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진(張利鎭, 1917년 10월 28일~?) 혹은 장리진은 대한민국의 농구인이다. 선수 시절 1936년 하계 올림픽과…
장이진(張利鎭, 1917년 10월 28일~?) 혹은 장리진은 대한민국의 농구인이다. 선수 시절 1936년 하계 올림픽과 1948년 하계 올림픽에 각각 일본과 대한민국 대표팀으로 참가했다. 현역 은퇴 후에는 지도자가 되어 대한민국의 여자 농구팀들을 지도했다.
10월: 970명
장이진(張利鎭, 1917년 10월 28일~?) 혹은 장리진은 대한민국의 농구인이다. 선수 시절 1936년 하계 올림픽과…
장이진(張利鎭, 1917년 10월 28일~?) 혹은 장리진은 대한민국의 농구인이다. 선수 시절 1936년 하계 올림픽과 1948년 하계 올림픽에 각각 일본과 대한민국 대표팀으로 참가했다. 현역 은퇴 후에는 지도자가 되어 대한민국의 여자 농구팀들을 지도했다.
가도카와 겐요시(일본어: 角川源義, 1917년 10월 9일 ~ 1975년 10월 27일)은 일본의 하이쿠 시인, 국문학자 및…
가도카와 겐요시(일본어: 角川源義, 1917년 10월 9일 ~ 1975년 10월 27일)은 일본의 하이쿠 시인, 국문학자 및 실업가로, 가도카와 서점(현 가도카와 홀딩스)의 창립자이다. 도야마현 구 히가시미즈하시(東水橋) 정(현 도야마시)에서 태어났으며, 학창시절부터 하이쿠를 짓기 시작했으며 국한문에 관하여 일가견을 보였다. 1936년에 도쿄로 올라와 입시 준비 생활을 보냈으나, 어느날 고서점에서 오리구치 노부오(折口信夫)의 《고대연구》(古代研究)를 읽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고쿠가쿠인 대학 문학부 예과에 입학하여 국문학과에서 오리구치 노부오에게 사사를 받았다. 중학교 교사를 거쳐 1945년 11월에 도쿄도 이타바시구 오타케마치(小竹町)에서 '가도카와 서점'(角川書店)을 설립하였다. 이미 이와나미 서점(岩波書店)을 통해 간행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아베 지로(阿部次郎)의 《산타로의 일기》(三太郎の日記)를 합본으로 출간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1949년 가도카와 문고를 발간하여, 기존에 이와나미 서점 및 신조샤의 독무대였던 문고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1952년 11월, 전 25권의 《쇼와 문학 전집》(昭和文学全集)을 발간하여, 기록적인 발매부수를 거두어, 문예출판사로서의 가도카와 서점의 평가를 확립하였다. 1975년 5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김사용(金仕龍, 1916년 10월 28일~1991년 6월 3일)은 대한민국의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다. 제11대 국회의원을…
김사용(金仕龍, 1916년 10월 28일~1991년 6월 3일)은 대한민국의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다. 제11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유아사 겐(湯浅謙, 1916년 10월 23일~2010년 11월 2일)은 일본의 내과 전문의이다. 사이타마현에서 개업 중이었던…
유아사 겐(湯浅謙, 1916년 10월 23일~2010년 11월 2일)은 일본의 내과 전문의이다. 사이타마현에서 개업 중이었던 의사의 차남으로 태어나 1921년 도쿄부 주오구 교바시에 이주하였다. 1923년 도쿄구 주오구에 소재한 메이쇼 소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안되어 관동대지진에 의해 안구에 전선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었다. 1934년 도쿄 지케이카이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1941년 학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도쿄 고마고메 병원 내과의로 근무하던 중 징병검사를 받아 제1을종합격하였고 단기 현역 군의관에 지원하여 아사이카와 보병 제28연대에 입대하였다. 2여개월간의 신임 장교 교육이 끝나고 일본 제국 육군 군의관 중위로 임관하였다. 한달 뒤 1942년 중화민국 산시성 루안부(지금의 창즈시)의 루안 육군병원에 유행병과 병리검사실 부군의관으로 부임 근무하였다. 근무 중에 팔로군 병사들의 신체를 해부하였다. 이후 타이위안 육군병원에서 근무 중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었다. 종전 후에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타이위안에 의사단원으로서 잔류된 일본인들을 타이위안 공제병원에서 의료관리하였다. 1947년 타이위안 우편국 보험과장의 둘째 딸 게이코(啓子)와 혼인하였다. 둘 사이에 두명의 자식을 낳았다. 1949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타이위안을 점령하고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명령으로 유아사는 타이위안성립 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1951년 허베이성 융녠 현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로 수감되었으며 이듬해에는 전범으로 인정되어 타이위안 감옥에 구치되었다. 1956년 기소면제로 석방되어 고국으로 귀국하였다. 한달 뒤 유아사는 자신의 폐결핵 치료를 위해 도쿄 적십자병원에 입원하였다. 구치생활의 영향으로 반년후 모교 내과에서 재연수를 받았다. 2010년 심부전으로 인해 향년 9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손권배(孫權培, 1916년 10월 6일 완주 ~ 1990년 2월 19일)는 제3대 민의원의원을 지낸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손권배(孫權培, 1916년 10월 6일 완주 ~ 1990년 2월 19일)는 제3대 민의원의원을 지낸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태백신문 주간과 삼남일보 사장을 지낸 언론인이기도 하다.
