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평(金汶枰, 1906년 1월 1일~1987년 1월 27일)은 대한민국의 경제금융조합인, 지역행정관료, 정치인이다.
와세다 대학: 561명
김문평(金汶枰, 1906년 1월 1일~1987년 1월 27일)은 대한민국의 경제금융조합인, 지역행정관료, 정치인이다.
유진산(柳珍山, 1905년 10월 18일~1974년 4월 28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7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유진산(柳珍山, 1905년 10월 18일~1974년 4월 28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7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전라북도 진산군 출신이다. 충칭(重慶) 임시정부의 연락원으로 독립운동을 하여 서대문형무소에서 4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해방 정국에서는 우익청년단체를 운용 및 운영하였다. 정부 수립 이후, 반민특위에 가담하여 친일파 단속, 척결활동을 했으나 실패했고, 제1공화국 제3공화국, 제4공화국 시절에는 야당 정치인으로 신민당 대표 등으로 활동하였다. 1954년 호헌동지회에 참여한 이후 민주당, 민정당, 신민당 등에서 활동하였다.
김광섭(金珖燮, 1905년 9월 22일~1977년 5월 23일)은 일제강점기 시대부터 활동했던,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대학…
김광섭(金珖燮, 1905년 9월 22일~1977년 5월 23일)은 일제강점기 시대부터 활동했던,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대학 교수였었다. 경희대 국문과 교수(1961.08.~1962.08.)를 지낸 그는 아울러, 번역문학가 겸 문학평론가이기도 하였으며, 전직 정치인이었었다. 호(號)는 이산(怡山)이다. 그의 사후, 그의 정신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1989년에 그의 12주기를 기하여, 《이산문학상》이 만들어져, 〈문학과지성사〉의 주관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시카와 다쓰조(石川達三, 1905년 7월 2일 ~ 1985년 1월 31일)는 일본인 작가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상의 첫…
이시카와 다쓰조(石川達三, 1905년 7월 2일 ~ 1985년 1월 31일)는 일본인 작가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상의 첫 수상자이다.
스기무라 쇼지로(일본어: 杉村 正二郎 (すぎむら しょうじろう), 1905년 4월 4일 ~ 1975년 1월 15일)는 일본의…
스기무라 쇼지로(일본어: 杉村 正二郎 (すぎむら しょうじろう), 1905년 4월 4일 ~ 1975년 1월 15일)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다.
오다 미키오(일본어: 織田 幹雄, 1905년 3월 30일 ~ 1998년 12월 2일)는 일본의 육상 선수였다. 일본인으로는…
오다 미키오(일본어: 織田 幹雄, 1905년 3월 30일 ~ 1998년 12월 2일)는 일본의 육상 선수였다.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올림픽에서, 그리고 아시아인으로는 개인 종목에서 첫 금메달을 딴 선수이기도 하다. 히로시마현 출신으로 오다 미키오는 주종목이 세단뛰기였지만, 멀리뛰기와 높이뛰기 선수로도 활약했다. 1924년, 1928년, 1932년 하계 올림픽들의 그 종목 모두에 참가했다. 금메달은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나왔다. 이때 그는 세단뛰기에서 15.21m를 뛰어 우승했다. 1931년 와세다 대학 재학 중에 15.58m를 뛰어 세계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육상에서 은퇴한 오다는 자신의 노력들을 스포츠 경영에 집중시키고 1948년 일본 올림픽 위원회의 위원이 되었으며, 후에 국제 아마추어 육상 연맹의 기술적 위원회에서 근무하였다. 그의 스포츠 성과는 1967년 이래 해마다 열리는 육상 대회인 오다 미키오 기념 아마추어 경기의 창립과 함께 인정을 받았다. 1964년 도쿄 올림픽 때에 오륜기가 36년 전의 그의 성취에 경의를 표하면서 정확한 15.21m의 계양대에 올려졌다. 그가 사망한 2년 후에 육상 전문가들에 의하여 그 세기의 최고 아시아인 남성 선수로 선택되었다.
박정규(朴井圭, 1905년 ~ 별세)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후지모토 사다요시(일본어: 藤本 定義, 1904년 12월 20일 ~ 1981년 2월 18일)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후지모토 사다요시(일본어: 藤本 定義, 1904년 12월 20일 ~ 1981년 2월 18일)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감독이다. 에히메현 마쓰야마시 출신이며 도쿄 교진군 초대 감독을 맡는 등 여러 프로팀에서 지도자를 역임했는데 본인 이후 한때 감독들이 30번을 달았으나 에가와 스구루의 맹활약 이후 투수들이 30번을 달고 있다.
