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환(方定煥, 1899년 11월 9일~1931년 7월 23일)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아동 문화 운동가, 아동 교육인…방정환(方定煥, 1899년 11월 9일~1931년 7월 23일)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아동 문화 운동가, 아동 교육인, 사회운동가이다. 『어린이날』의 창시자로 잘 알려져 있다. 대한제국 한성부 서부구역 적선방 아주현계 출신으로, 본관은 온양(溫陽), 호는 소파(小波)이다. 일본 아동 문학가인 이와야 사자나미(巌谷小波)를 존경해서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으나, 수운 최제우의 저서인 《동경대전》의 "용담수류사해원 구악춘회일세화(용담의 물이 흘러 온 세상 바다를 이루는 근원이 되고 구미산에 봄이 다시 돌아오니 온 세상이 꽃이구나)"라는 절구에서 가져온 것으로 용담의 작은 물결이 되어 온 세상에 퍼지고 이 땅 위에 지상천국인 봄동산을 이룩하자는 천도교 사상을 담은 것으로 천도교 신자 소춘(小春) 김기전과 함께 ‘소춘’ ‘소파’라는 호를 지었다는 설도 있다. 이외에도 잔물, 잔물결, 물망초, 몽견초, 몽중인, 삼산인, 북극성, 쌍S, 목성, 은파리, CWP, 길동무, 운정(雲庭), 파영(波影), 깔깔박사, SP생이라는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하였다. 이는 일본의 언론 검열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고, 소수의 필자들이 잡지의 지면을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1931년 7월 23일(목요일), 오랜 질병과 과로로 인한 신장염으로 사망했다.
미야모토 유리코(일본어: 宮本 百合子, 1899년 2월 13일 ~ 1951년 1월 21일)는 일본의 소설가, 사회 활동가이자…미야모토 유리코(일본어: 宮本 百合子, 1899년 2월 13일 ~ 1951년 1월 21일)는 일본의 소설가, 사회 활동가이자 문학평론가로 다이쇼 시대와 초기 쇼와 시대에 활동하였다. 프롤레타리아 해방과 여성 해방 운동에 참여한 것과 그의 자서전으로 알려져 있다. 미야모토는 미국과 소련을 다녀와 귀국하였으나 여러 저술들이 검열되었고 정치적 관점으로 인해 반복적으로 구속되었다. 주요한 저술로 《반슈 평야》(播州平野), 《풍지초》(風知草) 등이 있다. 그와 남편인 미야모토 겐지는 일본의 여성과 노동계급 해방운동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평가된다. 혼전 성은 주조(中條)이다.
요코미쓰 리이치(일본어: 横 (よこ)光 (みつ) 利 (り)一 (いち), 1898년 3월 17일 ~ 1947년 12월…요코미쓰 리이치(일본어: 横 (よこ)光 (みつ) 利 (り)一 (いち), 1898년 3월 17일 ~ 1947년 12월 30일)는 일본의 소설가, 문학 비평가이다. 기쿠치 간의 제자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함께 다이쇼 시대와 쇼와 시대의 신감각파(일본어: 新感覚派)로 분류되는 주요 소설가로 활동했다. 소설 《태양》(日輪)과 《파리》(蝿)로 등단했으며, 1931년에 발표한 소설 《기계》는 일본 모더니즘 문학의 정점에 올랐다고 평가받았다. 또 1935년에는 형식주의를 비판한 논문인 《순수소설론》(純粋小説論)을 발표하여 문학 평론 활동을 벌였다. 1937년에는 서양과 동양 문명의 갈등을 표현한 장편 소설 《여수》(旅愁)의 집필을 시작했으나 도중에 집필을 중단하는 등 완성하지 못하고 미완으로 남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에는 일본 제국의 패전 직후 당시 사회상에서 느낀 단상을 표현한 《밤의 구두》(夜の靴)를 집필했다.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 1897년 10월 9일 ~ 1973년 4월 30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본명은 노지리…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 1897년 10월 9일 ~ 1973년 4월 30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본명은 노지리 기요히코(野尻清彦). 소설 '구라마텐구(鞍馬天狗)' 시리즈 등 대중문학 작가로 유명하고, 역사소설과 논픽션물도 썼다.
위다푸(욱달부, 중국어 정체자: 郁達夫, 간체자: 郁达夫, 병음: Yù Dá Fū, 문화어: 유다부, 1896년 12월 7일…위다푸(욱달부, 중국어 정체자: 郁達夫, 간체자: 郁达夫, 병음: Yù Dá Fū, 문화어: 유다부, 1896년 12월 7일 ~ 1945년 9월 17일)은 중국의 소설가이다. 대표작으로 『몰락(沈淪)』, 『잃어버린 양(迷羊)』 등이 있는데, 『몰락』은 몰락해가는 신경질적 개인의 성적 추구를 집중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거듭나며, 퇴폐적이며 자아 폭로적인 경향에 대해 찬양과 비난이 엇갈리면서 열딘 문학토론의 대상이 되었다.
