 신평이며, 전라도 담양군 고지면 손곡리 출신이다. 아호는 고하(古下)이고, 그는 한국민주당(韓國民主黨)의 초대 당수였으며, 1919년 3·1 만세 운동 당시의 민족대표 48인의 한사람이기도 하다.
어우양위첸(중국어 간체자: 欧阳予倩, 정체자: 歐陽予倩, 병음: Ōuyáng Yǔqiàn, 1889년 5월 12일~1962년…어우양위첸(중국어 간체자: 欧阳予倩, 정체자: 歐陽予倩, 병음: Ōuyáng Yǔqiàn, 1889년 5월 12일~1962년 9월 21일)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극작가다. 후난성 류양 시 출신이다. 일본 와세다 대학 유학 시절 '춘류사' 동인(同人)이다. 그는 경극 여역(女役)의 명우인 매란방과 함께 단 역(旦役)의 명수이기도 하였다. 텐한(田漢)의 '남국극사'에도 협력하는 한편, 광저우에 '광동희극연구소'를 설립, 많은 작품을 상연했다. 대표작 <충왕 이수성(忠王李秀成)> <도화선(桃花扇)> 등의 역사극이 있고, 만년에는 북경중앙희극학원 원장직을 맡고 일생동안 연극 교육에 헌신했다.
기쿠치 간(일본어: 菊 (きく)池 (ち) 寛 (かん), 1888년 12월 26일 ~ 1948년 3월 6일)은 일본 다이쇼…기쿠치 간(일본어: 菊 (きく)池 (ち) 寛 (かん), 1888년 12월 26일 ~ 1948년 3월 6일)은 일본 다이쇼 시대와 쇼와 시대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다. 본명은 기쿠치 히로시(일본어: 菊 (きく)池 (ち) 寛 (ひろし))로 한자 표기는 같다. 1888년 다카마쓰시에서 태어나 법률가를 목표로 메이지 대학 법학부에 입학하지만, 징병을 피하기 위해 중퇴. 다시 교토 대학 문학부에 입학해 1916년 동대학 졸업 후 지지신보(時事新報) 기자로 근무했다. 제3-4차 '신시조' 동인으로서 1916년 희곡 <屋上の狂人(오쿠조노교진, 옥상의 광인)> 등을 발표했으나 이후에는 주로 단편소설을 집필, 1918년 <無名作家の日記(무메이사카노닛키, 무명작가의 일기)>를 써 <주오코론>에 발표하여 신진 작가의 위치를 확립했다. 1923년 <분게이슌주(文藝春秋)>를 창간, 1928년 사장으로 취임하여 사업가로서 활약했다.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 나오키 상 등을 제정하여 작가의 복지와 신인의 발굴. 육성 등에 공헌한 바 있다. 창작 면에서는 1920년의 '신주후진(眞珠夫人)'으로 시작되는 통속소설을 주로 집필하였다. 인생의 '극적 순간'을 포착하여, 명쾌한 합리적인 질서 속에 살리는 점에 그의 희곡과 소설의 특색이 있다.
김병로(金炳魯, 1887년 12월 15일 ~ 1964년 1월 13일)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통일운동가·법조인·정치인이며…김병로(金炳魯, 1887년 12월 15일 ~ 1964년 1월 13일)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통일운동가·법조인·정치인이며 시인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복흥면 하리 출신(出身)이며, 본관(本貫)은 울산(蔚山), 호는 가인(街人)이다. 일제강점기 신간회 활동에 참여하였고, 각 학교의 법률학 전문 교수와 독립 운동가들을 무료로 변호하는 인권변호사로 활약하며 이인, 허헌과 함께 조선국 3대 민족 인권 변호사로서 명망을 날렸다. 광복 후 1945년 9월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으나, 결국 한국민주당의 정책 관련 노선에 반발하여 1946년 10월에 탈당하고, 이후 좌우합작위원회와 남북 연석회의에 참여하였다. 후에 분단의 현실을 느껴 노선을 선회하여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참여, 1948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특별재판부 재판부장과, 초대(初代) 대법원장을 지냈다.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등 이승만 정권의 노선에 반발하여 대립하였고, 대법원장 퇴임 후 이승만, 박정희 정부의 야당 인사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1962년 문화훈장,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으며, 1964년 자택에서 간장염으로 사망하였다. 그의 유해는 대한민국 서울 강북구 수유동 선열묘역(삼각산로 5)에 안장되어 있다.