미나미 요시에(일본어: 南 美江, 1915년 10월 5일 ~ 2010년 8월 6일)는 일본의 여배우이다. 히로시마현…
미나미 요시에(일본어: 南 美江, 1915년 10월 5일 ~ 2010년 8월 6일)는 일본의 여배우이다.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출신이다.
우메자와 하마오(일본어: 梅 (うめ)澤 (ざわ) 濱 (はま)夫 (お), 신자체: 梅沢 浜夫, 1914년 10월 1일 ~…
우메자와 하마오(일본어: 梅 (うめ)澤 (ざわ) 濱 (はま)夫 (お), 신자체: 梅沢 浜夫, 1914년 10월 1일 ~ 1986년 12월 25일)는 일본의 세균학자로, 카나마이신 A를 비롯한 수많은 항생제와 효소 물질을 발견하여 생물학과 의학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후쿠이 시즈오(福井静夫, 1913년~1993년 11월 4일)는 일본 제국 해군의 기술 장교(최종 계급은 소령)였으며, 함정…
후쿠이 시즈오(福井静夫, 1913년~1993년 11월 4일)는 일본 제국 해군의 기술 장교(최종 계급은 소령)였으며, 함정 연구가로 전공은 조선 분야였다. 그의 셋째 아들 후쿠이 타케오(福井威夫)는 혼다 기술 연구소 사장, 혼다 기연 공업 대표 이사 등을 역임했다.
히가시소노 사와코(東園佐和子)는 일본 제국의 구황족이다. 기타시라카와노미야 나루히사 왕의 제2왕녀이며 혼전 이름은 사와코…
히가시소노 사와코(東園佐和子)는 일본 제국의 구황족이다. 기타시라카와노미야 나루히사 왕의 제2왕녀이며 혼전 이름은 사와코 여왕(佐和子女王)이다. 히가시소노 모토후미 자작의 부인이다. 메이지 천황의 외손녀로서 모친은 나루히사 왕비 후사코 내친왕이다.
호리 에이조(堀 栄三, 1913년 10월 16일~1995년 6월 5일)은 일본의 육군군인, 육상자위관이다. 최종계급은 육군…
호리 에이조(堀 栄三, 1913년 10월 16일~1995년 6월 5일)은 일본의 육군군인, 육상자위관이다. 최종계급은 육군 중령(일본육군), 소장(육상자위대)로 예편했다.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무시하던 대본영에서 정보 분석과정으로 미군의 침공패턴을 정확히 읽어 "맥아더의 참모"라는 별명을 얻었다. 전쟁 동안 야마시타 도모유키 육군대장의 참모로 전후엔 해외 전쟁사 연구가로서 능력을 높게 평가받았다. 참의원이자 일본의 국토교통대신이었던 마에다 다케시(前田武志)의 삼촌이기도 하다.
마쓰다이라 요시코(일본어: 松平佳子 마츠다이라 요시코[*], 1911년 10월 6일 ~ 2006년 6월 28일)는 일본…
마쓰다이라 요시코(일본어: 松平佳子 마츠다이라 요시코[*], 1911년 10월 6일 ~ 2006년 6월 28일)는 일본 제국의 왕공족이다. 다카마쓰 마쓰다이라 백작가의 분가 출신으로, 마쓰다이라씨 (松平氏)였으나 백작 히로하시 다다미쓰의 의붓동생이 되어 히로하시 요시코(廣橋誠子)로 개명하였고, 이왕가의 이건과 혼인하여 이건공비 이 요시코(李誠子)가 되었다. 태평양 전쟁 이후 이름을 요시코로 되돌려서 모모야마 겐이치로 개명한 남편 이건의 성에 따라 모모야마 요시코(桃山佳子)로 불렸다. 1951년 이혼 이후에는 생가의 성을 다시 사용하였다.