마키노 신이치(일본어: 牧 (まき)野 (の) 信 (しん)一 (いち), 1896년 11월 12일~1939년 3월 24일)는…마키노 신이치(일본어: 牧 (まき)野 (の) 信 (しん)一 (いち), 1896년 11월 12일~1939년 3월 24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마키노 신이치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더불어 이상이 동경하던 작가 중 한 사람이다. 1896년 가나가와현 오다와라시에서 태어나 39세에 자택에서 자살했다. 1919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열세 명의 동인을 모아 《13인》이라는 잡지를 창간했는데, 거기에 첫 작품 〈손톱〉을 발표했고, 당시 자연주의의 대가였던 시마자키 도손에게 극찬을 받았다. 이후 전기에는 대부분 신변잡기적 사소설풍의 육친 혐오적 작품을 썼다. 그러나 중기에는 작풍이 다소 변화되어, 이른바 환상풍의 경지를 개척하게 된다. 고향 오다와라의 풍토에 고대 그리스나 유럽 중세의 이미지를 중첩시켜 꿈과 현실을 교착시킨 환상적인 작품들로, 지적인 유머나 풍자성이 그 특징이다. 후기에 해당하는 1931년 무렵부터는 신경쇠약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작품은 다시 전기의 사소설적 경향으로 바뀌며 더욱 어두워졌다. 이런 마키노 문학은 일본문학사에서 일반적으로 자연주의의 전통을 이은 ‘사소설’의 방류로 평가되며, 그 작품은 ‘변형 사소설’로 불린다. 마키노 문학의 미학적 본질은 창백한 자의식에서 반사되는 신경증적 양상과 비애감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살도 채 안 된 자신과 어머니를 남겨두고 미국으로 가 버린 아버지의 보헤미안적이고 데카당적인 삶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홀로 남겨진 어머니는 교육열이 높고 훈육에 엄격했다. 어머니의 엄한 양육 방식은, 아버지를 닮아 틀에 얽매이기 싫어하던 마키노의 유년 시절에 큰 상처를 남겼으며, 그 트라우마는 끝내 치유되지 못했다. 그것이 육친 혐오 양상이나, 신경증적 양상, 그리고 방랑이나 위악성과 자조성, 광기 등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起夫)는 “일본인으로서 일본 풍토에 발을 디디고 살면서, 이것을 서구적 교양으로 치환해 바라보고, 서구적 환상으로 장식해, 언어 예술만이 잘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이 같은 이중의 영상을 작품 세계로 해, 그 신비한 지적 감각 체험에 독자를 이끌고 가는 하이칼라의 작가”라고 그의 작품의 본질을 짚었다.
이누카이 다케루(犬養健, 1896년 7월 28일 - 1960년 8월 28일)는 일본의 정치인, 소설가이다. 정3위 훈1등.…이누카이 다케루(犬養健, 1896년 7월 28일 - 1960년 8월 28일)는 일본의 정치인, 소설가이다. 정3위 훈1등. 총리대신을 지낸 이누카이 쓰요시의 3남이다. 제2·3대 일본의 법무대신. 도쿄제국대학 중퇴 후 작가로 활동하며 1923년 첫 작품집을 간행하였다. 이후 정계에 입문하여 1930년 입헌정우회 공인으로 중의원 의원에 처음 당선되었다. 1941년 조르게 사건에 연루된 의혹으로 기소되었으나 무죄로 판결되었다. 1952년부터 요시다 시게루 내각에서 법무대신을 지내었다. 1954년 사토 에이사쿠의 비리 의혹이 파문을 일으키는 와중에 요시다의 종용으로 지휘권을 발동하여 이에 개입하려다가 야당과 여론의 큰 반발에 부딪혀 즉시 사임하고 곧 요시다 내각이 총사퇴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기영(李箕永, 1895년 5월 29일~1984년 8월 9일)은 일제강점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소설가이다. 충남 아산…이기영(李箕永, 1895년 5월 29일~1984년 8월 9일)은 일제강점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소설가이다. 충남 아산 출생이며, 호는 민촌(民村)이다. 필명은 성거산인(聖居山人), 양심곡인(陽心谷人), 양심학인(陽心學人)이다. 본관은 덕수이며 훗날 김정남의 어머니가 되는 성혜림이 그의 며느리였다. 도쿄 세이소쿠(正則)학교를 중퇴하고,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귀국했다. 카프 맹원이었다. 1924년 《개벽》 현상문예에 〈오빠의 비밀 편지〉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그 후 〈서화〉, 〈인간수업〉, 〈고향〉, 〈신개지〉, 〈땅〉, 〈두만강〉, 〈봄〉 등을 발표했으며, 희곡 작품으로 〈그들의 남매〉, 〈월희〉 등이 있다. 해방 후 월북하여 조선예총위원장 등 각종 기관의 책임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는 집단성과 프로 문학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을 쓴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나혜석(1896년 4월 28일 ~ 1948년 12월 10일)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한민국의 화가이자 작가, 시인, 조각가…나혜석(1896년 4월 28일 ~ 1948년 12월 10일)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한민국의 화가이자 작가, 시인, 조각가,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 언론인이다.