조소앙(趙素昻, 본명: 조용은, 본명 한자: 趙鏞殷, 1887년 5월 2일~1958년 9월 10일)은 일제 강점기 조선…조소앙(趙素昻, 본명: 조용은, 본명 한자: 趙鏞殷, 1887년 5월 2일~1958년 9월 10일)은 일제 강점기 조선 시대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대의 정치인 겸 교육인이다. 경기도 파주(坡州) 출신이다.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본명은 조용은(趙鏞殷)이며, 자는 경중(敬仲)이다. 필명으로 사용하던 조소앙(趙素昻)이 훗날을 기하여, 1918년 4월 30일 이후부터 개명한 이름으로 굳어졌다. 따라서 소앙 조용은으로도 부른다. 1919년 2월 1일 대한독립선언서를 작성하였고, 곧바로 일본 도쿄로 건너가 유학생들을 지도하여 2·8 독립 선언을 작성하도록 지도하였다. 1919년 3·1 운동 직후인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기로 결의하고, 삼균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첫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작성했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의정원과 정부에서 활동하였다. 임시정부 외무부장, 한국독립당 당수 등으로 활동했고 김구·여운형 등과 시사책진회 등을 조직하였으며, 임시정부의 외교활동과 이론 수립에 참여하였다. 1945년 광복 후에 귀국하여 임시정부 법통성 고수를 주장하였고, 김구, 이승만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1948년 4월에 김구, 김규식 등과 남북협상에 참여하였다. 남북협상 실패 후에는 노선을 바꾸어 대한민국 단독정부에 찬성하고 지지하였다. 1948년 사회당을 만들어 1950년 제2회 국회의원 선거에 서울시 성북구에 출마해서 전국 최다득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지만, 1950년 6.25 전쟁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피랍되었다. 납북 후에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도 존경받는 '선생님'으로 불렸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체제에 협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교 학맥으로는 할아버지 조성룡의 문인이며, 종교 사상적 활동으로는 삼균주의 사상가이자 육성교를 창시한 바있다. 정치, 교육, 경제 평등을 말하는 조소앙 선생의 삼균주의는 중국 기독교 정치가 쑨원의 삼민주의와 일본 유학시절에 번역한 "천부인권론"의 기독교적 '만민평등사상'에 영향을 받아 1918년부터 정립한 정치노선이다. 조소앙은 1911년 상동교회 전덕기 목사에 의해 세례를 받고 기독교에 입문하였지만 여섯개의 종교를 두루 아울러야 독립운동가들과 민족의 분열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1915년 육성교를 창시하였다. 하지만 1918년 삼균주의를 정립한 이후에는 기독교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기고 종교통합에 대한 주장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건국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고, 이듬해인 1990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조국통일상을 받았다.
야노 쇼타로(矢野 庄太郎, やの しょうたろう, 1886년 1월 10일 ~ 1949년 6월 21일)는 일본의 정치인으로…야노 쇼타로(矢野 庄太郎, やの しょうたろう, 1886년 1월 10일 ~ 1949년 6월 21일)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가타야마 내각에서 짧은 기간 (1947년 6월 1일 ~ 1947년 6월 25일) 동안 대장대신을 지냈다. 가가와현 출신으로, 1907년 메이지 대학 법과를 졸업하였다. 메이지 대학 재학 중에는 고등문관시험을 통과하였다. 1911년 내무성에 들어갔으며, 대만 총독부 서기관, 가가와 현 현병 과장, 가가와 현 기타군장을 맡은 후, 1918년 내무성에서 나왔다. 같은 해 히로시마의 쇼코산 요업 (勝光山窯業) 을 사들여 대표이사가 되었다. 1930년 제1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입헌민정당 공인으로 구 가가와 2구에서 입후보해 첫 당선되었으며, 이후 7번 당선되었다. 같은 해 시데하라 내각에서는 후생대신 아시다 히토시 밑에서 후생정무차관을 맡았으며, 1947년 자유당이 분열되면서 야노는 아시다를 따라 탈당하였다. 민주당 결성에 참여해 정무조사회장이 되었으며, 같은 해 가타야마 내각에서 대장대신으로 입각했지만, 대장대신에 임명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뇌일혈로 쓰러져 해당 직위에서 물러났다. 이후에 민주당 고문을 역임하였다.
허헌(許憲, 1885년 7월 22일 ~ 1951년 8월 16일)은 일제강점기의 사상가, 독립운동가, 법률가이자 법조인 출신의…허헌(許憲, 1885년 7월 22일 ~ 1951년 8월 16일)은 일제강점기의 사상가, 독립운동가, 법률가이자 법조인 출신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치인이다. 아호(雅號)는 긍인(兢人)이다.