이상백(李相佰, 1904년 8월 6일(1904-08-06)~1966년 4월 14일(1966-04-14))은 일제강점기와…
이상백(李相佰, 1904년 8월 6일(1904-08-06)~1966년 4월 14일(1966-04-14))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사학자, 체육인, 스포츠 행정가, 작가, 저술가, 언론인, 대학 교수, 정치인이다. 본관은 경주. 호(號)는 상백(想白), 백무일재(百無一齋).
센다 고레야(千田 是也 (せんだ これや)), 1904년(메이지 37년) 7월 15일 - 1994년 12월 21일)는 일본의…
센다 고레야(千田 是也 (せんだ これや)), 1904년(메이지 37년) 7월 15일 - 1994년 12월 21일)는 일본의 연출가, 배우, 디자이너. 극단 하이유샤의 초대 대표이다. 일본 가나가와 현 출신으로 건축가 · 이토 다메키치의 다섯째 아들이다. 실명은 이토 구니오(伊藤 圀夫 (いとう くにお)). 1944년, 히가시노 에이지로, 오자와 에이타로, 아오야마 스기사쿠 등과 극단 하이유샤를 창립, 죽을 때까지 극단 대표를 맡았다. 1949년에 하이유샤 양성소, 1954년에 하이유샤 극장을 개설해, 하이유샤의 리더적 존재로서 활약했다. 센다가 일본 연극사에서 신극계에 부여한 공적은 크고, 서구의 근대극이나 고전극의 상연 기반을 만드는 동시에, 일본의 현대 연극에 있어서 최초의 실천적인 연기론으로 리얼리즘 연기의 명교과서라고 불리는 「근대 배우술」(1949년)을 저술, 근대적인 연기술·배우술을 이론화하였다. 또한 베르톨트 브레흐트의 희곡을 번역, 소개 · 상연도 했다. 텔레비전 드라마 출연은 거의 전무나 다름없지만, 1940년대부터 1970년대경까지 약 100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이름을 날린 일본의 배우이다.
류인곤(柳寅坤, 1904년 ~ 1970년 10월 10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다마이 미사오(일본어: 玉井 操 (たまい みさお), 1903년 12월 16일 ~ 1978년 12월 23일)는 일본의 축구…
다마이 미사오(일본어: 玉井 操 (たまい みさお), 1903년 12월 16일 ~ 1978년 12월 23일)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다.
양주동(梁柱東, 1903년 8월 16일~1977년 2월 4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문학평론가, 국문학·영문학자, 문학번역가…
양주동(梁柱東, 1903년 8월 16일~1977년 2월 4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문학평론가, 국문학·영문학자, 문학번역가, 수필가였으며, 문학 담당 대학 교수이기도 하였었다. 본관은 남해(南海)이며, 호(號)는 무애(无涯)로,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남송학(南松鶴, 1903년 7월 23일~1974년 6월 22일)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다. 서울 마포에서 태어났다.…
남송학(南松鶴, 1903년 7월 23일~1974년 6월 22일)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다. 서울 마포에서 태어났다. 1948년 초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용산구에서 출마하였으나, 김동원에게 1위 자리를 내주었다. 이어 제2대,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당선되었다.
서민호(徐珉濠, 1903년 4월 27일 대한제국 전라남도 고흥 출생 - 1974년 1월 24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별세.)는…
서민호(徐珉濠, 1903년 4월 27일 대한제국 전라남도 고흥 출생 - 1974년 1월 24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별세.)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본관은 이천이며, 전라남도 고흥군 출생이다.
이은상(李殷相, 1903년 10월 22일 ~ 1982년 9월 18일)은 대한민국의 시조 시인, 사학자이자 명예 문학박사이다.…
이은상(李殷相, 1903년 10월 22일 ~ 1982년 9월 18일)은 대한민국의 시조 시인, 사학자이자 명예 문학박사이다. 본관은 전주, 호는 노산(鷺山)이다. 정종 (조선)의 열번째 서자 덕천군의 직계 후손이다.