요시야 노부코(일본어: 吉屋 信子, 1896년 1월 12일 ~ 1973년 7월 11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다이쇼 시대와…요시야 노부코(일본어: 吉屋 信子, 1896년 1월 12일 ~ 1973년 7월 11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다이쇼 시대와 쇼와 시대를 풍미한 일본의 소설가로 현대 일본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적이고 많은 작품을 발표한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여겨진다. 연재 로맨스 소설과 사춘기 소녀 소설을 전문으로 했으며 S 장르를 포함한 일본 레즈비언 문학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 가운데 일부는 영화로 제작되었다.
이토 노에(일본어: 伊藤 野枝 (いとう のえ): 1895년 1월 21일 ~ 1923년 [[9월 16일)는 일본의…이토 노에(일본어: 伊藤 野枝 (いとう のえ): 1895년 1월 21일 ~ 1923년 [[9월 16일)는 일본의 여성해방운동가, 무정부주의자, 번역자, 편집자다. 오스기 사카에의 아내였으며, 아마카스 사건 때 일가족이 모두 살해당했다.
에도가와 란포(일본어: 江戸川 乱歩, えどがわ らんぽ, 1894년 10월 21일 ~ 1965년 7월 28일)는 일본의…에도가와 란포(일본어: 江戸川 乱歩, えどがわ らんぽ, 1894년 10월 21일 ~ 1965년 7월 28일)는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이자 평론가이다. 본명은 히라이 다로(일본어: 平井太郎 ひらい たろう)로, 필명인 에도가와는 미국의 문호인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1923년 잡지 신청년에 단편 <2전짜리 동전>으로 데뷔했으며 명탐정 아케치 고고로, 괴도 20면상 등의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일본탐정작가클럽(이후 일본추리작가협회)을 창설해 초대이사장을 지냈다. 추리 작가의 등용문으로 자신의 이름을 붙인 에도가와 란포 상을 만드는 등 미스터리의 발전과 대중화에 힘써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불린다. 《명탐정 코난》에서도 코난이 단골서점에서 《괴도 20면상》을 사오는 장면이 있고, 테이탄 초등학교(청솔초등학교)의 담임교사도 에도가와 란포를 좋아하는 추리문학 팬이다.
하야마 요시키(葉山嘉樹, 1894년 3월 12일 ∼ 1945년 10월 18일)는 일본 후쿠오카 현 출신 프롤레타리아…하야마 요시키(葉山嘉樹, 1894년 3월 12일 ∼ 1945년 10월 18일)는 일본 후쿠오카 현 출신 프롤레타리아 작가이다. 와세다대학에 진학하지만 학비 미납으로 제적당했다. 외항 선원으로서 홋카이도와 인도 콜카타를 왕래하는 화물선에서 근무한 경험을 훗날 작품으로 발표하기도 하고, 1920년에는 나고야 시멘트 공장에 근무하면서 노동조합 결성을 시도하다가 해고당하기도 한다. 그 후 나고야 노동자 협회에 가입해 각종 노동 쟁의를 지도하고, 1923년에 나고야 공산당 사건으로 검거된 후 미결수로 투옥되어, 옥중에서 창작 활동에 열중하는 한편 관동 대지진을 경험하기도 한다. 1925년 출옥 후 그의 대표작이자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매춘부>, <바다에 사는 사람들>, <시멘트 통 속의 편지>를 발표해 신진 작가로서 최고의 명성을 얻게 된다. 다소 도식적이고 관념적이던 기존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비해 하야마는 그의 작품에서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꾸밈없이 그려 내어 문학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한 단계 높였다. 그러나 1934년 무렵, 특별 고등 경찰에 의한 사상 통제가 강화되고 일본의 국론이 중국 대륙 진출로 통일되자 하야마는 전향해 당시의 체제에 대한 지지 입장을 강화하게 된다. 1945년 만주로 이주하기 위해 건너갔던 그는 소련군의 만주 점령과 일본의 패전으로 인해 귀국하던 도중, 그해 10월 열차 내에서 뇌일혈로 사망했다.
전영택(田榮澤, 1894년 1월 18일~1968년 1월 16일)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소설가 겸 수필 작가이자…전영택(田榮澤, 1894년 1월 18일~1968년 1월 16일)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소설가 겸 수필 작가이자 프로테스탄트 장로회 목회자이고, 대학 교수 겸 기독교 교육인이다. 본은 담양(潭陽)이고, 호(號)는 늘봄·추호(秋湖)이며, 1894년 당시 조선의 평안도 평양 출생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대 평안남도 평양에서도 오롯이 모태 기독교인의 삶을 지내다가, 1945년 8월 15일 당시 광복(을유해방)이 성립되자 삼팔선 남쪽으로 월남했다.