조만식(曺晩植, 1883년 2월 1일 ~ 1950년 10월 18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일제강점기의…조만식(曺晩植, 1883년 2월 1일 ~ 1950년 10월 18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일제강점기의 교육자·종교인·언론인·시민사회단체인·정치인이다. 국산 물산장려운동과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하여 조선의 간디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출생하였으며, 아호는 고당(古堂),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평안남도 강서군(현 남포시) 출생으로, 22세 이후 상업과 종교 활동에 종사하다가 일제 강점기에 민족 운동에 참여하여 1919년 3.1 만세운동으로 투옥당하기도 하였다. 이후 교육 계몽 활동과 민족자본 운동을 벌이며 오산학교에서 교사와 교장으로 교편을 잡았고, 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설립운동, YMCA 평양지회 설립, 신간회 등을 주도하였다. 해방 이후 남측의 여운형 등과 함께 북측에서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으나, 소련군정 당국과 대립하다가 1946년 1월 평양 고려호텔에 감금되었고, 한국 전쟁 중인 1950년 10월에 퇴각하는 공산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김시현(金始顯, 1883년 6월 9일 ~ 1966년 1월 3일)은 한국의 독립 운동가이며 정치인이다. 자는 구화(九和)…김시현(金始顯, 1883년 6월 9일 ~ 1966년 1월 3일)은 한국의 독립 운동가이며 정치인이다. 자는 구화(九和), 호는 하구(何求)이다. 의열단원으로 김원봉과 사상적 동지였고, 상하이 고려공산당, 조선공산당의 정치인이였다. 일본 메이지 대학교 법과를 졸업하고 3·1 운동 후 만주에서 의열단 활동 등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하고 수차례 투옥되고 풀려나길 반복하였다. 옥중에서 광복을 맞고 풀려났으며, 그 후 제2대 안동군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1920년 김규식(金奎植)·여운형(呂運亨) 등과 함께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혁명단체대표자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였다. 1920년 9월경 의열단이 국내에 들어와 전국적인 규모의 폭동과 요인 암살 및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투척할 목적으로 국내에 폭탄반입을 시도할 때 이에 가담하다 대구에서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년간 투옥되었다. 1952년 6월 25일 부산에서 열린 6·25 기념식장에서 유시태로 하여금 이승만 대통령을 암살하도록 하였으나, 권총이 불발에 그쳐 실패하였다. 이 사건의 주모자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4·19 혁명과 함께 복역 만 7년 10개월만인 1960년 4월 28일에 석방되었다. 그 후에 제5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1960년 7월 민의원에서 열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다. 1966년 1월 3일 사망하였다.
후세 다쓰지(일본어: 布施辰治, 1880년 11월 13일 ~ 1953년 9월 13일,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 출생)는 미야기현…후세 다쓰지(일본어: 布施辰治, 1880년 11월 13일 ~ 1953년 9월 13일,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 출생)는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 출신의 일본의 인권변호사, 사회운동가, 식민지 독립운동가이다. 후세 다츠지라고도 번역한다. 2004년, 일본인으로서는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훈장(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최린(崔麟, 1878년 1월 25일 ~ 1958년 12월 4일)은 일제강점기의 친일파이다. 3.1 운동에 참여하여 민족대표…최린(崔麟, 1878년 1월 25일 ~ 1958년 12월 4일)은 일제강점기의 친일파이다. 3.1 운동에 참여하여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친일 인사로 변절했다. 호는 고우(古友) · 여암(如庵)이고 일본식 이름은 가야마 린(佳山 麟)이다.
야마자키 케사야(일본어: 山 (やま)崎 (ざき) 今 (け)朝 (さ)彌 (や): 1877년 9월 15일-1954년 7월…야마자키 케사야(일본어: 山 (やま)崎 (ざき) 今 (け)朝 (さ)彌 (や): 1877년 9월 15일-1954년 7월 29일)는 일본의 법조인이다. 사회주의자 사건을 많이 다루었다. 1877년 스와군 카와기시촌(현 나가노현 오카야시) 출신. 상경한 이후 메이지법률학교(현 메이지대학)에서 수학하여 1901년 졸업했다. 동년 제1회 판사검사등용시험에 합격, 고후구재판소에서 사법관시보로 근무하다 이듬해 면관, 1903년 도미해서 아카바 하지메, 이와사 사쿠타로, 코토쿠 슈스이 등과 알게 되었다. 1907년 귀국하여 도쿄변호사회에 가입, 변호사가 되었다. 1913년 합동법률사무소의 전신인 도쿄법률사무소를 설립, 1916년에는 평민법률사무소를 개설했다. 1917년 평민대학(대학령에 근거한 정식 대학은 아니었다)을 설립, 1921년에는 자유법조단 결성에 참여했다. 또한 1913년 일본사회당(야마자키의 1인 정당), 1920년 일본사회주의동맹, 1924년 일본 페이비언 협회 등을 설립하며 사회주의자로도 활동했다. 전후에는 미타카 사건, 마츠카와 사건의 변호인단으로 참여했다. "미국백작(米国伯爵)"을 자칭하고 "변호사 떨이(弁護士大安売)" 광고를 내는 등 기행으로도 유명했다.