다케타니 미쓰오(일본어: 武 (たけ)谷 (たに) 三 (みつ)男 (お), 1911년 10월 2일 ~ 2000년 4월 22일)는…
다케타니 미쓰오(일본어: 武 (たけ)谷 (たに) 三 (みつ)男 (お), 1911년 10월 2일 ~ 2000년 4월 22일)는 일본의 물리학자이다. 후쿠오카현 출신. 구제 대북고등학교를 거쳐 교토제국대학 이학부를 졸업한 후 유카와 히데키・사카타 쇼이치와 함께 원자핵・소립자를 여구했다. 그러는 한편 나카이 마사카즈・쿠노 오사무와 함께 반파시즘을 표방하는 잡지 『세계문화』, 『토요일』에 참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이화학연구소를 중심으로 하는 원자폭탄 개발(니호연구)에 관여했다. 종전 후에는 츠루미 슌스케 등과 『사상의 과학』을 창간하고, 연구회 멤버로서 과학사, 기술론 등의 분야에서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원자력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의 수폭실험을 비판하고, 사회주의 국가의 핵보유를 긍정했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에 대하여서도 반파쇼의 인도적 행위라며 이를 예찬했다. 그의 안정성 이론은 이후의 공해반대 운동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53년부터 1969년까지 릿쿄대학 이학부 교수를 지냈다. 1954년 원자력에 관한 일본 최초의 교과서인 『교양의 과학 원자력』을 공저했고, 릿쿄대학에 원자로 도입을 적극 추지하여 1957년 릿쿄대학 원자력연구소 설립에 힘썼다. 1972년 원자력안전문제연구회를 설립했고, 1976년 원자력자료정보실이 발족하자 그 대표가 되었다.
와타나베 하마코(일본어: 渡辺 はま子, 1910년 10월 27일 ~ 1999년 12월 31일)는 일본의 가수이다. 세계…
와타나베 하마코(일본어: 渡辺 はま子, 1910년 10월 27일 ~ 1999년 12월 31일)는 일본의 가수이다. 세계 제2차 대전 중후 일본의 대표적인 여자 가수이다.
쓰카하라 도시오(일본어: 塚原 俊郎 (つかはら としお), 1910년 10월 2일~1975년 12월 7일)는 10선 중의원…
쓰카하라 도시오(일본어: 塚原 俊郎 (つかはら としお), 1910년 10월 2일~1975년 12월 7일)는 10선 중의원 의원을 지낸 일본의 정치인이다.
다케우치 요시미(일본어: 竹内 好 타케우치 요시미[*], 1910년 10월 2일 ~ 1977년 3월 3일)는 일본 나가노현…
다케우치 요시미(일본어: 竹内 好 타케우치 요시미[*], 1910년 10월 2일 ~ 1977년 3월 3일)는 일본 나가노현 미나미사쿠군 우스다 정에서 태어난 중국 문학자이자 문예평론가이다. 루쉰의 연구·번역, 일중관계론, 일본 문화를 주제로 언론계에서 다수한 평론을 발표하였다.
도몬 겐(일본어: 土門 拳 (どもん けん), 1909년 10월 20일~1990년 9월 15일)은 일본의 사진가이다. 사찰…
도몬 겐(일본어: 土門 拳 (どもん けん), 1909년 10월 20일~1990년 9월 15일)은 일본의 사진가이다. 사찰, 불상과 같은 불교 관련 물건들과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관한 사진을 찍었다. 1909년 일본 제국 야마가타현 사카타시에서 태어나 1930년대 군국주의, 제국주의 정책을 지지하는 잡지에 사진 기사들을 기고하며 사진가 경력을 시작했다. 선전 사진을 비판하며 근무하던 정부 기관에서 해고된 후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일반적인 사진가들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새로운 사회 현실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동안 사실주의 사진 운동을 개척하며 "절대적으로 연출되지 않은" 방식으로 이미지를 포착할 수 있는 스냅 사진의 개념을 수용했다. 도몬은 사회와 일반인들의 삶에 관한 사진을 촬영했고 착취적 노동 환경에 처한 어린이들과 히로시마 폭탄 생존자들과 같이 전쟁의 여파를 담은 사진을 남겼다. 1958년 뇌졸중으로 스냅 사진 촬영을 중단한 그는 회복 후에도 사진가로 활동했다. 1940년부터 사진가 경력을 마감하기까지 일본 전역의 사찰을 촬영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가 촬영한 사찰 사진들은 1963년부터 1975년까지 다섯 권으로 출판된 연작《고지준레이》에 수록되었다.
니카이도 스스무(二階堂進, 1909년 10월 16일~2000년 2월 3일)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16선 중의원 의원을…
니카이도 스스무(二階堂進, 1909년 10월 16일~2000년 2월 3일)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16선 중의원 의원을 지냈으며 과학기술청 장관, 홋카이도 개발청 장관, 내각관방장관, 자유민주당 총무회장·간사장·부총재를 역임했다.
노도양(盧道陽, 1909년 10월 14일~2004년 4월 3일)은 대한민국의 지리학자이다.