사토 하루오(佐藤春夫, 1892년 4월 9일 ~ 1964년 5월 6일)는 일본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일본의 다이쇼 시대와…사토 하루오(佐藤春夫, 1892년 4월 9일 ~ 1964년 5월 6일)는 일본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일본의 다이쇼 시대와 쇼와 시대에 활동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우울감을 탐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미우리상 4등을 수상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일본어: 芥川 龍之介 (あくたがわ りゅうのすけ), 1892년 3월 1일~1927년 7월 24일)는 일본의…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일본어: 芥川 龍之介 (あくたがわ りゅうのすけ), 1892년 3월 1일~1927년 7월 24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호는 징강당주인(澄江堂主人)이며 하이쿠 작가로서의 호는 가키(我鬼)이다. 일본의 《곤자쿠 이야기집》·《우지슈이 이야기》와 같은 전통적인 고전들에서 제재를 취해 「참마죽」, 「덤불 속」, 「지옥변」 등과 같은 단편 소설들을 주로 저술했고 「거미줄(원제: 蜘蛛の糸)」, 「두자춘(杜子春)」 등 어린이를 위한 작품들, 예수를 학대한 유대인이 예수가 세상에 다시 올 때까지 방황한다는 내용의 「방황하는 유대인」을 저술했다.
미키 로후(三木露風, 1889년 6월 23일 ~ 1964년 12월 29일)는 시인이자 비평가·동요 작가·작사가·수필가이다.…미키 로후(三木露風, 1889년 6월 23일 ~ 1964년 12월 29일)는 시인이자 비평가·동요 작가·작사가·수필가이다. 미키 로후는 필명으로, 본명은 미키 마사오(三木操)이다. 문학을 비롯해 미술사와 미학 등 예술 전반에 조예가 깊어 다양한 이론서를 남겼으며 강의를 통해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도 힘썼다. 그는 효고현(兵庫県) 다쓰노정(龍野町)에서 은행원인 아버지 세쓰지로와 어머니 미도리카와 가타 사이 장남으로 태어났다. 로후가 일곱 살이 되던 해 아버지의 방탕한 생활로 부모가 이혼을 하게 되는데, 어머니는 당시 한 살이던 로후의 동생만을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고 로후는 조부모의 집에 맡겨진다. 청소년기에는 수석으로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문학에만 관심을 쏟은 탓에 졸업이 어려워 오카야마현에 있는 시즈타니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1905년 진학을 위해 도쿄에 가서도 문학에만 심취해 중학교 편입 시험에 떨어지기도 한다. 1907년부터 소마 교후(相馬御風), 노구치 우조(野口雨情) 등과 함께 <와세다 시사(早稲田詩社)>를 결성하고 그해 9월 와세다대학에 입학한다. 이 무렵 그는 단카(短歌)와 절연하고 시에만 전념했는데 매월 서너 군데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 간다. 그러나 이듬해 그동안의 불안정한 생활로 병을 얻게 되어 와세다 병원에 입원했다가 결국 귀향해 요양 생활을 한다. 스물한 살에는 ≪폐원(廢園)≫(1909)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끌었고 1년 만에 다시 ≪적막한 새벽(寂しき曙)≫(1910)을 상재하며 상징주의 시인으로서 입지를 다진다. 그렇지만 1911년 부모를 대신하던 조부가 사망하자 깊은 방황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 ≪흰 손의 사냥꾼(白き手の獵人)≫(1913)을 발표하며 비로소 완성도 높은 상징시의 세계를 구축한다. 또한 가와지 류코(川路柳虹),사이조 야소(西條八十), 야나기사와 다케시(柳澤健) 등과 함께 <미래사(未來社)>라는 순수 예술을 지향하는 모임을 결성하기도 한다. 이렇듯 공백이 없는 활발한 전성기와 높은 문학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뿌리 깊은 고독과 공허함은 그를 고통스럽게 했고 이로 인해 이 시기 종교에 서서히 빠져들며 신앙과 시작(詩作)을 병행한다. ≪환상의 전원(幻の田園)≫(1915)을 출간한 이후에는 홋카이도에 있는 트라피스트 수도원(Trappist Monastery)에 머물며 그 체험 중에 쓴 시를 바탕으로 종교시집인 ≪양심(良心)≫(1915)을 발표한다. 이후 두 차례 더 수도원에 체재한 뒤 1920년 5월에는 문학 개론 및 미학론의 강사직을 제안받아 정주(定住)하기에 이른다. 이후 약 5년간 수도원에서 생활하며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 로후는 수도원 생활을 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창작을 이어 간다. 그러나 수도원에서의 생활은 급격히 변모하는 시단의 변화를 따라잡기 어려워 서서히 문단의 중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1924년 수도원에서 나온 로후는 지금의 도쿄 미타카(三鷹)에 터전을 잡고 문학 활동과 후학의 양성에 힘쓴다. 이 무렵 그의 신앙심은 더욱 깊어져 종교와 관련한 시와 수필을 발표하고 강연을 하며 포교 활동에 힘썼는데, 이에 1927년 일본 최초로 로마 교황으로부터 훈4등급(勳四等) 훈장인 성 세퓔크레 기사장(Chevalier Saint Sépulcre)과 홀리나이트(Holy Knight)의 칭호를 받는 영예를 얻는다. 1964년 12월 21일 로후는 미타카 자택 근처의 우체국 앞에서 택시에 치이는 사고로 치료를 받던 중 12월 29일 76세의 나이로 영면에 든다. 12월 31일 장례식 이후 다마(多摩) 화장터에서 화장했고, 다음 해 1월 18일 가톨릭 기치조지(吉祥寺)교회에서 고별식을 거행했다. 그의 묘는 미타카시 다이세이사(大盛寺) 별원 묘지에 안치되어 있다.
