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준(金益俊, 1916년 1월 16일~1984년 6월 18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7·9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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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준(金益俊, 1916년 1월 16일~1984년 6월 18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7·9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한태연(韓泰淵, 1916년 1월 5일~2010년 9월 20일)은 대한민국의 법학자, 법조인, 정치인이다. 함경남도 영흥군…
한태연(韓泰淵, 1916년 1월 5일~2010년 9월 20일)은 대한민국의 법학자, 법조인, 정치인이다. 함경남도 영흥군 출생으로 본관은 청주(淸州), 호(號)는 율산(栗山)이다. 유신헌법 제정 실무작업에 참여하였다. 민주공화당의 전국구 의원으로 제6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유신 정권 당시 유신정우회 소속으로 9·1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10년 9월 20일,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구철회(具喆會, 1915년 7월 26일 ~ 1965년 1월 27일)는 독립운동가 및 언론인 출신의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구철회(具喆會, 1915년 7월 26일 ~ 1965년 1월 27일)는 독립운동가 및 언론인 출신의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제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장준하(張俊河, 1918년 8월 27일~1975년 8월 17일)는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정치인, 종교인…
장준하(張俊河, 1918년 8월 27일~1975년 8월 17일)는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정치인, 종교인, 언론인, 사회운동가이다.
김정식(金正植, 1915년 ~ 1989년 11월 26일)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었다. 일본 오사카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김정식(金正植, 1915년 ~ 1989년 11월 26일)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었다. 일본 오사카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신문기자, 대한청년단 영주군단장, 후생회 이사장, 제2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김인식(金仁湜, 1912년 옹진 ~ 2008년 2월 25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일본 와세다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제헌…
김인식(金仁湜, 1912년 옹진 ~ 2008년 2월 25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일본 와세다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제헌 국회의원 선거 당시 대동청년단 소속으로 옹진군 을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임기 중 민주국민당에 입당했으나 1950년 3월 7일, 민주국민당이 주동이 된 개헌안에 반대하면서 탈당했다. 2006년 당시에 유일하게 생존해 있던 제헌 국회의원이었으며 2008년 2월 25일, 숙환으로 인해 향년 9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상돈(李相敦, 1912년 3월 20일 ~ 1997년 7월 14일)은 대한민국의 제헌·제5·6대 국회의원이다. 호는…
이상돈(李相敦, 1912년 3월 20일 ~ 1997년 7월 14일)은 대한민국의 제헌·제5·6대 국회의원이다. 호는 청거(靑居)이다. 충청남도 천안 출생(천안군 환성면 신당리 월경 부락)이다.
이호우(李鎬雨, 1912년∼1970년)는 대한민국의 시조 시인이다.
윤형남(尹亨南, 1911년 3월 16일 ~ 2002년 9월 10일, 전라남도 순천)은 변호사 출신의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윤형남(尹亨南, 1911년 3월 16일 ~ 2002년 9월 10일, 전라남도 순천)은 변호사 출신의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제3,4,5대 민의원의원, 민의원 법사위원장 등을 지냈다. 1940년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해 강원도청 지방과와 칠곡군수로 근무했으며, 1945년 상주군수로 부임했다. 일본 패전 후에도 상주군수에 유임되어, 그는 해방 직후 첫 경상북도 상주군수였다.
신석초(申石艸, 1909년 6월 4일~1975년 3월 8일)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며 대학 교수이다. 본명은 응식(應植).…
신석초(申石艸, 1909년 6월 4일~1975년 3월 8일)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며 대학 교수이다. 본명은 응식(應植). 본관은 고령(高靈). 충남 서천에서 대한제국 시대 하급 향반(下級 鄕班)을 지낸 신긍우(申肯雨)의 슬하 1남 3녀 가운데 막내아들로 출생하였다.
우갑린(1909년 2월 21일~2000년 3월 11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세나가 카메지로(일본어: 瀬長 亀次郎 (せなが かめじろう): 1907년[명치 40년] 6월 10일 - 2001년[평성…
세나가 카메지로(일본어: 瀬長 亀次郎 (せなが かめじろう): 1907년[명치 40년] 6월 10일 - 2001년[평성 13년] 10월 5일)은 오키나와의 정치가, 언론인이다. 1946년부터 1949년까지 미군 기관지 『우루마 신보』의 사장을 지냈다.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 전에 나하시장(1기), 입법원의원(3기), 오키나와인민당 위원장, 국정참가선거 중의원의원(1기)을 역임했다. 복귀 후에는 인민당에서 1기, 일본공산당에서 5기 중의원의원을 역임했다. 1973년 이후 공산당 간부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김철수(金銕洙, 1906년 12월 2일 부여 - 1973년 7월 3일)는 대한민국의 제헌 국회의원이다.