백두진(白斗鎭, 1908년 10월 31일~1993년 9월 5일)은 대한민국의 고위정치인이다. 본관은 수원(水原), 호(號)는…
백두진(白斗鎭, 1908년 10월 31일~1993년 9월 5일)은 대한민국의 고위정치인이다. 본관은 수원(水原), 호(號)는 소계(小溪)로, 대한제국 황해 신천에서 태어난 실향민 출신이다.
미야모토 겐지(일본어: 宮本顕治 みやもと けんじ[*], 1908년 10월 17일 ~ 2007년 7월 18일)는 일본의…
미야모토 겐지(일본어: 宮本顕治 みやもと けんじ[*], 1908년 10월 17일 ~ 2007년 7월 18일)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아이치 기이치(일본어: 愛知 揆一, あいち きいち, 1907년 10월 10일 ~ 1973년 11월 23일)는 일본의…
아이치 기이치(일본어: 愛知 揆一, あいち きいち, 1907년 10월 10일 ~ 1973년 11월 23일)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전후의 내각 대신이었다. 그는 외무대신, 대장대신과 문부대신을 포함하여 자신의 경력을 통하여 몇몇의 내각 수준의 지위들을 보유하였다. 그는 두드러지게 1971년 당시 사토 에이사쿠 총리를 대표하여 미국과 오키나와 반환 협정을 협상하고 조약을 맺었다.
나베시마 나오야스(鍋島直泰)는 일본의 정치인, 골프 선수이다. 나베시마씨 제13대 당주이다. 작위는 후작.…
나베시마 나오야스(鍋島直泰)는 일본의 정치인, 골프 선수이다. 나베시마씨 제13대 당주이다. 작위는 후작. 골프·곤충학(나비연구 및 수집)·클래식카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자적인 족적을 남긴 다방면의 명사이다.
이케노우치 도모지로(일본어: 池内友次郎, 1906년 10월 21일 ~ 1991년 3월 3일)은 일본의 작곡가이다.
사카구치 안고(일본어: 坂 (さか)口 (ぐち) 安 (あん)吾 (ご), 1906년 10월 20일 ∼ 1955년 2월 17일)은…
사카구치 안고(일본어: 坂 (さか)口 (ぐち) 安 (あん)吾 (ご), 1906년 10월 20일 ∼ 1955년 2월 17일)은 일본의 문학가로 본명은 사카구치 헤이고(坂 (さか)口 (ぐち) 炳 (へい)五 (ご))이다. 1906년 10월 20일 니가타현 니가타시에서 아버지 니이치로와 어머니 아사 사이의 5남으로 태어났다. 사카구치가의 선조는 지금의 후쿠오카현 가라쓰의 도공이었다가 후에 니가타로 이동해 온 지방 부호다. 아버지 니이치로는 당시 중의원 의원이자 니가타 신문사 사장이었고 한시 시인으로도 알려진 정치가로서 언제나 다망했으며 장남을 제외한 자식들에게는 무관심하고 냉담했다. 사카구치가의 재산은 체면과 의리를 중시했던 니이치로의 대에서 탕진되게 된다. 니이치로의 전처와 첩의 아이까지 합한 열세 명의 형제 중 열두 번째 아이로 태어난 안고는, 어린 시절 이미 방랑벽이 있었으며, 골목대장 행세를 하며 싸움질을 하고 돌아다녀 어머니의 미움을 사는 한편, 주로 무사들의 군담을 숙독했고, 남몰래 닌자의 인술을 연구하기도 했다. 1919년 니가타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이 무렵부터 집과 학교를 싫어해서 수업을 빠지고 홀로 방황하는 날들을 보내다 낙제하게 되고,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발자크 등의 소설을 탐독하며 지내다가 결국 1922년에 퇴학당했다. 그해 가을 상경해 부잔 중학교에 입학했고 에드거 앨런 포와 이시카와 다쿠보쿠 등을 인생의 낙오자로서 사랑하며 그들의 작품을 숙독했다. 막연하게 엄격한 구도자의 삶을 동경하여 1926년, 도요 대학 인도철학윤리과에 입학한다. 입학 후 불교서와 철학서를 섭렵하는 데 몸을 혹사하며 공부에 매진한 탓에 생긴 신경쇠약 증세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티베트어, 라틴어, 프랑스어 등 어학을 맹렬히 공부한다. 1930년, 대학을 졸업한 후 동인지 <말>과 <청마>를 창간했다. 1931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바람 박사>와 <구로타니 마을>이 소설가 마키노 신이치의 극찬을 받음으로써 신진 작가로 급부상한다. 1932년 작가 야다 쓰세코를 알고 사랑에 빠지지만 1936년 절교한 후 신생을 기하며 교토를 방랑하면서 그녀와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눈보라 이야기≫를 썼다. 1946년, 전후의 시대적 본질을 예리하게 통찰하고 파악한 <타락론>과 <백치>에 의해 일약 시대의 총아, 오피니언 리더로 떠오르며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1947년 가지 미치요와 결혼하고, 전후의 시대상을 반영한 소설과 에세이, 탐정소설, 역사 연구, 문명 비평 르포르타주 등 다채로운 집필 활동을 전개하여 전후의 난세에 문화와 역사 및 사회의 흐름에 대한 대중의 지적 갈증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와 동시에 세무 당국을 상대로 한 소송, 경륜 부정 사건 고발, 각성제와 수면제 중독에 의한 정신착란 발작 등 실생활 면에서도 언제나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1955년 2월 17일 지방 취재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자택에서 뇌일혈로 급사했다. 향년 50세였다. 전후 일본 사회의 혼란과 퇴폐를 반영한 작풍을 확립하고 시대의 새로운 윤리를 제시함으로써 일본인에게 충격과 감동을 안겨준 사카구치 안고는 다자이 오사무와 오다 사쿠노스케 등과 함께 전후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무뢰파 작가로 평가된다.