오카모토 가노코(岡本かの子, 1889년 3월 1일 ~ 1939년 2월 18일)는 일본의 저자, 시인, 불교 학자의 필명으로…오카모토 가노코(岡本かの子, 1889년 3월 1일 ~ 1939년 2월 18일)는 일본의 저자, 시인, 불교 학자의 필명으로, 다이쇼와 초기 쇼와 시대를 지낸 인물이다.
기쿠치 간(일본어: 菊 (きく)池 (ち) 寛 (かん), 1888년 12월 26일 ~ 1948년 3월 6일)은 일본 다이쇼…기쿠치 간(일본어: 菊 (きく)池 (ち) 寛 (かん), 1888년 12월 26일 ~ 1948년 3월 6일)은 일본 다이쇼 시대와 쇼와 시대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다. 본명은 기쿠치 히로시(일본어: 菊 (きく)池 (ち) 寛 (ひろし))로 한자 표기는 같다. 1888년 다카마쓰시에서 태어나 법률가를 목표로 메이지 대학 법학부에 입학하지만, 징병을 피하기 위해 중퇴. 다시 교토 대학 문학부에 입학해 1916년 동대학 졸업 후 지지신보(時事新報) 기자로 근무했다. 제3-4차 '신시조' 동인으로서 1916년 희곡 <屋上の狂人(오쿠조노교진, 옥상의 광인)> 등을 발표했으나 이후에는 주로 단편소설을 집필, 1918년 <無名作家の日記(무메이사카노닛키, 무명작가의 일기)>를 써 <주오코론>에 발표하여 신진 작가의 위치를 확립했다. 1923년 <분게이슌주(文藝春秋)>를 창간, 1928년 사장으로 취임하여 사업가로서 활약했다.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 나오키 상 등을 제정하여 작가의 복지와 신인의 발굴. 육성 등에 공헌한 바 있다. 창작 면에서는 1920년의 '신주후진(眞珠夫人)'으로 시작되는 통속소설을 주로 집필하였다. 인생의 '극적 순간'을 포착하여, 명쾌한 합리적인 질서 속에 살리는 점에 그의 희곡과 소설의 특색이 있다.
윤백남(尹白南, 본명: 윤교중, 본명 한자: 尹敎重, 1888년 11월 7일~1954년 9월 29일)은 일제강점기…윤백남(尹白南, 본명: 윤교중, 본명 한자: 尹敎重, 1888년 11월 7일~1954년 9월 29일)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예술가이다. 배우, 극작가, 소설가, 언론인,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영화제작자 등을 다양한 직업을 겸했다.
홍명희(洪命憙, 1888년 5월 23일 ~ 1968년 3월 5일)는 독립운동가 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다. 해방…홍명희(洪命憙, 1888년 5월 23일 ~ 1968년 3월 5일)는 독립운동가 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다. 해방 후 1948년 월북하여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도 활동했다. 1948년 9월부터 1962년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내각 부수상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초대, 제3대 부위원장(1948년 9월 - 1957년, 1958년 10월 - 1968년)을 역임하였다. 그는 일제강점기 당시에 이광수, 최남선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대표되었던 인물이었으며, 소설 《임꺽정》의 작가로 유명하다. 본관은 풍산. 호는 벽초(碧初), 필명은 가인(假人) 또는 가인(可人)·백옥석(白玉石)이다. 일생동안 소설창작, 언론활동, 정치활동, 독립운동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나카니시 이노스케(일본어: 中 (なか)西 (にし) 伊 (い)之 (の)助 (すけ): 1887년 2월 8일-1958년 9월…나카니시 이노스케(일본어: 中 (なか)西 (にし) 伊 (い)之 (の)助 (すけ): 1887년 2월 8일-1958년 9월 1일)는 일본의 작가, 노동운동가, 정치인이다. 중의원의원을 2기 역임했다.