김문평(金汶枰, 1906년 1월 1일~1987년 1월 27일)은 대한민국의 경제금융조합인, 지역행정관료, 정치인이다.
김영기(金英基, 1905년 1월 8일 ~ 1989년 5월 1일, 경기 안성)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김영기(金英基, 1905년 1월 8일 ~ 1989년 5월 1일, 경기 안성)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으로 제헌국회의 국회의원이었다. 제헌국회에서는 징계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다. 니혼 대학 전문부 법과를 중퇴했으며, 1952년 제3대 경기도지사를 지냈다.
홍길선(洪吉善, 1904년 7월 1일~1980년 8월 8일)은 대한민국의 기업인, 사회운동가이다. 고전 음악 피아노 연주자…
홍길선(洪吉善, 1904년 7월 1일~1980년 8월 8일)은 대한민국의 기업인, 사회운동가이다. 고전 음악 피아노 연주자, 겸 서양고전음악평론가로도 활동했다. 정치인으로도 활동했으며 4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정실(金正實, 1904년 4월 27일 ~ 1969년 10월 27일)은 대한민국의 교육자이자 정치인이다.
정해준(鄭海駿, 1903년 12월 17일 ~ 1993년 5월 4일)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었다.
호리 시게루(일본어: 保利 茂 (ほり しげる), 1901년 12월 20일~1979년 3월 4일)는 12선 중의원 의원을 지낸…
호리 시게루(일본어: 保利 茂 (ほり しげる), 1901년 12월 20일~1979년 3월 4일)는 12선 중의원 의원을 지낸 일본의 정치인이다.
신준원(1901년~1966년 6월 1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오자키 호쓰미(일본어: 尾崎 秀実, 1901년 4월 29일 ~ 1944년 11월 7일)는 일본의 언론인이다. 아사히 신문에서…
오자키 호쓰미(일본어: 尾崎 秀実, 1901년 4월 29일 ~ 1944년 11월 7일)는 일본의 언론인이다. 아사히 신문에서 근무하였으며, 공산주의자였다. 총리 고노에 후미마로의 자문역이었으며, 소련의 정보요원이자 리하르트 조르게의 정보원이었다. 1941년 10월 간첩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1944년 11월 7일 외환죄로 처형되었다. 오자키는 감옥에서 아내와 딸에게 편지를 썼는데, 사후인 1946년 《사랑은 별들의 소나기와 같다》(愛情はふる星のごとく : 獄中通信)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여성(李如星, 1901년 ~ ?)은 일제강점기 활동한 한국의 독립운동가, 화가, 정치가, 언론인이다. 사회주의 계열…
이여성(李如星, 1901년 ~ ?)은 일제강점기 활동한 한국의 독립운동가, 화가, 정치가, 언론인이다.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본명은 이명건(李明建)이다. 호는 사천선(沙泉先), 청정(靑汀)이다.
한암회(韓巖回, 1900년 7월 17일~1975년 5월 25일)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었다.
김장열(金長烈, 1897년 또는 1899년 5월 24일~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최창섭(崔昌燮, 1899년 합천 ~ 1979년 11월 30일)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다. 초대, 제3대, 제4대 국회의원을…
최창섭(崔昌燮, 1899년 합천 ~ 1979년 11월 30일)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다. 초대, 제3대, 제4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문시환(文時煥, 1897년/1899년 8월 12일~1973년 11월 11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문시환(文時煥, 1897년/1899년 8월 12일~1973년 11월 11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경상남도 동래 출신이다.
김양수(金良洙, 1896년 - 1971년 1월 19일)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었다. 미국 콜롬비아대학과 영국 런던대학에서…
김양수(金良洙, 1896년 - 1971년 1월 19일)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었다. 미국 콜롬비아대학과 영국 런던대학에서 수학하고 삼일신보사 주필, 조선흥업주식회사 중역을 맡았었다. 제2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나혜석(1896년 4월 28일 ~ 1948년 12월 10일)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한민국의 화가이자 작가, 시인, 조각가…
나혜석(1896년 4월 28일 ~ 1948년 12월 10일)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한민국의 화가이자 작가, 시인, 조각가,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 언론인이다.