스즈키 시게요시(일본어: 鈴木 重義 (すずき しげよし), 1902년 10월 13일 ~ 1971년 12월 20일)는 일본의…
스즈키 시게요시(일본어: 鈴木 重義 (すずき しげよし), 1902년 10월 13일 ~ 1971년 12월 20일)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다.
김홍용(金洪鏞, 1902년 10월 3일 ~ 1950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홍용(金洪鏞, 1902년 10월 3일 ~ 1950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본관은 김해이다. 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에서 학사 학위 취득하고, 면장을 역임하다가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얼마 뒤 사망했다. 종교는 천주교이다. 동생인 김문용이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그의 지역구를 이어받았다.
무라카미 이사무(일본어: 村上 勇, 1902년 4월 7일~1991년 1월 28일)는 14선 중의원 의원을 지낸 일본의…
무라카미 이사무(일본어: 村上 勇, 1902년 4월 7일~1991년 1월 28일)는 14선 중의원 의원을 지낸 일본의 정치인이다.
전진한(錢鎭漢, 1901년 11월 5일 ~ 1972년 4월 20일, 경북 상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 노동운동가…
전진한(錢鎭漢, 1901년 11월 5일 ~ 1972년 4월 20일, 경북 상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 노동운동가, 정치인이다. 대한민국의 초대 사회부 장관을 역임하였으며 대한노총위원장, 제헌국회 및 2대, 3대, 5대, 6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제헌국회에서 이익균점권을 근간으로 하는 노동법 제정을 주도하였다. 본관은 문경(聞慶)이며 호는 우촌(牛村)이다. 전진한의 저술을 모은 자료집으로 장남 동국대 명예교수 전창원이 출간한 <이렇게 싸웠다>(무역연구원, 1996), 서울대노동법연구회가 주관하고 손자 전동건 MBC기자, 손녀 전동현 박사가 참여한 <우촌 전진한자료집>(현암사, 2023)이 있다.
쿠모이 나미코 (雲井 浪子(くもい なみこ), 본명: 츠보우치 미사오, 결혼 전 성 : 타카이, 1901년 (메이지 34년)…
쿠모이 나미코 (雲井 浪子(くもい なみこ), 본명: 츠보우치 미사오, 결혼 전 성 : 타카이, 1901년 (메이지 34년) 7월 23일 ~ 2003년 (헤이세이 15년) 8월 20일)는 전 다카라즈카 소녀 가극단 주연 여역으로 다카라즈카 가극단 졸업생이다. 효고현 스모토시 출신이다. 남편은 연극평론가 와세다대학 교수 츠보우치 시코이다. 딸은 배우 츠보우치 미키코가 있다. 친언니는 다카라즈카 가극단 1기생으로, 다카라즈카 가극단 졸업생인 야소시마 카지코, 친동생은 다카라즈카 가극단 16기생으로 다카라즈카 졸업생인 오지마 나오코 (본명 : 타카이 히데코)이다. 처삼촌은 츠보우치 쇼요, 쇼요의 양녀는 이이즈카 쿠니이다. 이 예명은 오구라 백인일수의 제76번 : 호세지 이리미치 전 관백 태정대신 (후지와라노 타다미치)의 「海の原 漕ぎ出でてみれば 久堅の 雲居に紛ふ 沖つ白波(わたのはら こぎいでてみれば ひさかたの くもゐにまがう おきつしらなみ)」에서 다카라즈카 가극단 창설자인 코바야시 이치조가 지어주었다.
신중목(愼重穆, 1902년 ~ 1982년 12월 31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2대 국회의원, 제7대 농림부 장관을…
신중목(愼重穆, 1902년 ~ 1982년 12월 31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2대 국회의원, 제7대 농림부 장관을 지냈다.
고권삼(高權三, 1901년 5월 31일~?)은 한국의 역사학자이다.
고노 겐조(일본어: 河野 謙三 (こうの けんぞう), 1901년 5월 14일~1983년 10월 16일)는 5선 참의원 의원을…
고노 겐조(일본어: 河野 謙三 (こうの けんぞう), 1901년 5월 14일~1983년 10월 16일)는 5선 참의원 의원을 지낸 일본의 정치인이다.