사사끼 키젠(일본어: 佐 (さ)々 (さ)木 (き) 喜 (き)善 (ぜん): 1885년 10월 5일-1933년 9월 29일)은…사사끼 키젠(일본어: 佐 (さ)々 (さ)木 (き) 喜 (き)善 (ぜん): 1885년 10월 5일-1933년 9월 29일)은 일본의 민속학자・작가・문학자・문학연구자다. 민화・전설・습속・구승문학의 수집가이며 연구가였다. 일반적으로 학자로 취급되지만 사사키 자신은 자료수집가일 뿐 학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일본어: 谷崎潤一郞, 1886년 7월 24일 ~ 1965년 7월 30일)는 일본 메이지에서 쇼와 기(期)에…다니자키 준이치로(일본어: 谷崎潤一郞, 1886년 7월 24일 ~ 1965년 7월 30일)는 일본 메이지에서 쇼와 기(期)에 걸친 소설가이다. 1910년 오사나이 가오루, 와츠지 데츠로 등과 제2차 <신시죠(新思潮)>를 창간, 동년의 각 호에 <탄조(誕生)> <조(象)> <시세이(剌靑)> 등을 발표했다. 그의 문학은 가후(荷風)의 작풍을 이어 그것을 심화시켰다. 가후에 있었던 문학에의 전 인격적인 면은 불식되고 인생과 분리된 전적으로 예술 프로퍼(proper)의 인위적인 탐미정신이 그 특색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후 33년 <슌킨 이야기(春琴抄>, 43년~48년에 걸쳐 쓰인 <세설(細雪)>과 같은 고전적 분위기를 지닌 작품들을 발표한다.
히라쓰카 라이초(일본어: 平塚 らいてう, 1886년 2월 10일 ~ 1971년 5월 24일)는 일본의 사상가, 평론가…히라쓰카 라이초(일본어: 平塚 らいてう, 1886년 2월 10일 ~ 1971년 5월 24일)는 일본의 사상가, 평론가, 작가, 여성주의자이며 쇼와 시대의 여성 운동 지도자이다. 본명은 히라쓰카 하루(平塚明).
무샤노코지 사네아쓰(武者小路実篤)는 일본의 소설가, 시인, 극작가, 화가, 귀족원칙선의원이다. 동료들에게는 무샤(武者)라는…무샤노코지 사네아쓰(武者小路実篤)는 일본의 소설가, 시인, 극작가, 화가, 귀족원칙선의원이다. 동료들에게는 무샤(武者)라는 호칭(애칭)으로 많이 불렸다고 한다. 일본 예술원 회원이며 문화훈장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증 종3위.
노가미 야에코(일본어: 野 (の)上 (がみ) 弥 (や)生 (え)子 (こ): 1885년(메이지 18년) 5월…노가미 야에코(일본어: 野 (の)上 (がみ) 弥 (や)生 (え)子 (こ): 1885년(메이지 18년) 5월 6일-1985년(쇼와 60년) 3월 30일)는 일본의 소설가다. 원래 이름은 야에(ヤヱ)이고, 결혼하기 전 구성은 코테가와(小手川)였다. 훈도킨 간장 창업가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상경, 메이지 여학교에 입학한다. 1906년 나츠메 소세키 문하의 노가미 토요이치로와 결혼. 『두견』에 「인연」을 게재하여 작가로 데뷔, 죽을 때까지 현역 작가로 활동했다. 호세이대학 여자고등학교 명예교장 역임.
기타하라 하쿠슈(일본어: 北原 白秋 きたはら はくしゅう[*], 1885년 1월 25일 ~ 1942년 11월 2일)는 일본의…기타하라 하쿠슈(일본어: 北原 白秋 きたはら はくしゅう[*], 1885년 1월 25일 ~ 1942년 11월 2일)는 일본의 시인・가인이다. 본명은 류키치. 후쿠오카현 출신. 와세다 대학 동문.
시가 나오야(일본어: 志賀 直哉, しが なおや, 1883년 2월 20일~1971년 10월 21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시가 나오야(일본어: 志賀 直哉, しが なおや, 1883년 2월 20일~1971년 10월 21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까지 활동했으며, 무샤노코지 사네아쓰, 아리시마 다케오, 사토미 돈 등과 함께 시라카바파(일본어: 白樺派)의 주요 창설 일원 중 한 사람이다. "시가 문체"라는 독자적인 문체를 구축하였고, 주요 작품으로는 장편 소설 《암야행로》(暗夜行路), 단편인 《화해》(和解), 《꼬마점원의 신》(小僧の神様), 《기노사키에서》(城の崎にて) 등이 있다. 소설의 신(小説の神様)라고 불렸으며 많은 일본인 소설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다자이 오사무가 죽기직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쿠타 조코(生田長江, 1882년 (메이지 15년) 4월 21일 ~ 1936년 (쇼와 11년) 1월 11일)는 일본의…이쿠타 조코(生田長江, 1882년 (메이지 15년) 4월 21일 ~ 1936년 (쇼와 11년) 1월 11일)는 일본의 평론가, 번역가, 소설가, 극작가이다. 그러나 1936년에는 나병에 시달리다가 사망하였다. 그래서 일본에서 매우 유능한 소설가로도 유명하다.