유진산(柳珍山, 1905년 10월 18일~1974년 4월 28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7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유진산(柳珍山, 1905년 10월 18일~1974년 4월 28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7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전라북도 진산군 출신이다. 충칭(重慶) 임시정부의 연락원으로 독립운동을 하여 서대문형무소에서 4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해방 정국에서는 우익청년단체를 운용 및 운영하였다. 정부 수립 이후, 반민특위에 가담하여 친일파 단속, 척결활동을 했으나 실패했고, 제1공화국 제3공화국, 제4공화국 시절에는 야당 정치인으로 신민당 대표 등으로 활동하였다. 1954년 호헌동지회에 참여한 이후 민주당, 민정당, 신민당 등에서 활동하였다.
니시무라 나오미(일본어: 西村 直己 (にしむら なおみ), 1905년 10월 8일~1980년 7월 28일)는 10선 중의원…
니시무라 나오미(일본어: 西村 直己 (にしむら なおみ), 1905년 10월 8일~1980년 7월 28일)는 10선 중의원 의원을 지낸 일본의 정치인이다.
히라바야시 다이코(일본어: 平林 (ひらばやし) たい子 (こ), 1905년 10월 3일 - 1972년 2월 17일)는 일본의…
히라바야시 다이코(일본어: 平林 (ひらばやし) たい子 (こ), 1905년 10월 3일 - 1972년 2월 17일)는 일본의 소설가다. 여러 직장을 전전하고 중국대륙과 조선에서의 방랑 등을 거쳐, 그 체험으로부터 프로문학 작가로 데뷔하였다. 정파적으로는 노농파에 속했다. 전후 반공주의자로 전향하였다. 사후 일본예술원상, 은사상을 수상하고 히라바야시 다이코 문학상이 제정되었다.
강선명(姜善明, 1905년 10월 3일~1981년 1월 12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헌 국회의원을 지냈다.
엔치 후미코(일본어: 円 (えん)地 (ち) 文 (ふみ)子 (こ), 1905년 10월 2일 ~ 1986년 11월 14일)는…
엔치 후미코(일본어: 円 (えん)地 (ち) 文 (ふみ)子 (こ), 1905년 10월 2일 ~ 1986년 11월 14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리승기(李升基, 1905년 10월 1일~1996년 2월 8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화학자이다. 비날론(Vinalon)을…
리승기(李升基, 1905년 10월 1일~1996년 2월 8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화학자이다. 비날론(Vinalon)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1905년 전라남도 담양에서 태어나 중앙보통학교를 거쳐 1928년 마쓰야마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후 교토 제국대학으로 진학해 1931년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교토 제국대학 화학 연구소에서 조교수로 근무하던 1939년, 사쿠라다 이치로 등과 함께 비날론을 합성하여, 미국의 나일론과 독일의 아크릴 섬유에 이어 세계 세 번째 합성 섬유를 만든 사람이 되었다. 그 해 교토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러나 전쟁 중에 일본의 군사 정책에 협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치안유지법에 의해 구금되어 종전을 맞을 때까지 갇혀 있었다.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학교 공학대학의 학장을 맡다가 한국 전쟁 중이던 1950년 7월 31일 리종옥의 권유로 월북했다. 그 후 북조선에서 비날론 등의 섬유공업 발전에 힘썼으며, 1962년부터 1990년까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맡기도 했다. 1967년 녕변 원자력 연구소가 설립되면서 초대 연구소장으로 핵개발에 힘썼다고 한다. 비날론의 발명으로 1961년에 공산주의권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레닌상을 수상하였다.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다.