이훈구(李勳求, 1896년 6월 6일 서천 ~ 1961년 6월 13일)는 대한민국의 교육자, 정치인이다. 초대, 제5대…
이훈구(李勳求, 1896년 6월 6일 서천 ~ 1961년 6월 13일)는 대한민국의 교육자, 정치인이다. 초대, 제5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이시목(李時穆, 1897년 ~ 1980년 5월 23일)은 언론인, 기업인 출신의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제2대 국회의원을…
이시목(李時穆, 1897년 ~ 1980년 5월 23일)은 언론인, 기업인 출신의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제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준연(金俊淵, 1895년 3월 14일 ∼ 1971년 12월 31일)은 일제강점기의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였고, 대한민국의…
김준연(金俊淵, 1895년 3월 14일 ∼ 1971년 12월 31일)은 일제강점기의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였고,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또한 조선공산당의 한 분파인 엠엘파(ML)의 중요 인사였다. 독일 베를린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귀국 후에는 조선공산당 결성 운동에 참여했다. 1925년부터는 조선일보에 입사하여 2년간 기자와 주러시아 특파원 등으로 활동하다 1928년 동아일보로 옮겼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본래 공산주의 운동가였으나 우익으로 전향하여 해방 이후 1945년 9월 한민당 창당에 참여했으며, 1948년의 대한민국 단독 정부 수립에 지지를 보냈다. 민주국민당과 1954년 호헌동지회에 참여하였으며 민주당에 참여하였으나, 친여 인물로 분류되어 비판을 받던 중 탈당하여 자유민주당을 창당 조직하기도 했다. 1961년 5월과 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박정희의 사상 경력에 의혹을 제기하여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긍종(李肯鍾, 1895년 ~ 1951년 1월 24일)은 일제강점기의 언론인이며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서춘(徐椿, 일본식 이름: 大川慈種오카와 지슈, 大川豊注오카와 호추, 1894년 11월 24일 ~ 1944년 4월 5일)은…
서춘(徐椿, 일본식 이름: 大川慈種오카와 지슈, 大川豊注오카와 호추, 1894년 11월 24일 ~ 1944년 4월 5일)은 한국의 언론인이다. 2·8 독립선언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였지만 나중에 친일 언론인으로 변절했으며 호는 오봉(五峰)이다.
정현모(鄭顯模, 1893년 ~ 1965년 1월 1일)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최 남선(崔 南善, 1890년 4월 26일 ~ 1957년 10월 10일)은 대한민국의 문화운동가이며 근대 문학 발전에 기여한…
최 남선(崔 南善, 1890년 4월 26일 ~ 1957년 10월 10일)은 대한민국의 문화운동가이며 근대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있는 반면, 이광수와 함께 거론되는 변절한 친일파이다. 아명은 창흥(昌興), 자는 공륙(公六), 아호는 육당(六堂)이며, 본관은 동주. 한성부에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강원도 철원을 거쳐 경상남도 창원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대한제국의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으나 중퇴와 복학을 되풀이하다가 1907년 와세다 대학 재학 중 동맹 휴학 사건으로 인하여 퇴학 처분되어 귀국했다. 1908년 이광수와 함께 소년지를 창간했으나 한일 합방 후 일제의 압력으로 폐간되었고, 1912년 이광수의 도움으로 《붉은 저고리》, 1913년 《아이들 보이》, 《새별》등의 잡지를 발간하였으나 조선 총독부의 '신문지법' 명령으로 모두 강제 폐간되었다. 1914년에는 잡지 《청춘》을 발간했으나 1918년 일본의 압력으로 폐간당했다. 1919년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49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고,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 낭독하였다. 3.1 운동을 사주한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투옥, 1921년에 석방되었다. 1922년 동명사(東明社)를 설립, 주간잡지 《동명(東明)》을 발행하였고 1924년 《시대일보 (時代日報)》를 창간, 사장에 취임했으나 자금과 총독부의 압력 등으로 폐간, 1925년 동아일보의 객원과 조선일보 객원 논설위원을 지냈다. 1927년 총독부의 연구비와 생계 지원 유혹으로 조선사 편수회에 참여하면서 친일 성향으로 전향하여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친일 행적은 적극적인 친일이 아니라는 반론이 1950년대에 장준하 등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1957년 10월 10일 뇌일혈로 별세한 그는 일제 강점기 시대 동안에 이광수, 홍명희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대표되었던 인물이다.