하시모토 도미사부로(일본어: 橋本 登美三郎, 1901년 3월 5일 ~ 1990년 1월 19일)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하시모토 도미사부로(일본어: 橋本 登美三郎, 1901년 3월 5일 ~ 1990년 1월 19일)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자유민주당 중의원 의원, 자유민주당 간사장, 제3차 사토 내각의 운수대신, 제1차 사토 내각, 제1차 사토 내각 제1차 개조내각의 내각관방장관, 제1차 사토 내각 제2차 개조내각의 건설대신을 지냈다.
조헌영(趙憲泳, 1901년 1월 8일 ~ 1988년 5월 23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학 교수이다. 대한제국 경상북도…
조헌영(趙憲泳, 1901년 1월 8일 ~ 1988년 5월 23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학 교수이다. 대한제국 경상북도 영양군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한양(漢陽)이고 자(字)는 응문(應文)이며 호(號)는 해산(海山)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와세다 대학에서 유학하였으며, 귀국 이후에는 신간회 및 한의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대한민국 제헌 국회에서 경북 영양군 선거구에서 초대, 제2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한국 전쟁 중 피난을 가지 않았다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납북을 당했다. 납북 이후에는 평양의대 및 김일성대에서 의학 교수로 활동하였다. 자식들을 일찍 잃는 아픔을 겪었는데, 1937년 사망한 시인 조동진이 조헌영의 장남이고, 1968년 사망한 시인 조지훈이 조헌영의 차남이다.
아사누마 이네지로(浅沼稲次郎, 1898년 12월 27일 ~ 1960년 10월 12일)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일본사회당의 3대…
아사누마 이네지로(浅沼稲次郎, 1898년 12월 27일 ~ 1960년 10월 12일)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일본사회당의 3대 위원장을 지냈으며 1960년 우익 청년 야마구치 오토야에게 암살당했다. 도쿄도 고토구의 미야케 마을 출생으로 1923년 와세다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사회주의 운동을 시작해 1925년 일본 최초의 무산자를 대상으로 한 단일 정당 농민노동당의 서기장으로 추천되었으나 창당 3시간만에 정부의 명령으로 해산당한다. 1926년 노동농민당이 결성되지만 우파 사회민중당, 중간파 일본노동당, 좌파 노동농민당으로 분열되고 아사누마는 일본노동당에 참여해 1932년 분열된 정당들을 규합해 사회대중당을 창당했다. 이때 서기장 아소 히사의 군부에게 협력해 사회주의 혁명을 실현하자는 이념을 지지했다. 1940년 아소의 사망 후 정신적 혼란을 겪으며 1942년 총선에서 사퇴하고 1945년 일본사회당에 결성되자 조직 부장에 취임했다. 1947년 서기장이던 니시오 스에히로가 가타야마 데쓰 내각에 입당해 서기장 대리가 되었고 1948년 정식 서기장이 되어 1949년 중의원 선거에서 가타야마가 낙선해 임시 위원장 자리에 공백이 되자 국회 수반에 지명된다. 한때 잠시 물러났으나 1950년 복귀해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과 미일 안전 보장 조약을 둘러싸고 좌파와 우파가 충돌하자 절충안을 내놓았으나 좌우 분열을 막을 순 없었다. 1955년 사회당 통일로 서기장에 취임하고 1959년 중국을 방문해 미국이 중국과 일본 공동의 적이라는 강도 높은 발언을 했다. 1960년 3월 23일 니시오 스에히로의 탈당으로 민주사회당이 결성되고 스즈키 모사부로 위원장이 사임하자 후임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1960년 10월 12일 도쿄 히비야공회당에서 열린 자민당, 민주사회당 3당 당수 연설회에서 연설을 하던 중 우익 청년 야마구치 오토야의 칼에 찔려 암살당했다.
요코미쓰 리이치(일본어: 横 (よこ)光 (みつ) 利 (り)一 (いち), 1898년 3월 17일 ~ 1947년 12월…
요코미쓰 리이치(일본어: 横 (よこ)光 (みつ) 利 (り)一 (いち), 1898년 3월 17일 ~ 1947년 12월 30일)는 일본의 소설가, 문학 비평가이다. 기쿠치 간의 제자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함께 다이쇼 시대와 쇼와 시대의 신감각파(일본어: 新感覚派)로 분류되는 주요 소설가로 활동했다. 소설 《태양》(日輪)과 《파리》(蝿)로 등단했으며, 1931년에 발표한 소설 《기계》는 일본 모더니즘 문학의 정점에 올랐다고 평가받았다. 또 1935년에는 형식주의를 비판한 논문인 《순수소설론》(純粋小説論)을 발표하여 문학 평론 활동을 벌였다. 1937년에는 서양과 동양 문명의 갈등을 표현한 장편 소설 《여수》(旅愁)의 집필을 시작했으나 도중에 집필을 중단하는 등 완성하지 못하고 미완으로 남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에는 일본 제국의 패전 직후 당시 사회상에서 느낀 단상을 표현한 《밤의 구두》(夜の靴)를 집필했다.