김종신(1904년 10월 5일~1977년 11월 12일)은 일제시대의 기자, 언론인, 기업인이자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종신(1904년 10월 5일~1977년 11월 12일)은 일제시대의 기자, 언론인, 기업인이자 대한민국의 정치인, 기업인이다. 조선일보 마산지국의 기자, 신간회 마산지회 집행위원, 마산부회의원, 해방 후에는 제8대 마산시장(민선), 제3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노나카 시로(野中 四郎, Nonaka Shirō; 1903년 10월 27일 – 1936년 2월 29일)는 일본 제국 육군…
노나카 시로(野中 四郎, Nonaka Shirō; 1903년 10월 27일 – 1936년 2월 29일)는 일본 제국 육군 장교로, 1936년 2.26 사건의 주모자 중 한 명이다. 최종 계급은 대위였다.
최병주(崔丙柱, 1903년 ~ ? )는 대한민국의 대법관 출신의 정치인이다. 제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본관은 삭녕.…
최병주(崔丙柱, 1903년 ~ ? )는 대한민국의 대법관 출신의 정치인이다. 제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본관은 삭녕. 193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대법관을 역임하였다. 1950년 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한국 전쟁 때 납북되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사법 분야에 선정되었다.
강승구(姜昇求, 1903년 10월 14일 ~ 1986년 1월 8일)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3·5·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오형근(吳衡根, 1903년 10월 4일 평북 선천 ∼ ?)은 경찰 간부와 군수 출신의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제3대…
오형근(吳衡根, 1903년 10월 4일 평북 선천 ∼ ?)은 경찰 간부와 군수 출신의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제3대 민의원의원을 역임했다.
쓰루타 요시유키(일본어: 鶴田 義行, 1903년 10월 1일 ~ 1986년 7월 24일)는 일본의 수영 선수로 올림픽…
쓰루타 요시유키(일본어: 鶴田 義行, 1903년 10월 1일 ~ 1986년 7월 24일)는 일본의 수영 선수로 올림픽 200m 평영 2연승을 거두었다.
신타니 도라사부로(일본어: 新谷 寅三郎 (しんたに とらさぶろう), 1902년 10월 30일~1984년 12월 16일)는 7선…
신타니 도라사부로(일본어: 新谷 寅三郎 (しんたに とらさぶろう), 1902년 10월 30일~1984년 12월 16일)는 7선 참의원 의원을 지낸 일본의 정치인이다.
기무라 시로시치(木村四郎七)는 일본의 외교관이다.
스즈키 시게요시(일본어: 鈴木 重義 (すずき しげよし), 1902년 10월 13일 ~ 1971년 12월 20일)는 일본의…
스즈키 시게요시(일본어: 鈴木 重義 (すずき しげよし), 1902년 10월 13일 ~ 1971년 12월 20일)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다.
쓰지 마사노부(일본어: 辻 政信, 1902년 10월 11일 ~ 1968년?)는 일본의 육군군인, 정치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쓰지 마사노부(일본어: 辻 政信, 1902년 10월 11일 ~ 1968년?)는 일본의 육군군인, 정치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활약했으며, 종전 후에는 대좌(대령)으로 예편하여 정치계로 입문하였고, 베트남 전쟁 와중에서 라오스를 방문했다가 실종되었다. 말레이 작전에서 기자들에게 여러 가지 작전을 유창하게 설명하면서 자칭, 혹은 타칭으로 "작전의 신"(作戦の神様)으로 알려졌다. 그 외에도 일본 육군사관학교 사건, 할힌골 전투, 숙칭 대학살, 바탄 죽음의 행진, 코코다 트랙 전투, 과달카날 전역에서의 과장된 언론플레이로 유명하며, 2차대전 후에도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쓰지를 ‘제3차 세계 대전을 일으킬 남자’(第三次世界大戦さえ起こしかねない男)라고 평가하며 위험시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필리핀, 말레이시아, 버마, 과달카날 전투에 각각 참모장교로 파견되었으나, 자주 지휘권을 간섭하여 특히 과달카날에서는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하였다. 근대적인 물량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당시 일본육군 장교의 상징이다. 또한 포로 집단처형, 식인 등 일본군의 각종 잔혹행위를 명령하기도 했으나, 처벌은커녕 전범으로 기소되지도 않았다. 참의원 재임 중인 1961년 4월에 동남아시아 시찰을 위해 출국, 라오스에 건너갔다가 흔적없이 실종되었다. 그 뒤 1968년 7월 20일에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이 실종 사건에 대해서는 각종 의견이 분분했으나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다.