백관수(白寬洙, 1889년 1월 28일~1951년 10월 25일)는 일제강점기의 교육자,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이며 미군정…
백관수(白寬洙, 1889년 1월 28일~1951년 10월 25일)는 일제강점기의 교육자,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이며 미군정 시대의 정치인이다. 호는 근촌(芹村)이며 본관은 수원이다. 전라북도 고창군 출생이며 미군정청 비상국민회의 예하 교통위원장·초대 대한민국 초선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일본 유학 중 1919년 신익희 등과 함께 일본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을 주도했으며, 3·1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귀국 후 중앙학교에서 잠시 교육 활동을 하다가 동아일보에 투신, 언론계에서 활동하였고, 광복 이후에는 제헌국회의원으로서 헌법기초를 담당하였다.
기쿠치 간(일본어: 菊 (きく)池 (ち) 寛 (かん), 1888년 12월 26일 ~ 1948년 3월 6일)은 일본 다이쇼…
기쿠치 간(일본어: 菊 (きく)池 (ち) 寛 (かん), 1888년 12월 26일 ~ 1948년 3월 6일)은 일본 다이쇼 시대와 쇼와 시대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다. 본명은 기쿠치 히로시(일본어: 菊 (きく)池 (ち) 寛 (ひろし))로 한자 표기는 같다. 1888년 다카마쓰시에서 태어나 법률가를 목표로 메이지 대학 법학부에 입학하지만, 징병을 피하기 위해 중퇴. 다시 교토 대학 문학부에 입학해 1916년 동대학 졸업 후 지지신보(時事新報) 기자로 근무했다. 제3-4차 '신시조' 동인으로서 1916년 희곡 <屋上の狂人(오쿠조노교진, 옥상의 광인)> 등을 발표했으나 이후에는 주로 단편소설을 집필, 1918년 <無名作家の日記(무메이사카노닛키, 무명작가의 일기)>를 써 <주오코론>에 발표하여 신진 작가의 위치를 확립했다. 1923년 <분게이슌주(文藝春秋)>를 창간, 1928년 사장으로 취임하여 사업가로서 활약했다.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 나오키 상 등을 제정하여 작가의 복지와 신인의 발굴. 육성 등에 공헌한 바 있다. 창작 면에서는 1920년의 '신주후진(眞珠夫人)'으로 시작되는 통속소설을 주로 집필하였다. 인생의 '극적 순간'을 포착하여, 명쾌한 합리적인 질서 속에 살리는 점에 그의 희곡과 소설의 특색이 있다.
윤백남(尹白南, 본명: 윤교중, 본명 한자: 尹敎重, 1888년 11월 7일~1954년 9월 29일)은 일제강점기…
윤백남(尹白南, 본명: 윤교중, 본명 한자: 尹敎重, 1888년 11월 7일~1954년 9월 29일)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예술가이다. 배우, 극작가, 소설가, 언론인,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영화제작자 등을 다양한 직업을 겸했다.
오가타 다케토라(일본어: 緒方 竹虎, 1888년 1월 30일 ~ 1956년 1월 28일)는 일본의 언론인이자 정치인이다.…
오가타 다케토라(일본어: 緒方 竹虎, 1888년 1월 30일 ~ 1956년 1월 28일)는 일본의 언론인이자 정치인이다. 자유당 총재, 국무대신, 내각정보국 총재, 내각관방방관, 부총리 등을 역임하였으며, 정삼위 훈일등 욱일대수장(正三位勲一等旭日大綬章) 을 받은 바 있다. 아들 오가타 시주로(緒方四十郎)는 일본 은행 이사를 지냈다.
나카노 세이고(일본어: 中野 正剛, なかの せいごう, 1886년 2월 12일 ~ 1943년 10월 27일)는 일본 쇼와…
나카노 세이고(일본어: 中野 正剛, なかの せいごう, 1886년 2월 12일 ~ 1943년 10월 27일)는 일본 쇼와 시대의 언론인, 중의원 의원이자 동방회의 당수였다. 호는 경당 (일본어: 耕堂 고도[*])이다.
오스기 사카에(일본어: 大杉 栄, 1885년 1월 17일 ~ 1923년 9월 16일)는 일본의 대표적인 노동운동가이다.
이시바시 단잔(일본어: 石橋 湛山, 1884년 9월 25일 ~ 1973년 4월 25일)은 일본의 언론인이자 정치가로…
이시바시 단잔(일본어: 石橋 湛山, 1884년 9월 25일 ~ 1973년 4월 25일)은 일본의 언론인이자 정치가로, 제55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냈다.