기타노 다케시(일본어: 北野 武 (きたの たけし), 1947년 1월 18일~)는 일본의 영화 감독, 배우, 텔레비전 사회자…기타노 다케시(일본어: 北野 武 (きたの たけし), 1947년 1월 18일~)는 일본의 영화 감독, 배우, 텔레비전 사회자, 코미디언이다. 코미디언으로 활동할 때 사용하는 예명인 비트 다케시(일본어: ビートたけし 비토 다케시[*])로도 알려져 있다. 도쿄도 아다치구 태생이며 메이지 대학 기계공학과를 중퇴했으나 2004년 졸업이 특별히 인정되었다. 다케시의 영화 《하나비》는 1998년 대한민국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 첫해에 개봉된 영화로 알려져 있다.
고분유(일본어: 黄文雄, 중국어 간체자: 黄文雄, 정체자: 黃文雄, 병음: Huáng Wènxióng 황원슝[*]…고분유(일본어: 黄文雄, 중국어 간체자: 黄文雄, 정체자: 黃文雄, 병음: Huáng Wènxióng 황원슝[*] 1938~2024년)는 타이완 가오슝(高雄) 출신의 친일 작가이자 평론가이다. 1964년에 일본에 유학한 이후로 일본에 산다. 다쿠쇼쿠 대학 일본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대만독립건국연맹 일본지부장이자 일본 우익신생정당인 유신정당 신풍의 강사를 맡고 있다. 친일활동을 계속해 왔으며 일본으로 귀화한 한국인 고젠카(吳善花)와 더불어, 일본 우익이 가장 자주 내세우는 외국인이다.
고바야시 아사오(小林 朝夫, 1961년 2월 16일 ~ )는 일본의 전 배우이다. 《태양전대 선벌컨》에서 효 아사오 역할로…고바야시 아사오(小林 朝夫, 1961년 2월 16일 ~ )는 일본의 전 배우이다. 《태양전대 선벌컨》에서 효 아사오 역할로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얻었다. 아버지는 작곡가 겸 배우 고바야시 아세이이다. 선벌컨 38화에서 고바야시 아세이가 고바야시 아사오가 맡은 효 아사오의 아버지로 출연하기도 했다. 다만 고바야시 아사오 본인은 아버지와는 사이가 굉장히 좋지 않았다고 하며, 오히려 당시 선벌컨에서 효 아사오의 지휘관 역을 맡았던 기시다 신을 더 아버지처럼 따랐다고 한다. 또한 고바야시 아사오 본인은 선벌컨의 후속작이었던 《해적전대 고카이저》에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서 슈퍼 전대 시리즈 팬들을 두근거리게 만들었고 《초수전대 라이브맨》에 이은 80년대 슈퍼 전대 시리즈 에피소드에 대한 기대를 모았지만 연말이 가까워져도 선벌컨 에피소드가 나온 정보는 뜨지 않았었는데, 아래에 언급된 사기꾼 논란으로 인해서 출연은 불발되고 선벌컨의 분량까지 날아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선벌컨은 가뜩이나 없는 80년대 전대물인 데다가 지금까지 인기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애당초 고카이저는 80년대 전대에 대한 대우가 별로 좋지 않기 때문에 원래부터 선벌컨의 비중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설사 선벌컨이 나온다 해도 아래의 사례를 생각해 보면 저런 인물이 나온 작품을 띄워준다는 논란에 휩싸일 것이니 애초에 나올 가능성은 없었을 것이다.
니시다 노조미(일본어: 西田 望見 にしだ のぞみ[*], 1990년 7월 22일 ~ )는 일본의 성우이자 가수다. 2018년…니시다 노조미(일본어: 西田 望見 にしだ のぞみ[*], 1990년 7월 22일 ~ )는 일본의 성우이자 가수다. 2018년 5월 시점에서 아토믹 몽키를 떠나 프리랜서로 있다가 2018년 9월부로 마우스 프로모션으로 이적했다.