하시구치 고요(일본어: 橋口五葉, 1880년 12월 21일 ~ 1921년 2월 24일)는 일본의 미술가이다. 신판화("새로운…하시구치 고요(일본어: 橋口五葉, 1880년 12월 21일 ~ 1921년 2월 24일)는 일본의 미술가이다. 신판화("새로운 판화") 운동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우키요에의 부흥을 이끈 이 운동에서 그는 목판화 14점을 제작했으며, 이 작품들은 해당 장르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오사나이 가오루(일본어: 小 (お)山 (さ)内 (ない) 薫 (かおる), 1881년 7월 26일 ~ 1928년 12월…오사나이 가오루(일본어: 小 (お)山 (さ)内 (ない) 薫 (かおる), 1881년 7월 26일 ~ 1928년 12월 25일)는 일본의 극작가, 소설가, 시인 연극연출가로, 일본 최초의 서구식 소극장인 쓰키지 소극장(일본어: 築 (つき)地 (じ)小 (しょう)劇 (げき)場 (じょう) 쓰키지쇼게키조[*])을 세워 일본에 근대 연극을 소개하였다.
나가이 가후(일본어: 永井 荷風 나가이 카후[*], 1879년 12월 3일 ~ 1959년 4월 30일)은 일본의 소설가…나가이 가후(일본어: 永井 荷風 나가이 카후[*], 1879년 12월 3일 ~ 1959년 4월 30일)은 일본의 소설가, 수필가, 번역가이다. 주로 메이지 시대와 쇼와 시대에 걸쳐 활동했다. 주요 작품으로 《힘겨루기》(腕くらべ), 《묵동기담》(濹東綺譚) 등이 있다. 본격적으로 문학에 뜻을 둔 것은 1901년경이며, 1909년 12월부터 도쿄 아사히 신문>에 <레이쇼>를 연재, 다음해부터 <미다분가쿠>의 창간에 참가했다. '와세다분가쿠'의 자연주의에 대항하는 탐미주의로 기울어져서 이른바 미다파의 신인들에게 탐미·퇴폐의 문학 취미를 양성하게 되었는데, 후에 에도적 화류 세계에의 탐닉으로 자폐하여 많은 화류소설의 걸작을 낳았다.
아리시마 다케오(일본어: 有島 武郎, ありしま たけお, 1878년 3월 4일 ~ 1923년 6월 9일)는 일본의 소설가…아리시마 다케오(일본어: 有島 武郎, ありしま たけお, 1878년 3월 4일 ~ 1923년 6월 9일)는 일본의 소설가, 단편 작가, 수필가이다. 아들은 배우 모리 마사유키이며 장인은 가미오 미쓰오미 남작이다. 가쿠슈인 중등과를 졸업한 후 농학자가 되기 위해 홋카이도의 삿포로 농학교을 졸업했다. 1903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해버퍼드 대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그 후, 하버드 대학에서 역사와 경제학을 공부한다. 하버드 대학생활은 1년 못미쳐서 학교를 그만둔다. 귀국 후 교사로 일하다가 시가 나오야, 무샤노코지 사네아쓰와 함께 문학 동인지 〈시라카바〉를 창간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작가로서 활동하던 중 1923년에 연인 하타노 아키코와 동반 자살했다. 대표작으로 소설 《카인의 후예》(カインの末裔), 《어떤 여자》(或る女), 평론 산문인 《사랑은 아낌없이 빼앗는다》(惜しみなく愛は奪ふ)가 있다.
이즈미 교카(泉鏡花, 1873년 11월 4일 ~ 1939년 9월 7일, 본명: 이즈미 교타로/泉鏡太郎)는 전전시기 활동했던…이즈미 교카(泉鏡花, 1873년 11월 4일 ~ 1939년 9월 7일, 본명: 이즈미 교타로/泉鏡太郎)는 전전시기 활동했던 일본의 소설, 단편 스토리, 가부키 희곡 작가이다. 교카의 글은 당시 문학계를 주름잡았던 박물학 작가들의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교카의 작품들 다수는 사회의 초현실적 비판에 관한 것들이었다. 일본의 미술과 문학에서 에도 시대 초기의 작품들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은 초자연적 이야기를 선호하는 낭만주의의 특징적 브랜드로 유명하다.
시마자키 도손(일본어: 島崎 藤村; 1872년 3월 25일 ~ 1943년 8월 22일)은 일본 메이지 시대의 시인이자…시마자키 도손(일본어: 島崎 藤村; 1872년 3월 25일 ~ 1943년 8월 22일)은 일본 메이지 시대의 시인이자 메이지에서 쇼와까지의 소설가다. 본명은 시마자키 하루키(島崎春樹)이다. 1897년 시집 <와카나슈(若菜集)>를 낸 후 <히토하부네(一葉舟)>(1898), <라쿠바이슈(落梅集)>(1901) 등을 발표, 화려한 낭만시인으로서 출발했다. 그러나 1899년부터 산문으로 전환, 1903년 <와라조리(藁草履)> 등을 발표했고, 1906년 3월 <하카이>를 발표하여 근대문학에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고 동시에 문단에 확고한 지위를 구축했다. 1943년 8월 22일 뇌출혈로 죽었다. 근대문학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문호(文豪)이다.