고토쿠 슈스이(일본어: 幸徳 (こうとく) 秋水 (しゅうすい): 1871년 11월 5일(메이지 4년 음력 9월…
고토쿠 슈스이(일본어: 幸徳 (こうとく) 秋水 (しゅうすい): 1871년 11월 5일(메이지 4년 음력 9월 23일)~1911년(메이지 44년) 1월 24일)는 메이지 시대의 언론인, 사상가,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다. 본명은 고토쿠 덴지로(일본어: 幸徳 (こうとく) 傳次郎 (でんじろう)). "슈스이"라는 이름은 스승 나카에 조민에게서 받은 것이다. 고토쿠 대역사건으로 처형된 12인 중 한 명이다.
구니키다 돗포(일본어: 国木田 独歩, 1871년 8월 30일 ∼ 1908년 6월 23일)는 메이지시대에 활동한 일본 소설…
구니키다 돗포(일본어: 国木田 独歩, 1871년 8월 30일 ∼ 1908년 6월 23일)는 메이지시대에 활동한 일본 소설, 낭만시 저자이며 일본 자연주의의 발명가들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돗포의 작품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잔잔하면서도 인간의 심부를 해부하는 예리함, 내면의 자신과 직면하게 만드는 강한 흡입력, 스토리의 전개에 따른 의외성과 진실의 보편성을 아우르는 문학적 균형 감각을 갖추고 인생의 해답을 끊임없이 자문하게 만든다.
나카다 주지(中田重治, 1870년 11월 20일 ~ 1939년 9월 24일)는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 초기를 걸쳐…
나카다 주지(中田重治, 1870년 11월 20일 ~ 1939년 9월 24일)는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 초기를 걸쳐 활약했던 일본의 교회 감독, 대중전도자, 순회전도자, 목사, 신학교(가시와기 성서학원) 교수 및 교장, 설교가, 번역가, 찬송가 작곡가, 실업가, 언론인, 신학자이다. 메이지 시대의 감리교의 목사 나카다 히사키치는 친형, 일본을 대표하는 교회음악가 나카다 슈고는 그의 차남이다.
이와야 사자나미(巖谷小波, 1870년 7월 4일 ~ 1933년 9월 5일)는 일본의 소설가, 아동문학가, 시인, 수필가이다.
요시쿠라 오세이(吉倉汪聖, 메이지 1년(1868년) 11월 ~ 쇼와 5년(1930년) 12월 30일)는 메이지 시대부터…
요시쿠라 오세이(吉倉汪聖, 메이지 1년(1868년) 11월 ~ 쇼와 5년(1930년) 12월 30일)는 메이지 시대부터 다이쇼 시대까지의 저널리스트, 대륙낭인이다. 호세이 대학 출신. 가나자와번사의 아들로 가가국(지금의 이시카와현)에서 태어났다. 시인·비평가 기타무라 도코쿠와 벗으로 지냈다.
스즈키 덴간(鈴木天眼)은 일본의 정치인, 저널리스트이다. 본명은 지카라(力).
도쿠토미 소호(일본어: 徳富 蘇峰 (とくとみ そほう), 일본어 발음: [to.kɯ̥.toꜜ.mʲi soꜜ.hoː]…
도쿠토미 소호(일본어: 徳富 蘇峰 (とくとみ そほう), 일본어 발음: [to.kɯ̥.toꜜ.mʲi soꜜ.hoː], 1863년 3월 14일~1957년 11월 2일)는 일본의 사상가, 수필가, 평론가이며 평민적 구화주의를 제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판사 민유사를 설립했으며, 잡지 국민의 벗과 신문 국민신문을 창간했다. 그는 소설가인 도쿠토미 겐지로의 형으로도 알려졌다.
스에마쓰 겐초(일본어: 末松謙澄 스에마츠 켄초[*], 1855년 9월 30일(안세이 2년 8월 20일) ~ 1920년(다이쇼…
스에마쓰 겐초(일본어: 末松謙澄 스에마츠 켄초[*], 1855년 9월 30일(안세이 2년 8월 20일) ~ 1920년(다이쇼 9년) 10월 5일)은 메이지 시대와 다이쇼 시대에 활동한 언론인이자 정치가, 번역가이다. 어릴 적 이름은 센마쓰(千松)이며, 초대 내각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의 사위이기도 하다. 러일전쟁 당시 서구 세계에서 만연했던 황화론의 진정과 일본 정부의 전쟁 수행 목적을 홍보하고자 유럽으로 파견되어 여론 공작에 투신했으며, 전후 자작에 서임되었다. 중의원 의원, 내무대신, 체신대신, 추밀원 고문관 등을 역임하였고 제국학술원 회원에 위촉되기도 했다. 1920년 가을, 스페인 독감의 감염 휴유증으로 사망했다.