토요시마 마치코(일본어: 豊嶋 真千子 とよしま まちこ[*]/Machiko Toyoshima, 1971년 12월 28일 ~…토요시마 마치코(일본어: 豊嶋 真千子 とよしま まちこ[*]/Machiko Toyoshima, 1971년 12월 28일 ~ )는 일본의 여자배우, 성우다. 아오니 프로덕션소속이다. 아오니 학원 도쿄 14기다. 이바라키현 출신이고 키는 151cm다.
시바타 리에(일본어: 柴田 理恵 しばた りえ[*], 1959년 1월 14일~)는 일본의 탤런트(여배우)이다. 1959년 1월…시바타 리에(일본어: 柴田 理恵 しばた りえ[*], 1959년 1월 14일~)는 일본의 탤런트(여배우)이다. 1959년 1월 14일생이며 일본 도야마현 도야마시 출신이다.
미츠야 유지(일본어: 三ツ矢 雄二 みつや ゆうじ[*], 1954년 10월 18일~)는 일본의 성우, 음향감독이다. 혈액형은…미츠야 유지(일본어: 三ツ矢 雄二 みつや ゆうじ[*], 1954년 10월 18일~)는 일본의 성우, 음향감독이다. 혈액형은 A형. 출신지는 아이치현 도요하시시이며 소속사는 미쓰야 프로젝트. 프로덕션 바오밥 설립맴버 중 한명이다. 현지 일본인들에게는 터치의 우에스기 타츠야의 성우로 매우 유명하다.
미키 다케오(일본어: 三木 武夫, 1907년 3월 17일 ~ 1988년 11월 4일)는 일본의 제66대 내각총리대신…미키 다케오(일본어: 三木 武夫, 1907년 3월 17일 ~ 1988년 11월 4일)는 일본의 제66대 내각총리대신 (1974년~1976년)이었다. 도쿠시마현 토박이 미키는 메이지 대학과 남가주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1937년 일본 국회로 처음 선출되었고, 전후 국민협동당의 당수로 가타야마 데쓰 아래 체신대신 (1947년~1948년)을 지냈다. 미키는 이후에 자유민주당에 입당하였고 하토야마 이치로 아래 운수대신을 지내면서 기시 노부스케와 이케다 하야토의 내각들에서 직위를 보유하였으며 사토 에이사쿠 아래 통상대신 (1965년~1966년)과 외무대신 (1966년~1968년)을 지냈다. 미키는 부패 혐의들을 향한 다나카 가쿠에이의 사임에 1974년 총리가 되었으나 자신의 당 안으로부터 반대 속에서 반독점법과 정치자금법을 통과시키려는 그의 시도들이 실패하였다. 미키는 국방비를 위하여 "국내총생산의 1 퍼센트" 지시를 공고하여 다음 20년의 세월 동안 선례를 세웠다. 자유민주당은 1976년 록히드 사건에 의하여 피해를 입었고 그해 선거에서 그 다수를 잃었다. 이 결과에 의하여 부끄러움을 느낀 미키는 총리로서 사임을 하고 후쿠다 다케오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이마이 아사미(일본어: 今井 麻美 いまい あさみ[*] 1977년 5월 16일 - )는 일본의 성우, 무대 여배우, 나레이터…이마이 아사미(일본어: 今井 麻美 いまい あさみ[*] 1977년 5월 16일 - )는 일본의 성우, 무대 여배우, 나레이터, 가수이다. EARLY WING 소속이다. 야마구치현 토쿠야마 시(현 : 슈난시) 출신이지만 태생은 도쿄도 초등학교 2학년 때에 도쿄 도 시부야구에서 야마구치 현 토쿠야마 시로 이사했다 별명은 본인이 명명한 「아사밍고스」며 생략해 「밍고스」라고 불린다(이마이 자신도 일인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Web 라디오 「블루라지」에서 같은 퍼스널리티인 스기타 토모카즈가 「이마진」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대표작으로는 「라임색 전기담X」(나오에 슈로 역) 「STEINS;GATE」(마키세 크리스 역) 「마호로매틱」(안도 씨 역) 「은장기공 오디안」(카미즈키 나오 역) 「신백설공주 전설 프리티아」(에이코 역) 게임 「THE IDOLM@STER」(키사라기 치하야 역) 등이 있다.
황을수(黃乙秀, 생몰년 미상)는 일제강점기의 권투 선수이다. 1932년 하계 올림픽 복싱 남자 라이트급에 출전하였다. 광복…황을수(黃乙秀, 생몰년 미상)는 일제강점기의 권투 선수이다. 1932년 하계 올림픽 복싱 남자 라이트급에 출전하였다. 광복 후 남쪽에 정착하였다가 한국 전쟁 이후 월북하였다. 1963년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공훈체육인 칭호를 받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올림픽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