이부세 마스지(일본어: 井 (い)伏 (ぶせ) 鱒 (ます)二 (じ), 1898년 2월 15일 ~ 1993년 7월 10일)는…
이부세 마스지(일본어: 井 (い)伏 (ぶせ) 鱒 (ます)二 (じ), 1898년 2월 15일 ~ 1993년 7월 10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안준상(安駿相, 1898년 1월 9일~1994년 12월 27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본관은 탐진(耽津)이다.
김우진(金祐鎭, 1897년 9월 19일~1926년 8월 4일)은 일제강점기 극작가· 연극 이론가 · 시인이다. 이다. 전남…
김우진(金祐鎭, 1897년 9월 19일~1926년 8월 4일)은 일제강점기 극작가· 연극 이론가 · 시인이다. 이다. 전남 장성 출생. 호는 초성(焦星)· 수산(水山). 희곡을 비롯해 시, 소설, 평론, 공연 연출 등 다양한 장르에서 재능을 발휘하며 48편의 시와 5편의 희곡, 20여편의 평론을 남겼고,'시대를 앞서간 천재 작가'로 당대 문단에 파란과 충격을 던져주었다. 표현주의를 직접 작품으로 실험한 유일한 극작가이자 우리나라 최초로 신극운동을 일으킨 근대예술의 선구자이다.
가루베 지온(輕部慈恩, 1897년 ~ 1970년)은 일본의 고고학자, 도굴꾼, 교육자이다.
서상국(徐相國, 1897년 3월 11일 ~ 1977년 1월 4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서상국(徐相國, 1897년 3월 11일 ~ 1977년 1월 4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났다.
구중회(具中會, 1897년 4월 21일~?)는 한국의 정치인이다.
김양수(金良洙, 1896년 - 1971년 1월 19일)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었다. 미국 콜롬비아대학과 영국 런던대학에서…
김양수(金良洙, 1896년 - 1971년 1월 19일)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었다. 미국 콜롬비아대학과 영국 런던대학에서 수학하고 삼일신보사 주필, 조선흥업주식회사 중역을 맡았었다. 제2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최창익(崔昌益, 1896년 2월 29일(1896-02-29) ~ 1957년 10월 6일(1957-10-06))은 일제강점기의…
최창익(崔昌益, 1896년 2월 29일(1896-02-29) ~ 1957년 10월 6일(1957-10-06))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였으며 공산주의자였다. 변호사 허헌의 사위인 그의 이명은 최창석(崔昌錫)·최창순(崔昌淳)·최동우(崔東宇)·이건우(李健宇)이다. 일본 유학 중인 1923년부터 노동운동에 종사하다가 1925년 이후 공산주의단체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의 계속된 탄압, 검거를 견디지 못하고 1934년 망명하였다. 중국에서 김원봉 등과 함께 조선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 등에서 항일활동을 하다가 그의 노선에 반발하여 탈퇴, 1936년 6월 조선청년전위동맹을 조직하였다. 그 뒤 김원봉 일파와 협상을 시도하였으나 결렬, 화북으로 건너가 무정(武亭), 김두봉 등과 조선독립동맹에서 활동했다. 8·15 해방 이후 38선 이북으로 귀환하였으며, 1946년 1월 조선독립동맹을 개칭해 '조선신민당'을 창설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3당 합당에 참여하는 등 연안파의 중진으로 활동했다. 1948년 4월 남북협상에 참여했다가 그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에 참여하여 재정상, 부수상 겸 재정상, 1955년 국가검열상 등을 역임했다. 김두봉 시대 인민 정권이자 북한 인민 정부 시대의 제3대 재정상 시절이던 1954년 8월 3일, 김일성 총리의 독재화를 비판하다가 징처되어 같은 해 11월 22일, 북한 재정상 직에서 파면되었고 1년 후 1955년 8월 11일, 종파 사건에 연루되어 남로당과 박헌영의 공격에 동참했지만 1956년 9월 23일, 김일성에 의해 숙청되었다. 중공의 국방부장 펑더화이가 그를 변호하여 사형은 모면하였으나 그해 10월 재투옥 후 이듬해 옥사한다. 독립운동 시 가명은 최창석(崔昌錫), 최창순(崔昌淳), 최동우(崔東宇), 이건우(李建宇), 최태현 등을 사용하였다. 변호사 허헌의 딸 허정숙의 남편이다. 함경북도 출신.