다야마 가타이(일본어: 田山花袋, 1872년 1월 22일 ~ 1930년 5월 13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본명은…다야마 가타이(일본어: 田山花袋, 1872년 1월 22일 ~ 1930년 5월 13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본명은, 로쿠야(録弥). 군마현(群馬県, 당시는 도치기현)출신이다. 오자키 고요(尾崎紅葉)의 밑에서 수행했었지만, 후에 구니키다 돗포(国木田独歩), 야나기타 구니오(柳田国男)들과 교류한다. 《이불》, 《시골교사》 등의 자연주의파 작품을 발표했고, 그 대표적인 작가의 한 명이다. 기행문에도 뛰어난 작품이 있다.
구니키다 돗포(일본어: 国木田 独歩, 1871년 8월 30일 ∼ 1908년 6월 23일)는 메이지시대에 활동한 일본 소설…구니키다 돗포(일본어: 国木田 独歩, 1871년 8월 30일 ∼ 1908년 6월 23일)는 메이지시대에 활동한 일본 소설, 낭만시 저자이며 일본 자연주의의 발명가들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돗포의 작품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잔잔하면서도 인간의 심부를 해부하는 예리함, 내면의 자신과 직면하게 만드는 강한 흡입력, 스토리의 전개에 따른 의외성과 진실의 보편성을 아우르는 문학적 균형 감각을 갖추고 인생의 해답을 끊임없이 자문하게 만든다.
사카이 토시히코(일본어: 堺 利彦 (さかい としひこ): 1871년 1월 15일[명치 3년 11월 25일] - 1933년 1월…사카이 토시히코(일본어: 堺 利彦 (さかい としひこ): 1871년 1월 15일[명치 3년 11월 25일] - 1933년 1월 23일)는 일본의 사회운동가, 사상가, 공산주의자, 저술가다. 호는 고천(枯川). 별명은 카이즈카 시부로쿠(貝塚 渋六).
나카다 주지(中田重治, 1870년 11월 20일 ~ 1939년 9월 24일)는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 초기를 걸쳐…나카다 주지(中田重治, 1870년 11월 20일 ~ 1939년 9월 24일)는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 초기를 걸쳐 활약했던 일본의 교회 감독, 대중전도자, 순회전도자, 목사, 신학교(가시와기 성서학원) 교수 및 교장, 설교가, 번역가, 찬송가 작곡가, 실업가, 언론인, 신학자이다. 메이지 시대의 감리교의 목사 나카다 히사키치는 친형, 일본을 대표하는 교회음악가 나카다 슈고는 그의 차남이다.
오자키 고요(일본어: 尾崎 紅葉, 1868년 1월 10일 에도 ~ 1903년 10월 30일 도쿄부)는 일본 메이지 시대의…오자키 고요(일본어: 尾崎 紅葉, 1868년 1월 10일 에도 ~ 1903년 10월 30일 도쿄부)는 일본 메이지 시대의 소설가로 본명은 오자키 도쿠타로(일본어: 尾崎 徳太郎)이다. 도쿄 대학 예비문(予備門) 재학 중이던 1885년 야마다 비묘(山田美妙), 이시바시 시안(石橋思案) 등과 함께 겐유샤(硯友社)를 결성하여 잡지 〈가라쿠타분코(我楽多文庫)〉를 발간했다. 1889년 〈니닌비쿠니이로잔게〉(二人比丘尼色懺悔, 두 여승의 참회)로 문단에 등장하여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고, 성격 묘사와 심리 묘사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다조타콘〉(多情多恨)을 발표했다. 이것이 그의 대표작이며, 일본 근대문학의 명작 중 하나이다. 그 후 1897년부터 일대의 역작 〈곤지키야샤〉(金色夜叉)의 집필에 몰두하였으나 완성을 못 본 채 1903년 10월에 사망하였다.
고다 로한(幸田露伴, 1867년 음력 7월 23일~1947년 7월 30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본명은 시게유키(成行).…고다 로한(幸田露伴, 1867년 음력 7월 23일~1947년 7월 30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본명은 시게유키(成行). 다른 호로는 가규안(蝸牛庵), 사사노쓰유(笹のつゆ), 라이온 도슈(雷音洞主), 다쓰텐시(脱天子) 등 다수. 에도 시타야 출생. 일본 제국학술원 회원이자 제국예술원 회원이었다. 제1회 문화 훈장 수상자였다. 딸 고다 아야도 수필가·소설가였다. 다카기 다쿠(高木卓)의 백부이기도 하다. 『풍류불』(風流仏)로 평가를 얻어 「오층탑」 「운명」등의 문어체 작품으로 문단의 지위를 확립. 오자키 고요와 함께 붉은 이슬 시대라는 시대를 구축했다. 의고전주의 대표적인 작가였으며 또한 한문학 · 일본 고전과 여러 종교에도 통달하였고, 많은 수필이나 사전(史傳) 외, 『바쇼 칠부집 평역』(芭蕉七部集評釈) 등의 고전 연구 등을 남겼다. 일본에서는 「로한, 소세키, 오가이」로 나란히 일컬어지며 일본의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