이즈카 미쓰노부(일본어: 飯 (いい)塚 (づか) 盈 (みつ)延 (のぶ), 1902년 10월 4일 ~ 1965년 9월 4일)는…
이즈카 미쓰노부(일본어: 飯 (いい)塚 (づか) 盈 (みつ)延 (のぶ), 1902년 10월 4일 ~ 1965년 9월 4일)는 일본공산당 당원이었으며, 또한 특별고등경찰의 밀정이었다. 스파이 M(スパイM)이라고도 불렸다. 사용한 가명으로는 마쓰무라 노보루(松村昇), 미네라 효조(峰原暁助), 아마노 히로(天野煕), 다카세 마사타카(高瀬正敬) 등. 제2차 일본공산당을 일망타진시킨 아타미 사건에 기여한, 공산당 사상 최대의 밀정이었다. 1902년 에히메현 슈소군 고마쓰정(지금의 사이조시) 출신. 1909년 소학교에 입학. 성적이 좋아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다. 쌀 소동을 계기로 일본공산당 최초의 노동자 당원이 되었고, 와타나베 마사노스케가 이끌었던 동경합동조합에 투신함으로써 노동운동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제2차 일본공산당은 젊은 노동운동가로 촉망받던 그를 모스크바의 동방노력자공산대학(KUTV)에 유학보냈다. 하지만 유학 중 공산당에 환멸을 느낀 이즈카는 귀국 후 검거되고 전향한 뒤 경찰의 밀정이 되었다. 이즈카는 밀정으로서 당에 잠입, 비상시공산당 시대에 공산당 가옥자금국 책임자가 되어 1932년 8월 윤기협 사살사건, 동년 10월 적색깡패 사건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권력도발적 정책을 지시했고, 동년 11월 아타미 사건 때 공산당 대표자들을 일제검거당하게 만들었다. 이즈카가 밀정임을 KUTV 동문이었던 가자마 조키치 위원장을 비롯한 당간부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기에, 일반 당원들은 그의 과격한 활동방침에 조금의 의심도 품지 않고 따랐다. 그러나 아타미 사건으로 인한 일제검거 이후 조사와 재판에서 이즈카의 이름이 나오지 않자 당원들은 그가 경찰의 밀정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었다. 아타미 사건 이후 만주로 건너가 동생과 건축업을 했다. 이후 1976년 10월 28일 제78회 국회 징계위원회에서 공산당의 콘노 요지로 중의원 의원이 “이즈카는 평생 사회에서 도망치는 생활을 하며 홋카이도와 만주를 왕복하다 종전 후 가명으로 귀국한 이래 본적을 숨기고 가명을 계속 사용하면서 특고 끄나풀임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방에 틀어박혀 살다 쇼와 40년 술독에 빠져 도망자의 비참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출생지 본적상의 이즈카 미쓰노부는 아직도 살아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발언을 하면서 그 근황이 알려졌다.
김홍용(金洪鏞, 1902년 10월 3일 ~ 1950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홍용(金洪鏞, 1902년 10월 3일 ~ 1950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본관은 김해이다. 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에서 학사 학위 취득하고, 면장을 역임하다가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얼마 뒤 사망했다. 종교는 천주교이다. 동생인 김문용이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그의 지역구를 이어받았다.
야하라 히로미치(일본어: 八原 博通, 1902년 10월 2일 ~ 1981년 5월 7일)는 일본의 육군 군인으로, 오키나와…
야하라 히로미치(일본어: 八原 博通, 1902년 10월 2일 ~ 1981년 5월 7일)는 일본의 육군 군인으로, 오키나와 전투 당시에 일본군의 고급 참모로 활약했다. 1902년 돗토리현의 요나고시에서 태어나 최연소로 일본 육군대학에 입학하였다. 1933년부터 1935년까지는 미국에 주재한 경험이 있어서, 대전국인 미국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태평양 전쟁 개전 시에는 일본 육군 제15군 참모로서 버마 (지금의 미얀마) 공략 작전을 담당했으며, 그 뒤에는 일본 육군 대학 교관을 거쳐 1944년 3월, 오키나와의 방위를 담당하는 일본 육군 제32군의 고급 참모가 되었다. 오키나와 전투에선 사령관 우시지마 미쓰루를 보좌하고, 일본의 입장을 유리하게 할 생각으로 지구 전술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그의 전략은 표면적 무용을 중시하는 당시의 일본군에 뭉개졌고, 대본영에서의 공격 재촉과 조 이사무 참모장의 정적 사고 때문에 약 1주간의 무모한 야간 돌격으로 변환되었다. 야하라의 생각대로 일본군은 큰 손해를 입고 마부니 고지까지 퇴각했고, 1945년 6월 23일 항복함으로써 전투가 종결되었다. 야와라는 지휘관 우시지마 미쓰루와 조 이사무의 할복 자살을 지켜본 뒤에 탈출을 시도했지만 포로가 되었으며, 이후 1981년 사망하였다.
마쓰마에 시게요시(일본어: 松前 重義 (まつまえ しげよし), 1901년 10월 24일~1991년 8월 25일)는 6선 중의원…
마쓰마에 시게요시(일본어: 松前 重義 (まつまえ しげよし), 1901년 10월 24일~1991년 8월 25일)는 6선 중의원 의원을 지낸 일본의 정치인이다.