송계백(宋繼白, 1896년 ~ 1922년)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여산(驪山)이며, 호(號)는…
송계백(宋繼白, 1896년 ~ 1922년)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여산(驪山)이며, 호(號)는 평원(平原)이다.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중장 송호림 장군의 백부(큰아버지)이다.
가네코 미쓰하루(일본어: 金子光晴 かねこみつはる[*])는 일본의 시인이자 화가이다. 메이지 시대에 태어나 쇼와 시대의…
가네코 미쓰하루(일본어: 金子光晴 かねこみつはる[*])는 일본의 시인이자 화가이다. 메이지 시대에 태어나 쇼와 시대의 격동기를 살면서, 일본의 군국주의와 전쟁에 대하여 반대하는 왕성한 활동을 했다.
오카다 고요(일본어: 岡田紅陽, 1895년 8월 31일 ~ 1972년 11월 22일)은 일본의 사진가이다. 니가타현 출신으로…
오카다 고요(일본어: 岡田紅陽, 1895년 8월 31일 ~ 1972년 11월 22일)은 일본의 사진가이다. 니가타현 출신으로 와세다 대학까지 졸업한 약력을 가지고 있다. 1923년에는 간토 대지진(상세 사항은 간토대진재 문서 참조)의 여파에 따라 지진에 관한 사전 조사 및 답사를 위해 도쿄부의 청탁을 받고 촬영된 내력도 있었다. 1925년에는 사진 스튜디오까지 설립되기도 하였고, 보통 산악사진이나 풍경사진 등을 위주로 촬영하였다. 또한 후지산의 촬영에 대한 라이프워크까지 가진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한 1952년에는 일본사진협회를 창설시켰다.
나용균(羅容均, 1896년 2월 25일~1984년 7월 6일)이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1·4·5·6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나용균(羅容均, 1896년 2월 25일~1984년 7월 6일)이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1·4·5·6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제6대 국회에서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장덕수(張德秀, 1894년 12월 10일 ~ 1947년 12월 2일)는 일제강점기의 정치인, 언론인, 교수이다. 독립운동가…
장덕수(張德秀, 1894년 12월 10일 ~ 1947년 12월 2일)는 일제강점기의 정치인, 언론인, 교수이다. 독립운동가 겸 언론인 장덕준의 동생이자 독립운동가 장덕진의 형이다. 본관은 결성(結城), 호는 설산(雪山)이다. 1916년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학사학위 취득 후 일시 귀국했다가 상하이로 건너가 신한청년당과 상하이 임시 정부에 가담했다. 다시 귀국했다가 조선총독부에 의해 체포되어 전라남도 하의도에 유배되었지만 여운형의 도움으로 탈출하였다. 1923년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하고 부사장을 역임하였다. 사회주의 운동과 계몽운동을 하다가 '공산주의 선전비의 남비(濫費) 사건' 이후 유학길에 올라 영국과 미국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1936년 귀국하여 보성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1936년 일장기 말소 사건에 따른 동아일보 정간사태와 1938년 흥업구락부 사건 전후로 친일파로 변절,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국민총력조선연맹, 대화숙(야마토주쿠) 등 일제 어용단체에 참여해 이들 단체에서 주관하는 시국 강연에 적극 나서거나, 내선일체를 찬양하는 수많은 글을 기고하거나 발표하는 등 적극적인 친일 활동에 참여했다. 사후, 여러 사회단체에서 정리한 주요 친일파 목록에 등재되었다. 1945년 광복 후에는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한국민주당 외무부장과 정치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신탁통치 문제에 대해서는 '찬성 후 반대'라는 입장을 내서 이승만, 김구와 갈등을 빚었지만, 이승만의 남한 단독 정부 수립론은 초지일관으로 지지하였다. 1947년 12월 2일 저녁 6시 50분경 동대문구 제기동 자택에서 한국독립당 소속 박광옥, 배희범의 총에 맞고 절명하였다. 이들은 장덕수가 젊어선 공산당, 나중엔 친일파, 게다가 찬탁론자라는 이유로 암살했다고 밝혔다.
에도가와 란포(일본어: 江戸川 乱歩, えどがわ らんぽ, 1894년 10월 21일 ~ 1965년 7월 28일)는 일본의…
에도가와 란포(일본어: 江戸川 乱歩, えどがわ らんぽ, 1894년 10월 21일 ~ 1965년 7월 28일)는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이자 평론가이다. 본명은 히라이 다로(일본어: 平井太郎 ひらい たろう)로, 필명인 에도가와는 미국의 문호인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1923년 잡지 신청년에 단편 <2전짜리 동전>으로 데뷔했으며 명탐정 아케치 고고로, 괴도 20면상 등의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일본탐정작가클럽(이후 일본추리작가협회)을 창설해 초대이사장을 지냈다. 추리 작가의 등용문으로 자신의 이름을 붙인 에도가와 란포 상을 만드는 등 미스터리의 발전과 대중화에 힘써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불린다. 《명탐정 코난》에서도 코난이 단골서점에서 《괴도 20면상》을 사오는 장면이 있고, 테이탄 초등학교(청솔초등학교)의 담임교사도 에도가와 란포를 좋아하는 추리문학 팬이다.
이종형(李鍾馨, 본명: 이종영, 본명 한자: 李鍾榮, 1895년 4월 20일 ~ 1954년 2월 15일)은 대한민국의 언론인…
이종형(李鍾馨, 본명: 이종영, 본명 한자: 李鍾榮, 1895년 4월 20일 ~ 1954년 2월 15일)은 대한민국의 언론인 출신 정치인이다.
하야마 요시키(葉山嘉樹, 1894년 3월 12일 ∼ 1945년 10월 18일)는 일본 후쿠오카 현 출신 프롤레타리아…
하야마 요시키(葉山嘉樹, 1894년 3월 12일 ∼ 1945년 10월 18일)는 일본 후쿠오카 현 출신 프롤레타리아 작가이다. 와세다대학에 진학하지만 학비 미납으로 제적당했다. 외항 선원으로서 홋카이도와 인도 콜카타를 왕래하는 화물선에서 근무한 경험을 훗날 작품으로 발표하기도 하고, 1920년에는 나고야 시멘트 공장에 근무하면서 노동조합 결성을 시도하다가 해고당하기도 한다. 그 후 나고야 노동자 협회에 가입해 각종 노동 쟁의를 지도하고, 1923년에 나고야 공산당 사건으로 검거된 후 미결수로 투옥되어, 옥중에서 창작 활동에 열중하는 한편 관동 대지진을 경험하기도 한다. 1925년 출옥 후 그의 대표작이자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매춘부>, <바다에 사는 사람들>, <시멘트 통 속의 편지>를 발표해 신진 작가로서 최고의 명성을 얻게 된다. 다소 도식적이고 관념적이던 기존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비해 하야마는 그의 작품에서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꾸밈없이 그려 내어 문학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한 단계 높였다. 그러나 1934년 무렵, 특별 고등 경찰에 의한 사상 통제가 강화되고 일본의 국론이 중국 대륙 진출로 통일되자 하야마는 전향해 당시의 체제에 대한 지지 입장을 강화하게 된다. 1945년 만주로 이주하기 위해 건너갔던 그는 소련군의 만주 점령과 일본의 패전으로 인해 귀국하던 도중, 그해 10월 열차 내에서 뇌일혈로 사망했다.