김상순(金相舜, 1900년 ~ ?년)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니시다 미쓰기(일본어: 西 (にし)田 (だ) 税 (みつぎ): 1901년(메이지 34년) 10월 3일-1937년(쇼와 12년)…
니시다 미쓰기(일본어: 西 (にし)田 (だ) 税 (みつぎ): 1901년(메이지 34년) 10월 3일-1937년(쇼와 12년) 8월 19일)는 일본의 육군 군인, 사상가다. 육군 출신 재야우익사상가로서 재야와 육군 청년장교단을 연결하는 "혁명 브로커" 역할을 했다. 『일본개조법안대강』을 저술한 기타 잇키의 하수인 내지 수제자로서 그 영향을 받아 국가혁신의 뜻을 더욱 확대하였다. 니시다의 사상을 황도파 청년장교단이 신봉했다. 그 결과 1936년 황도파 청년장교단의 쿠데타 2·26 사건이 실패로 돌아간 뒤 니시다와 기타는 쿠데타 준비 과정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음에도 체포되어 이듬해 사형당했다.
구용서(具鎔書, 일본식 이름:具原一郎 1899년 10월 21일 ~ 1984년 4월 24일)는 대한민국의 초대 한국은행…
구용서(具鎔書, 일본식 이름:具原一郎 1899년 10월 21일 ~ 1984년 4월 24일)는 대한민국의 초대 한국은행 총재이며, 제10대 상공부 장관이다. 본관은 창원.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 1897년 10월 9일 ~ 1973년 4월 30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본명은 노지리…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 1897년 10월 9일 ~ 1973년 4월 30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본명은 노지리 기요히코(野尻清彦). 소설 '구라마텐구(鞍馬天狗)' 시리즈 등 대중문학 작가로 유명하고, 역사소설과 논픽션물도 썼다.
윤일선(尹日善, 1896년 10월 5일~1987년 6월 22일)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의사, 대학교수, 대학총장, 사회…
윤일선(尹日善, 1896년 10월 5일~1987년 6월 22일)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의사, 대학교수, 대학총장, 사회 운동가이다. 서울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일본 교토 제국대학교(京都帝國大學校)에서 수학한 후 귀국, 세브란스 의과 대학과 서울대학교 의학부에서 교수로 활동했으며, 전공으로는 병리학과 해부학, 암 연구 분야였다. 대한민국학술원의 원로 회원이자 초대 원장이었으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1954년 서울대학교 부총장, 1956년 총장, 1961년 서울대 의대 강사와 명예교수를 지냈다. 1956년부터 1973년까지는 암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1963년 1월 박정희 등의 군정에 참여한 뒤로는 공화당 창립에 참여하고, 1964년 9월과 이듬해 1965년 9월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된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 한국대표로 두 차례 다녀왔으며, 과학기술후원회 이사장과 과학기술재단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윤영렬의 손자이자 대한제국의 관료이자 교육자인 윤치오의 첫째 아들이다. 윤승선의 형이며, 대한민국 4대 대통령을 지낸 윤보선(尹潽善)의 사촌 형이며, 구한말의 개혁정치가 윤치호의 당질이다. 그밖에 함께 의사로 활동한 윤치왕이 그의 당숙이고, 윤유선은 그의 사촌 동생이다. 그는 한국 최초의 병리학자이기도 했고, 경성제국대학(서울대학교의 전신)에서는 한국인 최초의 의학박사들을 양성하였다. 그는 대학 교수와 학생들이 직접 선출한 최초의 비(非)관선 서울대학교 총장이었다. 일본 도쿄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일본 긴키 지방 교토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일본 도쿄를 떠나 대한제국으로 귀국 후 충청남도 아산군을 거쳐 한성부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다. 본관은 해평이며, 아호는 동호(東湖)이다.
에도가와 란포(일본어: 江戸川 乱歩, えどがわ らんぽ, 1894년 10월 21일 ~ 1965년 7월 28일)는 일본의…
에도가와 란포(일본어: 江戸川 乱歩, えどがわ らんぽ, 1894년 10월 21일 ~ 1965년 7월 28일)는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이자 평론가이다. 본명은 히라이 다로(일본어: 平井太郎 ひらい たろう)로, 필명인 에도가와는 미국의 문호인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1923년 잡지 신청년에 단편 <2전짜리 동전>으로 데뷔했으며 명탐정 아케치 고고로, 괴도 20면상 등의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일본탐정작가클럽(이후 일본추리작가협회)을 창설해 초대이사장을 지냈다. 추리 작가의 등용문으로 자신의 이름을 붙인 에도가와 란포 상을 만드는 등 미스터리의 발전과 대중화에 힘써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불린다. 《명탐정 코난》에서도 코난이 단골서점에서 《괴도 20면상》을 사오는 장면이 있고, 테이탄 초등학교(청솔초등학교)의 담임교사도 에도가와 란포를 좋아하는 추리문학 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