장택상(張澤相, 1893년 10월 22일~1969년 8월 1일)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고위정치인이다. 대한민국 제3대…
장택상(張澤相, 1893년 10월 22일~1969년 8월 1일)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고위정치인이다. 대한민국 제3대 국무총리이다. 호(號)는 창랑(滄浪), 자(字)는 치우(致雨, 아명(兒名)은 장삼욱(張三旭). 영문 이니셜은 TS. 미군정기 수도경찰청장을 역임했고, 정부 수립 이후 3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직후 경기도 경찰청 경찰부장, 제1관구 경찰청장, 수도경찰청장 등으로 활동하였고, 조선공산당원과 남로당 진압을 주도하였으며, 해방정국에서 10차례나 테러를 당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 수립 직후 제1대 외무장관을 역임하였고 제5차·6차 UN총회의 대표단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1952년 5~7월 무렵 피난지인 부산에서 이범석 등과 함께 부산정치파동에 주동적 역할을 수행하고, 1952년 5월 6일부터 1952년 10월 5일까지 대한민국의 제3대 국무총리를 역임하였다. 부통령 후보로도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4·19 혁명 이후 장면 정권과 박정희 정부 기간 중에는 야당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자유당을 재건하여 총재가 되었고,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1964년 이후 박정희 정권의 한일회담에 반대하여 윤보선, 장준하, 함석헌 등과 대일굴욕외교반대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위원장을 역임하고, 1969년 신민당 고문이 되었다. 해방 정국에서 조선공산당과 남로당 등 좌익 정당과 좌익 정치운동을 단속하였으나, 여운형, 이만규, 조봉암 등과는 인간적인 친분관계를 유지하였다. 진보당 사건으로 조봉암 등이 이적행위자와 공산주의자로 몰리자 조봉암의 석방, 구명운동을 폈고, 법정에서 조봉암을 변호하기도 했다. 학자 여현 여헌 장현광의 후손으로 이조판서 장석용의 손자이자 경기도관찰사를 지낸 장승원과 정부인 풍양 조씨(豊壤 趙氏)의 셋째 아들이었다.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경상도 인동군 북삼면 오태동리 출신이다.
스즈키 모사부로(鈴木 茂三郎, 1893년 2월 7일~1970년 5월 7일)는 9선 중의원 의원을 역임한 일본의 정치인이다.
정현모(鄭顯模, 1893년 ~ 1965년 1월 1일)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김명식(金明植, 1890년 9월 26일 ~ 1943년 4월 11일)은 일제강점기에 사회주의 계열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김명식(金明植, 1890년 9월 26일 ~ 1943년 4월 11일)은 일제강점기에 사회주의 계열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이다. 아호는 송산(松山)이다.
최 남선(崔 南善, 1890년 4월 26일 ~ 1957년 10월 10일)은 대한민국의 문화운동가이며 근대 문학 발전에 기여한…
최 남선(崔 南善, 1890년 4월 26일 ~ 1957년 10월 10일)은 대한민국의 문화운동가이며 근대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있는 반면, 이광수와 함께 거론되는 변절한 친일파이다. 아명은 창흥(昌興), 자는 공륙(公六), 아호는 육당(六堂)이며, 본관은 동주. 한성부에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강원도 철원을 거쳐 경상남도 창원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대한제국의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으나 중퇴와 복학을 되풀이하다가 1907년 와세다 대학 재학 중 동맹 휴학 사건으로 인하여 퇴학 처분되어 귀국했다. 1908년 이광수와 함께 소년지를 창간했으나 한일 합방 후 일제의 압력으로 폐간되었고, 1912년 이광수의 도움으로 《붉은 저고리》, 1913년 《아이들 보이》, 《새별》등의 잡지를 발간하였으나 조선 총독부의 '신문지법' 명령으로 모두 강제 폐간되었다. 1914년에는 잡지 《청춘》을 발간했으나 1918년 일본의 압력으로 폐간당했다. 1919년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49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고,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 낭독하였다. 3.1 운동을 사주한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투옥, 1921년에 석방되었다. 1922년 동명사(東明社)를 설립, 주간잡지 《동명(東明)》을 발행하였고 1924년 《시대일보 (時代日報)》를 창간, 사장에 취임했으나 자금과 총독부의 압력 등으로 폐간, 1925년 동아일보의 객원과 조선일보 객원 논설위원을 지냈다. 1927년 총독부의 연구비와 생계 지원 유혹으로 조선사 편수회에 참여하면서 친일 성향으로 전향하여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친일 행적은 적극적인 친일이 아니라는 반론이 1950년대에 장준하 등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1957년 10월 10일 뇌일혈로 별세한 그는 일제 강점기 시대 동안에 이광수, 홍명희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대표되었던 인물이다.
변광호(邊光鎬, 1890년 ~ 1958년 5월 13일)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